조선왕조실록 7

조선 왕릉 답사 (28) : 제2구역 서오릉(7)

https://youtu.be/TzpMrdIaqyY 연산군의 어머니이자 인수대비의 며느리인 윤비(尹妃)의 초창기는 매우 좋았다. 원래 성종의 부인은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였으나, 성종의 왕비인 공혜왕후가 몸이 약하고, 결혼 후 6년 가까이 아이가 없어 신하들이 후궁을 들일 것을 청해 숙의 윤씨가 궁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궁에 들어온 지 1년 후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성종은 따로 중전을 간택하지 않고 후궁인 숙의 윤씨를 중전으로 승격시켰다. 당시 숙의 윤씨는 임신 6개월이었다. 중전이 된 후 아들을 낳았는데 바로 연산군이다. 성종은 적장자인 연산군을 원자로 책봉하였다. 그런데 인수대비와 윤비는 물과 기름사이가 않을 수 없었다. 인수대비는 남다른 지식인이지만 윤비(尹妃)는 『내훈』의 법도와는 다소 거리가..

피라미드(84) : 약탈문화재 - 한국 (3)

https://youtu.be/_OO1XDqx1y0 유네스코는 1970년 11월 14일 프랑스 파리의 제1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이 조약 중에서 『조선왕조실록』의 반환과 관련된 조항은 제11조에서 불법적으로 약탈한 문화재에 관한 부분이다.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이 규정을 적용하면 동경대가 보관하고 있는 실록은 명백히 불법으로 약탈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므로 는 조선왕조가 오대산 사고의 관리책임자로 월정사 주지를 임명했다는 사실과 1970년 11월 제16차 총회에서 채택된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불법반출 및 ..

피라미드(82) : 약탈 문화재 - 한국 (1)

https://youtu.be/mCn-Q7tfsWI 과거는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현실 속에 다시 나타난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무단 정복, 강제 합병 등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중에 일어났던 수많은 폐해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피식민국의 상황 변화에 따라 적나라하게 표출되는데 그리스 예술에 대한 현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영국 및 프랑스 등이 그리스 문화재를 가져가서 연구해 이룩한 학문적 성과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유물이 그 생산국에 남아 있었다면 무지와 무관심속에서 더욱 파괴되었을 것이라면서 보다 우수한 연구와 보관 능력을 가진 나라에 잘 보존돼 있음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피식민국들의 문화재 반환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약탈국들이 이와 같이 ..

세조의 문종 살해?(II)

youtu.be/ohkenXtOZHY 조정에서는 전순의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전순의의 방면은 사건을 오히려 확대케 하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년 4월 27일 본격적인 상소가 들어오는데 이때부터 과거와는 달리 의관 전순의에 대한 의학적 처방이 옳지 않았다는 전문적인 죄상이 낱낱이 밝혀진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전순의의 죄상은 다음과 같다. ‘허리 위에 종기는 비록 보통 사람이라도 마땅히 삼가고 조심하여야 할 바인데, 하물며 임금이겠습니까? 움직이는 것과 꿩고기는 종기에는 금기하는 것인데, 전순의가 문종께서 종기가 난 초기에 사신의 접대와 관사(觀射) 등 모든 여러 가지 운동을 모두 해로움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이어서 구운 꿩고기를 바치기에 이르면서도 꺼리지 않았습니..

세조의 문종 살해?(I)

youtu.be/vOVOaeVhPW8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격변 중 하나는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이다. 어린 나이에 단종이 즉위하자 삼촌인 수양대군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손에 넣었으며 이에 불복한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무자비하게 처형당하는 등 정치세력 간의 갈등은 큰 상처를 남겼다.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은 조선왕조의 황금시대를 연 세종의 맏아들로 세종 32년간의 재위기간 중 마지막 8년을 섭정했다. 그는 평소에 학문을 좋아하였고 집현전 학자들을 아끼는 등 성군의 자질을 보였으나 어려서부터 병약했다. 세종이 그로 하여금 서무(庶務)를 결제하게 하였으나 신하들이 각종 질환을 이유로 반대했을 정도였다. 1450년 세종이 사망하자 문종이 왕으로 등극했다. 조선왕조의..

황금보검이 알려주는 신라와 훈족

끄새-TV의 끄새에게 신라의 고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출토품 두 가지를 꼽으라면 금관과 황금보검(장식보검)을 든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를 꼽으라면 국보도 아닌 황금보검(보물 635호)을 이야기하곤 했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금관보다 황금보검을 선정한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바로 어떤 이유로 황금보검을 제일 처음으로 꼽느냐고 다시금 질문한다. 이에 대한 답을 신라에 조예가 깊은 요시미츠 츠네오의 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보로워에(현 카자흐스탄)의 귀금속 상감검의 장식은 얼핏 보면 신라의 황금보검 장식과 전혀 무관해 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다르다. 그러나 제작 기법은 모두 공통적으로 복스 세팅법에 의한 귀금속 상감법이고 상감한 귀금속 주위에 금알갱이를 장식하는 누금세공 기법도 동일하다...

세종 조,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온실

youtu.be/n-oJHWh17Ec 유럽보다 170년 빠른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온실 조선 세종 때 세계 최초로 온실을 만들었다고하면 곧바로 국수주의적인 주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한국인들이 자주 써먹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금속활자, 측우기 등은 물론 비거(飛車)와 로켓 등을 만들어 세계인을 감탄하게 한 우리 민족의 지혜가 농업 분야에도 반영됐을 수 있다는 생각한다면 다소 생각을 달리할 지 모른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내용이 알려진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말 의 이훈석 선생은 청계천 고서점에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헌 책을 구입했다. 고서수집이 취미인 그는 워낙 오래된 책 같아서 무조건 사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