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 8

피라미드(59) : 피라미드의 보물(1)

youtu.be/10o2YAdXjXE 세계7대불가사의의 하나인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는 것은 피라미드 안에 부장되었을 보물의 행방이다. 쿠프의 피라미드보다 1200여년 후에 도굴되지 않고 발견된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세계인을 놀라게 한 보물이 발견되었으므로 이에 견준다면 쿠프의 피라미드에는 엄청난 보물이 부장되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실 투탕카문의 무덤은 이집트 파라오 묘 중에서도 가장 작은 것이다. 이집트의 장구한 역사를 볼 때 생전에 자신이 들어갈 피라미드를 완성한 파라오는 거의 없다. 파라오로 등극하자마자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설하더라도 대부분 자신의 피라미드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다. 이 경우 후임 파라오는 곧바로 선왕의 피..

피라미드(34) : 이집트의 영광(15)

youtu.be/IAqmW7uZ9SM 이집트가 특유의 전통이 3000년 이상 계속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 있다. 그중에는 이집트인들의 결혼관에서 기인한다는 다소 생소한 주장도 있다. 그것은 이집트 파라오가 전통적으로 공주들을 외국인과 결혼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근친결혼으로 자신의 아내로 맞거나 가족의 다른 구성원과 결혼하기를 권장했다는 것이다. 고왕국 초창기부터 이집트 파라오는 많은 왕비를 거느렸다. 현대적인 감각으로는 이해되기 어렵지만 이집트인들은 많은 왕비의 숫자야말로 파라오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규모 하렘을 유지한다는 것은 파라오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결혼은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므로, 파라오는 가능한 한 ..

피라미드(16) : 죽어야 산다(1)

youtu.be/pxW5Lt-RFqE 1999년 제작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영화 「미이라」는 람세스2세의 아버지 세티1세의 시대를 그렸다. 줄거리는 이렇다. ‘세티 1세의 후궁인 앙크수나문은 파라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재상 임호텝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은 파라오에게 발각되고 앙크수나문은 자결하게 된다. 임호텝은 흑마술로 그녀를 부활시키려 하지만, 파라오의 근위대에 붙잡혀 ‘홈다이’라는 형벌을 받는다. 홈다이는 산 채로 석관에 갇혀 영원히 생시체가 되는 끔찍한 극형이다. 앙크수나문과 임호텝의 금지된 사랑은 그렇게 ‘파라오의 저주’로 비극적인 끝을 맺고, 왕족들이 잠든 하무납트라는 죽음의 도시가 되어 역사 속에 묻힌다. 한편 황금의 유물을 찾아 여러 탐험가들이 하무납트라를..

피라미드(5)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5)

youtu.be/B-ZuzBZyOno 학자들은 선사시대 이집트인들을 지중해 민족으로 추정한다. 길쭉한 두상에 달걀형의 섬세한 얼굴을 가진 호리호리한 민족이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종족적 특징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입된 민족과 혼합되면서 변해갔다고 생각된다. 넓적한 두상에 강한 뼈, 굵은 손목과 발목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갖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집트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과일, 잠두콩, 제비콩, 아마 등이 풍부했고 밀, 기장 등의 곡물은 인근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을 만큼 부유했다. 그런데다 이집트인들은 금⋅은⋅동 등 금속을 다루는데 매우 능하여 일찍이 고왕국 시대부터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와 같은 금속장신구 착용을 즐겼다...

로도스섬의 청동거상(2)

youtu.be/pc1ZmWC--V0 〈복원되지 않은 청동거상〉 로도스 섬의 청동상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거상이 실제로 어디에 설치되었는가 조차 확실하지 않아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이 거상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우선 거상이 건설된 지 겨우 66년 후에 무릎 부분이 파괴되어 전복됐기 때문이다. 동상의 제작은 약 기원전 292년부터 착수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로도스 항구의 입구 부근에 높이 15미터, 지름 18미터의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조 받침대를 설치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받침대가 항구의 방파제에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여하튼 신상의 크기는 약 33m, 외장은 드미트리오스가 버리고 간 군수품을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신상의 하부공사에 드미트리오스가 갖고 온 공성탑을 이용하..

공중정원과 바벨탑(7)

youtu.be/pRjL3Aeoen4 〈공중정원의 발굴〉 공중정원이 있었던 바빌론의 운명은 영욕의 역사가 수도 없이 순환되었지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9세기부터 아시리아인들의 지배를 받던 바빌론인들은 호시탐탐 반란의 기회를 노렸지만 기원전 689년에 바빌론은 세나케리브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다. 아시리아인들은 바빌론의 사원들을 모두 파괴하고 마르둑 신상을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옮겼고 바빌론 전체가 물에 잠기도록 유프라테스 강의 수로를 바꾸었다. 그러나 바빌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세나케리브의 후계자 에사르헤돈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기원전 7세기에는 과거의 위용을 다시 회복했다. 기원전 626년 바빌론은 나보폴라사르의 영도하에 아시리아에 독립을 선포하고 14년 후 인근 국가와 연합군을 구..

공중정원과 바벨탑(5)

youtu.be/0qzdQ1Vg6ss 〈공중정원의 발명자〉 세미라미스는 당시까지는 님루드가 수도였는데 수도를 고도인 바빌론으로 옮겼다. 수도를 옮기기 위해 재건한 바빌론은 고대의 바빌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성곽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그 성벽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아시리아에는 수많은 대도시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이름 있고 또한 가장 강력한 도시는 니노스(니네베)기 황폐해진 후 왕궁의 소재지가 된 바빌론이었다. 바빌론은 광대한 평야 한가운데 있는 대도시로서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각 변의 길이가 120스타디온(14마일)에 이른다.’ 헤로도투스가 말하는 아시리아는 광의의 뜻으로 바빌론도 포함된다. 그는 성벽을 쌓기 위해 구운 벽돌을 했고 모르타르 대..

리빙스턴과 헨리 스탠리(3)

youtu.be/2RGgjq96duE 〈천사와 악마의 만남〉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하고 현대문명을 아프리카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유럽인 상인과 군대가 드나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원용하면 아프리카를 영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추후 상당한 파장을 갖고 왔다. 실제로 1873년 그가 사망한 이후 유럽의 열강 즉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를 자신들 의도대로 분할하는데 그들은 리빙스턴을 ‘보호 성자’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했다. 즉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점령하여 그들의 야만성을 문명인으로 길들이는 것이야말로 아프리카인들을 위한다는 것인데 이는 리빙스턴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주장이다. 여하튼 리빙스턴이 사망한 후 아프리카가 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