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을 싫어한 아인슈타인을 넘다>
블랙홀이란 말은 우주를 다룰 때 반드시 등장하지만 블랙홀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2020년이 처음이다. 그만큼 우주론에서 주를 이루었음에도 수상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펜로저스와 스티븐호킹의 블랙홀을 다시금 정리하여 설명한다.
1783년 존 미첼과 1796년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별의 밀도가 적당히 높아지면 별에서의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질 수 있으며 그러면 빛이 지구와 같이 아주 멀리 있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블랙홀과 같은 천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상대성이론을 제시한 아인슈타인은 블랙홀 존재를 믿지 않고 매우 싫어했다.
그런데 일반상대성 이론이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은 1916년 독일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아인슈타인의 중력에 대한 매우 혁신적인 논문을 읽고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구대칭 진공해를 발견한다.
슈바르츠실트 메트릭이라고 부르는 시공간인데 이 해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다. 첫째, 공간의 휘어짐이 중심으로 갈수록 점점 강해져 어느 구면(사건지평면 혹은 슈바르츠실트 반경) 안으로 들어가면 빛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소위 블랙홀 영역이 존재한다. 둘째, 이 블랙홀 영역의 중심에는 시공간 휘어짐이 무한대로 커지는 소위 특이점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블랙홀은 거대한 별들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1920~1930년대에는 이와 같은 블랙홀 해의 의미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논란의 핵심은 블랙홀과 같은 천체가 실제 자연에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와 스나이더는 1939년 무거운 별의 극적인 붕괴를 뜻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보통의 별은 내부에서 핵융합과 같은 과정을 통해 열이 발생하고 이 압력으로 중력과 균형을 이루어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들은 압력이 없이 중력 수축만 일어나는 경우를 일반상대론에서 고찰한 것이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의하면 별이 중력 수축을 진행하면서 사건지평면이 발생하고 중심에서의 질량 밀도가 무한대가 되어 특이점도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일반상대론의 블랙홀 해는 수학적인 것이 아니라 중력붕괴를 통해 자연에 실재하는 천체물리적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태양보다 훨씬 무거운 별이 붕괴할 때 연료가 다하면 중력이 워낙 강한 탓에 별 안쪽으로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데 빛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빛의 속도도 이 천체들의 중력을 빠져나올 만큼 빠르지 않다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에서 도출되는 이상하고 극단적인 해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되자 일부 별에 일반상대성 이론의 방정식에 맞지 않는 경우가 등장했다.
아인슈타인 사망 3년 후인 1958년 휠러는 오펜하이머의 결과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펜하이머의 결론은 구대칭의 이상적인 물질분포를 가진 별이 수축하는 경우에 도출된 것인데 실제 자연에서는 회전이나 충돌, 폭발 등이 발생하므로 구대칭 상황은 지극히 이상적인 상황이며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중력붕괴는 구대칭이라는 비물리적이고 수학적 가정의 결과이지 실제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1963년 펜로즈는 휠러의 이같은 지적에 강한 흥미를 느낀 후 1964년 블랙홀이 안정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성이론을 연구할 때 쓰이는 수학적 이론을 확장한 후 「중력 붕괴와 시공간 특이점」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펜로즈는 별의 수축과정에서 소위 갇힌면(Trapped surface)이 존재하고 수축 물질이 에너지 조건을 만족하면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서는 특이점이 반드시 생성된다는 것이다. 갇힌면의 출현은 중력 수축에서 쉽게 보일 수 있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은 이상한 물질이 아닌 한 모두 위의 에너지 조건을 만족한다고 강조했다.
이 증명은 구대칭을 전혀 가정하지 않고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일일이 풀 필요가 없는 매우 일반적인 접근법이다. 그러므로 특이점, 즉 블랙홀은 자연에서 중력 수축의 과정을 통해 충분히 형성될 수 있는 천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들 질문에 실질적인 해답을 제시한 사람이 로저 펜로즈 박사다.
블랙홀의 존재에 관한 질문은 1963년 우주에서 가장 밝은 별인 퀘이사가 발견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거의 10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처녀자리의 한 지점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방사선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이 방사선은 결국 지구에서 10억 광년 이상 떨어져 있는 퀘이사(3C273)로 밝혀졌다.
아주 멀리 떨어진 광원에서 나온 빛을 보려면 빛의 강도가 수십개의 은하계를 합친 것과 비슷해야 한다. 천문학자들은 곧 퀘이사가 매우 멀리 있어서 우주가 형성된 초기에 방사선을 전부 방출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방사선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유력한 설명은 퀘이사 속에 있는 많은 에너지가 블랙홀로부터 왔다는 설명이다.
1964년 펜로즈 교수는 동료와 산책하는 도중 불현듯 수학적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블랙홀들이 항상 특이점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펜로즈가 이 증명에 쓴 위상수학적인 방법들은 현재 휘어진 우주에 관한 연구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당시 우주의 시초가 있느냐의 문제는 우주론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그런데 1965년 학생이었던 스티븐 호킹은 빅뱅 우주론의 관점에서 초기 특이점의 존재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1963년 러시아의 립시츠와 칼라트니코프가 균질성과 등방성을 가정하지 않으면 우주는 특이점이 아닌 유한한 고밀도의 상태에서 팽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킹은 이들을 통해 영화필름을 거꾸로 돌리듯이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팽창이 중력 수축과 유사한 문제가 되어 펜로즈의 논증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킹은 이를 정리하여 「열린 우주에서의 특이점 출현」이란 논문을 제출한다. 이후 호킹은 펜로즈와 함께 새로운 위상수학적 방법과 특이점 정리를 발전시켜 일반상대론 연구의 황금기를 열게 된다. 블랙홀은 천체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에게 더는 수학적 특수해가 아닌 실체로서 받아들여지게 됐고 천체 현상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펜로즈의 연구에 호킹의 역할이 만만치 않았음을 이해할 것이다.
특이점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남아있다.
물리학에서 무한대의 양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현상을 지배하는 이론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특이점 형성에 가까워지면 일반상대론으로 더 이상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다소 골머리 아픈 일이지만 다른 중력이론으로 대체하거나 양자현상을 포함한 중력이론으로 설명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 기술 즉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돌이켜 보면 2017년 중력파, 2019년 물리적 우주론과 외계행성, 그리고 올해의 블랙홀 등 모두 천체물리 분야에서 선정되었다. 이는 그동안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이기도 하지만 최근 천체물리 분야에서의 과학적 성과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블랙홀을 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블랙홀과 같은 큰 중력은 주변 별들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준다. 즉 블랙홀이 주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면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는 10만 광년에 걸친 평평한 원반 모양이다. 가스와 먼지, 수천 억 개의 별들로 구성됐다. 지구에서는 성간 가스와 먼지구름이 은하 중심에서 오는 가시광선을 가려 별을 볼 수 없다.
겐첼 박사와 게즈 교수는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먼지구름과 가스 너머를 볼 수 있는 적외선 망원경과 전파망원경을 통해 우리 은하 중심을 연구하여 중심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체가 숨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다. 바로 블랙홀이다.
사실 그동안 학자들은 부단히 우리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1960년대 초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는 에너지 때문에 별처럼 적색으로 밝게 빛나는 블랙홀을 포함한 은하인 퀘이사가 발견된 이후로 물리학자들은 큰 은하 가운데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미국의 천문학자 헤일로 섀플리는 우리 은하의 형태를 확인한 모형을 만들면서 궁수자리 방면에 우리 은하 중심이 있다는 것을 100여 년 전에 처음 확인했다. 이후 천문학자들의 관측을 거쳐 우리 은하 중심에서 강력한 전파를 방출하는 원천이 있는데 이것을 궁수자리A라고 명명했다.
궁수자리A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가능해진 것은 천문 장비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겐첼 박사와 게즈 교수는 개별로 은하를 관찰했다.
겐첼 교수는 칠레 파라날 산에 자리잡은 유럽남방천문대(ESO)에 설치된 8미터 구경의 초거대망원경(VLT)을 이용했고, 게즈 교수는 하와이 마우나케아산에 설치된 10미터 구경의 케크 천문대를 활용했다.
그러나 망원경이 크더라도 100km가 넘는 두께의 대기 아래에서 별을 관측해야 하므로 한계가 있다. 마침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응 광학'이 도입되면서 망원경은 공기의 난류를 보정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보정해주었다. 두 명은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우리 은하의 중심 속 뒤죽박죽으로 섞인 별들을 분석했다.
이들은 이를 토대로 은하 중심에 있는 가장 밝은 별 30개를 추적했다. 이 별들은 은하 중심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마치 꿀벌처럼 복잡한 궤도를 그린다. 이 영역 밖의 별은 은하의 타원 궤도를 질서 있게 돈다. 이중 S2라는 별은 16년 간격으로 은하 중심을 한 바퀴 도는데 학자들은 이들이 너무 빠른것에 의아해 했다. 태양이 은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억 년 이상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S2를 비롯한 별들의 궤도로 각자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을 측정했다.
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이 태양계 크기의 지역에 태양질량 400만 배의 질량을 가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2020년 노벨 물리학상으로 이끈 것이다.
블랙홀에 관한 과학 팁 한 가지.
태양보다 120억 배 무거운 고대 블랙홀이 발견됐다. 중국 북경대와 미국 애리조나대 등 국제 연구팀이 적외선 우주망원경 ‘와이즈(WISE)’에서 보낸 데이터를 분석해 지구에서 128억 광년 떨어진 지점에서 새로운 블랙홀은 태양의 질량보다 120억 배 무겁댜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블랙홀 중 가장 무거운 블랙홀이다.
이 블랙홀에 의해 형성된 퀘이사는 태양보다 420조 배 밝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블랙홀은 빅뱅 이후 9억 년이 지난 시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국천문연구원 김민직 박사는 초기 우주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블랙홀이 발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블랙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빅뱅 직후 7억6000만 년에 생성됐다.
참고문헌 :
「호킹박사 “내 블랙홀 이론 틀렸다”…패배 인정」, 동아사이언스, 2004.07.23
「강력한 중력을 가진 ‘우주끈’이 과거로 돌아가는 문을 연다」, 뉴턴, 2004년 10월
「공상과학 소설에서 태어난 시간 여행 이론」, 뉴턴, 2004년 10월
「스티븐 호킹, 그리고 ‘만물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 최영준, 동아사이언스, 2014.12.12.
「태양 질량 120억 배 초거대 블랙홀 발견」, 신선미, 동아사이언스, 2015.02.27
「유사 블랙홀로 호킹복사 관찰했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2016.08.29.
「스티븐 호킹은 왜 노벨상을 받지 못 했나」, 한세희, 동아사이언스, 2018.03.14
「루게릭병을 극복해낸 스티븐 호킹」, 대중과학, 2018년 5월
「노벨상위원회가 밝힌 물리학상 수상자 공적」, 김우현, 동아사이언스, 2020.10.06.
「노벨 물리학상에 ‘블랙홀 발견’ 과학자 3명」, 이근영, 한겨레, 2020.10.06.
「노벨물리학상 안겨준 '블랙홀'이 뭔데? 이 정도면 아는 척 할 수 있다」, 김승준, 뉴스1, 2020.10.07.
「[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블랙홀 존재 입증한 '특이점 정리' 미래 물리학을 예견하다」, 강궁원, 동아사이언스, 2020.10.07
『열정의 과학자들』, 존 판던 외, 아이세움, 2010
『영화에서 만난 불가능의 과학』, 이종호, 뜨인돌, 2005
『노벨상이 만든 세상(물리)』, 이종호, 나무의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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