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뱀파이어>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이 실존했던 사람이든 아니든 과연 뱀파이어라는 전설은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뱀파이어 전설이 나오게 된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전염병으로 콜레라나 페스트 등이 크게 유행하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그 원인을 요괴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또 결핵이나 빈혈로 죽었을 때는 시체가 유달리 창백한데 그 이유로 뱀파이어가 피를 빨아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둘째는 너무 성급한 매장이다. 옛날에는 죽음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였기 때문에 완전히 숨을 거두지 않은 사람도 매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행하게 산 채로 매장된 사람이 관 속에서 의식을 회복한다면 어떻게 하던지 관 속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런 시체의 손발에는 상처가 나고 피투성이가 되어 뱀파이어를 연상시키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셋째는 시간(屍姦)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짧았다. 그래서 젊고 아름다운 처녀들의 시체가 상당히 많았고 한밤중에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훔쳐내 간음하는 변태성욕자들이 있었다. 그런 현장이나 버리고 간 시체를 발견한다면 꼭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되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넷째는 신이나 악마에게 여러 가지 재해나 역병을 피하기 위해 처녀나 가축의 산 제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이들 네 가지 요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1730년 빈에서 보고된 헝가리의 하이두크(터키의 지배에 항거한 발칸인으로 구성된 병사) 아놀드 파오레의 경우를 보자. 파오레는 짐차에서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진 채 사망하였다. 그는 살아 있을 때 터키의 세르비아 지역에 있는 고소바 근처에서 뱀파이어에 의해 괴로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겪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뱀파이어 무덤의 흙을 파먹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파오레가 죽은 지 30일 후에 뱀파이어로 살아나 4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들 4명은 모두 혈액 부족이 원인이 되어 몸이 쇠약해져서 죽었다.
이 재앙을 없애기 위해 파오레의 묘지를 파헤쳤더니 파오레의 시체에는 핏기가 남아 있었으며 머리털과 손톱 그리고 턱수염도 길게 자라 있었다. 관은 물론 심지어는 시체를 싼 염포 위에까지도 피가 흠뻑 젖어 있었다. 또한 풍습에 따라 파레오의 심장에 말뚝을 박을 때 뱀파이어처럼 비명을 지르고 많은 피를 쏟아냈다고 한다. 그의 시체와 4명의 희생자는 그날 바로 화장되었고 그 재는 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그후 5년 뒤에도 파오레에 의해 17명이 희생되었다는 소문이 계속 나돌았다. 지사의 명령에 의해 다시 한번 조사해 본 결과 아놀드 파오레는 뱀파이어로 변신한 후에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도 습격했고 그 가축의 고기를 먹은 사람이 후에 다시 뱀파이어가 되어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사람의 시체의 가슴에 말뚝을 박고 목을 자른 후 불태웠다.
1732년 군의관이던 아도르나 대령도 벨그라드의 군사법정에서 모라바의 므웨트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자세히 보고하였다. 밀리차라는 노파가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아도르나 대령이 파견되어 조사를 벌였던 것이다.
뱀파이어의 소문은 밀리차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녀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은 뱀파이어에 물린 양의 고기를 먹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 뱀파이어가 될 것이라고 이웃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아도르나 대령의 명령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졌다. 매장된 지 90일쯤 지난 후였다.
'관을 여니 그녀는 매우 뚱뚱했었고 싱싱한 피가 그녀의 코와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슴을 절개하니 많은 피가 고여 있었고 내장은 매우 건강한 상태였다. 일반 시체와는 달리 매우 괴상한 광경이었다.'
밀리차는 평생 야위고 바짝 마른 사람이었으므로 그렇게 놀랄 정도로 살이 찐 것은 무덤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강조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부르텐베르크 보병부대의 군의관이었던 죠세프 화레디-타마르찌는 뱀파이어가 나왔다고 공포에 떨고 있는 라도제보 마을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 현장을 방문하였다.
'황당무계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밀로취라 불리던 남자의 무덤을 파냈는데 그는 마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가 매장된 지 이미 15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시체는 전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고 눈이 크게 떠져 있었다. 그의 부인은 자신이 틀림없이 남편의 눈을 감겨 주었다고 했고 사망자의 시신을 씻어준 여자도 그 사실을 확인하였다. 더구나 시체는 경직되어 있지도 않았다. 놀라운 것은 입과 코에서 피가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고 이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주장에 따라 무덤에 다시 묻기 전에 사냥창으로 심장을 찌르도록 허락하였다.'
유고슬라비아의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극히 잔인한 뱀파이어의 예도 있다.
이 뱀파이어는 두 주일 동안에 조카딸 세 명과 동생 한 명을 죽였다. 그리고 다섯 번째의 희생자인 조카딸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순간 방해를 받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군인, 검찰관 민간인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베오그라드에서 왔다.
3년 전에 매장된 사나이의 무덤을 파헤쳐 보니 시체는 머리털, 손톱, 이빨, 눈 등이 매장할 때와 똑같은 상태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시체의 심장은 고동치고 있었으며 조사단이 이 시체의 심장에 말뚝을 박자 생피가 섞인 하얀 액체가 솟아져 나왔다. 일행은 시체의 목을 도끼로 자르고 시체에 생석회를 뿌려서 다시 매장을 했다고 전한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도 뱀파이어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소문의 말꼬리가 차츰 확대되기 마련이다. 1729년에 불과 2~3시간 사이에 5~6명의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에 의해 쓰러진 사건을 뱀파이어의 짓이라고 여겼다. 장기간 계속되는 전염병은 뱀파이어 신앙의 분위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뱀파이어가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많이 제시된 것은 시체가 비정상적으로 손상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당시에 너무 서두르는 매장이라든가 생매장을 하는 사건이 흔히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사람들이 감염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재빨리 시체를 처리하였기 때문에 한층 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보고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남부 지방에서 미혼의 임산부가 경찰관이 현관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죽었다. 매장이 끝난 1주일 후에 그녀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꼭 시체를 보고 싶다고 해서 무덤을 파 보니까 아이가 태어나고 있었으며 그 아이의 어머니는 관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을 친 결과 손가락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또한 미국의 독심술사(讀心術師)인 어어빙 비숍은 자주 실신했는데 한 번은 죽었다는 진단을 받고 해부하기 위하여 메스를 대자 살아 있다는 것이 판명되기도 했다.
의학이 진보한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실수는 종종 있는데 질식, 중독으로 인한 가사(假死) 등을 성급하게 사망이라고 인정했던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잘못이 있었을 것인가.
1851년 킹스 대학의 해부학 교수인 하버드 메이요 박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뱀파이어 상태로 발견된 모든 시체는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변신된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보통 상태로 생존하고 있었던가 혹은 매장되고 나서 얼마 동안은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들은 생매장 된 사람들이다. 모처럼 되살아났음에도 불구하고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들의 무지와 난폭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학살당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즉 뱀파이어의 누명을 쓴 시체는 심장에 말뚝이 박힐 때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메이요는 다음과 같이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사람들이 관뚜껑을 열었는데 시체의 얼굴에 핏기가 돌고 동작은 자연스럽게 웃는 것 같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입을 벌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십자가의 예수상을 시체 앞으로 내밀고 큰 소리로 외쳤다. '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고 대신 죽은 것이다.' 그것을 듣고 시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지막에 불쌍한 시체를 위하여 잠깐 기도하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시체의 목을 자르려고 하자 그 시체는 비명을 지르고 뒹굴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미국 사우스 앨라배마대의 레슬리 그레고리카 박사는 2014년 폴란드의 한 공동묘지에서 '뱀파이어 무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17~18세기 매장된 무덤 333기 가운데 60기를 발굴했는데 이 중 두 기가 남달랐다. 하나는 유골의 목뼈에 낫이 박혀 있었고, 또 다른 유골의 입에는 벽돌이 박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뱀파이어를 막기 위한 의식으로 매장된 것이 분명했다. 고대 그리스의 무덤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가 발견되는데 이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조처한 것이다. 즉 낫과 벽돌로 다시 한 번 죽였다는 뜻이다.
중부 유럽에서 뱀파이어는 매우 보편적으로 당대에 범죄나 전염병으로 죽은 시신은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신은 빨리 매장하지 않으면 세균에 의한 부패가 진행돼 부풀어 오른다. 이 압력으로 시신의 피가 허파로 역류해 입으로 흘러나온다. 옛사람들에게는 마치 시신이 다시 살아나 산 사람의 피를 빤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매장된 사람들은 대체로 외지인일 가능성이 높다. 객사(客死)한 사람이란 뜻으로 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세상에서 낯선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레고리카 박사는 뼈에서 스트론튬이라는 방사성물질을 추출했다.
스트론튬은 자연에 있는 물질로 물·채소·고기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체에 축적된다. 따라서 같은 곳에 살면 같은 양만큼 방사능이 줄어든 스트론튬이 몸에 쌓인다. 뱀파이어 무덤의 주인공들은 다른 무덤들과 스트론튬의 방사능이 일치했다. 생전 그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그레고리카 박사는 뱀파이어 무덤의 주인공이 역병(疫病)에 걸려 목숨을 잃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17세기 중부 유럽에는 콜레라가 유행했다. 전염병에 걸린 시신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옛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행여라도 무덤에서 걸어나와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두 번째 목숨을 뺏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뱀파이어에 대한 연구를 하였던 돈 카르메는 뱀파이어 사건은 미신의 희생자라면서 오히려 동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뱀파이어의 목을 자르고 가슴에 말뚝을 박으며 태워서까지 그들을 처형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는 뱀파이어가 살아 있는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죽게 하였다는 의견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도 없으며 뱀파이어 자신에게 결백을 증명할 만한 여유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령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뱀파이어에 의해 일어나는 재난 같은 것은 공상이나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2015년 독일에서 뱀파이어를 연상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922년 뱀파이어가 나오는 무성영화 「노스페라투」를 만들어 드라큘라의 신드럼을 일으킨 영화감독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가 1931년에 사망했는데 그의 무덤을 누군가가 파헤치고 두개골을 탈취한 것이다.
현장에서 주술 의식에 필요한 초를 태운 흔적이 발견돼 흑마술 신봉자의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뱀파이어를 스크린에 처음 올린 감독이 뱀파이어 신봉자들의 희생양이 됐을 수 있다는 말에 인간의 행동 반경이 정말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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