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 3분간(1)
가모프는 우주 초기는 우주에 있는 물질이 한곳으로 모이고 엄청나게 압축되며 온도와 밀도가 높아지면서 원자핵과 전자가 모두 분리될 뿐만 아니라 원자핵조차 양성자와 중성자로 분리될 만큼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로 설명했다. 가모프는 처음 이런 상태를 옐름(yelm)으로 불렀다. 옐름은 ‘모든 물질이 될 수 있는 원시 물질’이다.
이제 가모프는 이 상태를 설명한 수학적인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 초기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돌렸을 때 현재 우주에 있는 수소와 헬륨의 관측값과 잘 맞는 결과도 보여주어야 했다. 다소 수학 실력에 떨어지는 가모프는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랠프 앨퍼를 제자로 받았다.
두 사람은 우주 초기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을 원자핵 합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최소한 1시간은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이 우주의 탄생에 대해 연구하고 있을 때 우주의 나이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한마디로 우주의 나이도 모르면서 우주 초기의 역사 즉 한 시간 내의 일을 규명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우주의 탄생 즉 원자핵 합성이 1시간 미만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중성자는 아주 불안한 입자라 10분이 지나면 원래 있던 중성자 중 절반이 양성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성자가 사라지는데 중성자가 사라지면 헬륨이 만들어 질 수 없다. 1시간이 지나면 우주 초기에 있던 중성자 가운데 2%만 남으므로 그 전에 헬륨과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드디어 두 사람은 우주의 원시 수소 스프가 폭발한 뒤 300초 안에 수소 원자핵 10개 당 1개의 헬륨 원자핵이 만들어졌다고 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우주가 시작된 지 300초 즉 5분 만에 오늘날 우주에서 요리되고 있는 수소와 헬륨이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식에 의하면 수소와 헬륨의 양이 관측 값과 잘 맞았다. 이들은 1948년 이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이후 여러 과학자가 더욱 정밀하게 계산한 결과 5분은 3분으로 줄었고 노벨상을 수상한 스티븐 와인버거는 추후 『처음 3분간』이란 책으로 이 내용을 출간했다.
이 논문은 ‘알파-베타-감마 논문’으로 알려진다. 저자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파는 앨퍼, 감마는 가모프의 이름에서 나왔는데 베타는 추후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한스 베테다. 사실 베테는 태양에서 수소 핵융합이 일어나는 과정을 밝혀 과학계에서 유명 인사였지만 가모프의 논문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가모프가 굳이 베테를 넣은 것은 베테에 해당하는 알파벳 B로 시작한 사람은 베테뿐이었다. 가모프의 제안에 베테는 이의없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었다.
이 아이디어에 유탄을 맞은 사람은 앨퍼다. 앨퍼는 당시 대학원생이므로 베테와 같은 거물을 공저자로 삽입하면 자신의 입지가 작아질 것을 생각하여 반대했지만 이미 논문이 인쇄된 상태였다. 엘퍼의 예상대로 가모프의 유명한 논문은 가모프와 베테의 몫이었다. 곧이어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의 합성에 관한 연구는 베타와 감마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논평이 나왔을 정도다.
<제1빅뱅>
대폭발 이론은 태초의 우주는 밀도가 엄청나게 크고 뜨거웠다가 폭발하여 현재의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것으로 ‘빅뱅(BB, Big Bang) 우주론’이라 부른다. 간단히 말해 물질이 한 점에 모여 있다가 대폭발을 일으켜 팽창우주가 됐다는 것이다.
영국 서리대학교의 짐 알칼리리 교수는 우주의 나이 1초 정도 되었을 때 우주의 온도는 약 1억도 정도로 추정했다. 그는 이런 고온에서 핵반응이 일어나 이 에너지가 천천히 물질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그 물질들이 서서히 원자를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원자를 형성하는 입자들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달라붙어 원자핵이 생기고 전자가 더해져 원자가 생긴다. 우주의 나이가 3분이 되었을 때 우주 질량의 25%가 두 번째로 가벼운 원소인 헬륨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여하튼 빅뱅의 이론도 출발점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비롯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크기와 모양이 고정되어 있고 매끄럽다고 추정했다. 즉 우주는 균질한 유동체처럼 어디에서나 같다고 생각하여 모든 방향에서 같은 모양을 보이는 등방성(isotropic)을 갖는다고 가정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방정식을 풀자 그 결과는 불안정한 우주로 나타났다. 즉 우주는 수축하거나 팽창하지 정지 상태로 남아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도출한 결론에 당황한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다 하나의 항을 인위적으로 집어넣어 우주는 정적이라는 해(解)가 나오도록 유도했다. 즉 아인슈타인이 자신이 도출한 방정식에 문제점이 있으므로 이를 수정하는 방법으로 유명한 우주상수를 첨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수정된 방정식으로 안정된 우주를 얻었는데 그것은 공간이 공의 표면처럼 양성곡률을 가진 구형의 우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추가 항을 첨가하는 것을 매우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방정식의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1916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발표되자마자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윌름 드 시터(Willem de Sitter)가 아인슈타인이 간과한 것을 지적했다. 아인슈타인이 해답 하나를 놓쳤다는 것이다.
드 시터의 우주는 어떤 물질도 없는 비어있는 우주였다. 그의 주장에 학자들이 황당해하자 실제 우주 안에 있는 물질의 평균밀도가 대단히 낮아서 1차 근사치로 볼 때 우주가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드 시터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우주는 내가 생각할 때 말도 되지 않습니다. 특히 우주가 비어 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드 시터 역시 아인슈타인의 모형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드 시터 보다는 아인슈타인에게 오히려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아인슈타인 모형은 적색이동을 예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추후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 생애 최대의 실수라고 후회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학자들은 아인슈타인과 드 시터의 모형 중 어느 것도 만족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증명해준 영국의 에딩턴 경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정도였다.
“실제 우주는 아인슈타인의 우주가 되기에 부족하고 드 시터의 우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물질이 있다.”
1920년에 천체물리학자들에게는 곤혹의 시기였다. 아인슈타인과 드 시터의 모형 모두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벨기에의 신부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였다. 그의 모형은 두 사람의 중간에 있었다.
그것은 팽창상태로 시작한 뒤, 아인슈타인의 모형과 유사한 ‘정체’기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드 시터의 모형과 유사한 팽창으로 종말을 맞는다. 르메트르는 정체 기간은 허블이 준 우주의 나이가 알려진 별의 나이보다 작기 때문에 필요해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르메트르가 질량을 가진 팽창하는 우주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아니었다.
러시아의 수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Aleksandr Friedmann)이 1922년에 질량을 가진 우주의 팽창을 제시했다. 그는 우주는 어느 방향으로 보나 동일하게 보이며 또 어디서 보아도 동일하다는 가정만 가지고 우주가 정지하고 있음을 기대할 수 없고, 한 점으로부터 커지고 있음을 밝혔다. 이 모델은 서서히 팽창하다가 멈춘 후 다시 수축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에 은하 사이의 거리가 훨씬 더 큰 규모에서 본다면 프리드만이 가정한 균질함이 놀라우리만큼 정확하여 그의 가설은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모형의 근간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논문은 7년 후에 거의 같은 내용의 논문을 르메트르가 학회에 재발표할 때까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학계의 미스터리이지만 그가 논문을 발표한지 3년 후인 1925년에 기구비행을 하던 중 37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제 학자들의 관심은 우주가 어떻게 시작했을 까로 모여졌다.
그것은 일반상대론 방정식에는 어떤 점으로부터 팽창을 허용하는 ‘특이(singular)' 해답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는 관측으로도 증명되었으므로 그 팽창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무엇이 팽창을 일으켰을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에딩턴은 우주가 무한소의 점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에 매우 당황해했다. 그것은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탄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탄생 전에는 어떤 우주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의 엔트로피(계의 무질서도)가 항상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엔트로피는 물질이 에너지로 전환될 때 우주가 끝날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르메트르는 엔트로피 법칙을 자신의 논리에 도입했다. 즉 우주가 처음에는 ‘원시핵(primordial nucleus)’의 형태로 생각했다. 원시핵의 지름은 우주의 크기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작았다.
그는 무거운 원소들이 붕괴해서 점점 더 가벼운 원소가 된다는 자발적 방사성 붕괴를 차용했다. 그것은 상당히 작은 비율이지만 오늘날도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다. 르메트르는 이와 유사한, 훨씬 더 빠른 와해과정이 초기우주에서 일어났다고 추정했다.
우주상수 값 :
그의 주장은 1931년 『네이쳐』지에 게재되었는데 이것이 빅뱅이론의 공식적인 시작이다. 1931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이 자신이 도입한 ‘우주상수’를 자신이 일생을 통해 저지른 최대의 실수라며 없애버리라고 드 지터에 편지를 보낸 해였다. 그러나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우주론에서의 진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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