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거의 500만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사람 종으로 이들은 많은 변종이 있었는데 모두 곧바로 서서 걸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100만 년을 훨씬 넘도록 존재했던 종도 있었지만 수십만 년 정도로 짧게 생존했던 종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성공 못한 종이라도 현재의 현생인류보다는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호모사피언스로 불렸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언스사피언스로 불린 크로마뇽인의 연한을 약 20만 년으로 비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말은 많은 학자들이 환호한 루시 등이 곧바로 현대인류로 진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약 300만 년 전에 태어난 루시 류가 여러 종으로 갈라져 한 동안 경쟁하며 살았다는 뜻이다. 물론 이들 가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의 장은 아직 모두 채워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학자들이 놀라는 것은 호모에렉투스와 거의 동시대에 등장한 후 호모 하빌리스가 대세를 이루었으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호모 에렉투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북경원인이나 자바 원인도 호모 에렉투스다.
호모 에렉투스는 네덜란드 군의관인 유진 듀브와가 1890년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고인류 뼈를 처음 발견했는데 계속 발굴로 1891년 잘 보존된 두개골을 발견했다. 고고학에 일가견이 있는 듀브와는 눈에 띄는 눈썹, 후퇴하는 이마, 각진 후면 두개골을 고려하여 이들이 인간과 유인원 의 중간에 해당하는 해부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더구나 몇 년 후, 두개골이 발견 된 곳 근처에서 완전한 허벅지 대퇴골을 발견했는데 이 뼈가 현대 인간의 대퇴골과 매우 유사한 것을 볼 때 자바인이 직립보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므로 그는 독일의 에른스트 헤켈이 명명한 피테칸드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로 명명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들을 호모에렉투스라 부르고 피테칸드로푸스라는 이름은 삭제했다.
이후 수많은 호모에렉투스 유골들이 발견되는데 가장 유명한 화석은 1984년 투르카나 호수 서쪽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의 골격으로 발견된 나리오코토메(Nariokotome)이다. 놀라운 것은 이 소년의 골격으로 다 자랐다면 적어도 키가 180〜200센티미터가 되었을 정도로 거인이다. 호모에렉투스를 키가 작은 유인원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인데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한다.
여하튼 호모에렉투스와 선대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변화를 보인다.
첫째는 두뇌용량의 현격한 증가다.
호모 에렉투스의 두뇌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뇌용량보다 큰 평균 775~1,300㏄에 해당한다. 초기 에렉투스의 두뇌용량은 수컷은 대체로 700∼800cc, 암컷은 500∼600cc인데 이는 평균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약간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플라이스토세 전기와 중기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을 보면 두뇌용량의 평균치는 843㏄에서 1,067㏄로 증가한다. 이는 현대 인간의 다양한 뇌용량의 하한선에 속하는데 호모에렉투스로 인정되는 북경원인의 두뇌용량은 915~1,225㏄이며 특정 유골은 1,300cc를 보여 현대인보다 다소 작은 수치다.
학자들은 뇌의 증가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든 계기라고 생각하지만 200만 년 전에 초기 인류의 뇌가 갑자기 커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큰 뇌는 많은 제약 요소를 갖고 있다. 뇌는 몸무게의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모한다. 또한 뇌는 사용 연료조차 매우 까다롭다. 뇌는 지방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을 먹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지만 그 대신 포도당을 사용한다. 문제는 다른 기관에 부담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엄청난 양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가이 브라운 박사는 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몸은 욕심이 많은 뇌 때문에 언제나 파산할 위기에 처하지만 뇌를 배고프게 만드는 것은 곧바로 죽음을 뜻하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소 해괴한 결론이지만 많은 학자들은 뇌가 커지게 된 것은 단순히 진화 단계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라고 믿는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러므로 ‘생명체의 과거’라는 영화를 다시 돌리면 오늘날 현대의 인류나 그와 비슷한 생물이 존재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추정한다. 한마디로 인간이 인간으로 된 경위는 매우 불확실성에 의했다는 것이다.
에렉투스 두개골용량의 진화와 관계되어 중요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에렉투스 두개골의 모든 부위가 골고루 동일하게 커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각 부위의 크기는 차별적으로 증가하는데 이는 에렉투스의 뇌세포와 신경구조의 편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에렉투스 두개골에서 크기가 가장 현저하게 증가하는 부위는 전두엽과 두두부 하단이다. 이들 부위의 발달은 감각과 균형기관의 관장 및 관찰, 명령, 분류 작업의 관장 능력이 발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이런 변화가 여러 두뇌운동의 상호작용이 보다 밀접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음식물 섭취와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턱과 치아의 구조적 변화다. 에렉투스의 치아는 현격히 크기가 작아졌으며 턱도 전체적으로 보다 작아지고 두께도 얇게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음식물 섭취 과정에서 구강부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 양의 감소 즉 턱과 치아의 운동량의 현격한 감소를 의미한다. 즉 이들의 식단에서 단단한 식물성 섬유질의 중요성이 격감한 대신 보다 씹기 쉬운 동물성 단백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셋째는 두개골은 더 두꺼워졌고 이마부분은 작다. 턱은 조금 튀어나오고, 눈 위쪽에 두드러진 두덩이 있다. 앞이마는 낮고 평평하며 뒷머리에는 옹이점이 두텁게 발달해 있다. 위에서 볼 때 호모 에렉투스의 머리뼈는 넓적하며, 머리뼈 최대너비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머리 위쪽에 최대너비가 있는데 비해, 호모에렉투스는 귓구멍 높이에 최대너비가 위치한다.
정수리뼈 또는 두개골의 벽은 다른 것에 비하여 얇다. 그 표면에 있는 주름무늬는 머리 근육 위쪽의 경계에 뒤를 향하여 아래쪽으로 굽은 모양이다. 두개골은 비교적 폭이 넓으며, 후두골의 뼈나 두개골 뒤의 구조는 날카롭게 구부러져 있다. 목 근육은 결부되어 있다. 이 근육결부 부분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호모 에렉투스가 광범위하다. 호모 에렉투스를 구별하는 다른 특징은 두개골의 아래쪽에서 명백히 관찰된다. 낮은턱 그 자체는 깊고, 매우 튼튼한데 이런 변화는 기능적 관점에서 두개골을 보강하여 두뇌에 전달되는 외부적 충격을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한편 앞니가 물고 쥐고 뜯는 도구적 기능에 보다 빈번하게 사용되자 앞턱 부위에 전달되는 힘을 효과적으로 견디기 위한 것이다.
특히 호모에렉투스에서 발견되는 얼굴의 특징 중 하나는 코의 벽을 형성하는 뼈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다 더 얇고 뒤틀려 있으며 비강 다리가 상대적으로 높고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런 형태는 호모에렉투스가 호흡 중에 손실될 수 있는 수분을 보존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호모에렉투스가 당시 아프리카의 건조한 환경에서 보다 오랜 기간 동안 이동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넷째 강건한 체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의 호모 에렉투스의 개체가 키가 크고 강건하며 억센 근육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사지뼈는 ‘루시’처럼 팔이 길지 않다. 전체 몸 크기로 볼 때,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 하빌리스보다 크며 거의 현대인류와 비슷한 크기다.
골반과 대퇴골의 상단부분은 현대인과는 다소 다르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단계부터는 거의 완성된 직립보행의 특징이 나타난다. 화석에서 뇌껍질과 사지의 긴뼈가 전보다 두꺼워지고, 관절부분은 보다 확장·강화되었으며, 근육이 붙어 있던 흔적이 자주 관찰된다. 따라서 보다 많은 힘을 사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995년 네덜란드의 프레드 스푸르(Fred Spoor) 박사는 호모에렉투스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두개골을 컴퓨터단층촬영기법을 사용하여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한 내이(內耳)를 분석했다. 내이 공간은 두개골의 가장 깊고 단단한 부분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결과 호모 에렉투스는 현생인류와 똑같은 내이구조를 가졌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전혀 다른 면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즉 CT촬영을 통해 호모에렉투스는 확실하게 두 다리로 서서 걸었고 달리기까지 했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내이는 침팬지나 고릴라와 같은 현존 대형유인원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과거의 설명에 따르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다리가 현생인류와 닮았으나 유인원과 같이 팔이 길고 어깨에는 근육이 붙어 있었다.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완전히 두 다리로 걸었으며 유인원과 같이 팔이 긴 것은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흔적이 남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스푸르 박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초원을 걸어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고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했으리라고 추측했다. 아르디의 경우를 되살려보기 바란다.
호모에렉투스는 주로 수렵생활을 하였으며 체계적으로 사냥을 하였다. 이러한 체계적인 사냥이 가능했던 것은 뇌용량의 증가로 추정한다. 또한 신체적인 변화, 뼈와 근육의 발달에서, 이들이 이전보다 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동물을 사냥하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화석과 함께 발견되는 도구, 즉 잘 다듬어진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손도끼와 절단기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상당히 큰 둥근 돌을 깨뜨려서 만들었다. 대표적인 석기문화는 주먹도끼 전통의 아슐리안문화, 올도완문화 및 주구점(周口店) 유적을 중심한 자갈돌찍개 전통의 석기문화 등이다.
그러나 다소 조잡한 이런 석기는 그 후 변하지 않고 거의 150만 년 전부터 20만 년 전까지 표준형으로 계속 사용된다. 한마디로 이들 도구만으로도 고인류가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호모에렉투스가 거의 150만 년 동안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렉투스가 석기를 제작할 때 돌보다 강도가 약한 나무나 사슴뿔을 망치로 사용하여 원석을 때리면 보다 정교하게 원하는 모습의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또한 간접타법 즉 대고떼기 기술도 발명했는데 이는 원하는 형태와 크기의 박편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
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의 단계에서는 도구제작의 본격화, 즉 석기의 다양화, 정제화, 그리고 석기 제작기술의 발달 양상이 보이는 것은 반복적 사냥이라는 새로운 생계기술이 접목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는 호모 에렉투스가 자연계에서 보다 능동적 주체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즉 본격적인 야생동물의 사냥이라는 새로운 생계수단이 기본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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