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무기 사용>
과거의 인류학은 주로 화석의 형태 등을 분석하는데 집중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기술은 DNA라는 무기를 갖고 도전하므로 보다 확실한 인류사를 밝힐 수 있다.
유전자 분야가 획기적으로 발전하자 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인간이 직립하며 지혜를 갖추고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유전적 변이가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수많은 유전자 중에서도 지배적인 유전자가 무엇이냐이다.
과학자들의 발표는 놀랍다. 인간과 유인원을 구분지은 것은 한 개의 유전자인데 이 유전자는 약 250만~300만 년 전에 인간에게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의 아짓 바르키(Ajit Varki) 박사는 200만〜300만 년 전, 한 단일유전자의 기능적 상실이 일련의 중대한 변화를 일으켜 궁극적으로 현대 인간을 탄생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유전자의 상실이 결과적으로 출산율에서부터 붉은 살코기 섭취로 인한 암 위험 증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바르키 박사는 CMAH 유전자를 결핍시킨 쥐를 대상으로 연구했다.
그런데 그의 발표는 다소 놀랍다. 쥐에 적용한 유전자 상실이 인간을 동물계에서 가장 뛰어난 장거리 선수 중 하나로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바르키 박사가 강조한 것은 CMAH 변이가 일어난 것과 거의 동시에 인류 조상들이 숲 속에서 아프리카의 건조한 사막지대로 주거지를 옮겼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육상으로 내려온 고인류가 잘 달려야 사냥이 가능했는데 바로 유전자 변이가 이를 도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학자들은 초기의 인류 조상들이 직립해서 걷는 동안 신체는 물론 제반 능력이 극적으로 진화했는데 그 원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생체역학 및 생리학 측면에서 골격에 특별한 주요 변화가 일어났다. 길고 탄력있는 다리와 큰 발, 강력한 엉덩이 근육 및 다른 대형 포유류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열을 발산할 수 있는 팽창성 땀샘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고인류로 하여금 비교적 지치지 않고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 이런 능력의 중요성은 인류 조상이 뜨거운 대낮의 열기 속에서 다른 포식자들이 쉬고 있는 동안 먹이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가 잡는 인내력 사냥(persistence hunting)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즉 이들 변화가 지구상의 최강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이론이 없지만 그 근저가 무엇이냐이다.
가뉴 교수는 이런 변화는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명백한 유전적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가뉴 교수는 돌연변이의 대략적인 시기와, 이 변이가 같은 돌연변이를 가진 쥐의 생식력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여 유전적 차이가 고인류의 기원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조사했다. 여기에는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와 멸종된 호모 하빌리스 및 호모 에렉투스가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가뉴 교수는 CMAH 손실이 산소 이용을 위한 골격근 근력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이 당시의 이런 변화가 초기 인류속이 나무에서 내려와 개활지에서 항구적인 수렵-채집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선택적 이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시알릭산의 사용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발견했다. 200만〜300만 년 전, 인류속의 CMAH가 후손들의 시알릭산((酸) 사용에 변화를 초래했다는 연구결과다.
모든 동물세포의 표면을 코팅하는 당 분자인 시알릭산은 세포 표면에서 다른 세포 및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 하는 핵심 접점 역할을 한다. 문제의 유전자는 당의 일종으로 시알릭산의 생산을 통제하는 ‘Neu5Gs’다. 인간의 돌연변이는 N-글리콜리뉴라민산(Neu5Gc)이라 불리는 시알릭산 손실을 일으키고, 대신 그 전구체인 N-아세틸뉴라민산(Neu5Ac)을 축적시킨다. 이 두 가지는 단지 산소원자 하나에 의해 갈라진다. 한마디로 겉보기에 사소한 차이가 인체의 거의 모든 세포 형태에 영향을 미쳤고, 이런 변화가 인간류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발견은 인류학자들에게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간과 침팬지가 구분된 시기를 500만 년 전에서 700만 년 전으로 추산한다면 무려 300만 년에서 400만 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 결과는 인류의 기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마지막 장이 채워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의 특성을 연구하는 연구는 각 분야에서 진행된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침팬지 등과 인간의 차이를 찾자는 것은 현대 인류학의 가장 큰 화두다. 인간과 침팬지, 오랑우탄이 외형적으로 다른 것은 손바닥만 보아도 곧바로 알 수 있다.
이 차이를 유전자에서 발견하자는 것인데 독일 뮌헨 루드빅 맥시밀리안대학교 아담 오닐 박사는 2018년 유인원이나 사람같은 ‘영장류’를 다른 포유류 동물과 구분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가 찾은 유전자 이름은 PLEKHG6(Pleckstrin Homology And RhoGEF Domain Containing G6)이다. 오닐 박사는 이 유전자가 영장류의 두뇌발달을 다른 포유류와는 다르게 유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마디로 PLEKHG6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유전적 요인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과학자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찾은 것은 영장류의 두뇌가 다른 포유류 동물에 비해서 크다는 것은 특정 유전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건강한 사람보다 질환이 있는 사람을 연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닐 박사는 ‘뇌실주위 결정성 이소증’(Periventricular nodular heterotopia)이라는 희귀한 신경세포 질환을 앓는 어린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은 두뇌 신경세포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유전적인 정보가 적절한 위치를 찾아가는데 실패한 케이스다. PLEKHG6 유전자가 손상됐기 때문으로 이들은 뇌전증, 발달 지연을 포함한 다양한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오닐 박사는 피부세포를 변형하는 실험으로 이 주제에 도전하여 ‘PLEKHG6 유전자를 구성하는 일부 요소를 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특별한 유전적 변화’가 나타나면, 두뇌가 발달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줄기세포들의 성장과 확산을 지원하는 능력이 바뀐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마디로 PLEKHG6 유전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 즉 인간의 두뇌발달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의학적으로 많은 줄기세포가 존재하는 유아기의 아이들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두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PLEKHG6 유전자는 다른 영장류에게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학자들은 인간과 다른 영장류를 구분하는 미묘한 차이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하므로 이들 연구에 매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유전자 조절 스위치>
다윈의 성선택에 유전자 분석을 도입하면 인종간의 특징 즉 인종 간의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다.
다윈은 인종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부족에서 가장 강한 남자들이 가장 매력적인 여자를 선택하고 남보다 많은 자식을 둔다면 어느 정도 그 부족의 형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다윈의 생각이 적어도 일부는 옳다는 걸 암시하는 단서들이 있다.
많은 유럽인들처럼 다윈도 파란 눈이었다. 2008년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 한스 에이베르 박사는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공통된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15번 염색체의 염기 하나가 A에서 G로 바뀐 것이다. 이 돌연변이는 눈 색깔을 짙게 만드는 색소를 생산하는 OCA2라는 유전자의 발현을 방해한다. 덴마크인과 터키 또는 요르단 사람의 OCA2를 비교한 에이베르는 농업이 시작되고 한참 지난 6000년에서 1만 년 전 흑해 부근에 살던 한 사람의 몸에서 이런 돌연변이가 일어났다고 추론했다.
그런데 현재 유럽에 많은 사람들이 파란 눈을 갖고 있다. 파란 눈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증거는 없다. 에이베리는 아마도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피부가 하얀색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피부가 희면 비타민 D합성에 필요한 햇볕을 흡수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조량이 많지 않은 북방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비타민D가 부족한 곡류를 점점 더 주식으로 많이 먹게 되자 이런 형질은 특히 중요해진다. 아니면 단순히 그 지역 여성들이 다소 특이한 파란 눈을 가진 남성에게 끌려서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다윈이 제시한 두 가지 이론 즉 자연선택과 성선택으로 이들을 설명할 수 있다.
파란 눈을 만드는 유전자의 변화는 색소 유전자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발현을 관장하는 DNA 한 귀퉁이에서 일어난다. 이 사실은 유전자가 변해도 진화가 일어나지만 유전자의 스위치를 끄고 켜는 방식이 변해도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위스콘신 대학의 션 캐롤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해부학적 구조가 진화하는 주된 원동력은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라 발생을 관장하는 유전자의 조절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유전자를 조절하는 스위치라는 개념은 인간만 가지고 있는 ‘인간 유전자’가 없다는 다소 인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만 놀라운 사실을 설명해준다.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과 생쥐의 게놈과 똑같은 수의 유전자 즉 21,000개 미만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구나 대부분 생쥐와 똑같은 종류의 유전자였다. 새로운 책을 쓰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반드시 만들어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유전자가 없어도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린은 긴 목을 만드는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목을 자라게 하는 유전자는 생쥐의 유전자와 동일하지만 기린은 오랫동안 그 유전자들을 켜두고 있어서 긴 목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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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과정」, 내셔널지오그래픽, 2006년 11월
「알프레드 윌리스」, 내셔널지오그래픽, 2008년 12월
「기억과 망각의 세계」, 매트 리들리, 내셔널지오그래픽, 2009년 2월
「모습 드러낸 440만 년 전 인류의 조상」, 연합뉴스, 2009.10.03.
「인류진화 비밀 풀 ‘사라진 고리’ 속속 등장」, 김상현, 사이언스타임스, 2010.04.16.
「인류의 운명, 유전자 하나가 바꿨다?」, 김병희, 사이언스타임스, 2018.09.12.
「인간과 포유류의 뇌를 구분하는 유전자는?」, 심재율, 사이언스타임스, 2018.12.17
『인간의 역사』, M. 일리인, 오늘,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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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칼 짐머, 세종서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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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찰스 다윈, 이종호 엮음, 지만지고전선집, 2010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찰스 다윈, 이종호 엮음, 지만지고전선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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