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류 연구가 매우 어렵지만 학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의해 서서이 베일을 벗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설명되는 고인류에 대해 여기서 정리하여 설명한 후 다음으로 넘어간다.
2300만 년 전에서 500만 년 전을 설명하는 신생대에서 두 번째로 긴 마이오세는 우리의 선조 이야기가 비로소 나타나는 시대다. 이 시대의 지구 기후는 끊임없이 요동쳐 남극의 빙하가 완전히 자리 잡았고 중위도 지방에서는 기후의 한냉화와 건조화가 최고조에 이르러 사바나 초원이 형성되었다.
지구의 표면도 바뀌어 대륙이 충돌하고 대양이 바닥을 드러낸 곳이 많으며 대륙 사이에 연결통로가 이어졌다가 끊어지기도 했다. 마침내 해양과 육상의 동물상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해 현존하는 모든 동식물 과(科)의 대부분이 마이오세에 등장했다.
사바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의 선조를 연구하는데 기본이라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동부의 사바나가 마이오세 후기의 온대 지방과 건조한 열대 지방 전역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현재 아프리카 동부의 사바나에 작은 숲과 덤블이 듬성듬성 있는 초원이 보다 넓은 지역에 분포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현재 수많은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온갖 다양한 포유류들이 살고 있는데 과거에도 이와 마찬가지의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차이는 있다. 코끼리 대신 마스토돈트가 있었고 하마 대신 하마를 닮은 코뿔소가 있었다. 기린에 해당하는 목이 긴 낙타가 있었는데 아이피카멜루스 기라피누스(Aepycamelus giraffinus)는 어깨높이가 3.5미터, 키가 6미터나 되었다. 하이에나를 닮은 보로파킨, 곰, 족제비, 곰개가 오늘날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볼 수 있는 하이에나와 고양이류를 대신해 포식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근래의 연구는 아프리카에서의 이런 사바나 풍경이 약 1600만 년 전이 아니라 약 700만 년 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고토양에 함유된 탄산염의 동위원소와 초식 포유류의 이빨화석을 연구한 결과다. 이들 연구가 맞다면 키가 큰 식물로 이루어진 대초원은 700만 년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초원의 기원에 관한 미스터리는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므로 이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포식자는 고양이류와 하이에나 그리고 사향고양이가 주를 이뤘는데 이들은 현재도 아프리카에서 주된 포식자다. 이들이 인간류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이 당시 아프리카의 영장류가 개코원숭이, 짧은꼬리원숭이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구세계 원숭이로 분화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수많은 유인원의 종과 속이 출현했고 우리와 같은 호미니드 즉 사람과(Hominidae)에 속하는 최초의 일원도 등장했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즉 투마이가 나타났고 이어서 오로린 투게넨시스(Ororrin tugenensis)가 케냐의 투겐힐에서 발견되었는데 연대는 588만〜572만 년 전이다. 이들 화석은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두꺼운 법랑질에 싸여 있는 이빨은 전형적인 초기 인류의 것이며 넓적다리뼈와 정강이뼈는 직립보행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좀 더 후대로 오면 에티오피아에서 580만〜520만 년 전의 아르디피테쿠스라미두스카다바가 발견되었고 이들 역시 직립보행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 인류의 계통이 마이오세가 끝날 무렵에 확립되었고 상당한 형태의 직립 자세를 취했으나 뇌는 아직 원시적이었고 몸집은 유인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생대의 마지막인 플라이오세는 500만 년 전에 시작되어 180만 년 전에 끝났는데 기간은 겨우 320만 년 동안이지만 이 기간 동안 인류의 선조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투마이, 오로린 투게넨시스, 아르디피테쿠스라미두스카다바 등을 이어 원인의 다양성이 더욱 증가하면서 신규 원인들이 동시대에 함께 존재했다. 아르디가 등장했고 케냐의 350만 년 전의 암석에서 케냐피테쿠스 플라티옵스(Kenyapithecus platyops)라는 원시적인 형태의 원인이 발견되었다. 반면 42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속에 속하는 최초의 원인이 발견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플라이오세의 사람과 중에서 가장 종류가 다양했는데 케냐 투르카나 호수 인근에서 420만〜39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Australopithecus anamensis)가 활보했다. 이들은 완전히 두 발로 생활했으며 이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즉 루시가 발견된다.
그러나 루시가 두 발로 선 자세가 확실히 나타난 최초의 원인이지만 루시도 현대인처럼 완벽하게 똑바로 선 것은 아니다. 이는 완전한 직립보행을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플라이오세 후기가 되자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등장하는데 34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바렐가잘리((Australopithecus babrelghazali),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Australopithecus garhi)는 약 260만년에 등장했다. 유명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는 레이몬 다트 박사가 1925년 ‘타웅의 아기’로부터 발견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원숭이로 분류되었다가 계속적인 유골 발굴로 원숭이가 아니라 직립한 뇌가 작은 아프리카원인이라고 인정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몸집이 왜소하지만 섬세한 턱과 작은 어금니를 갖고 있었다. 두개골 위에 융기된 부분이 없었고 뇌의 용적은 450cc에 불과했다. 학자들이 이들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속한 사람속(Homo)의 가장 유력한 조상 후보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 아프리카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뿐만 아니라 대단히 건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많았다. 이들은 그동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에 속하는 별개의 종으로 추정했는데 근래의 연구는 이들을 몸집이 다른 계통으로 인식하여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라는 별도의 속으로 설명된다.
파란트로푸스 중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은 1975년 앨런 워커 박사가 케냐 투르카나 호수에서 발견된 약 250만 년 전의 ‘검은 해골’이다. 검은 해골은 뇌의 크기와 몸집은 작았지만 두개골 위쪽에 크게 융기된 부분과 커다란 어금니를 갖고 있었고 보다 발달한 접시 형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어서 모든 원인 가운데 가장 건장한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가 등장하는데 이 원인은 220만〜120만 년 전에 살았다. 파탄트로푸스 보이세이란 별명은 ‘호두까는 사람’인데 두꺼운 법랑질로 덮인 커다란 어금니, 튼튼한 턱, 넓은 광대뼈, 정수리에 뚜렷하게 융기된 부분은 견과류나 씨앗, 또는 뼈를 부수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추정한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는 메리 리키가 1959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처음 발견했으며 이를 루이스 리키가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Zinjanthropus boisei)로 명명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0만〜160만 년 전의 파란트로푸스의 대표종인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paranthropus robustus)가 발견되었다.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역시 커다란 어금니와 턱을 갖고 있었고 두개골 위쪽에 융기된 부분이 있었지만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만큼 단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덩치는 매우 커서 어떤 개체는 몸무개가 68킬로그램까지 나갔다.
파란드로푸스는 학자들에게 근래 매우 놀라움을 주었다. 그동안 이족보행이 현생인류 뿐만 아니라 멸종된 인간 혈통인 호미닌(hominin)이 가진 뚜렷한 특징으로 제시되었다. 즉 인간과 호미닌을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과 구별하는 결정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영국 켄트대학의 매튜 스키너(Matthew Skinner) 박사는 2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호미닌이 정기적으로 나무에 올랐을지도 모른다고 발표했다.
스키너 박사의 다소 놀라운 발표는 화석 다리뼈를 분석해서 나온 결과다. 그는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또는 초기 호모로 추정되는 일부 호미닌이 매우 구부러진 엉덩이 관절을 가졌다는 증거를 확인했는데 이 엉덩이 관절은 호미닌이 나무에 오르는 것과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스키너 박사는 남아공에서 발견된 100만 년에서 3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두 개의 화석 다리뼈를 분석한 결과 두 화석의 경우, 뼈의 외부 모양은 유인원 같은 엉덩이 관절이 아니라, 인간과 매우 유사해 보였다. 이는 두 발로 걸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화석 뼈의 내골 구조를 조사한 결과 뜻밖에도 대퇴골의 구면 내부가 나무에 오르기 위해 엉덩이 관절을 사용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화석 뼈 안에 숨겨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화석 뼈를 외부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내부를 관찰해야 인간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키너 박사는 뼈의 내부 구조에 대한 추가 분석이 석기 제작과 도구 사용 등 다른 주요한 인간 행동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학자들이 그동안 연구했던 방법에 변화를 촉구한다는 뜻으로 고인류 연구는 그야말로 어렵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여하튼 마침내 플라이오세 말에 현대인과 같은 사람 속에 속하는 최초의 원인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동시대에 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파란트로푸스와 쉽게 구별이 된다는 점이다. 뇌의 크기가 더 컸고 두개골 위쪽에 융기된 부분이 없으며 눈두덩 뼈와 광대뼈도 덜 튀어나왔고 어금니와 송곳니의 크기도 작았다.
이들이 사람 속에 속하는 호모 하빌리스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1960년대에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가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발견했는데 약 175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처음에는 초기의 사람 속 표본을 모두 호모 하빌리스에 포함시켰지만 이들 모두 하나의 종으로 묶기에는 너무 다양하므로 현재는 이를 분리한다.
리처드 리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만드는 현대적인 생김새의 호모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는 240만〜190만 년 전에 살았고. 보다 발달한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는 180만〜160만 전에 살았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원인이 바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지금까지 존재한 원인 중에서 생존기간이 가장 길다.
아프리카에서 플라이오세에 살았던 원인은 거의 수십 종이나 발견되었지만 마이오세에 대단히 높았던 유인원의 다양성은 사라져 현존하는 대형 유인원 계통만 살아남았다. 구세계 원숭이 특히 개코원숭이가 다양하게 분화해 유인원을 거의 대체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플라이오세의 아프리카가 지역이 보다 추워지고 건조해졌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로 인해 영장류의 은신처였던 숲이 줄어들었고 그 자리에 우리 조상인 원인들이 살아가야 했다.
플라이오세를 넘어 플라이스토세 즉 빙하시대가 되었지만 아프리카는 변함없는 사람과의 요람이었다. 투마이, 오로린 투게넨시스, 아르디피테쿠스라미두스카다바 등을 이어 아르디, 루시 등이 등장했고 우리가 속하는 사람속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르가스테르, 호모 하빌리스들이 등장했다. 이들 외에도 여러 종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골분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했던 원시적인 도구인 ‘올도완(Oldowan)' 문화의 칼과 손도끼 등 도구들도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여하튼 학자들은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호모 에르가스테르, 호모 하빌리스 등 플라이오세에 등장한 원인들은 플라이스토세 초기까지 즉 160만 년 전까지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약 190만〜180만 년 전에 호모에렉투스라는 새로운 종이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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