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14) : 도구와 불사용(2)

Que sais 2021. 2. 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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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도구를 사용했을까>

도구의 제작은 도구 제작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기억하고 손과 눈의 조화로운 놀림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당한 수준의 지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당대에 사람의 신체조건이 자연계에서 결코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장 원시적 단계부터 이미 지능에 있어서만은 어떤 동물보다도 앞섰음을 말해준다. 더구나 계속적인 도구 제작은 두뇌활동을 끊임없이 자극해 지능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능과 도구 제작은 서로 계속적으로 상승작용을 하여 서로를 발전시켰다.

학자들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조상들이 언제부터 도구를 사용했느냐를 밝히기 시작했다. 우선 원시인류가 도구를 필요로 한 것은 맹수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량 채집을 위해서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즉 열매를 따거나 뿌리를 캐고 혹은 맹수가 잡아먹고 남은 동물 사체에 붙어 있는 살코기를 떼어내는 데 도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아무리 단순하게 보이더라도 그런 도구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일정한 방법에 의해 일정한 꼴로 계속 반복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발전의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여하튼 현대의 인간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인간의 선조가 사용한 것이 분명한 석기류70여만 년 전의 북경원인이나 100만 년 전의 검은모루동굴(북한)에서도 발견되었으므로 최소한 100만 년 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추정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진화 계통도로 미루어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석기를 사용했음이 분명하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진화 계통도상 인류의 조상들이 이들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석기를 사용했다고 추정하면서도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함부로 석기 사용 연대를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학자들의 노고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250만 년 전 아프리카는 기후가 점점 건조해지면서 먹이를 구하기가 어려워 원시인류들은 새로운 먹이를 구해야만 했다. 그때까지 먹지 않았던 단단한 열매를 깨고 뿌리를 파내어 먹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비교적 큰 동물의 고기를 먹으려면 이들 고기를 뼈에서 분리하는 것이 매우 유용함을 알았다. 바로 돌로 고기를 떼어내는 것으로 한 마디로 잡식성 동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사용된 석제도구를 올도완형이라 부르며 올도완 문화라고 칭한다. 이들의 뇌는 750cc 정도로 현생인류에 비해서는 절반 정도지만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보다는 거의 두 배의 용량이 된다. 바로 이와 같이 뇌가 커진 만큼 지능도 발달하여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고 추정한다.

여하튼 호모 루돌펜시스는 이들 새로운 무기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그들이 만든 도구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자 더 이상 거대한 동물들을 겁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밤에는 새로운 무기도 소용없으므로 많은 무리들이 죽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최초로 은신처도 만들었다. 초기에는 에티오피아나 케냐 등에서 주로 살았지만 기후의 변화로 동물들이 이동함에 따라 같이 이동하면서 말라위 등 아프리카 중부까지 넓혀 나갔다. 이들은 약 180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의 북부와 중부에 살았으며 이들로부터 호모 에렉투스진화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59메리 리키는 올드바이 골짜기의 낮은 호수 바닥으로부터 지표에 노출된 화석 한 부분을 발견했다. 바로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Zinjanthropus boisei : 보이세이는 루이스의 한 후원자였던 아프리카인이다). 그녀는 유골이 발견된 곳과 가까운 곳에서 부서진 동물뼈, 설치류 뼛조각, 그리고 몇 개의 석기들을 발견했다. 그녀는 유골의 주인이 그 도구들을 만들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한 진잔트로푸스가 발견된 지점 인근의 약 10평에 달하는 넓이에서 돌도구들을 비롯한 1000여 개 이상의 뼛조각들이 집중적으로 널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곳이 원시적인 주거지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거주민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작은 동물들의 껍질을 벗기거나 고기 덩어리를 떼어내는 데 돌 조각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그 주장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1964년에는 리키 부부는 올드바이 계곡에서 진잔트로푸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7인 개체의 두개골 턱뼈와 두 발, 손뼈를 발견했다. 이들은 호모 하빌리스(손재주가 좋은 인간)로 명명되었는데 대략 200만년에서 150만 년 전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120센티미터의 키를 가졌으며 서 있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인간의 발을 가졌다.

진잔트로프스와는 달리 그들은 곧바로 인류 최초의 도구 제작자로 인정되었다. 호모 루돌펜시스와 연대 차이가 다소 있지만 이들이 동 시대에 함께 살았다는 것으로 추정하면 선후 문제는 큰 논쟁거리가 아니다. 여하튼 호로 루돌펜시스호모 하빌리스든 한마디로 인간 조상이 석기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년한이 획기적으로 상향조정된 것이다. 학자들은 그들이 만든 돌 조각으로 동물들을 죽일 수도 있었다고 추정한다. 살아있는 동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음식물의 폭을 넓혀 종족이 번성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호모하빌리스가 도구를 사용한 최초의 인간류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석기에 가공된 흔적이 있다고 하여 그것 모두를 호모하빌리스가 만든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 때문이다. 사실 유인원들이 날 있는 조각돌을 만들어 도구처럼 사용하기도 하며 일부 유인원들은 반사적인 행위로 돌덩어리를 깨뜨려 조각돌을 만들기도 한다. 호모하빌리스가 만들었다고 추정하는 석기들은 의식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반사적인 활동의 산물로 인정하는 것이다.

호모 하빌리스가 석기를 만들었다는 재주를 갖고 있더라도 아직 인간으로의 진화가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중이다. 그것은 두뇌를 볼 때 의식적인 활동을 진행하였다는 구조형태적인 특성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빌리스 근처에서 발견된 석기를 의식적으로 만들 수 있었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호모 하빌리스에 인류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터전호모 루돌펜시스보다 훨씬 더 넓어150만 년 전까지 동아프리카의 케냐와 탄자니아는 물론 남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석기를 만들 수 있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초기 인류인 호미니드(직립보행 영장류)는 육상동물은 물론 공중의 맹금류에 쫓겨 다니는 신세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터란트대 고고인류학자인 리 버거 박사1924년에 발견된 200만 년 전의 호미니드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독수리에 잡아먹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과거 맹금류들이 호미니드를 사냥했으며, 이들의 공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인간 특유의 행태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3살 반 어린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두개골이 큰 새의 발톱에 채여 나무 위 둥지로 끌려가 잡아먹힌 뒤 두개골이 나무 밑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격 목표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립보행 습관을 갖게 됐고, 무리 중 가장 약한 개체를 노리는 맹금류의 습성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불의 발명>

사냥을 하고 나서, 불을 사용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식생활은 크게 달라진다. 다른 맹수처럼 불을 사용할 줄 몰랐다면 동물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을 것이다. 인류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거나 화산이 폭발할 때, 불이라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을 인간은 자신들의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들을 알게 되고, 나뭇가지를 비비거나 부싯돌을 부딪쳐 불을 일으키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인간류가 불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뒤랑스 강 협곡에서 발견된 동굴과 뼈들은 호모 에렉투스들이 인위적으로 불을 다뤘다는 결정적인 단서로 인정된다.

지상으로부터 깊숙이 내려간 동굴에서 석탄과 재, 불에 의해 그을려 금이 간 돌들, 그리고 화로가 1m 내에서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곳에서 취합한 침전물들, 늑대와 큰고양이과 동물들과 사라진 동물들의 뼈들에 남아있는 그을린 흔적에서 그 연대를 75만 년 전으로 측정했다. 학자들은 이들이 주식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도 왜 다른 곳으로 여정을 떠났는지 그 실마리는 찾지 못했다.

보다 정확한 불의 확실한 증거중국 북경의 주구점에서 발견되었다.

주구점은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인데 이는 북경원인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물론 석기, 골기(骨器)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동굴 안에서 불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재 속에서는 탄화(炭化)된 나무열매불에 구워진 흔적이 있는 짐승뼈도 출토되어 이들을 익혀먹었음을 뒷받침해 주었다.

중국의 북경원인이 발굴된 지층은 모두 홍적세 중기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하며 함께 출토된 동물화석에 대한 칼륨아르곤법에 의한 연대측정에 따르면 이들 지층은 지금으로부터 약 5070만 년 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뼈와 돌로 도구를 만들고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었다는 것은 그들이 현대인과 같은 생활이 이어지는 가교를 만들었고 감정 면에서도 이전의 인간류에 비해 원천적으로 달랐음을 보여준다.

물론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불의 사용은 약 100만 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프리카의 스와트크란스(Swatkrans) 동굴에 살던 인류도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기 때문으로 이 역시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던 142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현재까지 제시된 아프리카의 유적은 최소한 열세 군데가 있는데 시대가 가장 이른 케냐의 체소완자에서는 짐승의 뼈가 올도완 석기, 불에 탄 진흙과 함께 나왔다. 피터 올슨 박사50여 개의 불탄 진흙 조각들의 배열로 미루어 화로로 추정했다.

불의 발견은 인간과 여타 동물이 결정적으로 분류되는 계기가 된다.

불의 중요성은 인류에게 따뜻함 이상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불을 발견하기 이전의 인간류들은 사실 동물 왕국의 일원일 뿐이었다. 그들은 건기에 물을 마시기 위해 다른 동물들처럼 순서를 기다렸다. 코끼리 떼가 지나가면 멀리서 관찰하고, 코뿔소나 물소가 나타나면 길을 비켜줘야 했다. 특히 사자, 표범, 늑대나 곰과 같은 맹수들이 다니는 길을 감지하고 그 길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이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의 인간류식물성에서 동물도 먹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먹이는 새나 토끼와 같이 작은 사냥감이나 큰 동물의 새끼들이다. 특히 이들은 주로 사자와 표범이 자신들이 잡은 사냥감을 실컷 먹는 것을 멀리 떨어져 관찰했고 이들이 배불리 먹고 나면, 그 때 유인원들은 독수리, 하이에나와 경쟁하며 사체에 남은 고기를 처리했다. 한마디로 초기 인류맹수들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은 모든 것을 바꿨다. 인간류들이 무서워하던 맹수들이 오히려 인간류가 사용하는 불을 무서워했고 이것은 인간류먹이 사슬의 바닥을 떠나 정상 자리를 차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터득한 핵심적인 신기술을 계속하여 전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류사에서 불을 중요시하는 것은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인간이 더 추운 곳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불은 저장실에 얼려놓은 동물을 녹여 쉽게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세계 각지의 오지에서 선사시대인들이 발견되는 것은 오지인간의 터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는데 이때 불이 온기와 음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불은 어두운 공간에서 인공적인 빛을 제공해 주므로 인간의 활동 영역낮에서 밤과 동굴 같은 어두운 곳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불이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해주어 보다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되자 보다 많은 여가 시간을 활용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불이 인간에게 접목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인간의 식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불로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으므로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덜어주었다. 현재와 같이 진화된 인간이 태어나는데 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초기의 인류는 불을 사용할 줄 몰라 날것으로만 먹어야하는데 이때 육류에 있는 기생충이나 병균이 그대로 사람의 몸으로 들어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따라서 당시의 인류의 수명도 현재보다 훨씬 짧은 것은 자명하다.

불의 사용인간의 체구 등 여러 면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됨으로써 소화 부담이 줄어들어 내장과 흉곽이 작아지고 골반이 상대적으로 좁아진 반면 턱 근육은 줄어들었으며 뇌의 용량이 커지면서 두개골의 크기도 점점 더 커졌다. 따라서 아기의 머리가 산도를 통과하기 힘들어져 자식의 출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 자연히 인간들은 아기의 두뇌가 다 커지기 전에 미숙아인 상태로 조산(早産)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미가 갓난아기를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의 자식을 낳은 여자와 자식을 돌보기 시작했고 이로소 가족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공동의 적을 함께 보호하며 돌봐주면서 부모들의 권위가 발생하고 이웃도 생겨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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