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구사용>
인간류의 특징은 도구를 사용했다는 점인데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인간류가 도구를 사용한 시기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는 증거가 계속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류로의 변화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과학자들이 예전부터 예측한 일이다.
70여만 년 전의 북경원인이나 100만 년 전 북한의 검은모루동굴에서 석기가 발견되었으므로 최소한 100만 년 전으로 인간류가 석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진화 계통도상 훨씬 오래 전부터 석기를 사용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추정은 옳았다. 탄자니아의 올드바이 계곡에서 발견한 진잔드로프스는 150만~250만 년 전의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동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고기 덩어리를 떼어내는 데 돌 조각을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이들을 호모 하빌리스라 부르는데 그들은 돌 조각으로 동물들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음식물의 폭을 넓혀 종족이 번성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후 180만 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보다도 뇌가 크고 보다 고급스런 석기를 만들었던 인류가 나타났다. 바로 현대 인류의 중간조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하는 ‘호모 에렉투스’다.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적은 900~1,000cc로 추정되고 호모 하빌리스보다 현대 인류와 가까운 얼굴 생김새로 이들은 상당히 큰 둥근 돌을 깨뜨려 만든 손도끼와 절단기를 사용했다. 이런 석기는 그 후 변하지 않고 거의 150만 년 전부터 20만 년 전까지 표준형으로 계속 사용된다. 더구나 이들은 활과 화살을 발명하여 수렵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든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중국, 자바에서도 발견된다.
<도구 사용은 필연적>
직립 보행하는 선조 인류가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주위를 더 잘 볼 수는 있지만 대형 맹수 등 포식 동물들로부터 취약점이 노출된다는 것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맹수들은 인간보다 더 강하고 더 빠르며 더 예리한 이빨을 가지고 있다. 이를 다윈의 진화론에 접목시켜본다면 인간은 맹수보다 취약하므로 엄밀한 의미에는 생존경쟁에서 탈락하여 멸종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이러한 불리를 이겨내고 지구를 제패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도구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했다는 것은 두 가지 획기적인 발전을 유도한다. 전략을 짤 수 있는 뛰어난 뇌와 위험한 물체를 던지거나 휘두를 수 있는 손의 발전이다. 던질 수 있는 물체를 손으로 던질 수 있다는 것은 먼 거리에서 맹수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도구를 일반적으로 정의하면 ‘신체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신체 외적 수단’이라고 한다. 즉 굳이 가공하지 않더라도 자연에 존재하는 물체를 사용함으로써 일정한 행위를 더 수월히 할 수 있다면 그 물체는 도구라고 부를 수 있다.
도구를 이런 뜻으로 본다면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어 쓴다는 이야기는 옳지 않은 말이다. 즉 도구 사용 기술이 오직 인간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침팬지와 원숭이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택하고 또한 간단한 변형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침팬지가 흰개미를 나뭇가지로 흰개미 집에 넣었다 끄집어 낼 때, 이 작업에 가장 적당한 나뭇가지를 선택하는데 이는 ‘낚시’와 다를 바 없다. 사실 많은 동물들이 신체 이외의 수단을 이용하여 먹거리를 효율적으로 얻는다.
2004년에는 브라질의 오지에 살고 있는 검은머리꼬리감는원숭이들이 놀랄 만큼 정교한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피트 옥스퍼드의 사진기에 포착되었다. 원숭이들은 단단한 껍질의 야자열매를 넓적한 사암 위에 올려놓고 무거운 돌을 들고 일어나서는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가 내려쳐 껍질을 깼다. 더구나 원숭이들은 이전에 돌로 내려쳐 파인 홈에 열매를 두고 깨는 법도 알고 있었다. 조지아대학의 도로시 프라케이지 박사는 이들 원숭이가 유인원과 먼 유연관계의 종으로 이들의 능력은 독자적으로 발달되었다고 말했다.
근래 인류학자들은 기술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과거의 선입견을 버려야한다고 설명한다. 즉 도구사용 기술이 오직 인간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침팬지와 원숭이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택하고 또한 간단한 변형도 한다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벌이 집을 짓는 본능과 다르다.
일본 마카쿠 원숭이인 이모(Imo)의 지능은 더욱 놀랍다. 암컷인 이모는 놀랍게도 다음 두 가지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 첫째 모래밭에 떨어진 감자에서 모래를 제거할 때 모래알을 손가락으로 떨어내는 것이 아니라 감자를 바닷물에 씻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모는 쌀과 모래를 분리하기 위해 낱알을 집어내지 않았다. 이모는 쌀과 모래의 혼합물을 물 속에 넣어 모래는 가라앉히고 쌀은 뜨게 하는 방법으로 두 물질을 쉽게 분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두 기술이 집단의 어린 원숭이에게 교육된다는 것이다.
오랑우탄이 낚시하는 모습도 발견되었다.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섬에서 서식하는 오랑우탄 여러 마리가 나뭇가지를 이용해 천천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직접 잡거나 사람들이 놓아둔 낚시줄을 훔쳐 낚시를 하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두뇌가 육류보다는 어패류에 함유된 지방산 덕분에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초기 인류인 원인들이 도구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터득하여 현재와 같은 인간이 태어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이와 같이 영장류의 도구 사용은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존재는 아니지만 다른 동물과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사람만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도구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쓴다는 사실이다. 즉 다른 동물들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그때그때 주변의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임시로 이용하는데 그친다. 다시 말하자면 동물들의 도구 사용은 단발성 행위로 기억 속에 축적되지 않고 한번 끝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도구사용>
얼마전만해도 학자들은 사냥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포유동물을 죽이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7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의 질 프뤼츠 박사는 아프리카 세네갈 동부와 말리 서부에 있는 사바나 삼림지대에 서식하고 있는 퐁골리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창처럼 다듬어 여우원숭이를 사냥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우림에 사는 침팬지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시간을 땅위에서 먹을거리와 물을 찾아다니며 보낸다.
인간의 원시조상을 포함해 일부 영장류들의 뇌가 크고 복잡하게 진화한 이유는 먹이가 그리 많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는데 이를 ‘생태학적 지능’이라고 한다. 즉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질 좋은 먹잇감이 어디쯤 있는지 기억해 뒀다가 찾아가는 것이 지능발달을 도왔다는 것이다. 질 좋은 먹잇감이란 고기를 의미한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서 두뇌가 더 크고 정교하게 진화했고 커진 두뇌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기관이나 시스템도 간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고기처럼 열량이 높은 먹이를 먹을 땐 영양가 낮은 식물성 먹이처럼 많은 양을 먹을 필요가 없다. 먹은 것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덜 쓰면 그 에너지를 다른 곳 즉 커진 두뇌를 가동시키는 데로 돌릴 수 있다. 인간의 원시조상도 이와 비슷한 척박한 환경에서 살면서 사냥을 하고 도구를 만들어 썼을지도 모른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진화적․유전적․행동적 유사성이 바로 침팬지를 열심히 연구하는 이유다. 나이가 40살 쯤 된 침팬지는 늙어서 귀가 멀고 눈도 거의 보이지 않고 이빨도 다 빠졌다. 그런데 이 늙은 침팬지는 늙어서 사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일을 내리쳐 깨뜨려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이를 보면 젊은 침팬지들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사성은 매우 많다. 침팬지의 하품이 인간처럼 동료에게도 전염된다. 침팬지가 침을 밷는데 이는 화를 낸다는 뜻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육되는 침팬지에게 새끼고양이를 넣어주면 보살펴 기르기도 한다. 또한 침팬지는 한밤중에 일어나 야식을 먹으며 또 등을 대고 누워서 새끼들을 발로 들어올려 ‘비행기 태워주기’를 하기도 한다. 입맞춤도 하고 악수도 하며 상처 딱지가 아물기 전에 뜯어내기도 한다. 침팬지의 수컷들은 사냥한 먹이를 나눠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암컷과 어린 침팬지들이 독자적인 사냥 기술을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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