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특이성>
고인류학자들이 인간을 연구하면서 가장 큰 특성 즉 독창성, 유인원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에 집중되었는데 이 부분은 매우 쉽게 도출되었다. 언어 즉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언어를 제외한다면 인간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윈도 언어의 효용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어는 음악과 비슷한 특정한 언어 과시 방법을 획득하려는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인간과 유인원이 여러 가지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인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동안의 연구 결과에 기초한다. 학자들이 인간만 갖고 있다는 언어에 주목하여 다른 유인원들도 언어 능력이 있는가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부단히 유인원을 상대로 언어 능력에 대한 연구를 한 결과 근래 대부분의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침팬지는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침팬지의 입은 매우 좁아서 그 안에서는 혀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 인간의 혀는 이야기할 때 매우 복잡한 운동을 한다. 동그랗게 꼬부라지기도 하고 미묘하게 떨리기도 하며 입 천장에 붙었다가 목구멍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뒤로 처지기도 하고 반대로 또 치아에 의지하여 앞으로 내밀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입 안은 어떤 모양으로 움직여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넓지만 챔팬지의 입 안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은 500만 년 전에서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인간과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조상 역시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언어는 최근 500만 년 동안 진화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언어가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학자 스티븐 핑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언어는 복잡하고 특화된 기술로서 의식적인 노력이나 정식 교육 없이 어릴 때 자연적으로 발달한다.
둘째, 언어는 내재된 논리에 대한 의식 없이 전개된다.
셋째, 질적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똑같다.
넷째, 언어는 정보처리, 지적인 행동 등과 같은 훨씬 일반적인 능력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언어는 인간의 본능 즉, 마음이 적응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학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우리는 것은 인간의 선조들이 무엇을 위해 인간이 언어에 적응했느냐이다.
<이타성 언어>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골머리 아프게 하는 것은 언어가 외견상 이타성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명령과 질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말은 발화자 즉 말하는 사람이 청자 즉 듣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들린다. 말은 발화자의 시간과 노력을 빼앗지만 청자에게는 정보의 이익을 가져다줌으로써 이타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화는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라 이기적인 행동에 의해 진행된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1978년 리처드 도킨스는 동물들이 신호를 보낼 때 다른 유전자를 희생시켜 자기 유전자의 복제를 도울 때만 신호를 생산하도록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즉 대부분의 동물들이 만들어 내는 신호들은 발신자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타 개체의 행동을 조종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호랑이나 개가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경쟁자와 싸우는 쪽보다 경쟁자들을 위협하는 쪽이 더 쉽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작은 개들은 굵고 낮은 으르렁거림에 더 큰 위협을 느낀다. 굵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는 개는 대체로 큰 개라서, 싸움이 붙는다면 이길 승산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으르렁거림에 민감한 귀는 둘 다 이기적인 목적에서 진화했다는 뜻이다.
반면에 신호는 세상에 대한 진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발신자들은 거짓말을 할 이유가 대단히 많으므로 되도록 다른 동물로부터 오는 신호를 외면하도록 진화한다고 설명된다. 그 신호들이 자신을 속이기 위한 시도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호를 받아들이는 측은 누가 신호를 보냈느냐에 대해 민감하다. 친척 관계에 있는 개체가 “저 포식자를 조심해”라고 할 때는 믿을 수 있는 신호이기 때문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하나의 먹이를 놓고 경쟁하는 동물이 보낸 “나는 너를 죽일 수 있어”라고 하는 신호 역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을 ‘적응도 지표’라고 부른다.
참고적으로 육상에서 언어의 구사력은 인간의 독무대이지만 바다에서는 전혀 다르다.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수족류인 오징어에게는 탁월한 언어 능력이 있다고 한다. 오징어 연구의 전문가인 웨이드 박사는 오징어들이 인간과 똑같은 언어 능력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매우 복잡하고 지능적인 언어를 서로 교환한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사람이 수족관에 들어 있는 문어를 볼 때 문어도 인간을 똑바로 쳐다보는데 그것은 문어가 지능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고 적었다. 또한 그들도 자신들만의 언어를 바다 속에서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문어의 지능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스타 ‘족집게 문어’ 파울(Paul)에 의해서도 잘 알려졌다.
독일 해양생물센터 수족관에서 사는 파울은 대회 동안 결승전 포함해 여덟 경기의 승패를 족집게처럼 알아맞혔다. 파울의 점치기는 경기할 국가의 국기가 그려진 2개의 유리상자 중 어느 상자 속에 들어 있는 홍합을 집어 먹느냐로 이뤄졌다.
물론 파울을 면밀하게 분석한 과학자들은 우선 인간처럼 특별한 재능이나 예지력을 타고난 것은 아니며 학습을 통해 독일 국기를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보도했다. 문어는 시력은 좋지만 색맹(色盲)이어서 국기에 그려진 색깔에는 관심이 보이지 않는 대신 국기 모양과 수평으로 된 띠에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파울이 독일과 스페인 4강전에서 스페인의 승리를 점친 것은 스페인 국기가 독일과는 달리 가운데 노랑 띠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으로 커 이 모양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파울은 결승전 승자로 스페인을 점쳤는데 이는 네덜란드 국기가 독일처럼 3등분 즉 빨강, 파랑, 흰색으로 돼 있어 스페인을 승자로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어가 가장 지적인 해양생물이며,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받을 수 있으므로 파울이 이런 재능을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어가 어떤 연유로든 국기 모양과 수평으로 된 띠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파울에게 나름대로의 기억과 지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연속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국기를 선택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지목한 국가들은 모두 승리하여 더욱 명성을 높였지만 파울이 나름대로의 지능적인 행동은 인간으로 보면 언어를 사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웨이드 박사는 오징어나 문어가 바다 속에서 언어를 교환할 수 있게 된 것은 물속에서 인간과 다른 진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인간만 언어를 갖고 있다는 대전제는 깨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문어나 오징어의 언어를 로봇에 주입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인간이 어떻게 언어를 진화시켰느냐는 원천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언어의 진화>
제프리 밀러는 언어의 진화 즉, 언어의 이익에는 기본적으로 혈연관계, 호혜주의, 성선택 이 세 가지가 관여했다고 설명한다.
밀러의 설명은 명쾌하다. 음식은 나누면 작아지지만 정보를 나누면 커진다.
상대방에게 유용한 사실을 알려주더라도 그것을 앎으로써 생기는 내 이익이 자동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잠재적으로 이러한 정보 공유 효과 덕분에 언어는 혈연관계와 호혜적 이타주의를 통해 진화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혈연과 친구로만 구성된 작고 반영구적인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대 인류들은 150명이 최대 거주 단위로 이 이상으로 인구가 늘어나면 분리되었다고 추정한다. 이것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능력을 진화시킴으로써 서로 이득을 보았다는 것이다.
밀러는 성선택이 언어 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언어의 정보 전달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발화자보다 청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 발화자는 이미 전달할 정보의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남과 공유함으로써 새로이 얻을 것이 없다. 하지만 청자는 발화자의 말을 듣고 정보를 얻는다. 즉 남의 말은 극도로 귀담아듣고 자신의 말은 극도로 자제하는 종(種)이 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런 특성은 인간의 본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적이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말하려고 경쟁하며 상대가 자기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다. 듣는 척할 때도 사실은 남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다음에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적인 구조에서도 증명된다. 말하는 것보다 듣기가 이익이라면 인간의 발화 기간은 퇴화되고 귀는 동료가 말하는 모든 값진 지식들을 몽땅 흡수하기 위해 진화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청각 기능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반면 발화 기관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즉 다른 동물에 비해 청각이 매우 뒤떨어지는데 이는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프리 밀러는 인간의 구애가 상당 부분 언어에 의한 구애임에 주목했다. 구애의 모든 단계에서 언어 과시가 일어나는데 이때 사용되는 언어는 짝 고르기의 대상이 된다.
10대들은 이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 때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한다. 말을 재치 있게 하지 못하고 더듬거나 엉망인 문법, 잘못된 단어를 선택하는 등 이성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사람은 딱지맞기 십상이다. 일단 데이트에 성공한 후에는 더욱 언어에 신경을 쓴다. 사람들은 구애의 매 단계마다 구애를 포기하거나 친밀감을 높여가는 단계로 이행된다. 보통 최소한 몇 시간 정도 대화가 오가면 사소한 신체적 접촉으로 진전되며 몇 회에 걸쳐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면 성 관계로 진전된다. 이는 인간들의 선조에게도 해당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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