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 골랐다>
다윈은 동물들은 보통 성선택의 유능한 행위자 역할을 수행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점에 착안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어미와 아비로부터 절반씩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다. 이는 짝의 유전자 질이 평균적으로 자기 새끼의 유전자 질의 절반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짝 고르기 즉 성선택은 훌륭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짝을 더 잘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선택의 이런 인센티브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들은 섹스에서 차별주의자가 된다. 즉 어떤 구혼자는 받아들이고 어떤 구혼자는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이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성선택에서 수컷이 암컷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암컷이 수컷을 골랐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동시대인에게 충격을 준 여자의 남자 선택은 다윈이 진화론을 전개한 후 상당한 고민의 걸작이다. 다윈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자연선택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특성들이 많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성선택설은 매우 간단한 내용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수컷과 암컷 간에는 엄밀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즉 성이 분리된 동물의 경우 수컷의 생식 기관은 암컷의 생식 기관과 필연적으로 다르다는 것으로 이를 ‘일차 성기관’이라 한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암컷과 수컷이 보이는 구조의 차이가 그 종의 번식과 어느 정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많은 알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야 하는 암컷은 수컷보다 먹을 것이 더 많이 필요하므로 암컷은 식량을 획득하기 위한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그 많은 식량을 암컷 스스로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컷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수컷이 왜 암컷에게 식량을 해결해주어야 하는가이다.
자신이 구한 식량이 암컷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수컷이 기선을 잡을 수 있다. 암컷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소위 수컷에게 아첨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다윈의 설명이다. 수컷이 자신이 어렵게 구한 식량으로 암컷을 마음껏 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다윈은 암컷이 수컷을 선정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갈파했다. 그 근저에 종의 보존이 있음은 물론이다.
다윈의 요지는 두 성의 생활 습성과 관련된 구조적인 차이는 자연선택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며 이것이 동일한 성을 통해 제한적으로 유전되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즉 일차 성기관과 새끼를 기르고 보호하는 기관은 같은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새끼를 낳아 가장 잘 먹여 살리는 개체들이 그들의 우수성을 물려받은 새끼를 많이 남긴다는 것이다. 그는 암컷과 수컷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면서 수컷이 달라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수컷은 다른 경쟁자들과 싸우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공격 무기와 방어수단, 수컷의 용기와 호전성, 갖가지 장식들, 성악(聲樂)이나 기악(器樂) 장치들, 냄새를 발산하는 분비샘 등이 그렇게 해서 발달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암컷을 유인하고 자극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또한 이들 특징은 자연선택이 아닌 성선택의 결과다. 왜냐하면 이렇게 유리한 특징을 갖는 수컷들이 존재하더라도 매력적이지 않은 수컷도 역시 생존 경쟁에서 성공해 수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중략) 되풀이되는 치열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작은 변이는 성선택이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이 투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암컷의 정신 능력이 수컷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달되어 있다면 암컷은 여러 수컷 중에서 하나를 고를 기회를 갖는다. 이를 위해 수컷들 사이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구한 식량도 제공하면서 말이다.
다윈의 관찰력은 놀랍다. 그는 수컷 철새들이 번식지에 암컷들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즉 먼저 도착한 많은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울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40년 간 브라이턴 지역에서 철새를 연구한 한 학자는 다윈에게 어떤 종이든 암컷이 먼저 도착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윈은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경우도 수컷은 암컷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번식 준비를 완료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개구리와 두꺼비, 대부분의 곤충도 번데기에서 먼저 깨어나는 것은 거의 수컷이다. 이들 중에서 강한 수컷과 가장 잘 무장한 수컷이 약한 수컷을 몰아낸다. 즉 암컷이 출현하기 전에 이미 수컷은 암컷이 선택하도록 준비하고 이를 파악한 암컷이 준비된 수컷을 선별한다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암수가 분리된 식물의 경우도 수꽃이 암꽃보다 먼저 성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윈이 강조한 것은 이 같은 본능과 체질이 유전된다는 것이다.
다윈이 성선택설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진화론, 즉 자연선택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문이다. 첫째는 어째서 큰 뇌와 복잡한 마음이 진화사의 종반부에서 극소수의 종에서만 생겨났는가 하는 점이다.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나타난 것은 거의 35억 년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500그램 정도를 초과하는 뇌를 가진 동물이 나타난 것은 그야말로 후대에 속한다. 그것도 대형 유인원, 몇 종류의 코끼리와 매머드, 돌고래와 고래뿐이다. 대부분의 동물, 즉 99.99%의 동물들이 침팬지보다 작은 뇌를 가졌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미루어볼 때, 진화는 큰 뇌와 월등한 지능을 지향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큰 뇌를 거부하는 쪽으로 진행된 것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인간의 뇌가 크게 진화했다는 것은 무언가 특이한 요건이 개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인간의 진화에서조차 뇌의 팽창 시점과 인간이 폭발적인 능력을 갖추게 된 시점까지 매우 오랜 시간의 간극이 있었다는 점이다. 뇌의 용량은 25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에 세 배나 커졌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 기간 동안 줄곧 똑같은 종류의 주먹도끼를 사용했다. 뇌가 진화하는 동안에도 기술 혁신은 정체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10만 년 전 인류 조상들의 신체와 뇌는 해부학적으로 현대인과 똑같다. 그렇다면 어째서 뇌가 팽창을 멈춘 뒤에야 비로소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들이 자리를 잡게 된 걸까.
세 번째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자질이자 능력으로 볼 수 있는 유머, 작문, 가십, 음악, 미술, 자의식, 언어, 창의적 사상, 종교, 도덕과 같은 독특한 특성들은 생존에서 어떤 보상을 주는 것일까 하는 문제다.
다윈이 새로운 가설에 도전한 것은 적자생존의 관점만으로는 이러한 세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은 오직 인간에게만 특징적으로 나타났으나 원래 진화는 기회주의적이고 공평한 것이다. 더욱이 진화는 종을 차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와 같은 인간의 독특한 능력들을 생존상의 이유에서 생겨난 것으로 가정하려면, 왜 다른 종들에게는 그런 능력들이 진화의 결과로 주어지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적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간단하게 말해 마음의 진화가 생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많은 종에서 인간의 그것과 유사한 마음을 향한 수렴 진화가 일어났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종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인간에게만 발생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윈은 자신이 제시한 진화론의 ‘자연선택론’을 보완하는 한 방안으로 ‘성선택론’에 착안했다. 즉 짝 고르기를 통한 성선택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다각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수렴 진화가 아니라 발산 진화의 길로 나아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가설을 확대하면 인간 마음의 가장 특별한 능력들이 애초에 구애 장식으로 생겼지만, 뇌의 크기가 세 배나 커지는 동안에 생존 이익은 별로 없었다는 모순된 측면도 규명할 수 있다. 당시에 뇌가 주는 이익은 주로 번식 이익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다윈이 짝 고르기, 즉 성선택을 도입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벌레들이 황금빛으로 몸을 장식하는 것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서지 결코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직시했다. 모든 수컷 비둘기는 날개를 펴고 으스대며 걷거나 구구 소리를 내며 암컷을 유혹한다. 그러나 암컷이 가버리면 수컷의 과시 행위는 끝난다. 그런데 암컷이 돌아오면 다시 좀 전에 하던 행동을 반복한다. 다윈은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다윈은 유전자나 DNA를 몰랐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다윈이 살아 있을 때 멘델의 유전 법칙이 발표되었으나 다윈이 멘델의 논문을 읽었다는 자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성생식을 하는 종의 경우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형질을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짝짓기에 의한 자식 생산임을 간파했다. 만약 어떤 동물이 섹스를 하지 않는다면 그 동물에게 대물림된 형질은 그 동물과 함께 사멸하며, 따라서 다음 세대에 하등의 유전적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거꾸로 아무리 빨리 죽더라도 자식을 많이 낳았다면 진화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역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다른 수컷을 정복한 수컷이나 암컷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선택받은 수컷이 그렇지 않은 수컷, 즉 패배당하고 덜 매력적인 수컷에 비해 그들의 우수성을 전해줄 만한 더 많은 후손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수컷에 비해 유리한 점을 갖고 있는 수컷의 형질이 성선택을 통해 완벽성을 갖추는 일이나 증가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고등동물에서 일어나는 현상처럼 수컷이 번식기에 암컷을 방어하는 능력을 갖고 있거나 암컷을 도와 새끼를 부양할 경우 암컷이 수컷을 선별하는데 더욱 유리해진다. 수컷이 암컷보다 더 많이 변화해야 할 개연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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