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아스피린>
현재 시판되는 약 중 100년이 훨씬 넘게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약이 있다면 놀랄 것이다.
아스피린이다. 더구나 아스피린이 1982년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 더욱 놀란다.
합성염료 산업의 발전은 뜻하지 않은 새로운 소득을 안겨주기도 했다. 아스피린과 같은 의약품의 대량 생산이 바로 그것이다. 20세기 초 독일과 스위스는 화학 산업이 염료산업의 성공으로 번창하고 있었다. 즉 새로운 화학 지식, 대규모 화학 반응에 대한 경험, 분리와 정제 기술 등이 확보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과 경험은 제약업이라는 새로운 화학 사업 분야로 진출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아닐린 제조로 시작한 독일의 바이엘사는 화학을 기반으로 한 의약품을 개발했다. 이 약이 그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아스피린이다.
1893년 바이엘에 근무하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Felix Hoftmann, 1868〜1946)은 살리실산(salicylic acid)와 관련된 화합물 특성을 연구하고 있었다. 살리실산은 살리신(salicin)에서 얻은 물질로 해열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9세기 초반 버드나무의 잎과 껍질에 살리실산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 내용은 매우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것으로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을 이용해 열을 내리고 진통을 감소시켰고 로마인들도 버드나무 껍질을 해열제로 사용했다.
그러나 살리신산은 섭취했을 때 고통과 열을 감소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위장 장애를 일으키므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1832년 프랑스의 화학자 샤를 프레데리크 제라르는 살리실 산과 염화아세틸을 혼합하여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려고 하였지만 이 공정은 너무 긴 생산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포기했다. 사실 호프만은 아버지의 신경통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을 찾던 중 제라르의 연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호프만은 살리실산 유도체인 아세틸살리실산이 살리실산과 소염 효과는 동일하면서 위장은 덜 쓰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하여 아버지에게 드렸는데 그날 밤 그의 아버지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고통없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호프만은 염화아세틸의 첫 글자인 a에, 스피라에아 울마리아(Spiraeaulmaria, 실리실산이 추출되는 식물)의 'spir'를 덧붙여 이 약에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바이엘사는 1899년 아세틸살리실산의 강력한 소염 효과와 진통효과를 보이는 아스피린을 시장에 출시하였으며 즉시 성공을 거두었다. 초기에는 가루 형태로 판매되었지만 1914년부터는 알약 형태의 아스피린을 출시하였다. 아스피린은 흥분, 통증, 열, 혈소판의 응고를 유발시키는 프로스타글란딘(호르몬과 유사한 화학물질)의 생성을 줄여주며 이외에 심장병, 임신 중독증, 대장암의 발병률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이후 바이엘의 이름은 아스피린과 동의어가 되었고 바이엘은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발돋움한다.
아스피린이 폭발적으로 판매되자 살리실산의 원재료인 메도스위트와 버드나무의 공급량이 달리게 되었고 결국 페놀을 시작 물질로 사용하는 새로운 합성법이 개발되었다. 아스피린이 제약 분야에서 합성화학의 길 즉 염료 합성에서 얻은 화학적 지식을 이용해 값싼 합성 의약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오늘날 아스피린은 질병과 상처 치료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약이다. 아스피린을 함유하고 있는 약물은 400종 이상이 된다. 아스피린이 성공한 이유를 <파이낸셜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승전국의 제약회사들은 패전국인 독일 회사 바이엘과 아스피린 상표를 복제약에 마음대고 사용했다. 바이엘은 아스피린 상표와 알약에 새겨진 로고를 돌려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1994년에 비로소 바이엘은 상표와 로고를 완전히 되찾았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바이엘아스피린‘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아스피린은 복제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팔렸다.’
제약 회사가 신약을 개발하면 특허 기간 동안에는 엄청난 매출을 올리지만 특허가 끝나면 솓아져 나오는 복제약 때문에 매출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아스피린처럼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약을 바라는데 이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타이레놀과의 혈투>
아스피린에도 경쟁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53년에 등장한 타이레놀이다. 맥닐연구소는 ‘아스피린이 위를 자극해 위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며 같은 효능을 보이는 타이레놀의 사용을 강조했다. 특히 맥닐연구소를 인수한 대형제약회사 존슨앤존슨은 아스피린의 단점과 부작용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계속 펴나갔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타이레놀에 이어 해열진통제 애드빌이 등장하자 아스피린 왕국은 몰락하는 듯 했다.
아스피린의 몰락은 아스피린이 라이증후군의 원인일지 모른다는 주장 때문이다. 라이증후군은 어린이와 20대 미만 청소년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뇌 손상으로 죽기도 한다. 병의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데도 존슨앤존슨은 라이증후군이 치명적 질환이고 아스피린을 먹으면 위험성이 높다고 계속 선전했다.
1986년 존슨앤존슨의 선전은 효과를 보아 1986년 미국 FDA는 아스피린 포장에 ‘16세 이하 어린이 및 청소년은 수두와 독감 같은 증세가 있을 때 의사와 상담없이 아스피린을 먹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을 붙이도록 했다. 한편 미국에서 라이증후군 환자는 점차 줄어 1994〜1997년 겨우 2명의 환자만 나왔을 뿐으로 라이증후군이 정말로 아스피린 때문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아스피린으로 노벨상 수상>
아스피린과 타이레놀이 혈투를 벌이는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1982년, 스웨덴의 수네 칼 베리스트룀(Sune Karl Bergstrom, 1916 〜 2004)과 벵트 잉에마르 사무엘손(Bengt Ingemar Samuelsson, 1934 〜 ), 그리고 영국의 존 로버트 베인(John Robert Vane. 1927 〜2004) 박사가 아스피린이 작용하는 원리를 밝혀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것이다.
수네 칼 베리스트룀(Sune Karl Bergstrom, 1916 〜 2004) 박사는 스웨덴의 생화학자로 1944년에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생화학과 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런던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 바젤 대학교 등에서 연구하였으며, 1947년에 스웨덴의 룬트 대학교 생리화학 교수가 되어 1958년까지 재직하였다. 1958년에는 카롤린스카 연구소 화학 교수가 되었으며, 1975년부터는 노벨 재단 이사, 1977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의학연구협의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프로스타글란딘을 최초로 분리하고 그 기능을 밝혀냈다.
벵트 잉게마르 사무엘손(Bengt Ingemar Samuelsson, 1934 〜 ) 박사는 룬트 대학교에서 공동 수상자인 베리스트룀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하였다. 스톡홀름에 있는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1960년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어서 다음해인 1961년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1년부터 1962년까지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에서 연구하였으며,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조교수로 재직하였다. 스톡홀름에 있는 왕립 수의학대학 의화학 교수를 거쳐, 1973년부터는 카롤린스카 연구소 의화학⋅생리화학 교수가 되었다.
로버트 베인(John Robert Vane. 1927 〜2004) 박사는 영국의 버밍엄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였으며, 1953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약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예일 대학교 약리학 조교수를 지냈다. 런던대학교 기초 의학연구소 강사를 거쳐 1961년에 동 대학교 약리학 교수가 되었으며, 1966년 실험약리학 교수가 되어 1973년까지 재직하였다. 1973년 베크넘에 있는 웰컴 연구소 연구개발 소장이 되었다.
그들의 수상업적은 「프로스타글란딘과 관련된 생물학적 활성물질에 대한 연구」인데 이것은 아스피린의 효능에 관한 연구와 같다. 노벨상 추천문을 보면 더욱 확고하게 알 수 있다.
우리 몸에는 염증과 발열, 통증을 일으키는 콕스(COX) 효소가 있는데 아스피린은 이 콕스 효소를 억제한다. 또한 콕스 효소에는 염증과 통증에 관여하는 ‘콕스1’ 효소외에 혈액을 응집시키는 ‘콕스2’ 효소가 있는데 아스피린을 먹으면 두 기능이 모두 억제되기 때문에 위장 장애가 나타난다. 이에 제약회사 머크는 염증이나 통증과 관련된 효소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인 바이옥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바이옥스는 2004년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이 불거져 판매가 금지되었고 머크는 총 5조 8,00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아스피린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야말로 낭보가 전해진다. 1978년 캐나다에서 뇌졸중 환자가 아스피린을 먹으면 재발할 위험이 31% 줄어들고 관상동맥 질환으로 인한 뇌졸중이 감소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1990년에는 협심증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먹이면 심장마비 위험이 50%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미국 FDA는 아스피린이 혈관을 막는 혈전이 생기지 않게하여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을 예방하는데 아스피린을 처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출혈부작용과 라이증후군으로 고전하던 아스피린은 새로운 효능이 밝혀지면서 기사회생한다.
그런데 아스피린 공격에 적극적이던 타이레놀은 역풍을 받는다. 미국에서 해마다 타이레놀 과다 복용으로 인한 간 손상으로 56만 명이 응급실에 실려 가며 그중 약 500명이 사망한다. 특히 간염이 있거나 술을 마신 사람이 타이레놀을 먹으면 간 송상 위험성이 더욱 크다. 결국 존슨앤존슨사는 타이레놀의 부작용을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리지 않은 대가로 사망자 가족에게 엄청난 액수의 피해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매출은 피해 보상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여 존슨앤존슨은 타이레놀 포장에 간 부작용 사례를 표시하지 않았다. 회사의 주장은 사망 위험을 표시해놓으면 자살률이 늘어난다는 말 안 되는 이유를 댔지만 미국 FDA는 2009년 타이레놀 포장에 ‘과다 복용하면 간 손상 위험이 있다’는 글을 표기하도록 했다.
과학 팁 한가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인플루엔자로 알려진 것은 1918〜1819년 동안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이다. 전 세계에 걸쳐 무려 5억 명 가량이 스페인독감에 걸렸고 약 5,000만 명이 사망했다. 독감으로 5,0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겠지만 스페인 독감으로 수모아 섬에서는 2달 사이에 인구의 22%인 38,000명이 죽었다.
이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므로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언론 검열이 심해 사람들은 독감이 유행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중립국이던 스페인에서 한 신문이 1918년 3월 ‘이상한 질병이 퍼지고 있는데 아직 마드리드에는 사망자가 없다’는 기사를 처음으로 내보내고 계속해서 독감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이로 인해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스페인 독감은 20세기 최대의 인류 재앙으로 유럽을 휩쓸었던 중세시대의 페스트에 버금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그리 주목받지 못해 잊혀진 유행병이라고 불리는데 2020년 등장한 코로나19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
여기에서 스페인 독감은 일반 독감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치사율이 일반 독감은 0.1%에 불과한데 스페인독감의 치사율을 20%로 일반 독감에 비해 무려 200배나 상회한다. 또한 일반 독감은 5세 미만 또는 65세 이상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사망률이 높지만 스페인 독감은 청년기인 25〜35세 젊은이들의 사망률이 높았다. 특히 코로나19가 노령층에 사망자가 많은 점과도 다르다.
특히 아침까지 별다른 이상 없이 멀쩡했던 사람이 저녁에 갑자기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 스페인 독감에 걸린 사람들의 코와 위 점막에 출혈 흔적이 있고 폐에 출혈과 부종이 보이는데 이런 증상은 아스피린 출혈 부작용과 유사하다. 스페인 독감 환자가 염증을 없애는 아스피린을 먹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져 폐렴이 급격히 악화되어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스피린이 정말로 스페인 독감 환자에게 치명적인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노벨상 추천문>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육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체액, 즉 심장으로부터의 혈액, 두뇌로부터의 가래, 간과 비장에서 생성되는 노란색과 까만색의 담즙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 네 가지 체액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히포크라테스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병에 맞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000년 전에 정의된 이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인체를 구성하는 복잡한 시스템은 조직뿐 아니라 개개의 세포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직과 세포가 상호작용하면서 매순간 활동합니다. 그러나 이 균형이 깨지면 건강은 서서히 약화됩니다. 따라서 이 균형을 유지하고, 신체 내외에 존재하는 스트레스 요인들을 제거하고 우리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우리는 선천적으로 몇 가지 조절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프로스타글란딘, 그리고 이와 관련된 활성 물질들이 바로 이 조절 시스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에 울프 폰 오일러 박사님은 이 연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는 동물이나 인간의 정액에 포함된 어떤 물질이 혈관과 근육섬유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폰 오일러 박사님은 새로 발견된 이 물질을 프로스타글란딘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이 호르몬과 신호 물질들의 흥미로운 세계를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수네 베리스트룀 박사님이 1950년대 후반에 프로스타글란딘을 처음으로 분리한 후, 그 구조가 밝혀지면서 프로스타글란딘 연구는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생물학적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몇 가지 생명 현상을 조절하며 신체의 불균형 현상들을 억제하였습니다. 우리 몸 대부분의 세포들은 이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물질들을 최소한 한 개 이상 생성합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이 시스템의 중요성과 더불어 보편성을 알 수 있습니다. 존 베인 박사님은 이를 방어 호르몬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이 시스템의 작용기전에 관해 두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혈액은 혈관을 따라 끊임없이 흐르는 반면, 혈액세포는 혈액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혈액 덩어리를 만들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혈관에서는 혈액 덩어리의 생성을 막기 위해, 혈관 벽과 혈액세포에서 프로스타글란딘 시스템에 속하는 물질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물질들은 혈액이 멈추지 않고 순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만일 이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다면 혈액 응고를 막을 수 없습니다. 백혈구 세포는 감염에 대항하여 방어벽을 만듭니다. 그리고 염증 조직에서 해로운 침입자를 공격하며, 가능하다면 파괴시켜 버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장 최근에 벵트 사무엘손 박사님이 발견한 류코트리엔이라는 물질은 백혈구 세포를 상처 부위로 유인하고 혈관 벽에 결합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물질들은 그야말로 방어 호르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적당히 조절되어야 합니다. 알레르기 반응은 프로스타글란딘과 류코트리엔이 과다하게 생성되면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들이 과다 생성되면 모든 알레르기 증상의 원인이 됩니다. 예를 들면 천식을 앓는 사람이 예민한 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물질에 노출되면 허파에서 다량의 류코트리엔이 생성되어 천식 증세가 심해지게 됩니다.
이 시스템의 형성 과정과 기능에 대한 연구로 우리 몸이 어떻게 건강한 체액을 유지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알레르기, 염증, 혈관 질환처럼 만연되어 있는 몇몇 질병의 기전도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지식은 우리에게 질병을 미리 알려 예방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프로스타글란딘에 관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 연구의 선두에서 그 발전을 촉진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베리스트룀 박사님, 사무엘손 박사님, 그리고 베인 박사님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수네 베리스트룀 박사님은 프로스타글란딘을 최초로 분리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한 개의 물질로서가 아닌 전체 시스템으로서 이 물질의 기능을 밝힘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포화지방산이 이들 시스템의 모체가 된다는 것도 발견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지방산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베리스트룀 박사님의 제자인 벵트 사무엘손 박사님은 1960년대부터 이 분야에서 활약하며 중요한 화학적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는 이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물질들의 구조를 규명하였습니다. 이 복잡한 시스템에 대한 그의 설명은 누구보다도 완벽했으며 그 구성 요소들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존 베인 박사님의 업적 중에서는 프로스타시클린의 발견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물질 역시 이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외에도 아세틸살리실산이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통증 완화 및 해열 작용을 한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우리에게 이 물질은 현재 ‘아스피린’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베인 박사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이 약품의 신체 내 작용 기전을 자세히 설명하였으며 이 내용은 프로스타글란딘 시스템의 기능이 필요한 연구자들에게는 중요한 연구 수단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과학적인 업적은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프로스타글란딘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 업적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이 사회 전체에 얼마나 커다란 기여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로 기억될 것입니다.
베리스트룀 박사님, 사무엘손 박사님, 그리고 베인 박사님.
세 분이 발견한 생물학적 시스템은 정상적인 생명 현상뿐 아니라 몇 가지 질병을 나타내는 불균형 현상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사님들의 다양한 시도로 이 시스템의 구조와 생물학적 성질, 그리고 기본적인 기능 등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동시에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하는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습니다.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와 노벨 위원회를 대신하여 세 분께 따뜻한 축하의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국왕 전하로부터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
「민주주의 앞당긴 염료의 역사」, 이덕환, 과학동아, 1999년 8월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이야기』, 페니 르 쿠터, 사이언스북스, 2007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정진호, 푸른숲,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