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아르테미스 신전 10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10)

youtu.be/ecKVlYRL2qs 신에페수스의 압권은 아고라 및 켈수스 도서관이다.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아고라는 110 x 110미터의 야외 시장을 뜻한다. 3세기 초에 카라칼라 황제에 의해 복구되었지만 4세기에 있었던 지진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도시에서 가장 큰 상업지다. 상점들을 주랑을 따라 배치되었는데 상점들의 뒤쪽에 둥근 원통형의 지붕으로 된 창고가 있었다. 켈수스 도서관은 에페소스의 총독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킬라가 아버지 켈수스를 추모하기 위해 건설한 것으로 높이 16미터, 너비가 21미터다. 이 건물은 2세기에 건설되었고 260년에 있었던 화재로 파괴되었으나 정면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9 단 연단에 자리잡은 인상적인 도서관 외관은 부조 조각으로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9)

youtu.be/7GERypl7_6A 이러한 운반 방식이 고대인들에 얼마나 큰 인상을 주었던지 곧바로 전설에 전설이 쌓여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나 메타지네스의 아이디어는 그 후에 건설되는 다른 건축물에는 다시 사용되지 않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다른 건축물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는 것이다. 신전에 사용된 돌을 선정하는데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전에 사용되는 돌들은 견고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공급이 원활해야 했다. 비트뤼브가 신전에 사용된 돌을 선정하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에페소스 인들이 아르테미스(다이아나) 신전을 건설하려고 할 때 그들은 수많은 대리석 산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정할 것인가로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어느 날 지방의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8)

youtu.be/iZOoTr5lSEk 대영박물관에서 자랑하는 간판 유물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이집트 관의 로제타석과 람세스 2세의 조각상, 파르테논 전시관, 마우솔레움 특별전시관 등이다. 그러나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가장 돋보이게 만들어 준 높이 182센티미터의 신전 기둥의 하부 조각은 만인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스코파스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36개 기둥의 하나인데 크기에 비해 정교한 조각은 비록 재질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석굴암의 조각상들을 연상케 한다. 비극적으로 죽은 남자인 타나토스 옆에 슬퍼하는 여자가 서 있으며 전령인 헤르메스가 보이는데 전시실의 중요성을 모르는 관객들도 거대한 조각상에 놀라 반드시 멈췄다가 지나가곤 하는데 끄새의 생각으로는 이 기둥 하나만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7)

youtu.be/Hi4TLmtw9UQ 초기 기독교에 큰 역할을 한 요한과 바울이 에페소스를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와 큰 연관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에페소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망했다는 사실도 에페소스 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에페소스가 중요한 장소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교황을 선출하는 회의를 에페소스에서 소집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얻었다.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에페소스의 인근은 기독교 성지로 다시 태어났고 주민들은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인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앙 즉 이교도인들이 믿었던 악마 아르테미스를 이 지상에서 영원히 쫓아낼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그때까지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6)

youtu.be/w6kpegFtiKk 아르테미스 신전의 웅장함에 감탄한 알렉산더는 자신의 이름으로 신전을 세운다면 모든 비용을 내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에페소스인들은 신전에서 두 명의 신에게 봉헌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일부 학자들은 신전이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거절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신전의 상당 부분이 알렉산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알렉산더의 건축가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 디노크라테스가 신전의 작업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디노크라테스는 ‘알렉산더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들 위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지만 이것은 역으로 보면 신전의 건축에 알렉산더 대왕의 입김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알렉산더가 에페소스에 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4)

youtu.be/syj-3XdatQE 그리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와의 장렬한 전투를 담은 「300」에 이어 나온 후속작이 2014년에 개봉된 「300: 제국의 부활」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와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시아 여왕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영화다. 그리스를 침공한 다리우스 1세가 실패하자 그리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아르테미시아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역시 복수심에 불타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와 함께 또 다시 그리스를 침공하였으나 결국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을 담은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하여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는데 한국에서도 1편에서 292만 명, 2편에서 163만 명으로 준수한 관객을 동원했다고 평가되었다. 물론 영화 속성상 페..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5)

youtu.be/AjuZo5ExfrM 「300: 제국의 부활」이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실제 벌였던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하므로 영화라 하여 모든 면을 포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300: 제국의 부활」에 등장하는 진실 6가지를 네티즌 블루팩(BluePack)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① 레오니다스 왕의 시신 훼손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의 주검을 찾아 참수하고, 몸은 십자가에 매달 것을 명한다. 이는 고대 시대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당시 페르시아는 대체로 전투 중에 죽은 사자에 관대했다. 그런데도 크세르크세스가 스파르타의 왕인 레오니다스의 시신을 훼손한 것은 당시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인들에 대한 적의가 대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② 페..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3)

youtu.be/TOjqxJh-R9Y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당대에 가장 유명한 신전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당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인간들의 최후의 피난처(Asylum)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최강국이었던 페르시아인들이 도시를 공격하자 주민들은 신전으로 달려갔다. 예로부터 에페소스인들은 신전의 기둥에 자신을 매고 ‘성역이다‘라고 외치기만 하면 모두 구원될 수 있었다. 놀랍게도 페르시아인들도 이 여신을 존경하여 신전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았다. 즉 아르테미스 신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에페소스에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인간들의 최후의 피난처(Asylum)로 규정한 법이 있었는데 ..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2)

youtu.be/wglortXVLz0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 시대에 가장 큰 신전이었음은 물론 대리석으로 만든 최초의 신전이기도 하다. 높이 18미터의 기둥을 127개를 사용한 길이 120미터, 폭 60미터의 대형 건축물이다. 현대인에게 위압감을 주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길이가 69.50미터, 폭 30.80미터, 높이 10미터 정도로 면적만 볼 때 파르테논 신전보다 거의 4배나 되는 규모이다. 또한 기둥도 127개를 사용하여 파르테논의 58개에 비해 2배가 더 많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전의 자재는 가장 아름답고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은 네 방향에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1)

youtu.be/H0MX5PqQ8dM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은 매우 오래된 고대 문명 중에 하나인데 언제 초기 정착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기원전 2000년 전에 에페소스에 도시가 존재했음은 확실하다. 자료에 의하면 이곳에 이오니아인 즉 에게인들이 이주한 것은 기원전 1200〜1050년 사이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주하기 전에 아나톨리아에는 렐레지안, 펠라스지안 그리고 카리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에게인은 상당히 많은 이름으로 나뉘어졌는데 이올리아인들은 트로이아드에 정착했으며 도리아인들은 할리카르나소소, 그리고 이오니아인들은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에 정착했다. 자료에 의하면 세계7대불가사의인 에페스(에페소스)는 아테네 왕 코드루스의 아들인 안드로클로스가 건설했다고 한다. 그는 신탁이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