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
첨성대의 효용도가 제기되자 강력하게 주장된 것 중 하나는 첨성대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된 제단이라는 설명이다. 이 주장은 일견 이해하기 쉬운 면이 있지만 곧바로 반론에 부딪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일월제 즉 해와 달에 대한 제사를 본피유촌(本彼遊村)에서 지냈고 별에 대한 제사인 영성제를 영조사 남쪽에서 지냈다고 했다. 말하자면 첨성대가 아닌 딴 곳에서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냈으므로 당연히 첨성대는 제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태양빛에 의해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 길이를 재서 태양의 고도를 알아내는 규표(圭表)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규표설은 조위(曺偉, 1454〜1503)의 칠언율시에 나온다. 그는 첨성대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규(圭)를 세워 그늘을 재고 해와 달을 관찰한다. 대 위에 올라가 구름을 보며 별을 가지고 점을 친다.’
그러나 만약 첨성대가 규표 역할을 위해 만들었다면 그런 외
형으로 굳이 만들리는 없다는 반론도 즉각 나왔다. 사실 세종대왕의 영릉에 규표가 복원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면 첨성대가 규표 용도로 만들었다는 주장에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조위가 이런 시를 쓴 것은 사실이다.
첨성대가 남다른 것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무거운 돌(한 개의 무게는 평균 357킬로그램)을 쌓은 중력식 구조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높이는 9.108미터, 밑지름 4.93미터, 윗지름 2.85미터이며 전체 무게는 264톤이다. 특히 첨성대가 하늘과 연계될 수 있는 부분은 첨성대 중앙에 위치한 창문이 정남향으로 춘분과 추분에 태양이 남중할 때 광선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친다는 점이다.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완전히 광선이 사라지므로 춘하추동의 분점(分点)과 지점(至点) 측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투른 아이디어로 첨성대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천문관측의 증거>
첨성대의 특징적인 모습 때문에 남다른 논쟁이 일어난것은 사실인데 남천우 박사는 첨성대가 천문관측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첨성대가 제단으로는 불편한 것은 물론 건조 양식이 『주비산경』과 연관된다는 설명은 도형이나 수치에 대한 임의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문중양 박사는 첨성대가 외형으로만 보면 땅 위에 만들어 세워 놓은 우물과 같다며 신라인들에게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풍요의 상징으로 영성단과 같은 제단의 기능도 함께 가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 박사는 고대 사회에서 ‘천문을 묻는’ 행위와 현대의 천문학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활동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 천문학에서 천문 관측은 객관적인 대상물로서의 천체의 운행과 변화하는 현상들을 관측하여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천문을 묻는’ 행위란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을 의미했다. 고대 사회에서 ‘천문’이란 현대 천문학에서와 같이 ‘객관적인 천체 현상’과는 다르게 ‘하늘의 뜻’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천문을 묻는’ 행위는 피상적으로 천문 현상을 관측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천문현상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삼국유사』 왕력(王曆)편 <내물 마립간> 조의 말미에는 내물왕의 왕릉 위치를 이야기하면서 '능이 점성대 서남쪽에 있다'고 서술한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내물왕릉과 첨성대의 위치를 비교해 보면 삼국유사에 언급된 '점성대'와 이 글의 첨성대가 동일하다. 그런데 '점'은 '점칠 점(占)'이므로 이것을 점성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중양 박사는 고대인들에게는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궁극적으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천변재이(天變災異)로부터 무사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이므로 결국 ‘천문을 묻는’ 행위는 거시적으로 지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하늘 신에게 인간들의 바람을 기원하는 제례 행위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추정했다. 무언가의 의식을 치루기 위해 제주가 정상으로 올라가 의식을 치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첨성대가 제단의 기능을 지니고, 불교적‧토속 신앙적 염원을 담은 조영물이었다고 해서 천문대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첨성대에 대한 논쟁은 계속 이어져 일본천문학자 야부우치는 천문대설을 지지했고 나일성은 첨성대가 충분히 관측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천문대임을 주장했으며 건축사가 신영훈은 점성과 환구의 몫을 한 시설물로 추정했다. 반면에 박성래 교수는 1993년에 『한국인의 과학 정신』에서 첨성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다소 정리하여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1996년 9월에 열린 제9회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 회의에 참석한 학자들도 첨성대가 훌륭한 고대 천문대라고 대체로 의견을 모았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김봉규 박사도 첨성대의 모습이 조선시대의 천문대인 관천대와 흡사하다는 것도 첨성대가 천문대였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크기도, 높이도 둘 다 비슷하다. 김봉규 박사는 첨성대가 제단이 아니란 것은 『삼국사기』를 보아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첨성대를 건축학적으로 보면 유연하고 아름다운 병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세계의 많은 석조 구조물 중에서 이러한 형태를 지닌 구조물은 유례가 없으며, 이것이 심미적으로 아름답고 균형 잡힌 형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도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원통부의 완만한 반 곡선 형태를 채택하였고 여기에 기능에 알맞은 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기단에서부터 둘레 약 15.5미터인 원(제1단)을 만들면서 거의 같은 두께의 돌을 12단까지 쌓아 완만한 곡선을 만들고, 13에서 15단까지의 사이에 네모난 구멍을 만들었다. 이 네모난 구멍(약 95x95센티미터)은 정남이 아니라 약간 서쪽을 향하는데 이 구멍은 관측자들이 첨성대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한 출입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3단을 더 쌓아 올린 다음 제 19단에는 네 방향으로 밖을 향해 튀어나온 돌이 있다. 건축 구조상 안전을 위한 조치인지 아니면 관측 기기를 설치하는 데 사용되는 부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같이 돌출된 돌은 제25단과 26단에도 있다. 이것은 마지막 단인 제27단의 높이에 맞는 바닥돌을 얹어 놓기 위한 지지대(대들보)인 동시에 몸통의 돌들이 이완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몸통은 기단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가늘어지다가 제19단에 이르면 거의 같은 둘레를 지키면서 21단에서 23단까지는 직선과 직선을 연결하는 이변곡선(移邊曲線), 24단에서 27단까지는 수직직선(垂直直線)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내물림 구조 자체는 아치구조법이 사용되기 전에 통용된 구조법이다. 마지막 제27단의 둘레는 약 8.95미터이며 총 362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이는 각 단에 평균 13.4개의 돌이 놓인 셈이 된다.
여기에 남창구 양 옆의 문설주 2개, 제26단의 정자석 위에 올린 판석 1개가 추가되어 원통형몸통을 이루고 있다. 이로써 원통형몸통을 이루는 돌의 개수를 모두 합하면, 27개 단의 몸통에서 362개, 문설주 2개, 판석 1개로 신기하게도 1년의 날수에 해당하는 365개가 된다.
김장훈 박사는 원통형몸통을 이루는 돌의 개수에 제19, 20, 25, 26단의 내부 정자석 8개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내부 정자석이 원통형몸통 자체를 직접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몸통 속을 통하여 오르내리는 수단을 제공하는 보조재나 구조적 안정을 제공하는 보강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여 원통형몸통을 구성하는 돌의 개수로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몸통 위에 눕혀 놓은 2단으로 된 긴 돌기둥이 정(井)자 모양으로 상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 2단으로 눕힌 돌기둥은 서로 벌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밑에 있는 몸통의 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무겁게 누르는 역할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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