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노벨상이 만든 세상/판구조론, 베게너

아틀란티스 대륙과 판구조론, 베게너(2)

Que sais 2020. 9. 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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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무리아 대륙의 실존설을 없앤 판구조론

위의 설명들은 대륙이 이동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딱딱하기 짝이 없는 지구의 대륙이 이동한다는 생각을 떠 올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구본을 보기만 해도 다소 유추할 수 있다. 아프리카가 남아메리카와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 이러한 눈썰미를 가진 사람인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etelius, 15271596)1596 대서양의 양쪽이 찢어졌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가 당대에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에 반하는 내용을 이야기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고 경시하기 마련이다. 학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과거의 지식에 반하는 새로운 이론을 처음으로 주장할 때 대부분의 학자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유명한 다윈의 진화론도 마찬가지이다.

학자들로부터 당대에 가장 경원 받은 이론이라면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Lother Wegener, 18801930)대륙이동설도 빠지지 않는다.

 

대륙이동설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내용을 포함하므로 매우 복잡한 이론이라 볼 수 있지만 이 이론의 시작은 어린아이들도 관찰할 수 있는 관찰에서 비롯되었다. 지구의(地球儀)를 살펴보면 누구나 곧바로 마주보는 대륙들의 끝 부분의 윤곽조각 그림을 맞추는 식으로 맞추면 꼭 맞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지질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지구 표면을 형성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전 세계에 걸친 재앙이 급격하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켰고 현재의 지형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17세기의 박물학자 안토니오 스니데 펠레그리니(Antonio Snider-Pellegrini)노아의 홍수로 지구 내부에 있던 물질들이 밀려 올라오자 대륙이 쪼개져 양족으로 밀려나면서 대서양이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내 놓았다.

1756년 테오도르 릴리엔탈(Theodor Christoph Lilienthal)이란 신학자성경에 근거하여 대륙의 해안선이 유사한 것은 지구의 표면이 노아의 홍수 때 짖어졌음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렸다.

지구 내부를 이용해서 지구 표면의 현상을 설명하려는 학자들도 있었다. 19세기 영국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는 지구 내부에 꺼지지 않는 이 있어 이 불이 영구적인 열원의 역할을 하며 산화를 끊임없이 일으킨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무엇 때문에 지구 속에 있는 불이 꺼지지 않는지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데이비가 대답하지 못했던 문제는 19세기 말방사능이 발견되면서 풀렸다. 우라늄, 토륨, 방사성 칼륨과 같은 방사성 원소가 여러 종류의 바위에서 발견되고, 방사성 원소가 다른 원소로 서서히 붕괴하면서 열을 내놓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20세기가 시작되자 성경에 씌어진 가설과 기존에 제시되던 지각변동의 이론들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혜성같이 나타난 것이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이 제기한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다.

동일과정설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작용하고 있는 힘은 지난 세월에도 같은 크기로 지속되었으며 이 으로 과거에 일어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가설도 화석 형태의 과학적 증거가 나타나자 의심받기 시작했다. 지질학자들이 극지방의 만년설에서 카리브해 제도와 같은 적도 지방에서만 자라는 식물군과 동물군의 화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908에는 미국의 과학자 프랭크 테일러(FRank Bursley Taylor)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1억 년 전인 백악기 무렵에 달이 지구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서 지구의 중력장에 붙잡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조수의 힘으로 대륙이 적도 쪽으로 글려왔으며, 이 과정에서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거대한 산맥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가설로 미국의 하워드 베이커(Howard B. Baker) 수억 년 전 금성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지구의 암석을 끌어 당겨서 달이 생겼고 이때 대륙이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육교보다 대륙이 움직여야 설명 가능>

당시의 과학적 정설을 뒤집고 지각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방법을 최초로 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인 사람이 베게너. 그런데 그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비과학자로 거명될 만큼 당대에 극심한 비난을 받았다.

베게너1880111일 베를린에서 목사 리하르트 베게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이는 그가 극한 환경을 탐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연과학 중에서도 천문학에 남다른 흥미를 보였다. 그 당시의 천문학이란 수학의 도움을 받아 천체의 구조나 물리학적 성질을 해명하는 것이다.

241904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자 당시로서는 새로운 과학 분야인 기상학 분야에 눈을 돌렸다. 마침 베게너는 형인 쿠르트 베게너가 근무하던 항공연구소에 들어가 형의 조수가 되었는데 이 연구소에서는 기구를 사용하여 고층 기상을 연구하고 있었다. 1906에 형과 함께 최초로 기구를 이용해 북극 대기를 관측하여 용감한 연구원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이 당시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베게너 형제1906년 고든 베넷 비행기구 대회에 참가하여 독일과 덴마크를 가로지르고 카테갓 해협(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해협)을 건너서 다시 독일로 돌아오는 52시간 기구비행을 했는데 그것은 당시의 최장 체공 기록35시간을 크게 웃도는 세계기록이었다.

같은 해 덴마크 탐험대의 그린란드 북동부를 조사하는 일원으로 참가하였고 북위 77에 있는 비스마르크곷의 기지에서 2년간 근무했다.

그곳에서 베게너동식물과 지질, 빙하, 기상 등을 조사했다. 베게너는 후에 극지의 얼음이 분열하여 빙산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초대륙의 분열과 대륙의 이동이라는 그의 이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1909년 마르부르크대학의 강사가 되어 천문학과 기상학을 가르쳤는데 그의 나이 311911은 그에게 운명의 해였다. 마르부르그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브라질과 아프리카 사이에 옛날에 육교가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스크레터의 논문을 발견한 것이다. 두 대륙이 예전에는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육교설은 그에게 놀라운 충격을 주었다. 그는 곧바로 반문했다. 대체 어떤 육교란 말인가?

베게너육교가 아니라 대륙이 한 때 붙어있다 떨어졌다면 보다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확신한 후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마치 찢어진 신문지의 가장자리를 맞춰놓고 인쇄된 부분이 부드럽게 만나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이것들이 실제로 일치한다면 이 두 곳이 실제로 이런 식으로 붙어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곧바로 그의 가설을 지지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든스네일(garden snail)의 일종인 헬릭스 포마티아(Helix pomatia) 달팽이유럽 서부와 북아메리카 동부에만 생존한다. 상식적으로 지렁이나 달팽이 무리들이 몇 천 킬로미터나 되는 대서양을 건너 대안(對岸)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생물의 분포를 감안하면 대서양은 예전에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단열(斷裂)이 생겨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두 대륙이 붙어 있다는 가설에 대한 증거는 지렁이나 달팽이뿐만 아니다. 지층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고생물의 화석들도 이러한 교류가 가능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글로솝테리스 포자고사리27천만 년 전에 현재의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서식했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 제도에서는 양치류나 소철처럼 열대지방에서 사는 식물의 화석이 발견되었고 남극에서 석탄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편 남아프리카에서는 모래, 자갈, 둥근돌, 점토가 뒤섞여 나왔는데 이는 빙하가 녹은 흔적으로 이 지역이 한때 베게너가 살던 시절보다 훨씬 추웠다는 것을 암시했다. 아이오와, 텍사스, 캔사스주의 거대한 석고 퇴적층25천만 년 전인 페름기에 이 지역이 아주 덥고 건조한 기후였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캔자스나 유럽같이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소금퇴적층에서도 모두 같은 결론을 얻었다.

뭍과 뭍을 잇는 다리라는 뜻에서 육교(陸橋, land bridge)라고 부른다. 더구나 베게너는 대륙이 지구의 둘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지구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비과학자>

1912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열린 독일지질학회에서 베게너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여 대륙의 위치이동이란 용어로 폭탄을 터뜨렸다. 이 용어는 추후에 대륙이동설로 변경된다.

베게너는 하나의 판게아(Pangaea, 그리스어로 모든 육지라는 뜻)라는 초대륙이 있었기 때문에 식물과 동물들이 서로 섞일 수 있었고 그 후에 대륙이 분열하여 오늘과 같은 각 대륙이 생겼다고 했다.

베게너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이론뒷받침할 증거들을 제시했으나 그의 말을 들은 학자들은 냉담했다.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반발이 어찌나 격렬했는지 그의 편에 설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조차 자신의 경력을 망칠까 두려워 몸을 사렸다. 그가 얼마나 혹독한 비난을 받았는지는 다음과 같은 비판자의 글로도 알 수 있다.

 

우리 지구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비약적이고도 이상하고 구차스런 사실로 묶여진 것이 지나지 않는다. 이 가설은 연구자가 아니라 종교 맹신자가 주장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유명한 고생물학자 베리베게너의 가설을 보자마자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그의 가설은 과학적이 아니다. 가설에 반대되는 대부분의 사실은 무시하고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골라서 쓰고 있으며 주관적인 생각객관적 현실인 것처럼 다루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그의 설명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사실 그의 논문을 과학으로 다루는 것조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명한 미국의 지질학자 베일리 윌리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것을 더 이상 논의하는 것은 문헌을 어지럽히고 학생들의 마음을 미혹하게 할 뿐이다. 베게너의 주장퀴리 이전의 물리학만큼 낡아빠진 것이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비판도 나왔다.

 

이 가설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지지하는 유서 갚은 생각에 대해 털끝만큼의 존경심도 보이지 않는다. 이 가설은 도전적이고 화려한 모양새로 보통 사람들이나 과학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의 기본법칙에 합치하는 가설이라면 상상력에 호소해서는 안 되며 건전한 기초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베게너에게 가장 강력한 반론을 제기한 사람들은 지구물리학자들이었다. 베게너는 대륙이 시알(sial)'이라는 암석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물질들은 밀도는 더 높지만 부드러운 하층인 시마(sima)' 층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마시알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녹기시작하기 때문에(유체 상태를 의미) 시마부드러운 상태라고 가정했다.

그런데 학자들이 실험한 결과들은 시마의 녹는점이 그가 추측한 것과 모순이 되었다. 더구나 영국의 저명한 제프리경지진파를 관측한 결과 대양 밑은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딱딱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반박했다. 어떻게 대륙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베게너과학적인 상식이 없었다.

그러므로 심지어는 전문가도 아닌 기상학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심한 비아냥까지 들은 것은 물론 그가 지질학에 대해 논문을 제출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천문학자이자 기상학자였던 베게너지구과학자들에게 아웃사이더로 비쳤기 때문이다. 사실 기상학자였던 그의 장인조차 그에게 조언을 했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다른 길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의 논문베게너의 기대와는 달리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베게너도 자신의 이론을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행운이라면 행운이 그에게 따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 기상예보장교로 복무하다 머리에 탄환을 맞은 것이다.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심장의 결함 때문에 전쟁이 끝나기까지 각지의 측후소에서 기상 관계 업무에 종사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대륙이동설의 이론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1915에도 그에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행운이 다가갔다. 대륙이동설이 학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지 못하자 자신의 이론을 논문이 아니라 대륙과 대양의 기원이란 책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그의 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이 많은 비판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책을 비판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논지를 펼쳤다.

 

지구의 초기 상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지구에 관련된 모든 분야의 과학적 증거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아직도 이 문제는 이 모든 증거를 통합해서 바라볼 때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지구에 관련된 모든 과학 분야에서 제공되는 증거를 통합해야만 진실을 알 수 있다. 알려진 모든 사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또 우리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발견하면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이론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진실이든 아니든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학자들도 그의 책에 있는 내용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베게너 시대의 지질학자들은 3억 년 전열대 기후에서 석탄이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북극권에서 상당히 뒤쪽에 위치한 스피츠베르겐의 냉동된 섬들에 묻혀 있는 대량의 석탄들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가?

그는 3억 년 전 지구판게아라고 하는 거대한 하나의 대륙이었으나 점차 균열을 일으켜 이동함으로써 오늘날의 대륙들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의 대륙들이 당시에 어떤 모양으로 붙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대륙은 연달아 분리되었다.

남극대륙,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아프리카가 약 15천만 년 전쥐라기에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의 백악기에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얼음덩이가 갈라지듯 분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스칸디나비아, 그린란드, 캐나다100만 년 전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에 분리되었다.

또한 베게너아이슬란드나 아조레스 군도를 이루고 있는 대서양 중앙 해령은 지금은 대서양 가장자리에 있는 양 대륙이 찢어질 때 남은 물질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캥거루와 주머니쥐 같은 유대류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에만 살고 있다는 사실도 베게너오스트레일리아를 멀리 떨어진 남아메리카와 연결 짓는 근거가 되었다.

베게너는 옛 시대의 기후로부터 대륙의 이동을 증명하는 사실을 찾아내는 동시에 북극이나 남극도 또한 이동한 것도 발견했다. 또한 그는 오래된 지질 시대의 생물을 조사하여 고생물의 분포로부터도 대륙 이동설을 증명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가든스네일이라는 달팽이나 어떤 종의 지렁이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대서양 기슭에만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레무리아 원숭이인도 반도, 실론섬에서 마다가스카르섬, 아프리카 대륙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데 이것은 베게너의 가설에 의하면 바다로 떨어져있는데도 여러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을 말끔하게 설명할 수 있다.

 

베게너의 결론은 명쾌했다. 지구의 대륙이 거대한 바지선과 같다는 것이다.

배에 을 실으면 바지선은 가라앉고 배 아래에 있던 물은 옆으로 밀려 올라와서 바지선이 좀 더 잠기게 된다. 바지선에서 짐을 내리면 바지선무게가 감소한 만큼 더 큰 부력을 받아 떠오르도록 물이 다시 이동한다. 베게너해양저는 지각보다 한 층 아래의 것으로 대륙이 그 위에 떠 있는이라고 믿었다. 이 층을 이루는 물질은 마치 빙산밀도가 더 큰 물에 떠 있듯이 대륙의 암석보다 밀도가 높다고 생각했다.

이는 해양저대륙과는 다른 재료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대륙을 잇는 육교가 있었더라면 이것은 이제 해양저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해양저의 밀도와 중력을 측정하거나 충분히 깊은 곳의 암석 견본을 채취할 방법이 없었다.

베게너의 가설의 장점산의 융기와 침강에 관련된 오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작 뉴턴은 지구 전체가 쪼그라들면서 산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구 표면이 굳기 시작하는 때, 지구 전체가 완전히 고정된 형태로 수축되기 전에 산이 지각에서 돌출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지구의 내부는 한때 불지옥과 같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냉각되었으며 이런 냉각으로 인해 지구의 표면수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지구가 상당한 수준까지 냉각된 적이 없음을 발견했다. 이는 베퀴렐과 큐리 부부에 의해 방사성물질이 발견되어 더 이상 지구냉각설이 설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게너는 과거에 대륙 지괴가 서서히 움직이다가 어느 지점에서 서로 충돌했다는 대륙이동설산맥 형성 등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판구조론은 판들의 가장자리끼리 맞닿는 곳에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 개의 판 중 하나가 맨틀 아래침강해 내려갈 수도 있고 다른 쪽 판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은 지진이나 젊은 산맥들이 생성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줄 수 있다. 특히 두 판이 만나는 곳에서는 마찰이 일어나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아래층의 암석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이다. 지구 내부의 큰 압력마그마를 위로 분출시키면서 화산이 분화하고 용암이 흘러나오는 것도 말끔하게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