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노벨상이 만든 세상/판구조론, 베게너

아틀란티스 대륙과 판구조론, 베게너(3)

Que sais 2020. 9.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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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연구>

베게너가 생각한 초대륙 판게아는 거대한 두 대륙으로 설명된다.

남쪽에 위치하는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남극,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인도 반도를 더한 것을 곤드와나 대륙이라고 불렀고, 북쪽에 위치하는 아메리카, 유라시아 대륙로라시아 대륙으로 명명했다. 로라시아 대륙과 곤드와나 대륙 사이에는 지중해의 전신인 테티스해라는 내해가 있었다. 그리고 초대륙 판게아는 옛 태평양이라는 단 하나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베게너는 옛 시대의 기후로부터 대륙의 이동을 증명하는 사실을 찾아내는 동시에 북극이나 남극도 또한 이동한 것도 발견했다. 또한 그는 오래된 지질 시대의 생물을 조사하여 고생물의 분포로부터도 대륙 이동설을 증명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지질학자이던 남아프리카의 알렉산더 뒤투아(Alexander du Tois, 18781948)남아프리카의 고생대, 중생대 지질남아메리카 동부의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대륙이동설을 지지했다. 베게너는 사망하기 직전에 그들 증거들이 자신의 이론을 지지해준다고 재빨리 첨부했다.

이런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게너의 야심적인 가설도 곧바로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1923년 영국왕립지리학회에서는 베게너의 보완된 주장에 또 다시 냉소를 보냈다. 베게너지질학의 자도 모르는 맹인으로 매도하는 것은 물론 퍼즐에서 모양을 임의대로 바꾸어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다고 비난했다.

지질학자들이 베게너의 주장을 매도한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우선 대륙 이동설에 대해 베게너가 제시한 가장 그럴 듯한 증거들은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해안 지역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곳은 서구와 북미의 학자들이 가본 적이 없었으므로 양자 사이에 놀랄 만한 일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둘째 지질학자들은 지각맨틀과의 경계선까지 하나의 연속적인 고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불어 대륙 지각해양 지각보다 더 두껍기 때문에 베게너의 이론처럼 대륙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대륙 지각해양 지각에 골을 파면서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거대한 움직임을 야기하는 힘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알지 못했다.

셋째 지진이 일어나는 매커니즘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거대한 지진의 진동이 지구를 종처럼 울리게 한다는 것이다. 지진이 발생한 지 몇 시간 후 지진파가 지구 표면을 따라 지구를 완전히 한 바퀴 돈다. 그러나 그렇게 거대한 힘이 작용해도 육지의 판들은 다른 대륙을 향해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지구를 안정하게 붙들고 있는 힘이라면 그것이 대륙의 이동을 막기에 충분할 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1926년 베게너<미국화석지질학자협회>의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시카고 대학의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가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큼 도전적이다. 그러나 과학의 기본법칙에 합치하는 가설이라면 상상력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기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비난은 계속된다.

 

이러한 이론의 횡행이 가능한 상황에서 지질학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이 그래도 과학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또 다른 교수는 베게너의 방법론에 대해 비판했다.

 

그것은 과학적이지 않으나 시초의 생각,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한 선택적인 문헌 검색, 그 생각에 반대가 되는 대부분의 사실들에 대한 무시, 그리고 결국에는 그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인 사실로 여기게 되는 자기도취적 상태로 종결되는 흔한 경로를 취하고 있다.’

베게너가 학자들로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은 것은 그의 실수에서 기인한다. 학자들이 줄기차게 질문하는 대륙이동의 원동력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게너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마치 쇄빙선얼음판을 쟁기질하면서 뚫고 움직이듯이 대륙지각해양지각을 뚫고 떠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힘이 지구 자전에서 비롯된 지구의 원심력과 달과 태양의 조석력에서 나온다고 설명한 것이 치명상이었다. 해럴드 제프리스베게너의 숫자를 검토하여 조력 등은 대륙을 이동시키고 산맥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힘의 100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다고 발표했다. 또한 대륙지각해양지각을 쟁기질했다면 대륙 자체는 뒤틀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륙을 움직일 정도조석력이라면 지구1년도 못 되 멈추고 말았을 것이라는 계산결과도 나왔다.

베게너가 설명한 숫자가 사실보다 과도했다는 것도 지적거리였다. 예를 들면 그는 북아메리카와 유럽매년 250센티미터씩 멀어지고 있다고 가정했지만 이는 실제 측정된 값의 100나 되는 수치였다.

사실 이 문제는 베게너의 실수라기보다는 당대의 과학기술 수준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베게너에게도 자신의 이론을 정확하게 증명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는 진화론이 태어날 때도 공통적으로 제기된 문제점이었지만 지질학 이론실험실의 실험이나 현장의 관찰만 통해 확인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지질학 등을 토대로 이론을 만들려면 엄청난 시간과 공간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당대의 베게너가 제시한 것은 간접적인 증거뿐이었다.

그러므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아마추어에게는 흥미를 줄 수 있는 가설이었지만 전문가들을 설득시키지 못했으므로 자동적으로 더 이상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베게너의 가설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로널드 옥스버그(Ronald Oxburgh) 경은 남아프리카의 카루 사막에서 아주 넓게 줄무늬가 있는 암석 바닥을 예로 들었다. 이것은 빙하들이 천천히 그 옆을 지나면서 줄무늬를 새길 때 생겨나는 것이다.

 

알프스 산맥과 같이 매우 높은 산맥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열대 지방에도 빙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거대하고 광범위한 얼음판은 열대 지방에 존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질학적 증거는 바로 그러한 것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1928년 에든버러 대학의 지질학 교수 아서 홈스 방사능을 통해 발생하는만으로는 화산 활동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지구 내부열 대류에 의한 흐름이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지구 내부가 일종의 유체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물이 끓고 있는 커다란 주전자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주전자 아래의 불에 의해 발생한 열은 하단부의 물을 위로 올라가게 하는 대류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대륙 이동의 잠재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가설로 베게너는 즉각 이 가설을 자신의 주장을 증빙할 자료로 첨부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지질학자이던 남아프리카의 알렉스 뒤투아(Alexander du Tois, 18781848)남아프리카의 고생대, 중생대 지질남아메리카 동부의 지질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대륙이동설을 지지했다. 베게너가 사망하기 직전에 그들 증거들이 자신의 이론을 지지해준다고 재빨리 첨부했지만 과학자들의 생각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베게너가 학자들로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은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학자들이 줄기차게 질문하는 대륙이동의 원동력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게너는 마치 쇄빙선이 얼음판을 쟁기질하면서 뚫고 움직이듯이 대륙지각해양지각을 뚫고 떠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힘이 지구 자전에서 비롯된 지구의 원심력달과 태양의 조석력에서 나온다고 설명한 것이 치명상이었다. 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대륙이 움직이기에는 원심력과 조석력이 너무 작았고 대륙지각해양지각을 쟁기질했다면 대륙 자체는 뒤틀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륙을 움직일 정도 조석력이라면 지구1년도 못 되 멈추고 말았을 것이라는 계산결과도 나왔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아마추어에게는 흥미를 줄 수 있는 가설이었지만 전문가들을 설득시키지 못했으므로 자동적으로 더 이상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베게너자신의 주장이 학계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받으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론이 결국 승리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장인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기껏해야 옛날 사고방식은 10년을 못 넘길 겁니다.”

 

10 정도면 자신의 이론이 인정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의 가설은 더 이상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데다 그가 탐험도중 사망하자 폐기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대륙이동설 재등장>

베게너 사망한 지 거의 20여 년이 지난 1950년대2차 세계대전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한 개발된 자기력계를 이용한 광범위한 해저 탐사 결과고지자기학이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연구 분야를 등장시켰다. 이 당시의 학자들은 기존의 통설과는 달리 지각판의 구조와 성분이 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양 바닥의 지각판은 두께가 대략 67킬로미터. 대륙 지각판은 사실상 해양지각판 위에 얹혀 있는데 그 평균 두께는 대략 32킬로미터. 두 지각판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해양지각판에는 대륙지각판에 존재하는 화강암층이 없다. 따라서 대륙의 형성은 단순히 육괴(陸塊)의 상승과 하강으로만 볼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53년 중앙 해령 사이에서 발견된 열극(해저산맥 사이로 기다랗게 벌어진 틈새)을 바탕으로 미국 프린스턴대학 해리 헤스(Harry H. Hess) 교수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창고 속에서 끄집어냈다. 현대적인 지형측정법지구 중심부 샘플을 조사한 결과 지각은 종래와는 달리 매우 동적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그는 네덜란드의 지구물리학자 안드리스 베닝 마이네츠(F. Andries Vening Meinesz)와 함께 바다 밑의 땅을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특히 마이네츠베게너의 주장을 말도 안된다는 가설이라 확신하면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베게너의 주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력의 변화를 측정하여 남서 태평양의 해저 지형에 대한 지도를 얻으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잠수함을 타고 마이네츠는 자신이 개발한 중력계를 개발했는데 그는 지구 중력장의 100만 분의 1정도로 작은 차이도 포착할 수 있었다. 중력계로 측정을 거듭한 결과 두 사람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태평양의 대륙 가장자리 부분에서 설명할 수 없는 중력이 약한 부분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해저의 암성 생성이 발견되지 않는 큰 힘에 의해 저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헤스해양 탐사작업을 계속하지 않았다. 잠수함에서 금연 조치에 항의하여 잠수함 근무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특히 과학자인 그가 작은 일 하나 처리하려해도 해군의 명령 계통을 거쳐야 했다. 1936년 헤스는 자신의 지역구 상원의원을 설득하여 미 해군 예비함대의 소위임관했는데 마침 1941년 일본과의 전쟁이 터지자 현역으로 소집되었다. 그의 임무는 독일의 잠수함을 추적하는 것인데 보직이 태평양 지역의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는 섬들을 공격하는 작전을 지원하는 수송 및 상륙용 전함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는 많은 전투에 참여했지만 새로 개발된 기술인 음향탐지기를 사용해 해저에서 반사되는 메아리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한다. 서태평양아치형으로 늘어서 있는 섬들의 대양 쪽에 깊은 해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거대한 해저에 깊은 골이 나 있는데 그 깊이가 무려 11,000킬로미터에 달하여 이것이 마이네츠 박사와 발견한 약한 중력장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다.

전쟁이 끝난 1947년 컬럼비아 대학모리스 에윙(Maurice Ewing)해저에서 1,8003,000미터의 봉우리들이 솟아있는 중앙대서양 해령(海嶺)을 작성했는데 그는 중앙대서양 해령이 지구를 빙 두르며 약 74,000킬로미터로 연결됨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매우 특이한 사항을 발견했는데 이 근처에서 발견되는 암석들은 15,000만 년을 넘기지 못했다. 다시 말해 대양저(大洋底)의 나이가 매우 어리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헤스프린스턴 대학으로 돌아와 이러한 발견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해령해양 지각에서 난 거대한 균열이라고 가정했다. 또한 대양의 암석권 중 일부가 주위의 대양저 평원을 이루고 있는 오래 된 암석권보다 온도가 더 뜨겁기 때문에 이 균열을 통해 솟아오른다고 가정했다. 중앙 해령을 따라 지진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지진 지각의 장력에 의해 야기된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대양저양방향으로 확장돼나가면서 해양 지각이 양쪽으로 끌어당겨진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이가 젊은 암석들이 해령 근처의 해저에서 생성된다면 이 새로운 물질들은 대양저가 확장될 때 그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데 소요된다고 가정한 후 헤스는 이 해양 지각대양저를 통해 나가다가 더 두꺼운 대륙판의 가장자리와 만나면 침강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 밑으로 들어간다는 가설을 세웠다. 지각은 판 밑으로 들어가 더 무른 상태의 지구 내부로 내려가 아마도 맨틀에서 재순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중한 헤스는 이런 내용을 곧바로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고 지구 시학의 한 에세이라는 글을 통해 소개한 후 동부 태평양에서 남북 방향으로 연속되는 특이한 자장 이상대(고지자기 줄무늬)가 존재하는 사실을 발견하여 해저확장설을 내용으로 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이론은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대양 한 가운데의 해령에서 지구 내부로부터 뜨겁고 동적인 용암(마그마)이 솟아오르면서 해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지구 내부에서 새롭고 기다란 화산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그 물질이 솟아오르면서 쌓여서 해저 바닥에서 수 킬로미터나 솟아오른 거대한 산맥을 생성한다. 마그마는 또한 해령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퍼져 나가가면서 새로운 대양저를 만드는데 나이가 2억 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저산맥 주위에서 이상한 모습이 관찰됐다. 해저는 마치 얼룩말의 줄무늬 모양을 보였다. 이 무늬는 해저산맥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정상자기(normal polarity)를 가진 암석과 역전자기(reversed polarity)를 가진 암석이 서로 반복되어 줄무늬의 띠 모양으로 정렬돼 있었다.

 

대륙이 갈라지면서 생긴 해저산맥의 밑에서부터 용암이 솟아올라 식으면 새로운 암석이 만들어진다. 이 암석들은 만들어질 당시 지구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약한 자성을 지니게 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지구의 자기가 바뀌면 이때 새롭게 만들어지는 해양지각반대방향의 자성을 가진다. 바로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해양지각의 얼룩말 줄무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