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의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형질변경 진상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진화론 형질변경의 진상(1)

Que sais 2020. 9. 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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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로 변질된 형질변경

 

진화론의 골격은 어떤 이유로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습득된 형질유전자에 의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 시대에는 이를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진화론 자체가 습득된 형질이 유전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통적인 진화론에 의하면 형질이 변경되기 위해서 돌연변이 등이 개제되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했다. 기본적으로 이를 멘델의 유전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상당히 많은 시간형질 변경이 일어나기 위해서 몇 십만 년에서 몇 백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면 그동안에 습득된 형질이 계속 보존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여 습득된 형질이 변경되는데 100만 년이 걸린다면 일반 동물의 생명20으로 볼 때 5만 세대를 지나야 한다. 5만 세대를 지나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했을 때 그것을 100만 년 전에 일어났던 환경의 변화로 볼 수 있느냐이다.

그레고어 멘델(1822~1884)

다윈도 습득된 어떤 정보가 형질변경으로 일어나려면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진화에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예로 제시되는 것이 강철거북의 경쟁이다. 바다거북브라질에서 대서양 한가운데 위치한 어센션 섬으로 2,000킬로미터나 이동한다. 왜 이 거북이 브라질 해변에서 머물며 둥지를 틀지 않을까. 무게가 18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이 거북에게 먹이도 없고 무수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고된 여행강행하도록 한 동기가 무엇이냐다.

어센션 섬(Ascension Island)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우선 수천만 년 전에는 어센션 섬남아메리카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바다거북의 조상들은 대륙의 포식자들로부터 알과 새끼를 지킬 수 있는 장소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해저가 확장되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분리되면서 브라질과 어센션 섬 사이의 바다가 점점 넓어졌다. 사이에서 용암이 분출됨에 따라 이주 거리는 해마다 몇 센티미터 늘어났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바다거북은 그것에 적응해갔다. 바다거북은 무사히 이주하여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몸집이 더 커지고 헤엄을 잘 칠 수 있도록 진화해갔다. 그리고 두 달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2,000킬로미터를 여행할 수 있도록 두꺼운 지방층과 대사 작용을 발달시켰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바다거북수백만 년 뒤에 자손들에게 힘겨운 이동 습관을 물려줄 수 있도록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형질변경되려면 장시간이 필요하다는 다윈의 설명은 증거 찾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틈새를 준 사람이 다소 긴 이름을 갖고 있는 라마르크(Jean Baptiste Pierre Antoine de Monet Chevalier de Larmarck, 17441829)이다. 다윈보다 진화론이라는 개념을 먼저 제시라마르크습득한 형질단시간에 걸쳐 유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마르크(1744~1829)

그의 형질변경에 대한 설명은 명쾌하다.

라마르크자연적인 변이환경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며 이 변이 다음 세대로 즉시 유전된다고 주장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변이들은 생명체가 특정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는 데 가장 적합한 변이들이라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예는 기린이었다. 영양이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먹으려고 오랜 동안 목을 늘이다 보니 기린이라는 새로운 종으로 변했다는 설명이다. 반면에 두더지나 도룡뇽의 눈처럼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주장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라마르크와 다윈의 이론 차별화되는 점이 있으므로 별개의 이론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라마르크진화의 요인획득형질의 유전이라고 본 반면에 다윈은 진화주된 추진력획득 형질의 유전보다는 생존 경쟁을 꼽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라마르크의 설다윈의 진화론흡수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찰스 다윈(1809~1882)

다윈이든 라마르크형질변경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라마르크단시간에 형질변경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므로 많은 학자들이 선호했다. 한마디로 잘 연구하면 당대에 형질변경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학자들이 형질변경의 증거를 찾는데 도전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는 여러 가지 걸림돌이 생기고 또 그에 대한 희생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 와중에서 냉전이라는 세계적인 정치문제까지 개입되어 진화론은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진화론으로 세계의 과학계가 양분되는 초미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자유진영단시간의 형질변경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손을 들었고 공산진영은 단시간에 형질변경이 가능하다는데 손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형질변경 문제로 인해 희생자두 분야로 나뉘어 진다. 첫째형질변경단기간에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다가 희생되는 것이고 둘째단기간의 형질변경불가능하다고 주장하다가 희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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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입맛에 맞는 진화론>

현대 과학유전자와 돌연변이형질 변경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진화론이 자리매김하기 전까지 형질변경이란 말 자체가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이였다. 많은 학자들이 선대에서 습득된 형질단기간에도 후대로 변형된다는 증거를 찾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진화론은 계속하여 공격받았다.

한마디로 형질변경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볼 때 진화론이라는 가설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래까지 일부 종교계에서 진화론이 아니라고 줄기차기 공격한 이유이다.

그런데 진화론역사에서 큰 사건을 계속 일으킨 것은 진화론을 과학계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여 활용했기 때문이다. 우선 다윈의 진화론 제국주의자들에게 가장 입맛에 맞는 이론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세계 각지를 침략하고 있던 식민정책을 포장하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아시아인들이 자신들보다 미개하므로 선진기술을 갖고 있는 우성 인간 종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진화론제국주의 논리뿐만 아니라 20세기 초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간 공산주의에서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도 진화론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은 제국주의자들보다 한 수 더 떴다.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1922~1952)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공산국가를 세운 구소련의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1922년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부르주아 과학에 반격을 가한다. 공산주의에 근거한 이념은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과학의 세계에서도 자본주의부르조아 과학이 아닌 프로레타리아 과학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과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분리하여 다루었는데 공산주의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이 아니라 라마르크의 단기간 형질변경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선언했다. 유전과 종의 진화공산당의 대부로 알려진 엥겔스를 모범으로 삼아 진행된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

문제는 공산진영에서 공산당 이론의 명예를 갖고 형질변경의 증거들을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증명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형질변경이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다는 견해를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정황을 보아 라마르크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지였다.

그런데 혜성과 같이 나타난 과학자가 습득된 형질단기간에 유전됨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파울 카머러(Paul Kammerer, 18801926)이다.

Paul_Kammerer(1880~1926)

카머러1880년 빈에서 태어났지만 처음부터 과학에 종사한 것은 아니다. 그는 1900년부터 1902까지 빈의 콘서바토리움에서 음악을 공부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껴 방향을 전환하여 1904년 빈대학교에서 자연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트리에스타의 동물원에 잠시 머문 적도 있을 정도로 동물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1906년부터 1912까지 고타주-리체움이라는 빈의 기숙여학교에서 생물학 교사로 일했고 1910년부터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빈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받았다. 한마디로 전도 유망한 과학자로 1914년에는 빈학술아카데미의 생물학실험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카머러획득형질의 유전을 강력하게 주장한 라마르크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도마뱀, 불도룡뇽, 아리테스(산파개구리, 수컷이 알을 등 뒤쪽에 붙여 올챙이가 될 때까지 보호하는 개구리)를 가지고 주로 실험했다. 그러면서도 동물학대를 철저히 반대했다. 단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그는 단호하게 실험을 거부했다. 그러므로 카머러는 그가 실험하는 도마뱀과 도룡뇽, 개구리들이 마치 자연 속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편안한 사육장을 만들어 주었다.

라마르크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그의 실험은 곧바로 증거가 쌓이기 시작했다.

더운 열을 많이 받은 도마뱀의 피부색은 더욱 진해졌다. 도마뱀이 낳은 알을 부화시켰더니 고온에서 태어난 도마뱀의 피부색정상적인 도마뱀의 피부색보다 더 진했다. 땅 속에 사는 도룡뇽의 경우 어디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데 새끼들은 언제나 어미와 같은 색깔을 나타냈다. 이것은 동물들이 생활의 조건들이 변할 경우 형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수컷  일반 조산사 두꺼비 ( Alytes obstetricans )의 등쪽

카머러가 공을 들인 것은 양서류아리테스이다. 아리테스물속에서 짝짓기를 하는 다른 두꺼비나 개구리들과는 달리 건조한 뭍에서 짝짓기를 한다. 그래서 아리테스 수컷들의 앞발 엄지에는 뿔모양의 검은색을 띤 살점(발정돌기)이 없다. 물속의 다른 개구리들의 경우 교미를 하는 동안 이 돌기를 이용하여 암컷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카머러아리테스들을 물속에서 짝짓기 하도록 만들면 그 수컷들의 앞발 엄지발가락에 돌기가 생겨날 것이며 이것이 세대를 거듭하여 계속 유전되면 이것이 정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공산주의자소련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내용이므로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교수자리를 제안했다. 보다 좋은 여건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제안에 그가 승낙했음은 물론이다.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인 1919년 카머러생물학계에 폭탄을 터뜨린다.

카머러의 예상대로 아리테스의 수컷에서 경피가 생겨났으며 이 경피는 그 새끼들에게도 유전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과학자로서는 최초로 환경의 영향유전자 속에 포함된다는 라마르크의 학설을 증명한 것이 된다. 그는 자신이 얻은 실험 결과를 세계 각 연구소로 보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이 그가 주장하는 경피는 피부에 생긴 얼룩이나 사진 찍을 때 생긴 그림자 같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영국의 중립적 학술검증위원단카머러가 기르고 있는 아리테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빈을 찾았다. 당시 카머러는 이미 소비에트학술원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으므로 보다 확실하게 학자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반겼다. 그런데 막상 사육장에 있는 아리테스검증위원단에게 보이는 순간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제시한 아리테스의 경피먹물로 칠한 얼룩이었다.

카머러는 말을 더듬으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우물거렸다. 학자적인 양심으로 결코 사기 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자신이 바빠서 몇 달 동안 제대로 아리테스를 살펴보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물론 그의 동료들은 누군가 실험실 문을 몰래 열고 들어와서 동물을 바꿔치기 한 것이 분명하다고 카머러를 주장했다. 그러나 검증위원단<네이처>지에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발송했다.

 

놀라운 동물 이야기는 생물학계에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 사기극이다.’

 

카머러는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19269 오스트리아의 테리지엔 바위산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나이 46였다. 카머러는 자살하기 하루 전 자신을 초청했던 소비에트학술원 앞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제가 직접 관여한 일은 아니었으나 기정사실로 밝혀진 이 문제를 고려해볼 때 이제 본인은 제가 더 이상 학술원회원으로서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또한 저는 목숨과도 같이 소중했던 이 연구가 좌절되었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디 제가 힘과 용기를 얻어서 내일은 실패한 제 인생에 종말을 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카머러음악공부로 시작했다가 과학을 본업으로 삼아 나름대로 초고속 승진을 거치는 등 순탄한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란 시대적 한계에 맞물리며 실험 조작 사건이 일어나자 변명도 또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카머러자살로 몰아 간 미스터리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은 끝까지 그의 연구 결과가 사실이었다고 증언했다.

구소련은 그야말로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라마르크의 형질변경 증거가 하루아침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개인 생활에서 유발된 돌연변이후손의 유전형질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여 부모를 통한 자식한 벌의 트럼프를 섞듯이 부모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섞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접목시킨 사람의 아이들은 공산주의 이론에 적합한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