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들의 치명적인 매력>
문제는 스테로이드에 치명적인 단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약물 효과에 상응하는 엄청난 부작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상처에도 쉽게 피를 흘리거나 위궤양이 생기고 살이 쪄서 얼굴이 부은 것처럼 보이는 환자들도 있었다. 심한 경우 척추뼈가 으스러지는 부작용을 보이는 환자도 발표되었다.
이런 내용은 코르티손을 최초로 환자에게 투여한 필립 헨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조차 스테로이드를 환자들에게 처방할 때 주의해야한다고 말했다. 세포의 성장 및 분화를 촉진하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1958년 근육성장촉진제로 미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이후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갔지만 곧바로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MLB(메이저리그 베이스볼)라고 불리는 미국 야구 리그에서는 현역 시절 커다란 활약을 한 선수를 ‘명예의 전당’ 에 헌정함으로써 그를 기린다. 베이브 루스나 루 게릭 등 우리가 아는 위대한 선수들은 다 거기 있는데, 마크 맥과이어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느냐 마느냐는 야구인들의 관심사이다. 1961년 양키스의 로저 매리스가 61개의 홈런을 쳐 베이브 루스가 갖고 있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선 이래, 그 기록은 37년간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날스의 강타자 마크 맥과이어는 1998년 로저 매리스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좌측 담장을 살짝 넘기는 62호 홈런을 쳐냈고, 그 후에도 꾸준히 홈런을 추가하며 한 시즌에 70개의 홈런을 치는 대기록을 세운다.
하락세에 있던 미국 야구의 인기를 되살렸다는 평을 듣는 그는 명예의 전당의 보증수표로 일컬어지는 통산 500홈런을 훨씬 넘어선 583개의 홈런을 친 선수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 입성을 결정짓는 기자단 대부분은 맥과이어를 외면했고, 그는 75%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하는 조건에 한참 미달한, 채 25%도 안 되는 득표에 그치고 만다. 2009년 1월의 일이다.
도대체 왜 기자단은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바로 스테로이드였다.
맥과이어와 같은 기간 선수생활을 했던 호세 칸세코가 자서전에 맥과이어의 약물복용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행크아론의 기록을 경신하며 통산 홈런 1위로 올라선 배리본즈 역시 스테로이드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여 아직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 사회 및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준 국제행사였다. 한마디로 한국을 세계에 인식시키는 계기였다. 그러나 88올림픽에서의 100미터 달리기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정직하지 못한 경기로 낙인 찍혔다. 그 중에서 가장 충격을 준 것은 남자 100미터 경주에서 캐나다의 벤 존슨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9.79초)로 100미터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그러나 2일 후 존슨이 금지된 동화성합성스테로이드 스타노졸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올림픽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이 당시 2등으로 들어온 미국의 칼루이스도 나중에 기록상승을 위한 약물 복용을 시인했지만 여하튼 벤 존슨의 금메달은 그에게 돌아갔다.
이런 예가 있음에도 약물 테스트에 의해 자격을 박탈되는 사람은 중지되지 않았다.
2005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여자 1,500미터 세계챔피언십 달리기에서 1〜5등을 차지한 선수 전원이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결정으로 2008년 대회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약물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물복용은 육상경기 선수들뿐만 아니라 투포환, 역도선수를 비롯해 장거리 자전거 선수들에게도 많이 발견된다.
올림픽 출전 선수의 도핑 이야기는 2012년에 있었던 세계 최고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드프랑스(Tour de France)'의 우승자인 랜스 암스트롱에 의해 보다 큰 소동을 일으킨다.
1971년 9월 미국 텍사스주 플레이노에서 태어난 암스트롱은 1993년 세계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 챔피언이 되는데 당시 24살의 나이인 1996년 고환암 선고를 받았고 암세포는 가슴과 뇌에까지 침투하여 생존확률 3%라는 담당의사의 소견까지 받게 된다. 사망신고와도 같은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쪽 고환을 잘라내고 뇌를 절단하는 등의 대수술을 거치고 16개월의 항암치료와 투병의 세월을 이겨낸 그는 1998년 2월 사이클 계로 복귀한다.
놀랍게도 그는 자전거 선수로 복귀한 후 1999년부터 2005년 동안 투르드프랑스에서 7회 연속으로 우승기록을 달성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투르드프랑스는 프랑스 전역 3,630킬로미터를 23일 동안 질주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대회로 특히 난코스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그의 독주에 의심을 품은 미국반도핑기구는 암스트롱이 금지약물을 사용했다며 선수자격을 영구히 박탈했다.
스테로이드는 흔히 동화성-남성호르몬성으로 설명하는데 동화성이란 근육 증량을 뜻하며 남성호르몬성이란 남성적 특성을 뜻한다. 스테로이드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다. 신장 위에 있는 부신이란 기관에서, 그리고 고환과 난소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염증반응을 억제하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도록 해줄 뿐 아니라 체액의 균형도 맞춰주는 등 많은 일들을 한다. 하지만 운동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고 할 때, 그 스테로이드는 아나볼릭-안드로게닉 스테로이드(anabolic-androgenic steroid, AAS)‘를 지칭하며, 흔히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불린다. ‘아나볼릭’이란 말은 ‘짓는다’, ‘안드로게닉’은 남성적이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것. 그러니 이 호르몬을 복용할 경우 근육과 뼈의 양이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성대와 체모가 자라는 등의 남성적 특징이 뚜렷해진다. 남성의 고환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도 이 역할을 수행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의 구조를 변형시켜 ‘짓는 효과’를 증강시킨 게 바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다.
합성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좋은 효과를 보이려면 남성화보다 근육증강 등의 효과가 더 커야 한다. 그래서 이것의 효과를 따지기 위해 항문 근처를 지지하는 근육인 항문거근(levator ani)이 남성화의 상징기관인 전립선에 비해 무게가 몇 배나 증가했는지를 측정해 그 비율을 수치로 표기한다. 합성된 스테로이드의 대부분이 2〜3 정도의 수치를 보이지만, 스타노조롤(stanozolol)은 6-10, 난드롤론(nandrolone)은 10〜12나 된다. 후자의 두 스테로이드가 각각 가장 널리 사용되는 스테로이드 3, 2위에 랭크된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럼 1위는 뭘까? 바로 테스토스테론이다. 이게 일등인 이유는 ‘짓는 효과’ 면에서는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0.3〜0.4), 원래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것인지, 외부에서 주입한 것인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원래 고환이 발달하지 않아 테스토스테론이 나오지 않는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그것 말고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여러 환자에 적용이 가능하다. 에이즈로 인해 지나치게 체중이 감소한, 소위 악액질(cachexia) 환자라든지 심한 화상이나 신부전처럼 영양공급이 부족할 수 있을 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근육양과 강도를 늘려준다는 점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대단히 유혹적이었다. 이 효과는 특히 여성에서 더 큰데, 1972년 올림픽에서 동독 여자 선수들은 육상이나 수영처럼 근력을 필요로 하는 종목에서 큰 두각을 나타냈다. 독일 통일 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시절 수천 명의 선수들이 매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투여받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 중에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당시 여자 수영선수들의 모습을 보시라.
그 약의 남성화 효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결국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금지약품이 되었지만, 육상선수나 보디빌더 등에 의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꾸준히 이용되었고, 결국 프로야구 선수들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1990년대 배리 본즈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데뷔 초 가냘픈 몸매로 49개의 홈런을 쳤던 맥과이어를 기억한다면 스테로이드가 얼마만큼 근육증강에 도움이 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스테로이드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사용을 금하는 것은 그 약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어마어마하다.
아이들에서 뼈의 성장판을 일찍 닫히게 하고, 남성의 가슴을 크게 만든다. LDL이라는 나쁜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을 낮춤으로써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가능성을 높인다. 심지어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과민해지고 충동적이 된다. 대머리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간 기능의 이상을 초래하며, 황달을 일으킬 수 있다. 간 종양의 가능성을 높인다. 고환을 위축시키고 여성에선 무월경을 초래할 수 있다. 여드름이 난다. 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29세된 여자 육상선수가 침대 옆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상처라고는 넘어질 때 긁힌 자국과 피부의 여드름이 전부였다. 그녀의 혈액에서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스타노조롤이 검출되었다. 그녀의 사망원인은 그러니까 이 약물에 의한 심장마비였다. 2009년 국제 법의학지(Forensic Science Internaional)에 실린 증례다.
2007년 국제 심장학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Cardiology)에는 27-37살 육상선수 네 명이 심장마비로 죽은 사례가 나와있다. 네 명 모두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양성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예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서울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그리피스 조이너(Florence Griffith Joyner)라는 선수가 있었다. 빼어난 미모까지 갖췄던 그녀는 불과 나이 서른아홉에 사망했다. 사인은 간질로 밝혀졌지만, 일각에서는 그녀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죽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1987년까지 10초 96이 그녀의 100미터 최고 기록이었는데 1년 사이에 0.4초를 앞당긴데다 도핑테스트가 엄격해지기 시작하자 곧바로 은퇴한 점 등이 그 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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