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가드로의 수>
196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 교수는 ‘모든 인간의 지식에서 가장 중요한 생각은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많은 화학자들은 화학 물질이 대부분 분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원자’ 대신 ‘원자와 분자’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구분이 가능한 것은 노벨상 초창기에 수퍼스타로 군림한 로렌조 로마노 아메데오 카를로 아보가드로 디 콰레나(Avogadro, Amadeo, 1776 〜 1856)때문이다. 친구들은 그의 이름이 워낙 길어 친구들은 그를 아보가드로로 부르지 않고 아메데오로 불렀다.
여하튼 그가 제시한 가설로 원자와 분자를 구별하고, 아보가드로의 수로 주어진 양의 물질에 들어 있는 원자와 분자의 수와 이들 개개의 무게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화학적 관점에서는 불 때 아보가드로가 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생각과 발견을 했다고 극찬하는 것이 과언은 아니므로 아보가드로 수가 화학사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여 간략히 적는다.
다소 여러 장에서 설명하는 것과 중복되기는 하지만 아보가드로수의 중요성을 쉽게 이해토록 화학 반응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사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새로운 물질을 얻기 위해 화학 반응을 이용하여 왔으나, 화학 반응에 관한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라고 볼 수 있다. 1774년 라부아제에(Antoine L. Lavoisier)는 화학 반응에서는 반응 전후에 전체 질량의 변화가 없다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화학 반응의 양적 관계 탐구의 길이 열렸다. 뒤이어 1779년에 프루스트(Joseph L. Proust, 1754〜1826)는 주어진 화합물에서 이를 구성하는 각 성분 원소의 질량비는 항상 일정하다는 '일정성분비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돌턴(John Dalton)은 이들 두 가지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잊혀졌던 원자론을 부활시켰다. 1803년에 처음 발표된 돌턴의 원자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나눌 수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원자로 되어 있다.
② 한 원소의 원자는 크기나 성질이 같다.
③ 화합물은 두가지 이상의 원자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④ 화학 반응은 원자들의 재배열이다.
그 후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 보다 간단한 기본 입자로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하나의 원소에 서로 다른 원자, 즉 동위원소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져 돌턴의 원자론은 일부 수정되었다.
돌턴은 수소 원자의 질량을 1로 하여 여러 가지 원자들의 상대적 질량, 즉 원자량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의 방법 자체는 오늘날에도 타당하나, 중요한 실수를 범하였다. 그는 물(H2O)의 화학식을 HO로, 그리고 암모니아(NH3)의 화학식을 NH로 가정하고 산소와 질소의 원자량을 각각 8과 5로 구하였다. 이는 그의 화학식의 가정이 틀렸기 때문으로 산소의 원자량은 실제 값 16의 1/2로, 그리고 질소의 원자량은 실제 값의 1/3로 구해졌다. 이렇게 잘못 구해진 원자량을 바탕으로 다른 원소들의 원자량을 정했으므로 실제 값과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1808년에 게이-뤼삭(Joseph L. Gay-Lussac)은 같은 온도와 압력에 있는 기체들이 반응할 때, 기체 부피들 사이에는 항상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된다는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한 예로, 1 부피의 질소 기체와 1 부피의 산소 기체가 반응하여 2부피의 일산화질소 기체를 만든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사람이 아보가드로이다. 그는 1811년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했다.
① 같은 온도,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존재하는 기체 입자(분자)의 수는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같다.
② 기체 분자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기본 입자(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아보가드로 가설’로 그는 첫 번째 가설에 근거하여 기체의 밀도를 비교함으로써 분자의 상대적 무게를 구하였는데, 산소와 질소의 원자량을 각각 15(실제는 16)와 13(실제는 14)이라고 제안하였다.
아보가드로는 또한 게이-뤼삭의 실험 결과로부터 물 분자는 HO가 아니라 H2O이며, 수소, 산소, 질소 기체는 이원자 분자, 즉 H2, O2, N2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암모니아 기체의 밀도로부터 암모니아의 화학식은 NH가 아니고 NH3라고 바르게 제안하였다.
지금은 아보가드로의 가설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어 아보가드로의 법칙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당시의 화학자들은 이 가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당시 화학자들은 화학적 방법에 의해 더 단순한 물질로 분해될 수 없는 물질을 일컫는 원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었고, 원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 입자인 원자와 두 개 이상의 원자가 강한 힘으로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독립된 입자로 행동하는 원자 집단인 분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 돌턴의 실수에 의해 여러 원소의 원자량이 실제와 다르고 제각각 이었기 때문에, 화합물의 화학식도 제각각 이었고 이는 화학의 혼돈으로 이어졌다. 1861년에 발간된 한 교과서에는 아세트산(CH3COOH)에 대해 무려 16가지의 화학식을 적기도 하였다.
아보가드로의 가설은 후에 칸니자로(Stanislao Cannizzaro, 1826-1910)의 노력으로 1800년대 후반부터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해 화학 혼돈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멘델레예프(Dmitri I. Mendeleev, 1834〜1907)는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바탕으로 보고된 원소들의 원자량을 다시 수정하여, 1869년에 원소의 주기율표를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화학자들은 물질의 양을 그램(gram)-분자 또는 그램-원자라는 용어로 나타내었는데, 1그램-원자 또는 1그램-분자는 원자량 또는 분자량에 해당하는 질량(그램)을 나타내는데 것이다. 산소는 분자량이 32이므로 1그램 분자는 32g이다. 아보가드로 수는 처음에는 1그램 분자에 들어 있는 분자의 개수를 말하며 아보가드로의 수만큼의 입자 묶음을 일컫는 말로 몰(mo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보가드로의 수(NA)는 6.02214179x10+23/mol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이다. 이를 일반 숫자로 적으면 602,000,000,000,000,000,000,000인데 이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수는 엄밀히 말해 아보가드로가 구한 것이 아니라 1909년에 페렝(Jean B. Perrin, 1870〜1942)이 브라운 운동의 실험적 관찰로부터 구한 것으로 아보가드로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브라운 운동은 액체나 기체에 분산된 입자가 지그재그로 무작위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식물학자 브라운(Brown)이 1827년에 물에 분산된 꽃가루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처음 발견한 것이다.
아보가드로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다음 설명으로 알 수 있다. 아보가드로수를 초라는 시간 단위로 잡으면 약 2x10+14 세기가 되며 이 시간은 우주의 나이 약 100만 배에 해당한다. 아보가드로수만큼 10원짜리 동전을 지구에 살고 있는 80억의 인구에 750조 원씩 분배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대체로 한 끼에 약 2,500여 밥알을 먹는데 만약 한국인을 5,000만 명으로 감안한다면 밥알은 4400만 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아보가드로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 기가 질릴 것이다.
1800년대 후반에는 기체의 몰 수(n), 압력(P), 부피(V), 절대 온도(T) 사이에 기체상수 관계식이 성립된다는 것이 알려졌다. 한편, 볼츠만(Boltzmann)은 기체 운동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여 '볼츠만 상수'를 발표했으므로 아보가드로 수를 구할 수 있다.
이것을 주제로 1905년 아인슈타인은 걸작 논문 중 하나를 작성한다. 입자의 브라운 운동이 용매 분자와의 충돌에 의한 것으로 보고, 기체 운동 이론을 적용하여 브라운 운동에 관한 이론식을 유도했다.
페랭은 자황나무진(gamboge) 가루에서 천신만고 끝에 같은 크기의 입자를 분리하고, 이 입자의 브라운 운동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후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이론식에 넣어 아보가드로 수를 계산하였다. 그 값은 7.05 x 10+23/mol로 오늘날의 정확한 값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고통을 이긴 사람에게 보상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페랭은 아보가드로의 수를 구한 공로로 192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아보가드로수의 확인은 100년 가까이 지속한 원자나 분자에 관련된 논쟁을 끝내고 분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현재 아보가드로 수는 정확히 12g의 순수한 탄소 동위원소 C12 중에 들어 있는 탄소 원자의 수와 같은 수로 정의한다. 원자나 분자 1개의 무게는 1그램 원자량 또는 1그램 분자량(단위 g/mol)을 아보가드로 수로 나누면 얻어진다.
<입체 화학>
삼투압 현상으로 반트 호프가 노벨상을 받았지만 현상 자체는 원래 1867년 독일의 화학자 M. 트라우베가 발견하였고, 1877년 페퍼가 처음으로 측정하였다.
페퍼는 페로시안화구리의 침전막을 가진 질그릇 통(筒)을 써서 설탕 수용액의 삼투압을 측정하고, 삼투압이 온도에 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1886년 반트호프가 삼투압의 원인은 용액 속에 녹아 있는 물질의 분자가 기체분자와 같은 법칙으로 운동하여 반투막에 압력을 미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였다.
반면에 고농도 용액에 삼투압 이상의 압력을 가하면 저농도 용액쪽으로 물이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역삼투현상이라 하며 이 때 사용하는 반투막을 역삼투막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역삼투막은 유기화합물보다 무기화합물을, 비전해질보다 전해질을 더 잘 분리시킨다. 전해질 중에서도 하전이 높고, 이온반지름이나 분자의 크기가 클수록 분리가 더 잘 된다. 역삼투막이 여과할 수 있는 영역은 입자성 물질은 물론, 입자의 크기가 가장 작은 1㎚ 이하의 이온성 물질까지도 제거할 수 있다.
삼투압이 근래 더욱 각광을 받는 것은 삼투압을 측정함으로써 용질의 분자량을 정하거나, 분자량을 아는 물질의 용액 속에서의 해리도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분자 물질의 분자량을 결정하는 데 삼투압을 이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생물의 원형질막이 일종의 반투막이므로 삼투압은 생물현상을 규명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역삼투압도 근래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전자산업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환경오염이 초래되고 공업용수의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폐수를 재활용하는 폐수 무방류 시스템도 연구되고 있는데 이 시스템의 원리는 역삼투막을 이용하는 것이다. 특히 많은 나라에서 식수 부족으로 곤란을 받고 있으므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때도 역삼투압 방법을 사용한다.
과학 팁 한 가지.
인간의 70퍼센트 정도가 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물이 없으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기 힘들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풍부한 물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모든 성인은 하루 2리터 정도의 물을 마셔야 한다. 하루에 약 2.5리터의 수분이 인체에서 배출된다. 폐에서 호흡할 때 수증기로 배출되는 양이 하루 약 600그램, 땀구멍을 통해 땀으로 발산되는 양이 하루 약 500그램, 대변이나 소변으로 배설되는 양이 약 1,400그램이다. 하루에 2.5리터를 배출하는데 2리터를 마셔야 한다니 말이 되느냐고 말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부족한 500그램의 수분은 음식물을 통해 섭취된다.
인간은 물을 통해서 다른 영양분을 공급받지 않으므로 마시는 물은 화학물질이 섞여 있지 않은 것일수록 좋다. 한마디로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상온의 물 1리터에는 약 20mg의 산소가 녹아있고 이산화탄소, 질소를 비롯한 공기 중의 기체도 상당한 양이 녹아있다. 물론 흙에서 녹아 아오는 황산, 질산, 탄산 이온이나 칼슘, 마그네슘 이온 등이 미네랄 성분도 함유되어 있다.
이정도 이야기하면 정수기라는 말이 떠오를 것이다. 정수기는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물을 걸러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사실 한국에서 이 문제에 관한 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것은 수돗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느냐이다. 수돗물은 정수처리장에서 대단위로 정수하여 공급하는데 실제로 정수처리장에 들어온 물을 인간이 그대로 마시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적합하다. 때문에 정수처리장에서 이 물을 침전, 여과, 약품 처리 과정을 거쳐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수돗물로 만드는데 이들 처리과정을 소형화하여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정수기이다.
정수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아주 미세한 구멍 즉 필터에 물을 통과시켜 불순물이나 세균 등을 걸러 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용 정수기 안에는 3〜6개의 필터가 들어 있고 이를 통해 정밀여과 과정이 이루어진다. 정수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반투막필터를 사용하여 이온, 세균, 유기물 등을 걸러내는데 원리는 역삼투압을 이용하는 것이다.
삼투압은 농도가 높은 쪽으로 용매가 반투막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압력인데 역삼투압은 인위적으로 압력을 가해서 용매를 농도가 낮은 쪽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순수한 물과 오염된 물이 있다면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순수한 물이 오염된 물 쪽으로 이동한다. 오염된 물이란 기본적으로 물 분자 외에 다른 물질이 들어있으므로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역삼투압은 이런 과정을 압력을 주어 오염된 물 분자가 순수한 물로 이동하게 함으로써 순수한 물만 반투막으로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역삼투압 기술의 핵심은 반투막 구멍의 크기인데 반투막에는 0.0001㎛의 아주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뚫여 있다. 이 구멍의 크기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 분의 1로 매우 작아 이곳에 물이 부딪히면 순수한 물 분자는 겨우 통과하지만 박테리아나 각종 미세입자들은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워낙 구멍이 작기 때문에 강한 압력을 두어 물이 통과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역삼투압 정수기는 전동펌프와 물탱크 등을 필요로 한다.
최초의 정수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서 1940년 대 초 태평양전쟁 때 개발된 것인데 원래는 정수기가 아니라 미국 해군에 바닷물을 식수로 만들어 공급하려는 연구 과정에서 개발된 것이다. 남태평양이라는 열악한 지역에서 전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식수인데 사실 많은 장병들이 마실 수 있는 식수를 찾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여 담수로 바꾸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이것의 원리가 역삼투압으로 이후 정수기에서 차용한 것이다. 정수기야말로 노벨상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이다.
참고문헌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8666&cid=58949&categoryId=58983
『진정일의 교실 밖 화학 이야기』, 진정일, 양문, 2006
『과학에 둘러싸인 하루』, 김형자, 살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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