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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감자, 옥수수에서 플라스틱을 만든다>
콩, 옥수수, 감자 등 식물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만든다는 생각은 발상의 전환에 의한 것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현재 인류가 채굴하는 석유의 90%는 연료ㆍ발전 등 대부분은 태워 없애는 형태로 이용되고 있는데 실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플라스틱 등의 소재도 대부분 석유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같은 석유가 한정돼 있어 고갈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은 1조2,000억 배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수준으로 계산하면 앞으로 약 40년 정도를 공급할 수 있다. 학자들에 따라 이들 가채년한은 보다 상회할 것으로 추정하지만 궁극적으로 화석연료가 고갈된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반적으로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모두 탄화수소 계열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식물로부터 탄소수소 계열의 물질 또는 이와 유사한 물질을 얻을 수 있다면 연료는 물론 플라스틱이나 비닐류 같은 소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콩, 옥수수 등 식물 자원을 이용, 이를 친환경공정으로 바이오플라스틱 등의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바이오리파이너리(Bio-refinery)’라고 한다. 석유화학에서는 화학제품 생산이 에틸렌,프로필렌,BTX 등의 기초 화학제품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바이오리파이너리에서는 주로 에탄올, 프로판디올, 젖산, 호박산 등의 발효산물로부터 연료 또는 화학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한편 ‘바이오매스 플라스틱’ 또는 ‘플라스틱 식물’이라 함은 우리들이 주위에서 보는 플라스틱 제품을 곧바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 등 식물에서 소위 바이오매스를 25% 이상 함유토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플라스틱 식물은 대기 중의 탄소가 광합성에 의해 고정된 식물자원을 원료로 사용함으로써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증가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화석연료의 소비가 절감되는 것은 물론 폐기 후에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식물이 플라스틱을 생산토록 하는 연구는 유전자 기술이 개발되어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생화학자들은 이미 1930년대부터 식물 플라스틱 개발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에는 현대와는 달리 석유제품이 매우 비싼 반면 콩은 양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값싼 자원이었다. 콩을 이용한 제품은 페놀성수지 제조비용을 줄이기 위해 혼합되는 첨가제나 성형제로 주로 이용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것이 역전되었다. 석유 채취량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낮아짐과 동시에 플라스틱 제품이 폭발적으로 보급되자 식물성 플라스틱의 용도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최근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각종 공해 등 부작용이 대두되자 천연 플라스틱에 대한 연구가 촉발되었다. 플라스틱의 문제점이 도출되자 학자들이 제일 먼저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환경공학적으로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것이었다. 합성수지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자연적으로 분해되도록 미생물을 이용해 만든 생분해성 플라스틱, 폴리에틸렌 같은 기존의 합성수지에 녹말 등의 천연 고분자 물질을 섞어 만든 생붕괴성 플라스틱, 자외선에 의해 분해되는 광분해성 플라스틱 등이다.
여기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 유전자조작작물을 만드는 것이다. 옥수수와 콩 등을 활용하여 하이드록실 지방산에 산소를 넣은 플라스틱 첨가제 폴리유산 또는 폴리락틱산(PLA, Polylatic Acid)을 생산한다. 일반적으로 식물자원을 발효시키면 탄소 3개의 젖산이 만들어지고 이 젖산을 고분자화시키면 식물 플라스틱의 원료인 폴리유산(PLA)이 만들어진다. PLA는 대부분 옥수수에서 나오는데 밀이나 벼 같은 생물자원에서도 얻을 수 있으며 특수필름, 식품포장, 병, 발포제, 섬유 등의 재료로 쓰인다. 깜짝 상품으로는 옥수수 알갱이를 발효해서 얻은 당을 화학처리해서 만든 식물성 플라스틱(PLA)으로 '먹을 수 있는 도마‘를 선보이기도 했다.
처음 식물로 플라스틱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도출되었을 때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이 특정 조건하에서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방법이다. 식물 당분을 가지고 만든 ‘미생물성 폴리에스터’(PHA: polyhydroxyalkanoates)는 영양을 함유하는 물질에 반응해 독특한 과립상의 함유물로 축적된다. 당분이 곧바로 천연의 폴리에스터가 되는 셈이다. PHA는 PLA처럼 토양 속 박테리아나 곰팡이 퇴비나 해양 퇴적물 등에 노출되면 분자결합이 곧바로 끊어져 분해가 일어난다. 그러나 보통의 플라스틱에 비해 박테리아공법으로 제조된 플라스틱이 3〜5배나 비싼데다 잘 부서지는 물성상의 약점도 있었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유전자조작 식물을 생산공장으로 해서 만들어낸 플라스틱에 관심을 돌렸다. 박테리아는 탄소를 먹이로 하기 때문에 글루코스 형태로 곡물로부터 탄소를 공급해주어야 하는데 비해 유전자조작식물들은 공기 중으로부터 직접 탄소를 취하기 때문에 제조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미국 위스콘대학의 제임스 듀머식 교수는 옥수수에서 추출한 당(sugar)을 물에 탄 후 유기용매와 섞어 가열, 설탕에서 3개의 물 분자를 떼어내어 화학적으로 석유와 분자구조가 비슷한 하이드로메틸푸르푸럴(HMF)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HMF는 석유가 다양한 분자들과 만나 폴리에스터나 폴리프로필렌등과 같은 화합물을 만드는 것처럼 플라스틱류나 석유와 같은 연료로 가공된다. 즉 옥수수의 당을 이용해 플라스틱이나 자동차의 연료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유럽연합(EU)의 환경규제 강화정책으로 유럽에 수출하는 전자제품의 포장재를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대체하도록 의무화했다. 특히 크라이슬러ㆍ포드ㆍGMㆍ혼다ㆍ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오는 2020년까지 자동차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을 모두 재생 가능한 소재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식물계 플라스틱은 비교적 내구성ㆍ내충격성ㆍ내열성이 약한 단점이 있는데 이를 폴리스티렌(PS)계의 플라스틱과 합성하면 최적의 물성을 얻을 수 있다. 즉 PLA-PS 합성 플라스틱으로 가전제품의 외장재 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식물계 플라스틱을 최대 30%까지 혼합할 수 있다.
생물공학의 놀라운 발전에 한국도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이미 지난 1996년에 임업육종연구소가 ‘알칼리 게네스’라는 토양 속 박테리아에서 플라스틱 성분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연구진은 유전자를 현사시나무에 주입해 잎과 줄기로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하지만 박테리아 배양 과정이 까다롭고 대량생산에 한계가 많아 시제품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플라스틱 식물로 가장 적합한 것으로는 옥수수를 꼽는다. 옥수수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휴대용 탈취제, 옥수수 원료에서 실을 뽑아 섬유를 만들고, 옥수수 수염(옥수수의 암술) 추출물에서 항산화, 항염증 효과가 뛰어난 루테올린 등의 물질도 만들 수 있다.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양태진 교수는 옥수수가 생분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콩이나 감자 등 농산물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연구는 농산물의 활용도를 높이고 기존 석유화학 제품을 대체하는 환경프로젝트로서 큰 의미가 있다. 식물을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원리는 식물에 있는 탄수화물을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원리상 매년 생산이 가능하고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식물을 이용하여 플라스틱은 물론 잉크, 디젤연료, 윤활유 등도 생산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이 경우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콩과 감자가 공산품인지 아니면 농산품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콩의 원산지는 원래 우리나라이다. 콩의 원산지는 야생콩의 자생지역이면서 야생콩, 중간콩, 재배종 등 콩이 가장 많은 곳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런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곳이 만주 남부이다. 만주 남부는 본래 맥족의 발생지이며 고조선의 옛 영토이다. 1997년에 발견된 대동강 유역의 삼석구역 표대 유적에서는 벼와 콩이 발견되었는데 이 곡식들은 단군 조선 초기, 즉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벼와 콩이 고대 한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찍부터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콩이 동양을 벗어나 외국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도에는 18세기나 19세기 초에, 유럽에는 18세기에 진출했다. 1739년에는 파리 식물원에 처음으로 콩을 심었고, 1786년에는 독일, 1790년에는 영국의 식물원에서 시험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콩으로 만든 플라스틱이 세계를 석권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콩의 원산지인 한국에 감사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
「플라스틱 재활용시대」, 강성현, 과학동아, 1992년 12월
「[과학] 옥수수에서 플라스틱을 딴다?」, 김수병, 한겨레21, 2000년 08월 02일 제320호
「인간이 낳은 기적, 유전자변형식품」,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스, 2004.07.20.
「AI 토마토 백신, 옥수수로 만든 플라스틱」, 고지희, 헤럴드경제, 2006.07.08
「옥수수, 별걸 다 낳는다」, 박상준, 한국일보, 2009.05.22.
「[재미있는 화학이야기] (3)화학으로 얻는 식물계 플라스틱」, 강재윤, 서울경제, 2009.08.26.
「태양에너지로 크는 식물로 화학제품과 연료 만든다」, 황경남, 한국경제, 2009.09.21
「GMO(생물공학작물)」, 심재우, 중앙경제, 2010.11.19.
『과학, 그 위대한 호기심』, 서울대학교 자연대 교수 외, 궁리, 2002
『진정일의 교실 밖 화학 이야기』, 진정일, 양문, 2006
『노벨상이 만든 세상(화학)』, 이종호, 나무의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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