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적 생명기원설>
오파린의 가설은 생명의 신비 또는 비밀은 순수한 화학적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지만 이를 물리학적 과정으로 설명하는 가설도 있다. 이민재 교수는 버널(John Desmond Bernal)이 오파린과는 달리 물리학적인 개념에서 생명의 기원올 논했다고 적었다.
그의 견해의 요지는 근본적으로 오파린과 다름없으나 그는 물리학자로서 자료의 취사선택과 비중을 탄소화합물에 두었다. 즉 오파린은 생명 탄생의 선구물질(先驅物質)로서 탄화수소에 중점을 둔 데 비해 그는 탄산가스에 중점을 두었다.
즉 원시지구 표면의 용융되고 있는 층 속에는 탄산염이 많이 녹아 있어 지각의 냉각과 함께 이것들이 탄산가스의 형태로 원시대기 속으로 배출되었으며 이것들은 암모니아와 축합(縮合)하여 1차적인 유기물을 생성한다.
그리고 탄산가스는 원시해양이 탄생되면서 해수 속에 용해되어 원시해양은 처음에는 탄산이온과 암모니움 이온이 녹아있는 무기적인 상태가 된다. 한편 이 탄산가스는 낮은 에너지 준위에 있는 안정된 화합물로 이것이 1차적인 유기물질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에너지 공급이 필요한데 이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의 자외선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질소화합물은 탈아미노반응에 의하여 유기산, 당류, 지방 및 여러 가지 환상화합물(環狀化合物)을 만들고 더 나아가 피리미딘류나 퓨린 등의 핵산을 구성하는 염기를 만들며 피롤핵을 이루어 금속원자를 포착하여 호흡효소나 엽록소를 만들게 되었다고 추정했다.
즉 이러한 일차적인 유기물질을 무기적으로 분해함으로써 그 속에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의 일부를 유리시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여하튼 버널의 해석은 원시생명이 유기물 진화의 오랜 역사를 거쳐 탄생했다는 오파린의 기본 명제와는 일치한다.
그러나 밀러의 실험의 문제점은 지구의 스프를 그냥 내버려두었을 때 수천만 년이 흐른다 해도 단지 화학적인 결합만으로 과연 저절로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질문이 워낙 거세게 일어났는데 여기에 구원군이 나타났다. 노벨상 수상자인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했다.
‘지구의 스프가 가만히 죽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평형을 교란시키는 어떤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원시 스프가 좀더 복잡한 자기조직 반응을 해 나갔다. 외부 영향은 단순히 태양일수도 있다. 또는 다른 어떤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일련의 반응을 통해 생겨난 최종적인 산물은 DNA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생명체가 생성되기 이전에 모든 필수적인 성분들을 포함하고 있는 어떤 원시 스프가 존재했다면 그 원시 스프가 외부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조직화하고 보강하고 재생해 나가면서 점점 높은 차원의 질서 체계를 갖추어 마침내 생명의 문지방을 넘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학계는 엄밀함과 재현성을 기본으로 한다. 1953년 밀러의 실험 이후 수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밀러의 실험 재현에 도전했는데 중요한 분자들이 많이 생성되기는 했지만 생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결과는 전혀 없었다. 드 뷔브는 자신의 저서 『생명티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종 진정한 비생물적 과정을 위한 것보다 훨씬 인위적인 조건에서 수행되었다. 그래서 결과물들은 넘쳐났지만 밀러의 원래 실험이 전형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특별한 결과물을 생산하려 하지 않고 오직 전(前) 생물기에 있었을 법한 조건을 재현해 보려 했던 유일한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어떤 결과물을 더 많이 산출할 것 같은 방식으로 실험을 조절하여 많은 학자들이 도전했지만 어느 누구도 가장 기본적인 생물 형태인 무핵 세포를 단 한 개도 생산하지 못했다. 생물체의 독특한 분자를 실험실에서 재생할 수 없었다는 것은 그 작업이 지독히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과학기술이 현저하게 발전하고 유전 물질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53년에 행해진 스탠리 밀러의 실험이 아직도 가장 분명한 사례로 간주된다는 것은 밀러의 실험 자체에 문제점이 있었을 개연성도 높다.
우선 원시지구가 환원성 대기로 구성되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것을 비롯하여 산소의 기원도 불분명하며(현재 지구 대기의 21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소를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뜻), 밀러의 실험 자체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밀러의 실험이 원시 대기에 산화성 기체가 있다는 점을 완전히 부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자는 수소가 너무 가벼워 지구 중력이 이를 잡지 못해 쉽게 대기 밖으로 나가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지구에 풍부했던 물이 자외선을 쬐고 분해할 때 수소는 대기 밖으로 사라지고 산소가 축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원시지구에 산소가 없었다면 성층권에 오존(O3)층도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므로 지구 내 생명체는 태양의 강력한 자외선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새로운 유기화합물이 합성되기보다는 분해되는 일이 많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밀러의 실험에서 실제와 분명히 다른 점이 발견된다고 지적됐다.
예컨대 해양들은 생명이 출현한 당시에 끓고 있지 않았다고 추정된다는 점이다. 밀러도 이 점을 숙지하고 있었는데 그가 차가운 ‘해앙’보다 끓는 물을 사용한 것은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장치 내의 기체들이 충분히 빨리 순환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찬 용액에서는 매우 느리게 반응하므로 이를 촉진시킬 필요가 있었다.
여하튼 밀러의 실험이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므로 세계 각지에서 동일한 실험들이 수행되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어떤 실험에 의해서도 ‘뉴클레오티드’는 생성되지 않았다.
생명체의 기본인 뉴클레오티드가 빠진다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라 할지라도 핵산을 지니고 있다. 생물이냐 아니냐로 아직도 논란 중인 바이러스는 물론 박테리아만 해도 2,000개 내지 3,000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며 효모세포의 경우는 6,000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유전자라는 추상적 개념은 핵산이라는 구체적 물질 속에 구현된다. 즉 핵산을 유전자라 볼 수 있다.
단백질 하나를 형성하기 위해 스무 개의 아미노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미노산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네 개의 뉴클레오티드 염기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최신설비를 갖춘 연구실에서 아미노산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아미노산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태초에 생성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네 개의 염기들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기준에 맞춘다. 네 개의 염기는 모두 일정한 위치에서 당분자와 결합할 수 있어야 하며 두 개의 뉴클레오티드 사슬 중간에 삽입되어 핵산을 형성하는 염기쌍의 양도 똑같아야 한다. 동시에 두 개의 염기들은 퍼즐조각처럼 서로 맞춰질 수 있는 모양(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다리결합을 할 수 있고 비로소 두 개의 사슬이 합치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원시수프’안에서 번개 덕분으로 일어났다는 설명과 다름 아니다. 문제는 미묘한 합성과정을 거쳐 네 개의 염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는 오직 살아있는 세포뿐이라는 점이다. 근래 학자들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던 바로 그 시기에 RNA의 화학적 구성 성분(인, 질소, 수소, 탄소 등)들도 풍부하게 존재했다. 이러한 기본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긴 분자 사슬을 형성했다. 물론 그중 일부 RNA는 아무 의미 없는 물질로 변했을 것이다. RNA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아미노산을 단백질로 조직하는 능력과 자기 복제 능력의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 능력의 경우 아무렇게나 배열된 어떤 RNA가 우연히 특정 아미노산을 원시적인 단백질로 만들게 되었고 이렇게 생성된 단백질은 어떤 RNA 배열을 다른 배열보다 선호하는 화학반응을 촉진했을 것이다.’
이러한 RNA의 놀라운 능력은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생화학자 토머스 체크(Thomas R. Cech)와 시드니 올트먼(Sydney Altman)이 1982년에 실험실에서 증명했다. 이를 자가 촉매 능력이라 하는데 이 능력이 생명을 태어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추정이다. 그 결과 RNA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RNA가 단백질의 생성을 지시하는 세상으로 진화가 일어났다.
다양한 RNA가 동시에 존재했다면 가장 유리한 형태의 아미노산을 끌어당겨 가장 빨리 증식할 수 있는 RNA가 가장 잘 번식하고 그러한 분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 물질을 독점했을 것이다. 유리한 화학적 반응을 촉진하는 RNA 분자들이 살아남았으며 이런 식으로 RNA가 진화했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판들이 만나는 해저의 열수분출구가 생명이 탄생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믿고 있다. 앞에서 지구가 끓고 있지 않았다는 반론이 있었는데 해저의 상황은 다르다. 깊은 바닷속에서 생물들은 유해한 자외선을 피할 수 있다. 더구나 탄소와 수소, 메탄, 물, 암모니아와 같은 필수 원소와 물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온도도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장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화학적 혼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세포로 발달되는 다음 단계는 아마도 RNA와 단밸질의 특정 집단 주위에 막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 분자는 자연적으로 정렬하여 안쪽과 바깥쪽에 2중 막을 형성한다. 이렇게 서로간에 칸막이가 생기면서 최초의 세포가 만들어졌고 또 세포들이 다양한 수중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시 RNA 분자처럼 최초의 세포들도 생존에 필요한 공통적인 성분을 놓고 경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났다. 가장 효율적인 세포들이 살아남아 촉매와 그 밖의 복제를 촉진시키는 특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참고문헌 :
「최초의 생명체는 언제 어떻게 생겼나」, 과학동아, 1995년 10월
「생명의 기원」, 김훈기, 과학동아, 1996년 9월
「스탠리 밀러」, 『뉴턴』, 뉴턴코리아, 2004년 7월호
「44억 년 전 지구 最古 광물 `지르콘' 전시」, 이봉준, 연합뉴스, 2005.04.10.
「생명의 근원, 바다 아닌 땅에서 처음 시작」, 심재율, 사이언스타임스, 2017.05.12.
『우주․물질․생명』, 권영대 외, 현대과학신서,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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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과학의 의문들 14』, 로버트 M, 헤이즌 외, 까치,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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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풀어야 할 과학의 의문 21』, 존 말론, 이제이북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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