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열역학 문제를 설명>
열역학에서 중요한 것은 소금이나 설탕 한 컵을 일단 수영장에 붓고 나면 수영장 물에서 어떠한 첨단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처음에 부은 소금과 설탕 한 컵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역학의 뜻을 잘 모르더라도 이 말의 뜻을 잘 알겠지만 엄밀함을 기본으로 하는 물리학에서 이 말은 진리가 아니다. 물질의 기본 요소인 원자나 분자의 운동은 가역적이기 때문이다.
컵이 넘어져 물이 쏟아지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한 후 반대로 돌려보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반면에 그릇에 넣은 두 개의 기체 분자 운동을 비디오로 촬영한 후 역회전시킨다면 반대로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정상 회전인지 판단할 수 없다. 두 개의 기체 분자의 운동에서는 비디오를 역회전시키는 운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커다란 의문점이 생긴다.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물리 현상들은 모두 그 기본이 원자나 분자의 운동이다. 그렇다면 미시적인 경우에는 원자나 분자의 가역적인 운동이 일어나는데 왜 거시적인 물리 현상에서는 불가역이 되는가이다.
볼츠만의 정리는 바로 기체 분자 운동론의 입장에서 거시적인 상태 변화의 불가역성 문제를 설명한 것이다. 볼츠만이 열역학에 관한 한 불가역성이 기본이라고 주장하자 로슈미트(가역성의 반론)와 체르멜로(재귀성의 반론)는 볼츠만에 반론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볼츠만의 정리에서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볼츠만의 위대함은 곧바로 자신의 논리에 대한 반박을 보다 완결된 논리로 반격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는 로슈미트와 체르멜로가 제기한 문제점을 확률론적인 이론으로 무장하여 반박했다. 즉 예외적인 현상이 설사 있더라도 확률상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실제로 거시적인 불가역적 변화는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체가 열평형 상태인 우주에서는 아주 작은 열평형의 동요만이 있는데 이는 우리 은하 정도 크기의 특정 영역에서는 여러 곳에서 가능하다. 우주에서는 두 개의 시간 방향을 구별할 수 없다. 그렇지만 어떤 특정 영역에 있는 생물은 지구 표면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지구 중심을 향하는 방향을 ’아래쪽‘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다 실현하기 어려운 상태를 향해 진행하는 시간의 방향을 그 역방향과 구별한다.’
다소 어려운 설명이지만 이 말은 우주 안에서 열평형을 벗어난 특정 영역에 있는 우리들은 원래는 구별할 수 없는 2개의 시간 방향에서 보다 실현되기 쉬운 시간의 방향을 정하면 세상의 변화는 한 방향을 향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분자들은 에너지의 변형이 있을 경우 무작위분포를 따른다고도 설명한다. 무질서한 분자들의 확률은 높고 질서를 가진 분자들의 분포는 작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계에서 엔트로피의 자연적 증가는 그 계의 분자 에너지의 확률적 분포의 증가와 관련 있으며 이 엔트로피는 확률의 로그 값에 비례한다고도 설명된다.
그의 주장을 가장 잘 설명해 준 사람이 196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다. 그는 나노과학기술과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과학자로 명강연과 여러 재미있는 행적 등으로도 유명한데,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체스 말이 한둘만 놓인 체스판의 한 귀퉁이만 보면, 당장 무엇이 어떻게 될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체스 말 모두가 놓인 체스판 전체를 보면, 체스 말이 많아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여러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 행위도 따지고 보면 간단한 법칙을 따르는 하나하나의 원자가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데, 이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설명은 물리학의 한 분야인 통계역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기존 물리학의 주요 관심사는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기본법칙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중력, 전자기력 등의 입자 간에 상호작용하는 힘, 물체의 운동법칙 등 많은 물리학의 법칙들이 이에 속한다. 즉 체스에 비유한다면, 체스 말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규칙을 알아내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체스 말 각각의 규칙을 안다고 해서, 체스 한판의 승부를 예측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원자 등의 기본 입자에 작용하는 힘과 법칙 등을 알아냈다고 해서 자연현상을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체 및 유체의 운동, 기상의 변화 등 입자의 수가 매우 많은 대부분의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며, 인간을 포함한 생명현상도 그중의 하나다. 이와 같이 복잡한 자연현상을 많은 입자의 집단적 시스템의 운동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곧 통계역학이며, 극도의 복잡성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자는 것이 그 목표다.
학자들은 통계역학은 볼츠만에 의해서 비로소 등장했다고 말한다.
그는 ‘열현상의 비가역과정은 원자, 분자 등의 운동개념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당대의 저명학자인 오스트발트와 마하 등은 그와 수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실제로 1895년 뤼벡에서 열린 독일 자연과학자 대회에서 두 진영은 격돌했다. 큰 틀에서 원자론자와 원자 반대론자의 논쟁이다.
만물을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알맹이인 원자가 남는다는 원자론은 1808년 영국의 돌턴(John Dalton)에 의해「화학의 신체계」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제안되었다. 그러나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원자론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소와 산소가 화합하여 물이 된다는 것은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수소 원자 몇 개와 산소 원자 몇 개가 결합하여 물 분자 하나를 만드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원자들의 수를 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한 분자의 조성식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따라서 돌턴(Dalton)의 원자론이 나온 지 거의 100년이 되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분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과학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원자론자들은 이론으로 대응했다.
화학 반응에 참여하는 원자의 수를 세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은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였다. 아보가드로는 1811년에 같은 온도 같은 압력 하에서 같은 부피 속에는 원자나 분자의 크기와 관계없이 같은 수의 알갱이가 들어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만약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부피의 비가 바로 알갱이 수의 비가 되어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알갱이 수의 비를 알 수 있고 이것을 토대로 분자의 조성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이 가설의 문제는 화학 반응에서 그렇게 생각하면 전후 사정이 잘 맞기는 하지만 실험 등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도출한 가설에 불과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원자나 분자를 본 것이 아니다. 역으로 말하면 볼츠만은 미처 확립되지도 않은 원자론을 기반으로 기체 분자의 존재를 설명해가면서 역학적 모델을 추진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볼츠만의 반대론자들이 줄기차게 물고 늘어졌다.
원자론자들이 기체의 미립자 운동, 즉 브라운 운동을 분자운동의 이론으로 해석해 내는 등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자 결국 원자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힘을 잃는다. 이때 결정적인 강타를 날린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통계역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이다.
통계역학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과학 분야는 물론 철학이나 사상사적 측면에서도 널리 적용된다. 심지어 경제학, 정치학 등의 사회과학에도 응용되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 등의 ‘복잡성의 과학’에도 볼츠만이 그 토대를 제공했다.
볼츠만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 설명의 결정적인 단점은 엄밀함을 기본으로 하는 물리학에서 그 귀착점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해 다른 우주에서 열이 지구에서처럼 반드시 뜨거운데서 차가운데로만 이동하느냐이다. 이 문제는 다른 우주의 상황을 확인한 적이 없다는 것으로 미봉되지만 이들 질문이 아직도 상존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학자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불가역성의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에게 노벨상이 기다린다고 말한다.
<에너지론자와의 사투>
1871년에 볼츠만이 도입한 열역학 문제는 통계역학의 성립에 중요한 공헌을 하지만 당시는 원자나 분자의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시기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후에 볼츠만의 주장이 인정받지만 여하튼 볼츠만의 당대에 볼츠만의 이론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사람들이 에너지론자들이므로 이 문제를 다소 부연하여 설명한다.
에너지론자들로 유명한 사람이 마흐와 오스트발트 등으로 이들은 당대 물리학계의 거물이었다. 이들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원자로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물리학의 속성상 이용할 가치가 없다고 혹독하게 공격했다.
마흐는 자연과학에서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려고 하였고,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개념을 적극 반대했다. 그는 과학은 관측된 현상을 기초로 일반화하는 귀납적인 바탕 위에서만 과학이 형성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하는 죽을 때까지 세상이 맨눈으로 절대로 볼 수 없는 원자와 같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반면에 그는 보지도 못한 원자로 자연을 설명하는 것보다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이용하면 모든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기계적인 모델보다는 열역학적인 모델이 자연의 현상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볼츠만의 후배인 오스트발트는 보다 강하게 볼츠만을 공격했다. 그는 볼츠만의 복잡한 원자적인 계산보다는 물질의 현상적인 에너지를 연구하여 열역학적인 관점에서 물질을 보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현상이란 여러 형태의 에너지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듣는 것은 공기의 진동이 고막과 중이에 에너지형태로 전달되는 것이고 보는 것은 방사에너지의 망막에서의 화학작용 등을 감안하여 자연전체는 시공관적으로 변화되는 에너지의 연속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발트는 볼츠만을 철저히 무시했는데 학회에서 원자론을 전제로 발표하는 사람이 있으면 발표자가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무시한 채 다른 참석자들과 잡답을 했다. 논문 주제에 대해서도 항상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으며 끝은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원자를 본 적이 있나요?”
오스트발트나 마흐와 같은 거물의 공격에도 볼츠만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에너지에도 원자가 있다.”
원자도 에너지가 있다는 말은 당대에 한 마디로 코미디로 간주되었다. 결론을 말한다면 그의 말은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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