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동물을 재판하다

동물을 재판하다

Que sais 2020. 9. 1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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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재판하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s, (재위 기원전 486기원전465))다르달네스 해협을 건너 그리스를 공격할 때 수많은 병사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물에 빠트려 죽인 데 대한 벌로 바다에 태형 1,000를 선고했다.

 

이 못된 반역자야! 네가 허락하건 안 하건 크세르크세스 왕이 널 건널 것이다.’

 

페르시아 크레스크스1세 동전

바닷물에 태형을 때렸음에도 그의 그리스 정복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세계사에는 이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바로 인간에 피해를 준 동물에 대한 재판이다. 이는 동물에 의해 여러 가지 피해가 인간에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2012년에 출시된 영화 하울링은 매우 독특한 소재를 주제로 했다.

 

문의 연쇄 살인이 계속 일어나는데 단서는 짐승의 이빨자국뿐이다.

강력계 만년 형사 상길(송강호)’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살인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된 시한벨트발화장치에 의한 계획된 살인임을 알아낸다. 결국 범인이 알려지는데 늑대와 개의 혼혈인 늑대개.‘

 

물론 늑대개의 배후에 진짜 인간 범인이 있다는 뜻이지만 이처럼 범인이 동물인 경우 골머리 아파진다. 사실 세계적으로 동물에 의한 인간의 피해는 매우 많고 이들에 대한 재판도 매우 많이 열렸다.

유럽 중세에 동물들이 교수형 당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동물 특히 돼지들이 자주 재판에 올랐는데 동물에 대한 재판은 일반 범죄자와 똑같이 판사, 검사, 피고 동물 그리고 많은 방청객들이 참가한 정상적인 재판이다.

 

 

농부인 아빠와 엄마가 집을 비웠고 젖먹이 혼자 요람에 누워 있다. 범인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를 덮쳤다. 잔인한 살육으로 가엾은 아이가 죽었다. 범인은 곧바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준엄한 재판관들에 의해 공적인 재판이 진행되었고 범인은 교수형을 선고 받았다. 범인은 돼지였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재판과는 달리 재판 중 경고를 위해 마을의 돼지를 모두 참석시켰다.’

 

돼지의 공격

 

1131, 프랑스의 필리프 황태자가 돼지 때문에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힌 돼지는 살인죄를 적용했다. 재판과 처형 때 피고 돼지에게 사람과 똑같이 옷을 입혔다. 또한 돼지 처형장에서 경고로 당시 함께 있던 동물들을 참관시켰다. 처형되는 동물의 처형방법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화형단두형돌로 쳐죽이기는 물론 채찍질불로 지지기타르 칠하기털 뽑기주리 틀기내장 꺼내기 등도 있었다.

14세기 안주인이 폭행을 당했는데도 저지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는 이유로 가축들을 포함한 집 전체가 처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379프랑스에서 돼지 사육자의 아들이 살해될 때 말리지 않고 바라보았다는 이유로 그 지역 모든 가축을 처형하려고 했다. 돼지에게 사형이 구형되자 수도원장은 돼지들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경제적 파국을 피하기 위해 가축들을 사면한 것이다.

일반 법정에서 재판받는 동물은 거의 예외 없이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교회는 다양한 판결을 내렸다. 1559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참새가 어찌나 짹잭거리면서 목사의 설교를 방해하였는지 참새들을 파문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교회는 해충들 특히 애벌레달팽이메뚜기 재판했다.

동물도 정당하게 재판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변호사 선임도 가능했다. 변호사 선임 비용은 대체로 동물 주인이 지불했다. 변호사가 처형될 것으로 생각한 동물을 구할 경우 당장 선임비용을 받을 수 없게 되면 돼지를 도살할 때 다리 한 쪽을 변호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책임을 동물과 주인이 나누어 받는다는 뜻이다.

 

당나귀 재판

그러나 이들 작은 피조물들을 재판에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고뉴 지역에서 그 지방의 보리창고에 저장된 식량을 먹어치운 쥐들이 고발당했는데 쥐의 국선 변호사는 재판 일정에 피고인 쥐들을 참석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많은 농부들이 고양이를 키워 쥐들을 데려오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결국 쥐들의 소환 일정은 연기되었고 영구 추방을 명령받았다. 그러나 때때로 유머러스한 일도 벌어진다. 1519티롤 지방의 슈텔비오에서도 교회 판사는 영원히 추방 선고를 받은 들쥐 무리에게 자유 통행권을 허락했다. 개와 고양이들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적 판결1546프랑스 주교령 생장드모리엔에서 열린 교회 재판에서였다. 판사는 신이 모든 피조물이 먹도록 지상을 과일과 채소를 채웠다며 포도 재배 농민들이 곡식을 먹어버리는 딱정벌레를 상대로 낸 고발을 기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농민들이 계속해서 미사를 드리고 포도밭 주변을 돌면서 그들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는데 갑자기 벌레들이 줄었다. 딱정벌레들이 선처한 것이다.

물론 30여 년 후1587년 다시 딱정벌레들이 다시 나타나자 포도밭을 둘러싼 재판이 벌어졌다. 벌레들의 변호사들은 과거의 판결을 제시했다. 딱정벌레는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을 뿐이며 그 생계수단이 불행하게도 농작물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마을 사람들의 죄 때문에 신이 해충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딱정벌레는 양심수나 다름없다는 변호다.

반면에 농민들은 동물들이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으므로 죽일 수 있고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골머리 아픈 재판에 중재했다. 농민들이 딱정벌레에게 초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되 그곳에 있는 우물의 사용권과 전시에는 그곳을 피난처로 사용할 권리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딱정벌레 변호사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 지역의 식물들은 딱정벌레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그 이후의 재판 진행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들이 재판 기록 문서의 마지막 장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당히 첨예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해당 지역에 대한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판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문제 지역의 소유자가 인간인지 곤충인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17세기 법원배추를 파먹는 애벌레에게 생명과 자유, 행복한 죽음의 권리를 인정했다. 물론 그들을 들과 숲으로 단호하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당대의 동물 재판에는 돼지만이 아니다. 일반 법정에서는 가축만 재판했지만 교회 법정에서는 두더쥐메뚜기나방개미개구리해충들도 재판했다. 큰 동물이든 작은 곤충이든 법 앞에서는 모두 동등했다. 중세의 법률가들도 짐승들이 인간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입을 열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성직자들이 이들의 재판을 공적으로 처리한 것은 당대의 종교적 개념으로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중세시대 종교인들은 다리가 인간과 달리 여러 개인 피조물들에게 영혼이 있느냐로 논쟁을 거듭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과 악에서 인간은 신의 모습 그리고 짐승들은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마가 들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악마가 깃들어 사람들에게 해를 준 동물은 악마이므로 당연히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과의 재판에서 항상 동물만 피고인 것은 아니다. 특히 수간(獸姦)의 경우가 그러하다. 수간에 대해서는 1532년부터 황제 카를 5가 공포한 카롤리나법전에 따라 형을 받았는데 기본은 사형이다. 카롤리나법전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인간과 짐승,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불륜을 저지르면 화형시켜 그들의 삶을 구제해야 한다.’

 

이 조항은 모세의 제3계율인 수간은 사형죄다와 동일하다. 1602년 뉴욕 주의 헤븐에서 포터라는 사람이 개와 성교한 죄로 고발되었다. 포터는 후회한다는 증거로 개를 죽였지만 재판은 벌어져 포터에게 악마가 씌였기 때문에 개와 수간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처형당했다. 그의 뒤로 염소 1마리, 젓소 2마리, 3마리, 돼지 2마리가 따랐다.

1750암당나귀 한 마리와 수간한 남자가 재판을 받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는데 수녀원장이 사람이 아니라 당나귀 변호에 나섰다. 자신이 4년간 당나귀를 보았는데 항상 유덕하고 행실이 조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암당나귀성폭력의 희생자라고 변호했다. 암당나귀는 곧바로 풀려났고 남자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경우에 따라 판사가 은총을 베풀기도 했다. 18세기 영국에서 마부가 사고로 죽자 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말의 여주인이 판사의 선고를 듣고 기절하자 말은 사면되어 수레를 모는 대신 노동형으로 선고 받았다.

유럽에서 9세기 이후 공식적으로 진행된 동물 재판은 약 150건이 되는데 대부분 프랑스에서 열렸다. 피고로는 돼지가 대부분인데 이는 중세 초기에 돼지 사육이 크게 번창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돼지를 사육했다. 특히 돼지는 성안토니우스 보호 아래 있었으므로 통행이 자유로웠고 이 때문에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브라질의 산안토니오 프란체스카 성당에서 1713년 수도사들은 땅을 뒤덮고 있는 흰개미를 고발했다. 개미들의 변호인은 개미들이 수도사들보다 그 땅에 먼저 정착했으며 더 부지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회는 흰개미가 유죄이지만 수도사들이 개미들을 위한 대체 용지를 마련해 주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문은 규정대로 개미들 앞에서 낭독되었다. 수도원의 기록에 의하면 개미들에게 곧바로 새로운 땅이 주어졌는데 실현성있는 판결인지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한국에서도 동물 재판이 있었다.

태종 때코끼리 재판이다. 코끼리 재판은 동물재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 태종실록에 등장한다. 1411년 태종 때 코끼리가 들어왔다. 원래 베트남 지역의 남만과 일본이 수교를 맺으면서 남만이 선물로 일본에 코끼리를 주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조선의 고려대장경을 요청하며 코끼리를 조선에 보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당시의 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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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태종실록21, 태종 11222

일본 국왕(日本國王) 원의지(源義持)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씩을 소비하였다.일본 국왕이 우리 나라에 없는 코끼리를 바치니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다.

 

② 『태종실록24, 태종 121210

전 공조 전서(工曹典書) 이우(李瑀)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馴象)302) 을 바치므로 3군부(三軍府)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③ 『태종실록26, 태종 13115

병조 판서 유정현(柳廷顯)이 진언(進言)하였다.

 

"일본 나라에서 바친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玩好)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周公)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故事)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살인범인 코끼리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는데 궁궐에서 열린 살인사건이므로 정승이 재판관이 되고 병조판서가 검사를 맡았다.

처음엔 사형을 구형하려 했으나, 코끼리는 영물이라는 말이 있고 일본왕의 조공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귀양을 보내라고 선고했다. 궁궐에서 쫓겨나 귀양을 간 곳이 전라지방의 노루섬, 현재의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이다.

 

④ 『태종실록27, 태종 1453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順天府) 장도(獐島)방목(放牧)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瘦瘠)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하니, 임금이 듣고서 불쌍히 여겼던 까닭에 육지에 내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⑤ 『종실록11, 세종 3314

충청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공주(公州)에 코끼리를 기르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보다 열 갑절이나 되어, 하루에 쌀 2, 1말 씩이온즉, 1년에 소비되는 쌀이 48섬이며, 콩이 24섬입니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니,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니, 바다 섬 가운데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

 

하였다. 선지(宣旨)하기를,

 

"물과 풀이 좋은 곳을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

 

하였다.

 

이후 더 이상은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 후의 코끼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반면에 현대에 동물을 재판하지는 않는다. 현대 법정에서 사람만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222인제군 기린면 현리 전씨의 집에서 기르던 도사견 2마리가 박모씨를 물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개 주인은 관리 소홀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으므로 과거와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동물은 제거된다.

 

일본 오키나와 천녀천

참고적으로 일본에서 코끼리를 선물 보내면서 대장경을 요청하자 조선이 15세기 말 일본에 일부 고려대장경이 보내진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이를 오키나와유네스코세계유산수리성 인근의 천녀천에 보관했는데 불행하게도 1609년 화재에 타버렸다고 한다.

 

참고문헌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pros&logNo=1013409466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https://kiss7.tistory.com/1472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op_hty&fbm=0&ie=utf8&query=%EC%95%84%EC%9D%B4%EB%A5%BC+%EC%82%B4%ED%95%B4%ED%95%9C+%EB%8F%BC%EC%A7%80%EB%A5%BC+%EB%B3%80%ED%98%B8%ED%95%98%EB%8A%94+%EC%9D%B4%EC%95%BC%EA%B8%B0

갈릴레오에서 터미네이터까지, 에이드리언 베리, 하늘연못, 1997

클라시커 50 재판, 마리자겐슈나이더, 해냄,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