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사리(舍利)의정체

사리의 정체

Que sais 2020. 8. 2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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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舍利)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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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의 과학성>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물로는 불상불경사리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사리라고 할 수 있다. 사리는 본래 신체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Sarira에서 유래했는데, 이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여 사리라(舍利羅)라고 하였다가 줄여서 사리라 부르는 것이다. ‘을 의미하는 사리라는 복수형으로 되면 신골, 유골이라는 뜻을 가지므로 사리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리의 수습 절차다비(茶毘)의 마지막 의식에 해당한다. 다비불교계의 장례법으로 정착한 화장팔리어 원어자피타’(jhapit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다.

불교에서는 왜 사리를 중시하게 됐을까. 그러한 의문은 사리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면 쉽게 풀린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리는 본래 몸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인체를 화장하고 난 뒤에 남겨진 뼈 전체 또는 가루가 된 뼛조각까지 폭넓게 포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리는 단순히 죽은 자의 몸을 가리키거나 또는 그 뼈를 부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처를 향한 믿음이 충만한 불자들은 사리의 의미를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강우방의 글을 인용한다.

 

석가모니는 약 40년간 거리에서 가르침을 전하고 여든 살인도 북동부의 쿠쉬나가라에서 생애마쳤다. 석가모니의 시신은 이웃 부족인 말라족인도 장례 풍습에 따라 화장하였고 화장 후에 얻은 유골을 세우려 했다. 석가모니의 화장 소식은 이웃 부족들에게 전해져 여덟 개의 부족석가모니의 유골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석가모니의 유골여덟 부분으로 나누어졌고 각 부족이 각각 탑을 세웠는데 이를 근본팔탑(根本八塔)이라 한다. 그런데 유골의 분배가 끝난 후 석가모니의 열반 소식을 들은 모라족석가모니의 화장터에 남아 있는 재를 가져가 유골 대신 넣은 재탑(灰塔)을 세웠고 각 부족에게 원만하게 석가모니의 유골을 분배한 드로나 바라문석가모니의 유골을 담았던 (또는 항아리)을 가져가 유골 대신 병을 넣은 병탑을 세웠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기원전 273232)석가모니의 무덤 여덟 기를 발굴하고 그 안에 있던 석가모니의 유골을 나누어 통일 왕조 영토 곳곳에 무려 84천 기의 탑을 세웠다. 이후 (스투파) 석가모니의 유골사리를 봉안하는 구조물에서 나아가 석가모니의 실재로 인식되었다. 아소카왕84천 탑 건립에서 진정한 분사리의 원리가 확립됐다.

(중략) 사리는 탑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며 사리 봉안탑의 존재 이유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많은 승려들이 앞 다투어 사리를 구하기 위해 인도로 간 이유이다.’

 

부처의 사리진신사리, 불경()사리, 고승의 사리승사리로 구분하는데 이 중에서 승사리를 모신 탑은 부도(浮屠)라 하여 일반 불탑과 다른 형태로 제작한다. 우리나라불교가 전래된 것은 4세기 후반이지만 부도가 만들어진 것은 신라 하대인 9세기부터이다. 사리다비전전신사리(全身舍利)다비 후쇄신사리(碎身舍利)로 구분되는데, 다비 후 나오는 구슬 모양의 유골쇄신사리를 뜻한다. 사리는 크기도 다양하지만 색깔도 황금색, 검은색, 붉은색, 흰색 등이 뒤섞여 영롱한 빛깔을 띤다.

 

중국 법문사 부처님 불지사리(손가락)

 

건봉사 부처님 치아 진신사리

 

마곡사의 철환 스님사리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들었다. 사리불에 타지 않으며 부서지지도 않고 물 속에 넣었을 때 가라않지도 않은 채 중간에 떠 있다는 것이다.

사리의 수습 절차다비(茶毘)의 마지막 의식에 해당한다.

다비에 의한 장례법이 인도 불교 이래 불교적 전통이 된 요인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추정한다. 첫째 아열대성 기후라는 인도의 기후적 특성 때문시신의 부패를 막는데 다비가 적격이며 둘째 부처님의 장례다비했으므로 셋째부처님사상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다비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비에는 바람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육신을 다시 원류로 보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석가의 몸에서 나온 사리진신사리라 한다.

삼국유사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최초로 사리가 전달된 것은 신라 진흥왕 10(549)으로 양나라에서 사신으로 입학승 각덕과 함께 파견하면서 부처의 사리를 전하자 왕은 백관으로 하여금 흥륜사 앞길에 나아가 맞이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 12(643)자장법사당나라의 오대산 태화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불정골(부처의 정골 뼈)와 치아사리 등 백 개와 부처님이 입었던 가사 한 벌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장법사부처님의 진신사리황룡사 탑과 태화사 탑, 그리고 통도사 불단에 나누어 봉안했으며 추후에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5대 적멸보궁) 등에 나누어 봉안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하는데 여기에 금강산 건봉사가 포함된다.

 

통도사 부처님 진신사리

임진왜란 때 왜군이 통도사의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를 탈취해가자 선조38(1605) 사명대사강화사일본에서 이를 되찾아와, 당시 한국 4대 사찰 중에 하나인 금강산 건봉사에 봉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강산 건봉사민통선 안에 위치했기 때문에 전문도굴꾼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어렵고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사리를 절취해갔다. 알려진 이야기로는 사리를 훔쳐간 일당들이 절취후 꿈에서 절에 사리를 돌려보내라부처님의 소리를 며칠 간이나 계속 꾼 후 사리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12과 중 8과만 회수되고 4과는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적으로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에서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불상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는데, 적멸보궁은 부처에게서 나온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이다. 진짜가 있는데 굳이 대체물을 놔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고승 가운데 사리가 나온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구산 스님의 53를 필두로 1966년에 송광사에서 열반한 효봉 스님 34, 자운 스님 19, 탄허 스님 13, 학명 스님 10, 청담 스님 8, 혜운 스님 20, 금담 스님 4, 성철 스님의 스승인 동산 스님과 용성 스님이 각 2의 사리를 남겼다.

특히 19931110 거행된 조계종 성철 종정 다비식에서 석가모니 이래 가장 많은 사리가 나와 불교계와 일반인의 관심을 모았다. 성철 종정 장례 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성철 종정의 법골로부터 모두 110()의 사리가 최종적으로 수습되었는데 사리들은 콩알 크기로부터 쌀알 반 쪽 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사리들은 정골(頂骨: 머리) 부분에서 5060를 비롯, 법체의 각 부분에서 고루 나왔는데 분류하지 않은 정골과 재 속의 것 8090를 합하면 공식 발표보다 훨씬 많은 모두 200 가까이 된다고 발표했는데 이 숫자는 석가모니 이래 가장 많은 사리라고 알려진다.

 

성철스님 사리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탑

 

2003에도 정대스님으로부터 120과의 사리가 나왔고 좌탈입망(좌선한 채로 열반에 드는 것) 상태로 입적한 서옹 스님4가 나왔다. 정대 스님의 사리는 가장 큰 것이 지름 1.5센티미터나 된다고 알려졌다. 20055에 입적한 벽암(碧岩) 스님의 몸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찿기 힘든 연꽃 모양의 사리가 수습되기도 했다.

반면에 지난 1982에 입적한 경봉 스님을 비롯, 만공스님 등은 사리를 남기지 않았으며, 은허 스님법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있지 사리에 구현된 것은 아니라며 자신의 입적 후에 사리 수습을 못하게 했다. 200411에 입적한 조계종 원로 석주(昔珠, 봉은사 조실) 스님다비식에서도 스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고 2010 입적한 법정스님도 자신의 몸에서 사리를 찾지 말라하여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다.

불교계에서 발표하는 사리에 대한 내역을 보면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조선에 많은 사리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 초기 태종의 척불 사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명나라의 황제조선에서는 숭불(崇佛)을 하지 않으니 보관하고 있는 사리를 거두어 달라고 요구했다. 태종은 각 도에 관리들을 파견하여 각 사찰이 보관하고 있는 사리를 거두었다. 충청도에서 45, 경상도에서 164, 전라도에서 155, 강원도에서 90, 도합 454이다. 태조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사리 303를 더하여 757중국에서 온 사신 황엄(黃儼)에게 전해 주었다. 태종 7(1407) 5의 일이다.

위의 예를 보아도 한국에서 발견되는 사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불교계에서는 그만큼 사리가 나오는 고승이 많았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석가의 진신사리라고 알려진 것만 해도 그 양이 너무 많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므로 불교계에서 신앙심 고취를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리를 비밀리에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리에 대한 의구심은 사리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실 이 질문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사리가 일반적으로 불교라는 종교에 접목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설명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사리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연구 자료가 많지 않으므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리에 대한 궁금증현대 과학자들이 그대로 둘리 만무이다.

사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가 어느 날 대신들에게 사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하고 묻자 하륜이 대답했다.

 

정신을 수련하면 정기가 생기고 정기가 쌓이면 사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다의 조개에도 보주가 있고 뱀에게도 명월주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 그런 구슬이 생기겠습니까?”

 

당시 불교배척하는 국시를 의식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태조신덕왕후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여 왕후의 원찰흥천사불사리를 모시고 명복을 빌었다.

조개의 몸 안에 모래알, , 기생충 같은 것이 들어가면, 진주층과 같은 물질인 진주질(眞珠質)로 이것을 둘러싼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을 천연 진주라고 한다. 진주가 생기는 상세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으나 진주질을 분비하는 외투막의 세포가 들어온 물질을 싸서 펄삭(Pearl sac)이라는 자루 모양의 조직을 만들어 둘레에 진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생기는 사리진주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는 해석은 수많은 사리가 한 사람의 몸에서 생기는 것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체 물질의 하나로 만들어지는 진주가 사리의 한 배경이 된다면 몸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인체의 담낭의 담석이나 공팥의 결석, 심지어 위장에서 생기는 위석(胃石)이 사리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문명에서 컴퓨터에 많이 앉아 있으면 담석이나 결석이 생기는 수가 많은데 그것은 불교의 수도자들이 정좌하여 참선 생활을 평생 동안 이어갈 경우 사리가 많이 생기는 경우와 유사한 것이다.

여하튼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부분 유기물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생명현상과 관여하는 물질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 유기물질다비식과 같은 고온의 불길에서는 모두 연소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불길 속에서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무기물로 이루어진 뼈와 약간의 칼슘 성분으로 구성된 오색영롱한 사리뿐이다.

사리가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은 고온에서 뼈와 칼슘 성분 등으로 구성된 유리질 성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명하지 않은 사리들도 많다. 담석이나 결석콜레스테롤이 많을 때 생기기도 하는데 그 색갈이 노란색, 파란색 등 사리처럼 오색의 갖가지 색을 가지기도 한다.

연세대학교의 이무상 교수사리 자체를 분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칼슘을 많이 포함한 신장의 결석이나 담석이 사리가 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 몸에서 가장 흔한 무기물칼슘이고 이 칼슘이 고열 속에서 다른 유기물질과 결합하여 어떤 화학변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뼈를 제외하고 우리 몸에 생길 수 있는 무기물로는 콩팥의 결석이나 간이나 쓸개, 기관지에 생기는 담석 등이 대표적이다. 콩팥 결석이나 담석은 모두 칼슘을 포함하여 나이가 많아질수록 잘 생기며 사실 돌 자체는 우리가 밥 먹고 사는 동안 계속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병률이 30%, 증상이 있는 유병률이 8%나 되기 때문에 매우 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학계에서는 정좌한 채 몇 년씩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영양상태도 좋지 않고 신진대사가 원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성철 스님15년간앉아서 잠을 잤기 때문에 유래 없이 사리가 많이 나왔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전세일 박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몸 안에 생기는 결석(돌멩이)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몸 안에서 돌멩이(結石)가 생긴다. 모래알도 생기고 자갈, 조약돌도 생기고 주먹만한 돌덩어리도 생긴다. 가장 흔히 생기는 장기가 담낭(쓸개)과 콩팥이다. 콩팥에서 방광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요로라고 한다. 요로에 모래알이나 자갈돌이 생겨 있는 것을 요로결석이라 부른다. 요로결석은 비뇨기과에서 발병 빈도가 높은 중요한 질환으로 전체 환자의 12%나 된다.

(중략) 쓸개에 생기는 돌을 담석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콜레스테롤로 이뤄진 담석은 색깔이 노랗고 사이즈가 크며 가장 흔한 편이다. 칼슘이 주성분으로 이뤄진 담석검정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칼슘과 단백질이 섞여서 생긴 담석갈색을 띤다. 담석의 자극으로 염증이 생기는 것을 담낭염이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오른쪽 가슴 밑과 바른쪽 어깨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담석으로 인한 통증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하다.

(중략) 이빨에 생기는 돌은 치석이라 한다. 음식을 섭취한 뒤에 치아에 부착되는 치태(dental plaque)침샘에서 분비되는 무기질이 합해져서 돌멩이가 생성된다. 침샘에 생기는 돌이 타석(唾石)이며, 귀밑샘, 턱밑샘, 혀밑샘 등에 생길 수 있다.

위장에서도 돌멩이가 생긴다. 이런 위석(胃石)은 이물질이 위내에서 지속적으로 응결되어 생성되는 것이다. 주로 우리가 삼킨 식물섬유, 모발(), 약물, (), 플라스틱, 종이 부스러기 등에서 돌이 생겨난다.

통풍도 일종의 돌멩이이다. 요산이 축적돼 돌처럼 딱딱해지는데 가장 흔히 생기는 부위는 엄지발가락이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사리(舍利)도 역시 돌인데, 우리나라 성철 스님에게서는 130여개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리결석이라는 설명은 매우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리가 나온 스님은 모두 입적하기 전까지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성철 스님의 경우 목 부위에서 나온 수많은 사리가 결석이라면 거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서울대학교의 서정돈 교수사리 결석이라는 의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표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담석 또는 결석론도 사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담석 등의 칼슘 성분은 뼈보다도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이 가설에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시신을 단시간에 고열에서 처리하는 화장의 경우는 아주 큰 뼈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버리지만, 그보다 긴 시간 동안 태우는 다비 의식의 경우 어떤 요인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비식의 경우도 사리가 보통 사람에게서 거의 나오지 않고 수행을 많이 한 스님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다비 의식에 어떤 요인이 있다면 다비식을 치른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리가 나와야 하는데 다비식을 한 모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월하스님 다비식(사진 혜천스님)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액 축적설도 있지만 그것도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정액 축적설은 성생활을 하지 않고 참선으로 평생을 수행한 스님을 화장할 때 사리가 나온다고 알려진 통설인데 여승이나 평범한 불자로부터 다량의 사리가 나온 사례도 있다. 특히 석가모니결혼하여 자식까지 있다.

사리의 양법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사리의 양과 수행의 정도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리가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매우 얻기 어렵고 으뜸인 복전이라고 설한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 유래한다. 일부에서는 도의 경지보다 몸을 깨끗이 수행한 자에게서 나온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리공양에 의한 공덕의 유무 문제 초기 불교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속설과는 달리 일부 불교계에서는 수행 정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승으로 알려진 스님으로부터 사리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성철스님이 입적한 다음해인 1994년 경남 고성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75세의 할머니경남고성 공설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는데 불자가 아닌 이 할머니의 몸에서 청색, 황색, 회색, 흑색을 띤 400 여과의 사리가 나왔다고 알려진다. 크기도 대형으로 6센티미터 1, 5센티미터 1, 23센티미터 15, 콩알만한 것 15과 합하여 모두 413가 나왔다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이 내용을 두 가지 시각으로 설명한다.

첫째할머니불교신자인데 전생에 그만큼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다소 어지러운 이야기이지만 일반 사람은 물론 평범한 스님으로부터도 간혹 사리와 같은 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는 이때 나오는 것이 사리인지 아닌지 엄밀한 규정에 의해 판정하는데 이때 나오는 것 거의 대부분 사리로 판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할머니의 사리도 엄밀한 규정에 의해 판정된 것인지에 대한 일말의 뉴앙스를 남겨준다. 참고적으로 스님을 화장했을 때 사리와 같은 것이 나왔지만 사리로 판정받지 못하면 사리탑이 아니라 부도탑에 안장한다고 한다.

여하튼 사리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끌게 되자 사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추출한 유기물이나 무기물고열로 처리해보면 무언가 단서가 잡힐 것이라며 실험을 역설했다.

반면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사리를 굳이 과학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사리에 대한 분석이 사리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손상을 줄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의 호기심이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일 리 만무이다. 드디어 사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도되었고 인하대임형빈 박사사리 1()를 분석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하여 티타튬,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탈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불소, 산화규소12이 검출되었다.

사리의 성분이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사리의 굳기경도1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2000천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특히 결석의 주성분칼슘, 망간, , 등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

 

한 과()의 사리를 분석한 것이지만 임 박사는 사리가 결석이라는 주장을 단호히 배제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뼈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발견되고 사리의 강도강철보다도 단단했다는 점이다. 프로트악티늄(용융점 1600), 티타늄(용융점 1727)은 고온에서 녹는 물질이지만 리튬(용융점 186) 등은 저온에서 녹으므로 발견되지 않는 것이 상식(다른 원소와 결합되면 고온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고 알려짐)인데도 발견되었다. 특히 방사성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등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원소상온에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불교계에서 사리라고 발표되는 것에는 그 어떤 신비가 들어있음이 틀림없다는 설명이지만 미래 어느 날 인간의 지혜는 이런 미스터리도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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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불교의 사리에 대한 고찰, 김진환, 한국불교학, 1986

사리신앙에 관한 연구, 김재철,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2

인체에 생기는 돌멩이, 전세일, 한겨레21, 2004.01.14.

벽암 스님 연꽃 사리화제, 김한수, 조선일보, 2005.8.13.

스님의 사리, 과학적 증명 가능할까?, 이종호, 과학향기, 2010.04.22

다비와 사리, 박경준, 대원사, 2001

사원 건축, 신영훈, 대원사, 2002

, 강우방, ,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