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종(種)은 참으로 독특하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왜 지금처럼 행동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쓴다. 유사 이래 끊임없이 제기된 이런 의문에 대해 현대과학이 내놓고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 중 하나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설명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왜 멸종한 동물들과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동물들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가’가 궁금했다. 오늘날의 동물들은 결국 화석 동물들의 변형된 후손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큰 의문점이었다. 그 이유를 다윈은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서 생명체가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일반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부른다.
다윈의 진화론은 우리에게 단순함이 어떻게 복잡함으로 바뀔 수 있는지, 어떻게 무질서한 원자들이 서로 결합해 더욱 복잡한 형태로 바뀌고 결국은 인간까지 만들어내게 되었는지를 비교적 만족스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다윈은 우리의 존재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이제까지 제시된 답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럴듯한 답을 제공한 최초의 인물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말을 타고 팜파스(인디오 말로 ‘평원’)를 달리던 다윈은 드넓은 초원에서 야생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토끼 서식 환경을 잘 알고 있던 다윈에게 토끼가 잘 자랄 수 있는 팜파스에 토끼가 없다는 것이 수수께끼였다.
다윈의 결론은 마치 난센스 퀴즈의 답과 같다. 정답은 팜파스에 토끼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팜파스에 토끼가 살지 않는 이유는 토끼가 아프리카에서 남아메리카로 대서양을 헤엄쳐 건너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다. 다윈의 역작인 진화론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다윈은 더 나아가 인간이 단지 지능이 뛰어난 동물의 한 종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노트 위에 한 종이 새로운 종으로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계통도를 그리면서 인간도 진화의 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원숭이에게서 왔는가?”
다윈은 자신의 생각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는 주장은 당시의 학계로부터 왕따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과감히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다윈은 꼼꼼하고 신중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들을 계속 모으면서 자기의 이론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가 1798년에 쓴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맬서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생물은 많은 자손을 만들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모두 자란다면 지구는 곧 포화 상태가 될 것이다. 인구의 증가는 식량의 증가보다 빠르다. 따라서 인간의 수를 전쟁, 질병 등으로 항상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생활이란 생존을 위한 투쟁이며 여기에서는 가장 잘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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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에 따르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식량 공급은 한정된다. 그 결과 인위적인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에 빠지게 되므로 자연적인 요소가 개입하여 가장 허약한 인구 집단을 절멸시킨다는 것이다. 다윈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적자만 생존하고 부적자는 멸종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추정이라는 것이다. 부적자의 생존을 허락하는 환경을 가진 장소가 있는 경우에는 부적자도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 진화론은 물리학에서 뉴턴이 발견한 것과 거의 비슷한 무게를 가진다. 이 두 과학자는 선배 과학자들이 쌍아놓은 토대와 거의 무관하게 자신의 업적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특히 이들 업적은 거의 독립적으로 이룬 것이며 믿을 수 없으리만큼 독창적이고 포괄적이다. 그러므로 다윈을 생물학계의 뉴턴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뉴턴이 우주의 이해로 통하는 문을 열었지만 다윈은 생명의 이해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여하튼 진화론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인간의 본질, 존재의 의미에 큰 이정표를 주었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지만, 현대 산업 사회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럽이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확보한 제국주의가 생존 경쟁의 논리를 펼친 진화론에 근거한 것임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그보다 더 큰 틀에서 인간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현대의 유전자이론 등이 나오기 전 당대의 과학 기술 수준에 기초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어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 부분 힘에 부치기도 한다. 따라서 『종의 기원』에 설명된 내역의 중요 부분과 『종의 기원』 이후부터 현대까지 진행된 연구를 중점적으로 비교하여 설명한다. 현대과학은 많은 부분에서 다윈이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단순화시켜 현대인들에게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케빈 랠런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다소 생소한 말로 설명한다.
‘우리의 정신은 본래 원시시대의 수렵ㆍ채집인처럼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발버둥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털 없는 원숭이‘처럼 행동하게 된다. 성폭행은 자연스럽고 남자의 바람기는 불가피하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다.’
케빈 랠런드 박사의 설명이 많은 학자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것은 한마디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으뜸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원숭이와 다름없다는 것을 간략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와 같이 명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현대과학의 수많은 정보가 바탕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사가 이런 단순한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에 부단히 제기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진화론적 관점이 인간의 근본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를 증빙하는 것은 진화론이 생물학 분야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심리학’, ‘진화인류학’, ‘진화경제학’ 등 신생 학문을 비롯하여 사회과학 쪽으로도 점점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아주 작은 의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도 이러한 아이디어를 쉽게 생각해 낼 수 있지만 다윈의 업적은 이러한 작은 생각에서 출발해 진화론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했다는 데 있다. 그가 도출한 진화론을 담은 ≪종의 기원≫은 인류사의 위대한 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은 세계의 각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인류사를 바꾼 위대한 발견 열 가지를 선택했는데 첫 번째로 다윈의 진화론을 올려놓고 아인슈타인이 구상한 ‘상대성이론’과 ‘E=mc2’ 두 가지를 지식적 업적의 둘째와 셋째로 꼽았다.
줄리언 헉슬리 경은 ≪종의 기원≫ 출판 100주년을 기념해 진화론이 인류사상 최고의 발견으로 알려질 정도로 중요성을 부여받고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썼다.
'첫째로 당대 사람들이 믿고 있던 생각과는 달리 현존하는 동물 및 식물이 처음부터 개별적으로 그들의 현재 형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완만한 변형에 의해 초기의 형태에서 진화되어 온 것이라는 방대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종의 기원≫에서 그가 명쾌하게 설명한 자연 선택의 이론이 진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의 장점은 진화가 보편적인 현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갈파하고 가장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한편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그에 반대하는 주장을 일일이 격파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의 혁신적인 진화론에 두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의 증거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정황적인 것이지 확연한 과학적 사실에 의해 증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그의 종교적인 믿음에 명백히 반(反)한다는 것이다. 다윈은 종의 독자성과 불가침성, 생명의 목적성, 그리고 인간의 도덕적 지위가 그의 이론에 의해 손상을 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이런 문제를 극복할 방법으로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완전히 증명했다고 말하지 않고 자연 선택은 생물체의 다양성에 대한 주요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이 가정에 의할 경우 이제까지 생물계에서 혼란스럽고 연관이 없어 보이는 모든 종류의 생명체는 그 존재 이유와 존재하게 된 방법에 대해 쉽게 설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대의 과학 수준에 기초한 이론이었기 때문에 방대한 자료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그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종의 기원≫을 발표하자마자 세기의 ‘원숭이 논쟁’에 휘말린 것은 그 때문이다.
다윈이 생존 경쟁이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은 생태계를 유심히 관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곤충의 번식력을 계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파리 한 마리가 한 번에 200개의 알을 낳는데 그것이 전부 파리가 된다면, 그중 암컷이 절반인 100마리라고 추정했을 때 그 파리가 다시 200개씩 알을 낳아 2만 마리의 파리가 되고, 그중 절반인 1만 마리의 암컷이 다시 200개씩의 파리를 낳는다면 단 세 번의 번식으로 무려 200만 마리의 파리가 태어난다고 추산했다.
그들이 다시 알을 낳고 또 알을 낳으면 세계는 몇 년 안에 파리 천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번에 200개의 알을 낳는다 하더라도 알을 낳는 파리는 두세 마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윈의 자연 선택이라든가 생존 경쟁이라는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진화론은 한마디로 자연계의 수많은 생명체가 다같이 영양, 생식, 환경 조건의 제약을 받으며 상호 연관되어 변하고 진화한다는 뜻이다.
다윈은 더 나아가 인간이 단지 지능이 뛰어난 동물의 한 종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노트 위에 한 종이 새로운 종으로 가지치기를 해나가는 계통도를 그리면서 인간도 진화의 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원숭이에게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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