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의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다윈의 진화론

다윈의 진화론이 만든 세상(2)

Que sais 2020. 9. 18. 20:27

 

youtu.be/b640AM3qoCE

진화론 자체는 다윈 이전에도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행성 체계태양이 중심일지 모른다는 주장코페르니쿠스 이전에도 있었던 것처럼 일련의 선구자들이 다윈에 앞서 종의 변화를 거론했다.

뷔퐁 백작 조르주루이 르클레르(1707~1788)

프랑스의 자연학자이며 파리왕립식물원의 총책임자였던 박물학자 뷔퐁(Georges Louis Leclerc de Buffon, 17071788)종들이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찰스 라이엘(1797~1875)

영국의 저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종들이 먹이와 영역을 두고 벌이는 싸움에서 어떤 종은 승리하고 어떤 종은 패배하기 때문에 결국 강한 종이 번성한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래즈머스 다윈(1731~1802)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도 일련의 과학적 시를 통해 유용한 형질생물학적 유전을 통해 대물림되며 그런 형질들이 서서히 축적되면 다양한 생물이 탄생한다고 믿었다.

라마르크(1744~1829)

그러나 진화론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다윈과 쌍벽을 이루는 라마르크(Chevalier de Larmarck Jean-Baptiste-Pierre Antoine de Monet, 17441829). 그가 자신의 형질변경이론을 적은 동물 철학(Philosophie zoologique)을 발간한 것은 1809년으로 다윈종의 기원이 발간되기 50년 전이다.

동물철학(1809)

그는 생물의 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자연의 계단위를 몸부림치면서 기어오른다는 진화의 개념을 도입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전성을 획득하면서 진화하는데 이는 동물들이 환경 조건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의지를 구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라마르크가 제시한 예는 기린이었다. 그는 영양이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먹으려고 오랫동안 목을 늘이다 보니 기린이라는 새로운 종으로 변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두더지나 도롱뇽의 눈처럼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는 기관퇴화한다는 주장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라마르크와 다윈의 이론은 차별화되는 점이 있으므로 별개의 이론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라마르크획득 형질의 유전을 주장했고 다윈획득 형질의 유전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윈획득 형질이 유전된다고 믿었다. 다윈과 라마르크의 차이라마르크진화의 요인획득 형질의 유전이라고 본 반면에 다윈은 진화주된 추진력으로 획득 형질의 유전보다는 생존 경쟁을 꼽았다.

다윈의 설명라마르크의 이론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있다. 라마르크환경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바람직한 변이를 낳는다고 단순하게 설명했다. 다윈 라마르크와는 달리 특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번성할 수 있는 특성진화시킨 종이 그렇지 못한 종보다 우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라마르크기린이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먹기 위해 자꾸만 목을 뻗다 보니 목이 길어졌다고 했지만 다윈은 우연히 다른 기린보다 더 긴 목을 가지고 태어난 기린이 먹이를 차지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더 빨리 번식했다고 설명했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과 뷔퐁, 라마르크 등이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했는데도 그들보다 후대의 다윈진화론의 실질적인 주창자로서 인식하는 이유는, 다윈보다 선행한 사람들이 진화가 일어나는 이유와 과정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설명으로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윈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메커니즘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설을 지지하게 할 만한 수많은 증거를 제시했다. 한마디로 종이 변화할 수 있는 개연성을 수많은 자료로 자연스럽게 설명해 준 것이다.

비글 호 모형

다윈이 진화론을 쓰게 된 계기는 대영제국의 군함 비글호(HMS Beagle) 탑승이다. 영국 정부는 정밀한 신형 시계를 검증하고 해군이 사용하는 남아메리카의 해안선 지도를 개량하기 위해 해군 탐사선 비글호에게 세계 일주 항해를 명령했다. 비글호는 당시 새로 발명된 피뢰침큰 돛대 끝과 뱃머리 돛의 끝에 설치할 정도로 첨단 장비로 무장했으며 길이 27미터500 정도가 되는 작지 않은 선박으로 승무원도 70여 명이나 되었다. 다윈은 우여곡절 끝에 무보수 박물학자183112월부터 183610월까지 탐험에 참가했는데, 특히 1835915일부터 1020까지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탐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글호의 항해 목적파타고니아, 푸에고 섬, 칠레, 페루남아메리카의 해안과 태평양의 섬들을 조사하는 것이었으므로 다윈갈라파고스 제도만 방문한 것은 아니다. 이것도 다윈진화론을 생각하게 된 또 다른 계기가 되었. 그런데 그가 처음 방문한 섬 중에서 갈라파고스 제도곤충과 포유류가 적은 반면에 파충류와 조류의 천국이었다.

갈라파고스 제도생물들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는 매우 달랐다. 파충류와 조류뿐만 아니라 곤충,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다윈이 잡은 15종의 물고기 전부와 185(또는 외지에서 온 잡초를 뺀 174) 가운데 꽃피는 식물 100이 신종이었다. 그야말로 갈라파고스 제도의 보고(寶庫)였다. 다윈이 놀란 것은 이 신종들에게서 멀리 500600마일이나 떨어진 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의 생물과 어딘가 다르면서도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윈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사실은 그에게 큰 의문을 주었으며 이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화론의 기본 아이디어가 되었음을 확연히 보여주는 글을 비글호의 항해(The Voyage of the Beagle)에 적었다. 이 책은 다윈비글호의 항해를 끝낸 1836에서 얼마 되지 않는 1839년부터 1860까지 여러 번 수정·보완되면서 발간된 것이다. 이는 다윈비글호의 항해를 끝낸 지 얼마 안 되어 이미 진화론의 기본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많은 종이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 간의 차이점들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논문이나 책을 발간하려고 하지 않았다. 머리말에서조차 자신의 연구가 끝나려면 마무리까지 23은 더 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지만 특별한 사건이 생겼기 때문에 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적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사건이 그로 하여금 조속히 논문과 책을 발간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1823~1913)

그것은 1858618, 동인도 제도에 사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다윈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 때문이다. 월리스다윈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다윈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무명의 월리스는 대학자인 다윈에게 자신의 논문 초고를 보내면서 다윈의 의견을 물었다. 월리스1823년 영국 남서부(웨일스 지역)에 있는 궨트 주의 우스크에서 태어났다. 월리스학교 교사 시절에 사귄 베이츠와 함께 1848년부터 1852까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지방으로 박물 채집에 나섰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1853아마존 및 리오네그로 여행 이야기를 출간해 학회에 알려졌다. 1854년부터 1862까지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 제도를 여행하여 1869말레이 군도라는 책도 출판했다.

이때 맬서스인구론을 읽은 월리스다윈과 종의 진화에 대한 동일한 결론을 내린 후 다윈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다윈은 이 편지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화에 대한 이 논문의 결론맬서스인구론을 인용한 것부터 자연선택설까지 다윈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였으므로 다윈과 월리스가 이 책을 읽고 같은 결론을 유도한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신과 똑같은 결론을 내린 월리스의 논문을 보고 다윈은 재빨리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조지프 후커에게 편지를 보내고 조언을 구했다. 라이엘다윈에게 두 사람 공동의 논문을 권위 있는 린네학회지에 발표하고 또 그가 집필해 놓은 원고를 조속히 정리해 출판하도록 충고했다. 월리스의 동의를 얻은 다윈이 이 충고를 따랐고 다윈은 그동안 작성 중이던 종의 기원에서 발췌해 185871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즉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존속(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으로 린네학회지7편의 논문 중 하나로 발표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당시 발표회에는 30여 명이 참석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 후 세계를 온통 논쟁 속으로 몰아넣은 다윈과 월리스의 논문주목하지 않아 토론도 없었다.

다윈과 월리스가 공동으로 진화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다윈진화론의 시조로 거론되는 이유는 1842년 다윈진화론의 얼개종의 변화에 대한 기록(Notes on the Transmutation of Species)이라는 35쪽짜리 짤막한 논문을 지인들에게 알려주었고 종의 기원을 발표하기 거의 15년 전인 1844년에 소논문(230쪽에 달함)으로 작성하여 당시 유명한 학자였던 라이엘과 후커에게 보여주었으며 또한 다윈이 한 미국인 교수에게 자신이 연구하는 내용을 적어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논문이 발표되기 20년 전에 그가 비글호의 항해를 마친 후 비글호의 항해기를 발간한 것도 영향을 주었다.

다윈은 머리말에서 종의 기원초본불완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출판한다는 것도 실토했다. 그러면서도 다윈은 자신이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자신의 책에 나오는 내용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서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다시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가 종의 기원을 발간한 후 일어나게 될 후폭풍사전에 예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진화론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인간의 본질, 존재의 의미큰 이정표를 주었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지만, 현대 산업 사회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럽이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확보한 제국주의생존 경쟁의 논리를 펼친 진화론에 근거한 것임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그보다 더 큰 틀에서 인간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었을 때 유럽은 엄격하게 제한된 사회 구조를 갖고 있었다. 각 개인이 사회 구조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계급 제도 속에서 복잡한 상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만 했다. 중세 시대농노, 기사, 영주, 절대 군주에 이르기까지 불평등한 계급 구조는 당시 어느 정도 해체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각 계층은 자신이 속한 계층에 따라 상대방과 경쟁하면서 살아야 했다.

이것이 산업 시대 진화론이 매우 적합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진화론다양한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를 정당화하기에 좋은 이론이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다윈의 진화론자연의 원리공평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므로 사회적 환경이나 문화적 편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누구든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가 원하는 사회적 목적에 맞게 다윈의 진화론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사실상 다윈이 살고 있던 당시는 농업경제로부터 상업자본주의 시대로 이전하던 과도기적 시기였다. 당시 영국혁명적 변화의 선봉에서 유럽의 경제생활을 변모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낯선 변화의 과정에서 다윈의 진화론처럼 입맛에 맞는 이론은 없었다. 한마디로 재빨리 변화하는 산업 사회에서는 더 이상 무작위적인 자연 선택 과정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역설도 성립한다. 생물들은 자기 자신을 역동적으로 조직화해 창조하지 않으면 결국 다윈이 지적한 것처럼 절멸 수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의 기원19세기에 출판된 자연 과학 책 중에서 인간의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었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의 책 때문에 말썽이 벌어지는 것을 반기지 않았으므로 종의 기원에서 인류에 대한 것은 쓰지 않았다. 신의 섭리도 아닌 우연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자연 선택만으로 다양하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지구상의 생명체가 태어났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

더불어 다윈의 진화론다윈의 또 다른 역작인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을 참조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므로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한다.

 

참고문헌 :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을유문화사, 2007.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이종호 편역, 지만지, 2010.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찰스 다윈, 이종호 편역, 지만지, 2011

센스 앤 넌센스, 케빈 랠런드 외, 동아시아, 2014

인류사를 바꾼 위대한 과학, 아널드 R. 브로디 외, 글담출판,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