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의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불로초 '유산균'

장수의 불로초, 유산균(1)

Que sais 2020. 9. 23. 08:51

youtu.be/CmR5hScNubo

어느 분야든 수많은 학자들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보다는 성공한 사람들만 기억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공한 사람1이라면 실패한 사람99일 정도로 실패한 사람성공한 사람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을 더욱 평가하고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

그런데 역사를 보면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행운이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 학계에서는 가장 운이 좋은 사람으로 파스퇴르를 종종 거론하는데 1908년 에를리히와 함께 노벨상을 받은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 18451916) 보다 행운이 따라 다니는 사람으로 거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그는 항상 들떠 있었고 침착하고 과학적인 탐구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여러 번 적중하여 노벨상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메치니코프 (1845〜 1916)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

<가끔 옳은 소리를 하는 메치니코프>

메치니코프1845러시아의 남부지방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그는 자신이 타고난 재능이 있다며 뛰어난 연구원이 되기 위해 하리코프 대학에 갔다. 그는 몇 달 동안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순전히 독학으로 단백질의 결정이라는 논문 작성에 몰두했다. 후대의 과학사가들은 그 당시 메치니코프과학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라고 말할 정도로 무모한 일이었다.

미국 우주 왕복선 또는 러시아 우주 정거장 미르에서 자라는 단백질의 결정

또한 그는 당대에 유럽을 강타한 공산 이론에 심취하여 무신론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친구들은 그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고 누누이 친구들에게 강조하여 빈축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학기가 끝나기 며칠 전부터 그동안 무시했던 시험공부를 하더니 1등으로 시험에 합격했고 금메달을 받았다. 메치니코프기고만장하지 않을 리 없었다.

여하튼 그는 자신이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고 조급한 면에서는 누구도 그를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현미경으로 벌레들을 관찰하는 법을 배운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미친 듯이 논문을 쓴 후 과학 잡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그런데 다음날 자신의 논문많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서둘러서 편집자에게 자신이 실수를 발견했으니 논문을 게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곧바로 반송되지 않았고 편집자들이 그의 논문을 거절한다는 답장을 보내자 그는 자살할 준비를 했다. 물론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폴 드 크루이프메치니코프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교수들과 말싸움하느라고 자살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하튼 메치니코프는 자신이 교수와 다투는 것은 러시아에서 제대로 된 과학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독일의 뷔르츠부르크 대학으로 서둘러 떠났지만 독일에 유학러시아 학생들은 그가 유대인이라며 반기지 않았다.

《종의 기원》 초판(1859년)의 속표지

자신의 주위가 모두 적이라며 인생에 싫증이 난 그는 또 다시 자살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찰스 다윈종의 기원을 읽더니 자살하려던 생각을 중단했다. 진화론을 그가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윈진화론에서 가장 강한 자가 생존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골하다가 인류가 어떻게 세균의 공격저항했는가에 대한 환상적인 이론을 도출했다.

그는 호롱불 주위로 구름같이 몰려든 곤충들을 보면서 대담한 가설을 생각했다. 곤충들이 겨우 몇 시간을 살 뿐인데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이론을 어떻게 곤충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하고 의문을 품었다. 곧바로 그는 간단한 진화론을 만들었다.

 

생존자들은 가장 강한 자들이 아니라 가장 영리한 자들이다.’

 

<미생물 사냥꾼>

1883년 메치니코프는 갑자기 자연주의자에서 미생물 사냥꾼으로 돌변했다. 그는 오데사대학 당국자들과 싸움을 한 후 가족들과 함께 시칠리아 섬으로 가서 아마추어 실험실을 차렸다. 그는 파스퇴르와 코흐미생물 사냥으로 성공한 것을 알고 그들처럼 위대한 과학자로 성공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로베르트 코흐(1843~1910) 1905년 노벨 화학상

그런데 정작 메치니코프미생물을 어떻게 사냥하는지를 몰랐다. 사실 세균을 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면과 불가사리먹이를 먹는 것을 보고 곧바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그들의 체내에 있는 이상한 세포발견했다. 그 세포들은 동물 몸의 한 부분이었지만 자유롭게 체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그리고 세포의 한 부분이 돌출되었다가 돌출 부위를 따라서 나머지 부위를 끌어당기는 것도 발견했다. 그것들은 흐르는 대로 움직이는 방랑하는 세포들(wandering cells)이었고 아메바와 같은 작은 동물과 똑같아 보였다.

아마추어 생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그는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는 현미경으로 동물의 체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불가사리 유충 안에서 떠다니거나 기어 다니던 자유로운 세포들이 그가 넣은 카민 입자를 향해서 오더니 먹어 버렸다. 메치니코프는 자신이 불가사리의 소화 작용을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순간적으로 번개처럼 그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불가사리의 몸 안에 있는 방랑하는 세포들이 먹이를 먹는다면 틀림없이 독성을 갖고 있는 미생물도 먹을 것이다. 방랑세포들이 불가사리미생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있는 백혈구도 틀림없이 우리 몸을 침입한 세균들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것이다.'

 

단 한 번의 실험이나 논문을 읽지도 않고 메치니코프불가사리의 소화 작용에서 인간의 질병을 전개해내었는데 그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것.

다양한 종류의 백혈구를 3차원 렌더링한 모습

그에게는 세균을 전혀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손가락 나무가시에 찔렸을 때 가시를 빼지 않고 그냥 놔두면 가시 주위에는 곧 농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했다. 은 대부분 백혈구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메치니코프약간의 진홍색 염료불가사리에 먹이고 염료 입자흡수되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피부에 박힌 가시임파구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장미 가시반투명의 불가사리 유충의 몸에다 꽂았다. 다음날 그는 자신의 추측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불가사리 안에 있는 장미 가시 주위에는 느리게 기어 다니는 방랑하는 세포가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이 독특한 세포를 그는 세포 포식자라는 뜻의 식세포(Phagocytes)'라 명명했다.

식작용의 3단계: 1. 리간드로 코팅된 입자와 식세포(phagocyte)의 표면 수용체가 결합하기 전 2. 표면 수용체에 리간드가 결합하여 클러스터를 형성 3. 식작용이 시작되고 입자가 식세포 안으로 유입

메치니코프의 상상력은 비약하여 질병의 예방효과를 포함한 대부분의 면역 현상은 세포들이 이물질이나 세균에 반응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세포면역설을 확정하고 마침 시칠리아에 와 있던 대학교수들에게 동물들이 미생물의 공격에 견딜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직접적인 설명을 들어보자.

 

모든 세포내재적 감수성으로 인해 기능을 바꿈으로써 주위 조건의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살아 있는 요소들은 일정 정도의 면역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의 신체에 있는 많은 세포 중에서도 가장 독립적인 식세포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쉽게 감염성 질환에 대한 면역력을 얻는다. 식세포미생물과 그 독소들이 나타나는 곳으로 달려가 그것을 물리치는 세포이다.’

 

교수들은 그의 설명과 증거를 보고 감탄했다. 그의 설명을 들은 교수들 중에는 코흐의 이론콧방귀를 뀌었던 비르효 교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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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다는 포식세포>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면역 반응은 발생 기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예병일의 글을 인용한다.

첫째자연 면역(natural immunity)이라 하여 면역 초기 단계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일어나는 반응을 가리킨다. 피부 표면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방어 체계가 대표적인 자연 면역이다.

둘째적응 면역(adaptive immunity)이라 하여 병원성 미생물노출되었을 때 받은 자극으로 인해 유발되는 면역 반응이다. 특정 미생물에 의한 자극이 지속되면 방어 능력이 크게 증가되며 각기 다른 종류의 자극에 대해 특이하게 반응하므로 특이 면역(specific immunity)이라고도 한다. 이 반응은 주로 림프구와 항체가 일으킨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이 바로 메치니코프가 발견한 식세포이다. 여하튼 메치니코프는 서둘러 자신의 위대한 발견을 알리기 위해 빈으로 돌아왔다. 마침 그의 친구인 클라우스 교수는 그의 설명을 듣고 자신이 발간하는 잡지에 이론을 발표해달라고 했다.

메치니코프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미생물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세포들에게 과학적인 이름제안해달라고 했다. 클라우스는 사전에서 포식세포(phagocyte, 게걸스럽게 먹는 세포)라는 단어를 찾아 주었다.

메치니코프세포면역설은 하계를 불끈 달구었다. 비르효 교수는 그의 이론을 지지했지만 코프 진영에서는 세포설을 변덕스런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또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코미디라고 비하하면서 체액면역설을 들고 나왔다.

B세포  활성화는 체액의 면역 반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체액면역설의 대표 주자가 바로 에를리히이다. 그는 면역반응유기체와 외래 생명체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로 파악한 메치니코프와는 달리 면역이 물질들의 삼차원적 구조와 구성 원소들의 친화성에 따라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수동적 화학 반응의 일종이며 이들 화학반응의 주인공이 바로 항원과 항체라고 주장했다.

파울 에를리히(1854~1915)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

에를리히 항원과 항체에게는 어떠한 즉흥성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메치니코프의 세포면역설은 일정 정도의 자유가 허용된 포식세포외래 세균 또는 그 세균에 의해 파괴된 숙주 자신의 세포가 주인공이다. 자연법칙은 큰 테두리에서만 주인공들의 행동을 지시하고 각 세포들은 각자의 역할을 소화하며 필요할 경우 즉흥적으로 반응한다.

메치니코프의 포식세포숙주의 의지와 관계없이 침입자에 접근하고 반응하며 임기웅변에 능한 ()주체적 존재이지만 에를리히의 항원과 항체는 마치 자물쇠와 열쇠처럼 기계적 또는 화학적 친화성에만 의존하여 행동한다. 1908년 노벨위원회는 이들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생리의학상을 수여했는데 이는 세포설과 체액설이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상호보완의 관계를 갖는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메치니코프가 명명한 포식세포인간이 어떻게 면역을 갖는가를 알아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아마추어 과학자인 메치니코프로 하여금 세계적인 과학자의 반열에 서게 만들었다. 메치니코프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메치니코프의 진짜 연구는 그가 포식세포 이론을 세운 후로부터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증거를 물벼룩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가 물벼룩을 선택한 것은 불가사리 유충과 마찬가지로 물벼룩의 몸투명해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렇지만 물벼룩이 어떤 병에 걸려야 관찰 대상이 될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에게 또 다시 행운이 따랐다. 그가 물벼룩을 관찰하다가 갑자기 그 중 한 마리위험한 효모의 바늘처럼 뾰족한 포자를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 바늘은 좁은 식도를 통과한 다음 물벼룩의 위벽을 뚫고 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때 물벼룩의 포식세포위험한 바늘을 향해 밀려 와서 그것을 둘러싸고 녹이면서 먹었다.

반면에 포식세포가 치명적인 효모 바늘과 맞서 싸우는 데 실패하면 침입자들은 재빨리 수많은 효모로 발아해서 물벼룩먹어버렸다. 물벼룩이 죽는 것이다.

물벼룩(Daphnia pulex)

메치니코프는 살아 있는 생물체가 자기를 죽일 수도 있는 암살자에 대항하는 신비한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관찰은 정확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관찰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물벼룩의 면역포식세포 때문이며 자연면역의 한 예. 효모의 포자가 몸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순간, 포식세포가 그것을 잡아먹지 않는다면 효모는 자라기 시작해서 포식세포를 완전히 녹여서 죽여 버리는 독소를 분비한다.’

 

이제 남은 것은 개구리와 토끼 같은 큰 동물에서 일어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1886년 오데사에서 연구소가 세워지자 잠시 메치니코프가 소장이 되었다. 그는 토끼와 개, 원숭이포식세포결핵과 재귀열, 단독(erysiplelas)의 원인균을 잡아먹는지에 몰두했다. 곧바로 그의 실험실에서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유럽의 학자들은 메치니코프가 발견한 것들에 열광했다.

그런데 문제는 , 토끼, 원숭이물벼룩처럼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연구소에서 메치니코프를 시기하는 연구원들도 있었다. 메치니코프의사 면허증도 없으므로 그가 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비아냥 거렸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오데사 연구소에 사표를 내고 파스퇴르연구소로 가서 자신의 이론을 계속하여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스퇴르메치니코프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나도 몇몇 미생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본 적이 있고 자네가 올바른 길로 들어섰다고 믿네.

 

메치니코프는 가족과 함께 파스퇴르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으며 20 동안 지속된 포식세포 연구에 몰입했다.

면역이라는 것이 포식세포와 침입자 미생물 사이에 일어나는 일종의 전쟁 때문이라는 그의 이론으로 유럽의 학계는 양분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학자들은 대부분 그의 이론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동물들에게 미생물에 대한 면역을 만들어주는 것은 동물들의 포식세포가 아니라 혈액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포식세포들은 방어자가 아니라 죽은 미생물만 먹는 청소부라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메치니코프는 완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파스퇴르의 백신으로 면역이 생긴 양의 혈액에서 탄저균이 왕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여 주는 독창적인 실험을 발표하여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메치니코프파스퇴르연구소에 있는 동안 독일과 프랑스 양측의 연구원들이 상대방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혈액과 포식세포가 함께 작용해서 세균을 퇴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한 어떤 질환에 대한 저항성의 근원혈액 포식세포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했다.

사실 복잡한 면역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폐렴균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땀이 약간 나다가 회복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이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으며 현재도 이 문제는 계속 의학계의 화두로 남아있다.

여하튼 당대의 최고 연구진들로 모여 있는 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메치니코프의 이론을 옹호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혈액콜레라에 대한 인간 몸의 면역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병독성이 있는 콜레라균을 먹기도 했다. 메치니코프 자신도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양의 콜레라균을 먹었다.

여하튼 열정으로 뭉친 연구원들은 메치니코프의 놀라운 불합리성, 편협성, 그리고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인류의 고통을 줄이고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데 연구원개인적인 하자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소 과장하여 말한다면 미생물 질환을 실제로 예방하는 방법은 메치니코프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류를 위해서는 메치니코프와 같은 사람이 많이 태어나야 한다는 유머가 나올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