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경주역사지구 답사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17) 남산지구 서남산(VI)

Que sais 2021. 11. 3. 16:44

금오봉에서 통일전, 포석정, 칠불암, 삼릉골 또는 용장골로 되돌아갈 수 있는데 여기서는 삼릉골로 향하는 길을 잡는다. 금오봉에서 삼릉골까지의 길은 부드러운 능선길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데 기도를 하면 아기를 낳게 된다고 알려지는 상선암이 나타난다. 상선암남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인데 상선암 못 미쳐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이 나타난다. 마애석가여래좌상 남산의 북쪽 금오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가 남쪽 중턱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바둑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바둑을 두는 풍치도 다소 달랐다. 계곡이나 산중의 경치 좋은 암석 위에 바둑판을 그려놓고 풍류를 즐기기도 했는데 이러한 돌바둑판석국(石局)이라고 한다. 석국중국과 일본 등에서 그림과 기록이 남아있지만 실물은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유적이다(일본에 차인(茶人) 센노리큐(千利休, 15211591)와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대국했다는 돌바둑판이 남아있다고 알려진다). 한국의 경우 여러 곳에 석국 유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석국은 다음과 같다.

 

 충북 단양면 사인암 아래 바둑판

 충북 충주시 살미면 공이동 계곡

 서울 도봉산 방학동 주석계

 전북 장수군 덕산계곡의 용소바둑판

 소백산 신선봉 석국

 강원도 서원면 압곡리 취석정

 충북 괴산 갈은 계곡의 선국암

 

남산의 바둑바위라 하여 석국이 그려져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바둑판은 그려져 있지 않다. 반면에 평평한 바위 위에서 여러 명이 바둑을 둘 수는 있는 공간으로는 충분하다. 바둑바위에서 절경을 바라보면서 바둑을 둔다면 그지없는 낭만과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므로 바둑바위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모른다. 바둑과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은 바둑판을 갖고 올라가 보기 바란다.

남산 바둑바위

고스톱과 장기가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돌아 경로당마다 화투와 장기를 돌린 적이 있다. 카드나 화투 놀이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과 같이 손 자극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치매 예방도움이 된다는 데는 많은 의학자들이 동조하고 있다. 최근 전자계산기와 컴퓨터의 등장으로 잊혀 가던 주산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도 주목거리다. 1980대만 해도 동네마다 자리 잡았던 주산학원은 컴퓨터와 전자계산기에 밀려 1990대에 들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았는데, 최근 주산어린이 수리능력 향상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기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바둑과 관련시켜 보면 상당히 의미가 있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상력 판단력이다. 바둑은 실시간 시뮬레이션이 아닌 고전 게임이다. 바둑을 두다보면 수많은 전쟁과 평화경험하게 된다. 죽느냐 사느냐 전투 후에 평화협정이라도 맺은 듯 서로 대치하며 영역을 넓히고, 집을 정돈하고 그러다 또 다시 특공대를 파견하는 전투를 하다가 마지막으로는 하나하나 집짓기를 마무리하는 심정으로 자기 집을 정돈한다.

한 곳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곳에서 회복하면 된다는 대국관바둑을 두면서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대두된다. 인간의 뇌에는 좌뇌와 우뇌라는 상이한 두 가지 작용이 있다. 계산력암기력 같은 것은 좌뇌의 기능에 속하는 반면, 종합력판단력 우뇌의 기능에 속한다. 우뇌의 장애가 있는 사람포석이 잘 짜여 지지 않으며 정석의 모양인식도 어려워서 대국도중에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좌뇌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중반의 공방이 허약해 수 싸움은 잘 못하지만 포석이나 정석의 감각좋은 편이다. 따라서 바둑과 같이 두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계속한다면 노후까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화재보고 삼릉골>

바둑바위 하부를 구성하는 자연 암반 6미터 높이에 새겨진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는데 깎아내리다가 그만 둔 듯 거칠다. 이같이 신체의 대부분을 선각으로 처리하는 방식신라말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

풍만한 얼굴에 눈썹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지만 두툼한 두 뺨과 입언저리에는 조용한 미소가 깃들어 있다. 민머리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큼직하며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다. 가슴 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이며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가부좌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아주 특이한데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상선암 마애여래좌상 동쪽에 높이 약13미터, 길이 25미터가 넘는 상사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바위 위에 올라가면 효험을 볼 수 있다 하여 상사바위라 불린다. 바위 뒤쪽에는 가로 1.44미터, 높이 56센티미터, 깊이 30.3센티미터작은 감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 흔적이 보인다. 바위 중간쯤 가로 파인 틈에 많은 돌이 쌓여 있는데 기도한 사람들이 소원 성취를 점쳐 본 흔적을 볼 수 있다. 돌을 던져 그곳에 얹히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증거이고 던진 돌이 떨어지면 바위신이 뜻을 받아 주지 않았다는 증거라 한다. 그 아래에 어깨까지 높이가 불과 0.8미터에 달하는 목이 없는 석불입상 1가 놓여 있다. 남산에서 가장 작은 불상으로 추정하는데 시무외인과 시여원인의 수인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불상으로 추정한다. 이는 바위 신앙과 불교 신앙이 합쳐진 신라 민중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사바위

삼릉계곡 정상 밑에 있는 소박한 암자인 상선암답사로의 이정표가 되는 곳이므로 반듯이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 삼릉계곡에서 올라갈 때 다소 가파른 길로 옛날부터 스님들이 수련을 하거나 참선을 하던 장소이지만 상선암의 위치 때문에 방문객들이 식수를 얻어가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약수가 콸콸 샘솟는 여름철과는 달리 겨울에는 암자에서조차 식수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려우므로 사전에 식수는 준비해가는 것이 바른 예의다.

성산암

상선암에서 약간 휴식한 다음 이어서 내려가는 길이 즐겁다. 보물 666호인 삼릉계곡석불좌상,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 삼릉계곡선각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제21),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지방유형문화재 제19)이 연이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삼릉계석불좌상(보물 666)삼릉계곡 중부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는데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불상불두와 불신따로 제작하여 결합했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을 보이는데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우측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걸쳤으며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을 드러나도록 했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火焰紋)과 당초문(唐草紋)의 조각이 수준급이며 연화좌상대(上臺)에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긴 연잎을 3으로 새겼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안상(眼象)을 두었으나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조각의 수법으로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며 불상의 파손이 심했으므로 근래 뺨과 코, 대부분을 복원했다.

삼릉계석불좌상(보물 666호)

삼릉계석불좌상에서 약 300미터 정도 내려오면 남산에서는 드물게 바위에 윤곽을 파서 만든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9)이 나타난다. 높이 10미터 가량 되는 바위 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 파여 있는데 몸체는 상단부에 조각되었고 연꽃대좌의 아랫단은 홈 아래에 걸쳐있다. 얼굴부분돋을새김을 하고 몸은 얕은 돋을새김인데 나머지는 선으로 표현한 독득한 조각 수법이다. 얼굴은 매우 크고 넓적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민머리는 위에 상투 모양을 크게 새겼는데 머리와 구분이 없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쳤으며 양손의 손목까지 덮고 있다. 왼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여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틀어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하게 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 수법세련되지 못하고 특히 다리 부분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하여 미완성작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바위 속에서 얼굴만 내민 듯한 점이 특이한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제1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