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노벨상이 만든 세상/컴퓨터와 튜링

제3제국 패망의 주인공, 컴퓨터와 튜링(1)

Que sais 2020. 9. 26. 17:50

youtu.be/cue35yonYJc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

 

1944년 봄. 유럽 전선에서 패주를 거듭하던 독일군은 임박한 연합군의 침공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장소는 비밀. 연합군노르망디를 침공지점으로 정했지만 독일군의 관심을 노르망디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돌리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합군은 쾌재를 불렀다. 독일군의 전략을 파악했으므로 독일군들이 속아넘어가게 위장작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는? 알려진대로 독일군은 연합군의 작전대로 움직였다. 막상 노르망디에서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는데도 독일군은 진짜 상륙지는 프랑스 북부의 칼레 지역으로 단정하고 노르망디에 군대 파견을 보류했다. 전투의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계가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세상에 태어난 지 겨우 50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 기계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고 게임도 할 수 없으며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도 없고 수많은 기계들을 만들 수도 없다. 잘 알려진 인터넷에서 채팅도 할 수 없다.

정답은 누구나 곧바로 대답할 것이다. 컴퓨터.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문맹자라고 한다. 그러나 문맹자라고 해도 글만 쓰지 않는다면 일상 생활에서 약간의 불편은 있을지언정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을 컴맹이라고 한다. 그러나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이것이 21세기를 앞둔 오늘의 현주소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물질 문명 속에서 컴퓨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수공업에서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으로 산업 형태가 바뀐 18세기초산업혁명의 시작이었다면 진정한 산업혁명의 완성1943컴퓨터최초로 만들어지면서부터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오늘날 컴퓨터는 전쟁은 물론 산업, 스포츠, 선거, 화학, 유전 탐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엄청난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컴퓨터는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 컴퓨터의 진정한 최초 발명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근래에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12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라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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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원조는 주판>

컴퓨터의 개념은 계산을 하는 가장 간단한 도구로 알려진 주판으로부터 출발한다(기원전 5세기에 중국에서 발명). 독자들 중에서 주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간이계산기가 나오기 전까지 주판동양인들이 꼭 배워야할 도구 중에 하나였다. 은행원, 사무원을 비롯하여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계산대에는 필수적으로 주판이 비치되었고 당시 주산이나 암산에 대한 경기가 도처에서 열리기도 했다. 한국의 주판 챔피언TV에 출연하여 계산기와 어느 것이 빠르냐고 시합을 열기도 했는데 덧셈과 뺄셈에서는 주판이 계산기를 이기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주판과 같은 효과적인 계산기가 없었지만 1642년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파스칼(16231662)톱니바퀴를 이용하여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 수동계산기를 고안했다. 그 후 1671년 독일라이프니츠(16461716)파스칼의 수동계산기를 개선하여 곱셈과 나눗셈도 가능한 계산기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영국왕립학회에 출품하여 연구비를 받아내려고 했지만 결국 지원을 받지 못했다. 톱니바퀴를 이용한 이 계산기는 실용성이라는 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는 모든 계산을 10진법이 아니라 012진법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여 디지털 컴퓨터의 역사에 한 장을 장식했다. 라이프니치숫자의 힘, 즉 숫자로 세상의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현재의 컴퓨터의 프로그래밍에 해당하는 일련의 명령을 해독하면서 자동으로 계산을 실행하는 기계는 19세기 초영국의 수학자 배비지((17921871)에 의해 계획되었다. 배비지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축적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정부가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처리하는 것을 돕기 위해 계산기를 설계했다. 그는 이러한 계산기를 위해서 5가지 별개의 요소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설정하고 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기계에 투입하는 입력체제

투입된 자료를 기계가 필요로 할 때까지 갈무리하는 저장장치

실제로 계산을 담당할 수학장치

저장된 정보를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기계에 알리는 제어 장치

인쇄된 형식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산술장치.

 

기계부품을 이용한 배비지의 계산기는 당시의 기계 수준이 미흡하므로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착상은 주목할 만한 것으로 실제로 현대의 컴퓨터작동하는 이론과 거의 다르지 않다. 여하튼 그는 자신이 예상하는 기계를 만들 수는 없었지만 1990년 영국과학박물관에서 배비지가 설계한 차분계산기를 제작했는데 훌륭하게 작동했다고 한다.

1854 영국의 수학자인 조지 부울사고의 법칙, The laws of thought을 출판하여 현대적 기호논리학의 탄생을 알렸다. 이 책에서 부울은 아무리 복잡한 논리식일지라도 두 종류의 기호, 을 의미하는 ‘1’거짓을 의미하는 ‘0’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추론(1)과 아니오(0)의 연속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울의 아이디어현대 컴퓨터의 핵심 개념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일명 계산기라고 불리는 연산장치의 개발이 도처에서 시도되었는데 1930년 미국 MIT공대바네바 부시 교수가 처음으로 전기장치를 사용하여 간단한 연산을 할 수 있는 아날로그컴퓨터를 발명했다. 학자에 따라 1930컴퓨터의 시대가 탄생한 해로 인정하기도 한다. 1939 미국 아이오와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아타나소프와 그의 제자 베리진공관을 사용한 첫 전자 컴퓨터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육군의 의뢰를 받아 컴퓨터를 개발하던 엔지니어 머클리아타나소프의 컴퓨터를 보고 그의 원리를 자신의 초대형 컴퓨터에 원용했다. 그것이 바로 1946에 완성되어 세계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컴퓨터 개발에 대한 비밀이 해제되자 에니악보다 영국인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 만든 콜로서스세계최초의 컴퓨터로 인정한다. 그런데 콜로서스의 원리튜링이 겨우 24에 완성한 것이다.

 

<친구의 뇌를 모사>

튜링의 아버지 쥴리어스 튜링영국 식민지인도 주재 공무원으로 어머니인 에셜 사라 스토니와 유럽으로 향하던 배 위에서 만나 더블린에서 결혼하고 인도에 정착했다. 그런데 튜링의 어머니튜링임신했을 때 인도의 교육 환경을 염려하여 런던에 머무르는 동안 런던의 패딩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부모 모두 영국에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에 튜링을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인도로 떠났으므로 튜링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것이 원인이었는지 그는 평생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하튼 그의 부모는 튜링세인트 마이클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선생들은 일찍부터 어린 튜링탁월한 재능을 알아보았다. 192613이 된 튜링유명 사립학교셔본 스쿨(Sherborne School)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수학과학 성적은 매우 뛰어났지만 셔본 스쿨고전 공부에 가치를 두고 있으므로 그를 탐탁하게 보지 않았다. 더구나 천재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성격처럼 학교 교육에 그다지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언제나 왼쪽이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으므로 왼쪽 엄지에다 빨간색 점을 칠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학창시절에는 너저분한 외모에 말도 더듬거리고 더구나 영어와 라틴어를 몹시 싫어해 평생을 맞춤법과 글쓰기 때문에 고생했는데 셔본 스쿨의 교장은 다음과 같이 평할 정도였다.

 

이 학생이 사립학교에 있으려면 교양 있는 학생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고 한다면 사립학교에 다니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튜링열여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셔본 스쿨에서 크리스토퍼 모컴(Christopher Morcom)을 만나면서 큰 위안을 받는데 그 역시 수학에 재주를 갖고 있었다. 더구나 모컴튜링과는 달리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두 친구는 힘을 모아 엄청나게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기로 작정했는데 1930년 모컴결핵으로 갑자기 사망한다.

이 충격적인 경험이 튜링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그는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또는 인간의 지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에 몰두한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모컴의 뇌에 있던 지능저장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했다. 튜링계산 이론을 창안하게 된 계기도 이때에 마련된 셈이다.

여하튼 튜링수학에 천부적인 자질을 보여 1931에 유명한 케임브리지 대학교킹스 칼리지장학생으로 입학한다. 대학교에는 태양 때문에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증명한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18821944)이 있었다. 에딩턴평균값 근처에 매우 많은 관측값들이 존재하고 극단적인 경우로 갈수록 관측값들이 급격히 적어지는 종 모양의 분포를 말하는데 가우스관측 오차를 다루기 위해 도입했기 때문에 가우스 분포라고도 한다.

대부분 자연 현상을 관찰한 관측값들이 정규 분포를 따르므로 물리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분포인데 에딩턴 물리학자이므로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 데 수학적 엄밀성보다는 직관적인 방법을 토대로 문제들을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튜링에딩턴과는 반대로 수학적으로 엄밀한 설명을 선호했고 관측값들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단순한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1934중심 극한 정리라는 통계학의 중요 정리를 독자적으로 재발견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겨우 스물두 살 때로 그의 논문은 곧바로 주목을 받아 1935킹스칼리지 학회원으로 선발되었고 1936에는 이 논문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우수연구원에게 수여하는 스미스 상을 받았다(엄밀하게 말하면 그의 증명핀란드 수학자 린데베르크12년 전증명했지만 당시에는 영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프린스턴에서 가장 유명한 논문>

1936년 튜링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다. 논문 요제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제어장치, 데이터가 수록된 테이프, 이를 읽고 기록하는 입출력 헤드3부분만 있으면 기계적 절차로 모든 계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가 도출한 아이디어의 중요성은 다음으로 설명된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지만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계산 가능하다는 속성을 튜링기계라는 추상적 대상으로 설명했다.’

 

위 설명은 직관적으로 계산 가능한 모든 것은 그에 대응되는 튜링 기계계산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튜링보다 한 발 먼저 유사한 생각을 도출한 수학자가 있었다. 그의 논문이 발표되기 직전에 미국의 알론조 처치(Alonzo Church, 19031995)가 접근 방법은 매우 달랐지만 계산의 의미에 대한 수학적 접근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튜링 기계와 같은 어떤 종류의 기계적인 장치로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존재함을 증명했지만 엄밀하게 컴퓨터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므로 튜링의 석사학위 논문디지털 컴퓨터의 원조 개념을 다루었다고 간주한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튜링 기계를 통해 구현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들어 처치-튜링 논제라고도 부른다.

처치의 논문을 읽은 튜링미국으로 건너가 처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자신의 논문을 수정했고 1938년 처치의 지도하에 26세의 나이프린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서수 기반 로직 시스템으로 수학에서의 직관에 대한 개념을 분석하고 보편적 튜링기계로는 너무 어려워서 풀 수 없는 문제점들을 다룰 수 있게 하는 추상적 장치인 소위 오라클(Oracle)의 개념을 다루었다. 학자들은 튜링의 이 논문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배출한 가장 유명한 두 논문 중 하나로 간주한다. 다른 하나는 영화뷰티플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유명한 존 내쉬의 논문 비협력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