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과서 파동>
놀라운 것은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2011년 12월과 2012년 4월 한국의 창조과학 단체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는 교과부에 시조새 부분과 말의 진화 부분에 대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삭제 및 수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교진추가 지적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학계가 시조새를 멸종된 조류 또는 깃털 달린 공룡으로 간주하므로 시조새가 공룡과 조류의 중간 종이라는 교과서의 기술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
② 말이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 수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했다는 말의 화석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자 교과서의 저자들이 청원서의 요구대로 관련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문교부를 통해 교진추 측에 전달했다. 이 사실은 2012년 5월 일반에게 알려졌지만 언론과 학계에서는 이 문제에 전혀 주목하지 않아 <교진추>의 의견대로 진행되는 듯 했는데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가 6월 7일 ‘집중 취재’ 코너에서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하다」라는 기사를 실으면서 국내에서 큰 파장이 일기 시작했고 언론사들도 이 기사를 근거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학계도 비로소 공식적인 대응으로 교과부에 <교진추> 청원서를 기각하도록 촉구했다.
결국 문교부에서는 이 문제를 협의기구를 통해 지배적인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이 사건이 국내 학계에 큰 회오리를 갖다 준 것은 교과서 저자들이 특정 종교 단체의 청원에 따라 내용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선진국 중턱을 올라섰다고 자랑하는 한국인데도 과학 분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과학에 대한 교육이 허상으로 빠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데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종교적인 문제가 교과서를 좌지우지한다는 내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은 학계는 비로소 전열을 가다듬고 <교진추>의 주장에 다음과 같이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① 시조새 문제
시조새가 중간 종으로서 지위를 상실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계 고생물학계는 시조새가 수각류 공룡과 현생조류의 중간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멸종된 원시 조류로 인정한다. 시조새는 현생조류와 달리 이빨이 있고 긴 꼬리뼈를 가졌으며 새 개의 앞발톱이 공룡처럼 발달해 있고 흉골이 매우 작다. 그러므로 깃털을 제외하면 골격학적 특성을 볼 때 수각류 공룡에 더 가깝다. 하지만 시조새는 수각류 공룡에서 현생 조류로 이어지는 계통적 관계에서 그 중간 어딘가를 차지하는 멸종된 원시 조류다. 특히 이런 원시 조류는 시조새 말고도 수십 종이 더 발견되었다. 고생물학계에서 수많은 유사 종과 비교하여 시조새의 계통적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확언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조새가 중간 종인가 아닌가 또는 진화의 사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존재하지 않고 시조새가 공룡에서 조류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므로 이를 기술한 현행 과학 교과서의 내용에 큰 문제가 없다.
② 말의 진화
말의 진화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교진추>의 주장처럼 말이 하이라코테리움에서 현생 말로 직선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현대 고생물학자는 없다. 학자들은 현생 말은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종의 멸절한 다른 말과 달리 정말 운 좋게 살아남은 종이기 때문이다.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 수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야 할 본질적 특성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몇몇 교과서에 실린 말의 ‘직선형’ 진화 패턴은 학생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다. 이는 진화론의 핵심 중 하나인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개념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거나 고생물학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말의 진화를 교과서에서 삭제할 대상은 아니다. 진화의 패턴은 매우 복잡한데다 말도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학계는 <교진추>가 교묘하게 학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흥미로운 과학적 논쟁을 마치 진화의 유무에 대한 논쟁인양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진화론 자체에 대해 학계에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며 교황청에서도 이를 ‘참’으로 인정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시조새와 말의 진화의 설명이 미흡하다면 오히려 이들에 대한 최신 연구 내용을 교과서에 기술하여 학생들이 진화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보다 탄탄한 진화의 사실들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진화론에 대한 종교적인 문제가 제기되었다는데 <네이처>지가 세계적인 공론을 유도할 정도로 세계인들이 의아해 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 창조론 등을 주장하는 기독교 계열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과학적인 본성을 과학이 아니라고 하거나 더 나아가 창조론을 과학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과 종교의 차이>
과학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들은 종교학자들이 주장하는 창조론을 매우 황당한 내용이라며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과학이라는 잣대에 종교를 대입한다는 자체가 틀린 일이므로 들어볼 필요조차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종교와 과학을 같은 카테고리 내에서 다루느냐 또는 다른 카테고리로 다루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지지만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것은 진화론에는 두 가지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문제점의 발단은 종교적인 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첫째는 다윈이 다른 유기체로부터 새로운 유기체가 진화되는 것은 비교적 모순 없이 설명했다 하더라도 생명이 무기물에서 비롯되는 과정은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대의 최고 과학자로 명성이 높던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와 푸쉐가 대결하여 쾌쾌 묵은 논쟁중의 하나인 생명체의 ‘자연발생론’을 완전히 폐기시킨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즉 산소가 풍부한 대기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생명체 탄생의 이론은 간단하다.
‘생명이 씨앗이고 씨앗이 곧 생명이다.’
이 하나로도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공격하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명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의 발생에 어떤 초자연적 기원 즉 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지구의 생명체가 지구 내부로부터 태어 났는가 또는 외계에서 온 것인가로 첨예하게 나뉘어져 있으나 진화론과는 주제가 다른 내용이므로 다른 장에서 설명한다.
다윈도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서는 제8장 <본능>에서 ‘여기서 미리 밝혀둘 것은 나는 생명 그 자체의 기원을 풀거나 정신력의 기원을 풀고자 하지 않는다.’라고 첨언했음을 앞에서 설명했다.
둘째는 진화론의 골격은 어떤 이유로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습득된 형질이 유전자에 의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상당히 많은 시간 즉 형질 변경이 일어나기 위해서 몇 십만 년에서 몇 백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면 그동안에 습득된 형질이 계속 보존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여 습득된 형질이 변경되는데 100만 년이 걸린다면 일반 동물의 생명을 20년으로 볼 때 5만 세대를 지나야 한다. 5만 세대를 지나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했을 때 그것을 100만 년 전에 일어났던 환경의 변화로 볼 수 있느냐이다.
이들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우선 유명한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의 글을 인용한다.
‘과학과 종교(신학)를 나누는 것은 아주 쉽다. 과학자들은 자연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려고 초자연적인 것을 끌어드리지 않으며, 또한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신적인 계시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인간은 자연현상, 특히 천재지변을 설명하려고 했을 때는 반드시 초자연적인 존재와 힘을 끌어드렸다.
오늘날에도 신성한 계시는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에게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진리의 원천이다. 실제로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모든 과학자들은 가장 좋은 의미에서 종교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하거나 신성한 계시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과학을 종교와 구분하는 다른 특징은 과학의 개방성이다. 종교는 그들의 상대적 불가침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계시 종교에서는 계시에 기초한 자료 중 하나의 단어에 대한 해석 차이로도 새로운 종교의 출발을 이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이론에서 상이한 해석들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 과학과 대조를 이룬다. 과학에서는 새로운 추측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며 논박과 해석을 계속한다. 언제든지 지적 다양성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과학을 진전시키는 가설의 형성과 검증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새로운 사실과 가설에 대한 과학의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일부 종교학자들을 포함)은 자연세계의 연구에 우리가 ‘제1원리’라고 부를 수 있는 기본원칙의 집합을 항상 도입하고 있다. 이런 공리적 가정의 하나는 인간의 지각과 독립적으로 실재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원리가 개별 과학자들의 ‘객관성’이나 절대적 의미에서 객관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객관적 세계가 주관적 인간 지각의 영향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이 세계가 무질서한 혼돈 속에 있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짜여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 구조의 거의 모든 측면은 과학적 연구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중략) 과학에서 ‘진리’를 검증하는 방법은 검증하는 대상이 사실인지 이론인지에 따라 다양해진다. 플라톤이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해 이야기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탐험의 시대였던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에 이루어진 열정적이 대항해에서도 아틀란티스 대륙이 발견되지 않자 학자들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유무 자체에도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과학이 발달되어 대서양에 대한 해양학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위성사진이 더욱 위력을 발휘하자 베게너가 주창한 ‘대륙이동설’이 확고한 이론으로 정립되었고 더 이상 아틀란티스 대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중략)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물질세계의 모든 현상들에 역사적이고 인과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합법적인 과학연구의 영역 안에 이 우주에 존재하거나 일어난다고 알려진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들은 물질세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종교학자들도 물질세계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 더해 영혼, 정신, 천사나 신이 사는 형이상학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영역을 믿으며, 신앙을 가진 사람은 모두 천국이나 열반 같은 곳에서 내세를 맞으리라 믿는다. 이러한 초자연적 구성물은 모두 과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진화론의 등장으로 인간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자연의 위계질서 속에서 종교가 제시하는 엄격한 계율에 따라 살아야 하는 선택된 존재가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 진화한다는 것은 돌연변이가 나타난다는 것으로 결국 인간이 애초에 창조될 때 불완전한 존재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도 자연이 만들어낸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생존을 위해 온갖 장애물들을 헤쳐 나가야 하는 존재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이 종교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창조론자들이 가장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이미 신이 의도한 대로 완성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진화론자들이 이런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진화론 때문에 기독교를 포기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사람들이 신앙을 갖거나 포기하는 것은 과학 이론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이나 종교 교육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에서 다루는 분야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진화론자와 창조론자가 원천적으로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여하튼 다윈이 설명한 진화론이라는 학설을 대입하면 인간의 조상에 대한 계통도는 어느 정도 구성된다. 다윈의 진화론은 종(種)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양친의 생식세포의 단순한 결합으로 서로 형질(形質)이 다른 개체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계통도는 화석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했다.
과학의 주요 덕목은 엄밀성이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가설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은 과정들을 거친다.
① 예상치 못한 특이한 사건을 관찰하거나 예측한다.
② 사건에 관련된 증거들을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한다.
③ 관찰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추론(가설)을 하나 이상 수립한다. 이 설명들은 분석적인 방법, 시행착오, 사실들에 대한 조사를 거쳐야 한다.
④ 가설이 참이라고 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결과들을 실험하여 가설(설명)이 참인지를 판단한다.
⑤ 가설이 참이 아니라면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면서 ‘④ 단계’를 반복하여 가설이 참임을 증명한다.
⑥ 참이라고 증명된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한다.
⑦ 다른 학자들이 논문에 적힌 방법 그대로 실험했을 때 똑같은 결론을 얻어 재현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될 때 비로소 참으로 인정받는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에 종교계가 반발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믿음이 깊은 기독교인들은 다윈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종교에서 신앙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다윈의 설에 따르는 다른 요인들이 종교적 정서를 전반적으로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다윈이 미친 영향 중에서 큰 자리는 종교계가 아닌 세속적 계층에서조차 인간이 인간의 세계를 생각하는데 있어 그 방법에 큰 변화를 초래케 했다는 점이다. 이미 인류는 종래 생각해 왔던 것과 같이 대자연의 체계 속에서 자기가 중심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느 날엔가 자기의 지위가 갑자기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윈이 열어주었는데 문제는 그 변화가 상승이 아니라 저하라는 것이다.
반면에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계에 큰 성공을 한 것은 모든 과학적인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과학의 힘’에 대한 신념을 한층 강화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다윈의 용어 ‘생존 경쟁’ 또는 ‘적자 생존’이란 말을 우리의 일상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혈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진화론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을 위한 변위가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형질변경에 대한 증거가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윈도 스스로 형질변경이 일어나려면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진화론과 같은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라마르크의 이론은 틀렸다고 비판된 것도 라마르크가 기린의 경우처럼 획득형질이 쉽사리 유전될 수 있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당대의 학계는 획득형질은 쉽게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설로 하였으므로 창조론자들이 그 증거를 대지 않는 한 진화론도 하나의 학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1983년 맥클린토크(Barbara McClintock) 박사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창조론자의 공격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형질변경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계기가 되므로 별도로 설명한다.
참고문헌 :
독자여러분께」, 윌리엄 L. 알렌, 내셔날 지오그래픽, 2004. 11월
「종교냐 과학이냐, 진화론」, 김기윤, 『과학이 세상을 바꾼다』, 크리에디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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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오딧세이』, 찰스 플라워스. 가람기획, 1998
『틀을 깬 과학자들』, 오진곤, 전파과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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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 50 재판』, 마리 자겐슈나이더, 해냄, 2004
『슈퍼 영웅의 과학』, 로이스 그레시, 한승,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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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까치, 2007
『열정의 과학자들』, 존 판던 외, 아이세움, 2010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장태익, 바다출판사, 2013
『뼈가 들려준 이야기』, 진주현, 푸른숲,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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