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의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반려동물이 준 노벨상

반려동물이 준 노벨상(1) : 콘라드 로렌츠

Que sais 2020. 9. 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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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준 노벨상(1)>

 세계적으로 반려동물의 기세가 등등하지만 반려동물만 수십년 연구하여 노벨상을 받았다하면 다소 놀랄 것이다. 1973년 오스트리아 출신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 박사, 네덜란드 출신니콜라스 틴버겐(Nikolaas Tinbergen, 19071988), 카를 폰 프리쉬(Karl von Frisch, 18861982) 박사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세 사람의 수상자들은 조류, 어류, 곤충만 평생을 걸쳐 연구한 학자들이다.

특히 그들은 현재 콘라드 로렌츠 박사 조류, 니콜라스 틴버겐 박사조류와 어류 그리고 카를 폰 프리쉬 박사곤충벌의 춤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그동안 과학의 변방이라 생각되는 동물행동학(Ethology), 동물심리학, 또는 비교행동학연구했는데 대체 이런 연구로 노벨상을 받을만하느냐는 지적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하튼 이들이 반려동물만 연구하여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노벨상을 한 단게 올려주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이들의 연구 소재가 다르므로 그들을 따로 설명한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콘라드 로렌츠 박사부터 설명한다.

콘라트 차하리아스 로렌츠(1903~1989)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

<아름다운 비행>

아카데미 최연소 여우조연상 수상자 안나 파킨(에이미)이 주연한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엄마를 잃고 10년 동안 떨어져 기억도 없는 아빠와 살게 된 13살 소녀 에이미가 미처 부화하지 못한 기러기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비행(1996)

조심스럽게 집으로 옮겨진 기러기 알들은 에이미의 따뜻한 손길 속에서 귀여운 새끼 거위들로 태어난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본 에이미어미새로 알고 있는 기러기들의 각인효과 때문에 새끼 기러기들은 오로에이미의 곁에서 쉬거나 그녀의 행동만 따라한다.

기러기들 때문에 에이미는 조금씩 마음의 평안을 되찾지만, 집안에서 야생동물을 키우는 것은 불법이라는 경찰의 주장 때문에 에이미와 그녀의 아빠는 야생동물의 본능대로 그들을 날려 보내는 것에 동의하였지만 문제는 어떻게 기러기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느냐이다. 캐나다 기러기들이 에이미만 따라다닌다는 점을 유심히 관찰한 아빠에이미울트라 라이트 비행기를 직접 몰고 남쪽으로 기러기들을 이끌고 가는 방법을 착안하고 결국 기러기 그림이 그려진 에이미의 비행기를 만든다.

또한 아빠의 친구는 철새인 캐나다 기러기들이 추운 겨울을 지낼 적당한 목적지를 찾아낸다. 그런데 그 땅은 철새서식지로 지정되었음에도 정해진 날짜까지 철새가 돌아오지 않으면 개발업자들에 의해서 개발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야생의 어미 대신 기러기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 에이미의 노력 때문에 기러기들은 마침내 나는 법을 터득하였고 아빠와 그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에이미는 16마리의 캐나다 기러기들과 함께 남쪽으로 출발한다.

개발 업자가 발표한 날짜에 철새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그나마 있던 보금자리까지 잃게 되지만 영화의 속성상 우여곡절을 거쳐 에이미는 꿋꿋하게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수행하면서 기러기들을 예정된 목적지까지 인도한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개발계획은 철수되고, 환경은 보호되었으며 기러기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데 성공한다.

아름다운 비행 경비행기를 탄 안나 파킨16마리의 기러기와 함께 붉은 노을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으로 당시 불과 14살의 안나 파킨전문 비행사로부터 조종 훈련까지 받기도 했다.

애나 패퀸(1993~) 2018 토론토 영화제에서

그러나 이 영화의 주요 배우 중 하나는 16마리의 기러기이다. 촬영을 시작할 때 새끼였던 기러기들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른데다 자동차나 비행기만 봐도 따라가려고 하는 특유의 습성 때문에 촬영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설명이다. 60마리캐나다 기러기가 서로 교체되며 촬영이 진행됐고, 최고 비행 속도시속 32마일기러기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경비행기의 중량150파운드로 유지해야 하는 등 말 못하는 철새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고생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로렌츠는 갓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태어나는 순간에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 즉 사람인 자신을 마치 어미오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이는 생후 초기에 나타나는 본능적인 행동이 분명하다며 각인(imprinting)이라고 불렀다.

각인 효과(조류) 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지만, 최근에는 포유류와 어류 그리고 곤충에서도 각인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린 동물들은 처음으로 눈과 귀 그리고 촉각으로 경험하게 된 대상을 부모로 생각하고 따라다닌다. 오리생후 17시간까지가 가장 민감한 시기이고, 보통 새들은 생후 50일 동안 경험한 대상을 부모로 알고 쫓아다닌다고 알려졌다. 바로 이런 내용을 인간들에게 알려준 내용으로 그렇게도 수상하기 어렵다는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노벨상하고는 다소 다르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건전한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또 이를 많은 사람들이 적극 도와준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보면 악당으로 나오는 건설업자가 진실한 악당은 아니다. 그들은 몇 마리의 철새에 의해 거대한 건설프로젝트가 방해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에이미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에이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는 것은 인간의 행태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러기의 엄마, 콘라드 로렌츠>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 박사 각인효과를 발견한 것은 1937년 어느 날이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저택에서 막 알껍데기를 깨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이윽고 작지만 제법 단단한 알껍데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어린 부리에 보송한 깃털을 가진 자그마한 회색 기러기 새끼들이 무사히 태어난 것을 보았다. 그는 새끼들이 안전한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데 뒤를 돌아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끼 기러기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렬로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특히 새끼들의 몸짓이 매우 분주했는데 그것은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서두르는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

로렌츠190311,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성공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공한 의사라기보다는 대 부호의 부모 덕로렌츠는 어린 시절부터 빈 교외에 위치한 알텐베르크 대저택에서 키우고 싶은 온갖 동물들을 키우며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가 뛰놀던 정원에는 기러기와 오리, 앵무새, 카나리아와 같은 애완동물뿐만 아니라 여우원숭이, 긴꼬리원숭이처럼 구하기 힘든 동물들까지 키울 정도로 그의 부모는 엄청난 부호였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일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집안을 찾아오는 동물을 쫓아내지 않는 것은 물론 동물 우리에 넣지도 않았다. 그는 비록 인간보다는 저급하다 생각되는 동물이라도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해줄 때 비로소 동물의 참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라트 로렌츠(출처 사이언스 북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손해와 짜증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그런 행동학문의 한 과정으로 그는 고등 동물무제한의 자유 속에서 길렀다. 그는 집안기러기들이 들어오는 것도 막지 않았다. 어느 날은 몇 십 마리가 그의 서재에 들어와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기러기들이 귀한 페르시아 카펫 위에 수많은 오물을 쏟는데 그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기러기들은 원래 낯선 곳에 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대여섯번 중한번의 대변맹장의 내용물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기러기가 불안하면 더욱 맹장의 내용물이 계속 나오는데 이들은 10여년이 지나도 그들이 남긴 얼룩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그들을 쫓아내는 것을 반대했다.

막창자 또는 맹장(盲腸, cecum, caecum)

그런데 그는 수많은 동물 중 원숭이주의하라고 한다. 모든 원숭이가 그렇지 않지만 일부 원숭이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항상 큰 호기심을 보였다. 전기 코드를 빼는 것은 보통이고 책상의 자물쇠를 끈기를 갖고 여는 것은 물론 귀중한 책들을 갈기갈기 찣어 수족관에 넣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이를 보고 다소 위안을 했다고 한다. 책을 찢는데 몰두하는 통에 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런 행동노벨상을 받은 관건이라고 말했다. 동물들을 거대한 저택안에 자유롭게 놓아기름으로써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억류 생활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은 , 정신적으로 건강한 실험 동물을 갖는 것이 동물심리학 연구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강조하여 말했다. 그가 연구한 동물들을 자유롭게 두었으므로 얼마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곳이르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동물들이 도망가지 않고 자기 집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수많은 불편과 피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과 같은 거대한 집에서 동화같은 유년시절을 보낸 로렌츠1922년 빈의 쇼텐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자신이 평소에 하던 생활을 연장하여 대학에서 동물학과 고생물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날카롭게 그의 생각에 반대했다.

1차 세계대전종식된 지 얼마되지 않았으므로 언제 어떻게 인생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부호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굶어 죽고 싶지 않으면 의사가 되라고 말했다. 아무리 부호라 해도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의사는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의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런 결정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크레들(출처 사이언스 북스)

그의 연인으로 본명이 마르가레테 게프하르트인 크레틀과 떼어 놓기 위해서였는데, 로렌츠가 한 살, 레틀이 세 살 때 처음 만나 계속 함께 지냈다. 문제는 로렌츠가 엄청난 부호의 아들인데 크레텔은 그들 성의 정원사 딸이었다.

그녀가 로렌츠 아버지의 눈에 찰리 만무였다.

아버지의 생각은 단순하다. 그가 자신의 여건에 알맞은 여자와 만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사가 모두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레틀을 그리워한 로렌츠는 미국을 떠나 귀국하여 빈 대학교의학부에 다시 입학한다. 그는 의학공부를 하면서도 어려서부터 하던 동물관찰에 몰두했고 자신이 본 것을 모조리 동물 일기장에 기록했다.

그의 알텐베르크 저택이 워낙 거대하므로 그의 정원에는 오리와 두루미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우글거렸다. 그런데 그는 수많은 동물들이 자기 집에 몰려와도 어떤 방지 시설도 하지 않았다. 앵무새와 카나리아, 피리새가 있는 큰 새장은 어린 시절 로렌츠의 놀이 집이었다. 집안에는 수족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긴꼬리 원숭이 같은 이국적 동물들도 많았다. 그는 자기 집에 있는 동물들 모두 자유롭게 자기 집에서 살았으므로 동물들과 한 침대에서 자기 일수였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기르는 동물에게 모두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들을 일일이 기록했다.

갈까마귀 ⓒ nottsexminer

이 당시 그는 갈가마귀 관찰이라는 제목의 논문1927<조류학회>에 발표했는데 이 논문은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그의 일기장을 보고 타자기로 정리해서 학회에 그도 모르게 보낸 것이다.

여하튼 그의 논문깐깐한 유럽의 전문 학회에 등재되었고 아버지의 뜻대로 의사자격증을 받았으며 1933년 비교해부학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원하던 크레틀과 결혼도 했다. 그들은 그야말로 장기간 해로했는데 무려 80여 년을 함께 산 셈이다.

로렌츠가 천하의 부호 아들이지만 당대의 시대 정황은 그를 피해가지 않았다. 194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심리학 교수가 되었지만 1942년부터 1944까지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으로 참전하였으므로 전쟁 후 한때 포로생활을 했다. 그는 당대의 정황에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말했다.

 

나치의 선전은 나치 이데올로기가 별로 해롭지 않고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다. 나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가치로 내걸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들었던 새 정권의 몇 가지 비행들과 잔인한 행동들을 나는 믿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믿을 마음이 없었다. 프로이트가 억압이라고 부른 과정이 인간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악마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는 독일군으로 참전했다가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열악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4 그것도 13개의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의사자격증 때문이다.

수백 명이 포로수용소에서 그의 치료를 받아 살아날 수 있었는데 포로수용소를 나와 20이 지난 뒤에도 당시를 기억하는 환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그때 당신은 우리에게 회색기러기 마르티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마르티나는 그가 비교행동학에 투신하게 만든 장본인 즉 회색기러기이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도 상당히 인정받아 소련 간부들의 묵인 하에 훗날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 된 거울의 뒷면, 비교행동학의 토대가 되는 원고를 작성할 수 있었다. 포로수용소라 제대로 된 종이를 얻을 수 없으므로 시멘트 포장에 글을 썼다고 한다.

니콜라스 틴버겐(1907〜1988)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

한편 그가 히틀러의 나치를 지지한 이력은 로렌츠 평생의 그림자이자 상처로 남았는데 그것은 그의 동료로 노벨상을 함께 수상한 틴버겐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틴버겐독일 나치에 의해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서로 좋아할 수 없는 내용이라 볼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화해하고 관심있는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들이 함께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특별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기러기 새끼 마르티나>

로렌츠193720마리의 야생 회색기러기를 부화시키는데 열중했다.

그는 칠면조거위 각자 10개의 알을 품게 한 후 칠면조가 품었던 것을 거위에게 맡기려했다. 커다란 거위스무 마리의 새끼를 문제없이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처음 나온 한 마리거위의 배 밑에 깊숙이 밀어 넣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그 새끼가 몸을 높이 세우고 끊임없이 울면서 거위와 로렌츠 사이의 중간쯤에 서있었는데 그가 조금 움직이자 울고 있던 거위새끼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가 거위새끼의 엄마가 될 생각이 없으므로 새끼를 손으로 잡아 다시 커다란 거위의 배 밑 깊숙이 넣고 얼른 도망쳤다.

그런데 10걸음도 가기 전에 새끼의 소리가 들렸다. 새끼는 그를 필사적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새끼가 아직 설 수 없었고 발뒤꿈치로 앉을 수 있지만 비상시 총알같이 빨리 달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새끼는 흰 거위가 아니라 로렌츠가 엄마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새끼의 이름마르티나였다.

마르티나로렌츠가 잠시라도 혼자 놔두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가 잠시라도 버려두면 그는 절망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울었다. 결국 로렌츠마르티나에게 굴복하고 바구니를 만들어 마르티나를 집어넣고 다녔다. 그는 마르티나가 잘 수 있도록 전기 요람도 만들어 주었다.그런데 그가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잠을 잤다.

흥미로운 것은 새끼 거위가 엄마인 그에게 오물을 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렌츠마르티나 옆에 엄마가 있다는 심리상태가 되면 언제나 대소변을 가렸다고 한다

그런데 칠면조 품에 맡겨두었던 아홉 마리 기러기 새끼들을 마르티나와 같이 있게 했다. 이들 9마리로렌츠엄마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르티나가 이들 아홉 마리를 자신의 형제자매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렌츠와 함께 산책을 항상 같이 함에도 처음에는 서로 싸웠다. 시간이 지나자 서로 화해를 했지만 마르티나는 오로지 로렌츠만 따랐고 그들이 옆에 없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9마리서로 유대감이 있는데 마르티나와는 거리를 두었다. 9마리는 항상 같은 행동을 한다는 뜻으로 로렌츠는 산책을 나갈 때 마르티나 혼자 또는 10마리를 모두 데리고 나가야 했다.

이들이 모두 자라서 아름다운 회색기러기가 되자, 로렌츠는 이를 경험삼아 다른 기러기 새끼를 기를 때 10마리가 아니라 4마리에게만 자신을 보여주었다. 10마리의 엄마가 되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는 뜻인데 마르티나의 이 경험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로 만들어주었음은 물론이다.

회색기러기 ( greylag goose , Anser anser)

그가 놀란 것은 마르티나 그리고 9마리의 회색기러기만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의 집에 수없이 많이 있는 회색기러기, 거위, 오리, 갈가마귀 들이 진짜 어미가 나타나도 오로지 로렌츠만 따라다닌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새끼 거위들이 알에서 태어날 때 처음 보는 것엄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짜 엄마가 아닌 다른 것을 갖다 두어도 엄마로 생각했다. 심지어 몇몇 개체성체가 된 이후에도 로렌츠를 같은 종으로 여겨 구애의 몸짓을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데 로렌츠는 남다른 눈썰미를 갖고 있었다. 거위사람 전체엄마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제자가 급히 뛰어 나가느라고 로렌츠의 노란 장화를 신고 나갔다. 그러므로 로렌츠다른 장화를 신었는데 거위들은 로렌츠가 아니라 제자를 쫓아갔다. 거위노란 장화어미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들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였는데 그는 로렌츠는 일단 각인이 형성되면 그 대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로렌츠는 이들 현상을 계속 추적하여 각인매우 이른 시기에 벌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병아리는 태어나서 45, 오리 종류67이 지나면 더 이상 각인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두 번째 논문인 사회생활을 하는 까마귀들의 비교행동학 연구갈가마귀들의 행동을 연구한 것으로 이 논문에서 처음으로 비교행동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로렌츠의 동물 본능 연구는 처음에는 동물심리학으로 불렸지만, 오늘날에는 비교행동학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당대 학계에서는 그의 생각에 큰 점수를 주지 않았다.

동물에게 타고난 행동과 주관적인 체험이 있을리 없으며 모든 것은 학습된 것이라고 주장이다. 이와 같은 차이는 사실 예상된 것이다. 로렌츠자연에서 동물을 관찰했지만 당대의 동물관련 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쥐와 비둘기 등을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스키너 상자

작은 상자에서 배가 고프거나 빛을 쬐면 단추를 누르거나 스위치돌리는 등의 동작을 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이른바 스키너 상자이다. 스키너의 시조반사작용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러시아의 의사 파블로프이다. 파블로프음식을 줄 때 외부자극에 의해 들이 침을 흘리는 훈련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반 파블로프(1849~1936)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

여하튼 그의 동물 연구는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에세이 솔로몬의 반지, 인간, 개를 만나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는 그가 시류와 영합한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반면에 비교행동학자로서 로렌츠를 입지를 확실하게 해주었다.

더욱 그의 명성을 높인 것은 1961년에 출간공격성에 대하여이다. 그가 우연히 목격한 산호초 물고기의 공격성에 대해 사실적으로 적었는데 이 내용이 당시 전쟁과 냉전 등의 시류를 타면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데즈먼드 모리스(1928~)

그가 어느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는지는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말로도 알 수 있다.

 

당신은 살아서 이미 과학계의 전설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렌츠1973년 카플 폰 프리슈, 니콜라스 틴버겐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도 수상한 것이다. 일부 과학사가들은 로렌츠야말로 지구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학문적 업적아인슈타인능가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