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노벨상이 만든 세상/컬러 사진

먹튀 노벨상 대명사, 컬러 사진(3)

Que sais 2020. 9. 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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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먹튀 노벨상의 대표로까지 인용되는 가브레일 리프만각기 다른 파장의 천연색채를 이용한 혁명적 컬러사진 촬영법을 개발했다. 빛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최초로 컬러사진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는 과학아카데미에서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이미지가 고정된 상태에서 변색되지 않고 일광에 머무를 수 있는 사진판에 색상으로 스펙트럼의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후 다양한 컬러 이미지의 제작에 성공한 그는 1894년과 1906간섭법을 이용한 컬러사진 이론을 발표했다. 이를 리프만법이라고 하는데, 그가 얻어낸 색상 효과안료가 아니라 간섭에 의한 것으로서 사진판이 그대로 있는 한 변하지 않고 명료할 뿐더러 조작이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리프만의 부친제혁 및 장갑 공장을 운영하는 프랑스인인데 리프만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시절 그를 가르쳤던 교사 덕분이라고 알려진다.

당시 그 교사 두 개의 공으로써 지구의 공전 및 자전을 설명해 왜 낮과 밤이 생기는지를 설명하고, 천과 모피, 고무마찰시켜 전기를 발생시키는 실험 등으로 어린 리프만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후 과학 연구에 푹 빠졌는데 13파리로 이주해 리쎄나폴레옹 중학교에꼴노르말 사범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특히 그는 에꼴노르말 사범학교 재학 당시 <화학 및 물리학 연보>의 편집을 맡아 독일의 전기 연구 상황에 정통하게 되었다.

 

1873년 정부 정책으로 독일에 유학을 간 그는 스펙트럼 분석의 발명가키르이호프와 함께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연구했다. 또한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 헬름홀츠 밑에서도 연구할 기회를 받았고 1875년 전기모세관 현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컬러사진 기법상업화되기에는 너무 많은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23시간의 노출을 필요로 했을 뿐만 아니라 밀도가 높은 네거티브 모양이라 사본을 만들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용되고 있는 컬러사진리프만 방식과는 전혀 다른 원리.

리프만노벨 물리학상을 받지만 노벨상 사상 최악의 수상 중에 하나로 기록되는 이유는 곧바로 감광제컬러 염색을 타서 컬러 사진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어 그의 카메라는 단 한 번도 실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원리에 따르면 천연색 필름영상의 빨강, 파랑, 녹색 성분에 각각 예민한 3개의 유제층으로 이루어진다. 유제층은 각각 빛의 세기에 따라 흑백 사진과 같이 사진이 찍히며 3개의 사진이 중첩되어 완전한 천연색 사진이 나오는 것이다.

 

천연색 사진 기법은 계속 개발되어 1959란드새로운 이론을 내 놓는다. 사람의 뇌가 모든 종류의 색상을 감지하는데 세 가지의 색상의 혼합이 필요 불가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종류의 파장 혹은 한 쪽이 다른 쪽 보다 더 긴 파장의 집합으로, 단순한 백색광긴 파장의 역할을 하는 적색광의 조합만으로 천연색 사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란드는 또한 녹색 필터와 빨간색 필터를 통과한 빛으로 모든 종류의 색상을 가진 사진을 만들었으며 다른 색상의 조합도 찾았다.

 

여하튼 리프만의 컬러 사진 제조법 폐기처분되었다는 것은 노벨의 유언과도 배치하는 일이었다. 이후 노벨 위원회에서는 공학적인 발명품수상 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에 매우 신중해졌으며 수많은 혁신적인 공학 제품을 발명한 사람들이 수상자 대열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행보는 문제가 없었다. 1886년 파리대학의 실험물리학 교수로 임명된 리프만1912년 과학아카데미 원장으로 취임했다.

우리나라사진이 도입된 것은 1884으로 김용원과 지운영촬영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운영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웠으며 1884313일 고종의 사진공식적으로 찍었다. 도입 초기에 사진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사진기사람의 혼을 빼는 기계라는 소문으로 인해 촬영은 물론 사진사의 대문 출입까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발령이 실시되면서 상투 튼 모습을 남기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진 촬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유교 관습 때문에 남녀가 내외를 했으므로, 여성을 위한 여성 사진가를 특별히 고용했다.

사진가 지운영

<사진기술이 갖고 온 유행>

그림과는 달리 실사 현장을 찍는 사진이 태어나자 가장 먼저 태어난 현상은 가능한 한 많은 사진을 찍어 두자는 것이다. 1890대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앨범 만드는 취미를 갖고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같은 취미 활동에 기꺼이 참여했다.

그들은 유명인사나 왕족, 전쟁영웅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사진을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과 함께 명함(calling card 또는 carte de visite) 앨범을 정리하는데 큰 즐거움을 가졌는데 이들을 카도마니아(cartomania)라고 불렀다. 빅토리아 여왕명함110종이나 모았다고 자랑할 정도였으니 그 열풍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명함 카드인물사진(10x6센티미터)을 박은 명함을 뜻하는데 명함판 사진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명함 카드1854년 프랑스의 앙드레 아돌프 외젠 디스테리(Andre Adolphe Eugene Disderi)새로운 카메라를 발명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다. 렌즈 4를 사용하는 이 카메라는 유리판 한 개에 8장의 음화를 만들 수 있으므로 저렴한 사진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프랑스새로운 제정시대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 3디스데리의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자 더욱 보급 속도가 빨라졌다. 콜링 카드사진이 든 명함을 처음 만난 사람이나 생일잔치, 휴일 모임 등에 나온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또한 전쟁 등 유명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전쟁 영웅들의 명함판 사진을 파는 것이 유행했는데 덕분에 역사적으로 진귀한 사진들이 현재에도 발견되는 이유다.

 

근래에는 누구나 사진을 직접 찍거나 확보할 수 있으므로 사진 공해 세상이라고도 비판하지만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사진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보석 같은 대접을 받았다. 유명한 사람의 모습을 담은 인물사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신비로운 풍경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명한 미국의 <내셔날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가 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끈 것도 잡지에 나온 사진들을 벽에 붙여두는 것이 유행 중에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열풍을 잠재운 것이 앞에 설명한 조지 이스트먼이 개발한 코닥사의 브라우니 카메라.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구입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자 사진을 찍는 것개인 취미로 변한 것이다. 카메라가 유행을 타자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얼굴을 담은 명함판 사진은 촌스러운 물건이 되고 말았다. 모든 가정이 가족사진을 찍고 기념사진을 만드는데 법석을 덜게 되자 그동안 보석으로 우대받던 명함사진은 응접실을 어지럽히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세월의 변화가 아니라 기술의 발전에 의한 유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즉석사진기필름 카메라의 한 획을 그었던 개발품이다.

즉석사진기(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으면 현상소를 가지 않아도 즉석에서 현상과 증착이 발생 즉시 플라스틱으로 된 얇은 판이 튀어나온다. 디지털카메라(디카)가 등장하여 즉석사진기의 효용도가 많이 감소되기는 했지만 곧바로 자신이 찍은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개발품으로 인식되었고 과거에 스파이나 추리물 영화에서 자주 나온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즉석카메라의 기본컬러 슬라이드와 같은 현상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필름화학적 특성이 다른 아홉 개 층으로 구성된다. 필름노출되면 파랑, 녹색, 빨강빛에 반응하는 은화합물층에 도달한다. 필름판이 롤러 사이를 통과할 때 필름 속의 얇은 캡슐에서 약품이 나오는데 그 속에는 흰 색소, 차광제, , 알칼리 등이 들어있다. 이 중 차광제는 빛을 막아 필름이 카메라 밖으로 나와도 감광층에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다.

약품감광층에 들어가면 색소 현상액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은화합물이 감광되지 않는 곳에서는 색소가 녹아나와 다른 층을 통과, 영상층으로 올라가지만 감광된 층에서는 현상액에 의해이 생기고 그 때문에 색소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약품산성층에 도달하면 알칼리중화되고 차광제투명해지며 색소영상층에 들어가 그 밑의 색소층을 바탕으로 선명한 상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바로 카메라 밖으로 튀어나오므로 즉석에서 자신이 찍은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사진으로는 2차원밖에 표현할 수 없게 되자 사람의 욕심 입체화를 만드는데 쏠렸다. 사진이나 그림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석궁처럼 생긴 입체경(당시에는 입체환등기라 불렸음)을 보면 사진을 3차원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현대의 홀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입체환등기는 그야말로 마법의 도구로 사람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교 클럼이나 모임 장소에는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입체경을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당대에 입체경을 통해 이국적인 풍취3차원으로 맛볼 수 있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인기를 얻은 것은 성지순례시리즈’, ‘세계 명승지’, ‘북극이나 남극탐험등이며 섹스 심벌들을 비롯한 섹스 시리즈는 인기가 내려간 적이 없다.

입체경이 가능한 것은 사람의 두 눈이 서로 다른 각도로 물체를 보기 때문이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으로 사물을 보면 각각 다른 각도로 보이는데 뇌에서는 각기 다른 상들이 결합되면서 깊이를 느끼게 된다.

 

입체경은 사진이 개발된 지 10년도 채 안 되 출현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실용화가 되지 않은 것으로 남북전쟁입체사진기로 찍기도 했다. 그런데 입체경과 프로그램을 담은 카드가 저렴해지자 일반 대중들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입체경20세기에 들어서 영화 등이 등장하자 급속하게 몰락한다.

 

참고문헌 :

즉석사진기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과학동아, 199511

디카에 밀려 굿바이! 코다크롬, 김창우, 중앙일보, 2009.06.24.

노벨상 흠집 낸 컬러사진 발명가,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스, 2018.05.28,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1), 찰스 패너티, 자작나무, 1997

세계를 바꾼 20가지 공학기술, 이인식 외, 생각의 나무, 2004

과학자들의 돈버는 아이디어, 이종호, 사과나무,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