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가짜 뉴스 대명사>
18세기 중엽의 어느 여름. 당시 유럽 최고이던 파도바 의과대학 출신 의사인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귀족이 몇 날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새야 했다. 누구도 그의 불명증 원인을 알 수 없었는데 증상은 점점 심해져 땀을 몹시 흘리고 동공이 바늘구멍 정도로 축소된 후 극심한 피로 상태에 이르러 사망했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200년에 걸쳐 이 가문 사람들은 줄줄이 이 '치명적 가족 불면증(FFI)'으로 희생되었다.
이 병이 악명높은 유전성 프리온 질환이다. 프리온은 단백질 형태를 띤 입자인데 상황에 따라 ‘변형 프리온’으로 변환되어 뇌 조직을 파괴시킨다. ‘FFI’는 상염색체 우성인 유전병으로 부모 중 누군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FFI’에 걸렸다면 자녀에게 이 병이 유전될 확률이 50%나 되는데 일반적으로 ‘FFI’는 3,000만 명 중에 한 명 꼴로 걸리지만 이 가문에서는 두 명에 한 명 꼴로 걸린다.
프리온은 정상 단백질이지만 어떤 요인에 의해 변형이 생기면 치명적인 신경질환을 가져오는데 고약스러운 것은 변형 프리온으로 세포가 사멸한 자리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아 뇌조직은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바로 인간광우병이다.
2008년 한국을 온통 혼돈의 도가니에 몰고 간 것은 광우병 파동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 조직을 보면 스펀지처럼 구멍이 뻥뻥 나 있는데 이로 인해 치매, 운동능력 상실, 통증 등을 느끼다가 결국은 사망하는데 뇌에 구멍이 펑펑 뚫렸다는 말 자체가 엽기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을 경우 인간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심각성이 있는데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미국에서 식용으로 수입하는 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광우병 공포를 몰아 와 태풍의 핵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이 다르면 같은 병에 걸리지 않는데 개중에는 인수(人獸) 공통 질병이라 하여 동물과 사람 모두 걸리기도 한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질병이 광견병이다. 문제는 광견병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광우병의 경우 일단 발병하면 치료약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광우병이 온통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 것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광우병이 전염병이 아니라고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광우병 원인물질인 프리온 0.001g만 섭취해도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와는 달리 광우병 감염 소라도 많이 먹지 않으면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미국에서 발표했는데 한국에 쇠고기를 많이 수출하는 미국의 꼼수일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곧바로 제기되었다. 특히 FDA가 광우병의 주요 감염경로를 ‘광우병 감염소에서 분리해낸 충분한 양의 고기(뇌, 척수, 내장 등 포함)와 가공품(MBM)을 먹는 경우’로 규정하여 한 마디로 광우병 감염 소라도 많이 먹지 않으면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없다는 것이지만 이들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한국에서 광우병 쇼크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간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측에서 FDA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발한 것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광우병을 전염병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유렵연합(EU)도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에 조금이라도 접촉하면 SRM으로 간주한다. 이는 광우병 원인물질인 프리온 0.001g으로 광우병이 발병할 수 있고 사전예방 차원에서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는 양은 소나 인간에게 동일하게 간주된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측의 설명과는 달리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 소에 대해 광우병 위험 여부로 국론이 분열될 정도인데 막상 광우병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연구가 가장 많이 축적되어 있는 영국의 과학자들이 광우병에 대해 내려진 유일한 결론은 간명하다.
‘아직은 광우병에 대해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이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한국민이 미국 쇠고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감이 과대평가된 것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과소평가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요인이다.
과학 분야든 아니든 우리가 모르는 것은 너무 많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전 국방장관이 유명하게 이야기한 대로, '우리가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도 많다.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 차이 때문에 '전문가 의견'이 무엇인지 불확실한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일반인들보다 항상 더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과거부터 전문가들이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항이다.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지식이 너무 특화되었으므로 오히려 큰 그림을 못 보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예상보다 많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의 '곡학아세(曲學阿世)'는 물론 개인적 편견으로 전혀 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 즉 ‘우리가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도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 차이 때문에 ‘전문가 의견’이 무엇인지 불확실한 경우도 허다하며 더욱 사건을 꼬이게 만드는 것은 전문가들이 일반인들보다 항상 더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과학 측면으로만 생각하면 광우병은 두 번이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 정도로 과학계에서 중요성을 부여받고 있는 주제이다.
<쿠루병>
1976년 칼턴 가이두섹(Carleton Gajdusek)이 버룩 블럼버그과 공동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가이두섹은 1943년 로체스터대학을 졸업하였고, 1946년 하버드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49〜1952년 하버드대학 소아과학, 감염질환 분야의 연구원으로 있었다. 1953년부터 3년 동안 워싱턴 D.C.에 있는 월터리드 육군의료센터 연구소와 테헤란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했다. 1955년부터 가이두섹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월터엘리자홀의학연구소>에 초청연구원으로 갔는데 1957년부터 파푸아 뉴기니아 동부 고원지역에 사는 포어족 원주민들에게 덜덜 떠는 쿠루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쿠루병에 걸리면 균형감각과 방향감각이 사라지며 나중에 뇌 조직이 점점 심하게 파괴되어 대부분 1년 이내에 사망하며 길어도 2년을 넘기지 못한다. 잠복기는 6개월에서 8년 정도로 길지만 일단 발병이 되면 치료약이 없으므로 의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잠복기간이 긴데다가 처음에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슬로우(Slow)바이러스병’으로도 알려졌다.
가이두섹이 쿠루병에 관심을 보이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서 뉴기니아에 파견한 의사 치가스는 그에게 쿠루병을 연구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연구비였다. 추후에 노벨상을 받아 그동안의 고생 등이 위로가 되었지만 뉴기니아 정부에서 그에게 연구비를 지불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가이두섹은 미국의 스승인 스마이디 교수에게 연락을 취해 세계적으로 특이한 쿠루병을 연구해보겠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에서 지출되는 연구비는 연구원이 직접 서명한 연구계획서로 신청해야 하지만 가이두섹이 연구하려는 쿠루병의 중요성을 간파한 스마이디 교수는 그의 연구 계획만 듣고 자신이 대리 신청하여 연구비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때 승낙된 연구비가 턱없이 부족하자 스마이디 교수는 가이두섹에 필요한 기자재와 물자를 자신의 연구비에서 직접 구입하여 지원했다. 가이두섹은 추후 스마이디 교수에 대해서 고마움을 다음과 같이 표했다.
“제가 제일 곤란했을 때 저에게 사심 없는 지원과 관심을 가져주신 스마이디 교수님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쿠루병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한 추장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이다.
가이두섹을 사망한 포어족 추장의 장례식에 안내한 사람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절대로 놀라지 말라고 했다. 그가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신을 앞에 놓고 기도를 할 때까지는 여느 장례식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기도가 모두 끝나자 몇몇 참석자들이 죽은 추장의 배를 갈라 나오는 피를 몸에 바른 후 시신을 완전히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참석한 조문객 모두에게 추장의 고기를 나누어 주었는데 특이한 것은 남자들에게는 추장의 뇌도 주었다는 점이다.
포어족에게는 고인을 먹는 것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므로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추후에 가이두섹에게도 고기를 먹지 않겠느냐고 인육을 주어 심한 구토를 한 후 장례식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일설에는 그에게 준 추장의 고기를 먹지 않고 연구실로 가져와 실험에 사용했다고도 한다.
가이두섹과 치가스는 쿠루병에 걸린 시신들을 연구하면서 공통적으로 특이한 징후를 발견했다. 뇌 곳곳이 손상되었고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또한 이 병의 분포가 매우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쿠루병은 포어족이 거주하는 지역과 포어족과 결혼한 뉴기니아의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한다는 것이다. 1950〜1960년대 쿠루병은 매우 극성했는데 한 여성의 시체를 먹은 56명 중 53명이 발병했다. 1960년대에는 구루병이 포어족의 여성 사망원인 1위였다. 이 질병이 알려진 20년 동안 35,000명의 주민 중 3,000명이 쿠루병으로 사망했고 그중 8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인종 즉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10명의 포어족을 미국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면서 그들이 발병하는지를 관찰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쿠루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쿠루병이 인종과 관련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쿠루병이 바이러스 병원균에 의한 전염병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쿠루병은 계절과도 상관없었고 바이러스 병원균을 추출하는 것 역시 실패했다. 결국 바이러스가 쿠루병을 일으키는 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이두섹은 미지의 원인으로 생기는 중독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쿠루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집안을 모두 조사해도 다른 보통 가정과 다름이 없었다. 또한 그들이 먹는 음식물은 물론 흙의 성분까지 조사했지만 쿠루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어떤 영양소가 결핍하여 생겼을 가능성도 조사했지만 포어족이 섭취하는 단백질량은 인근에 사는 다른 주민들보다 더 많았으며 유아들의 영양상태도 매우 좋았다.
가이두섹은 쿠루병이 1920년 H.G.크로이츠펠트와 1921년 A.야콥이 처음으로 보고한 신경질환인 '크로이츠펠트-야코브(CJD)병'과 비슷하나 치매가 없는 점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JD)은 유전자 돌연변이 등의 이유로 뇌에 스펀지 모양의 구멍이 나며 치매 증세가 나타났다가 숨지는 병으로, 평균 발병연령은 65세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데 지역과 인종에 관계없이 보통 인구 100만 명 당 연간 1명 발병한다.
놀라운 것은 쿠루병 병원체가 강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어 냉동 건조시키거나 섭씨 85도로 30분 이상 가열해도 전염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에서 나타난 실험결과와 유사했다.
또한 쿠루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뇌조직은 염소와 양에게 발견되는 ‘스크래피병’과 매우 유사했다. 스크래피란 양이나 염소에서 발병하는 특이한 질병으로서, 이 병에 걸린 양들은 가려움을 참지 못해 털이 벗겨질 정도로 등을 벽에 대고 긁어댄다. 당시만 해도 과학계에서는 스크래피를 일으키고 전염시키는 인자를 기존과는 다른 특이한 바이러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바이러스는 특별한 증상 없이 수년 또는 수십 년간의 잠복 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슬로우(slow) 바이러스라고 불렸다.
스크래피병은 영국의 축산업자 로버트 베이크웰의 아이디어로 생겼다고 알려진다. 그는 영국의 가축들은 값비싼 목초를 먹는데도 엉뚱한 곳에만 살이 붙어 막상 인간이 필요한 고기는 별로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꿈꾸는 완벽한 양은 머리는 작고, 다리는 가늘고, 가슴과 엉덩이는 엄청나게 큰 모습이었다.
베이크웰이 생각한 아이디어는 상상을 초래했다. 즉 그는 우수한 형질의 어미가 있으면 그의 새끼도 우수한 품질의 소가 될 것이 분명하므로 그들 간에 교배를 시키면 보다 우수한 육종 품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농부들 사이에서 이런 동종교배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지만 이 기법은 영국 국왕이 장려하는 육종법이 됐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유럽 전역에서는 양떼들이 쓰러져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프리온 질병 즉 스크래피병이다.
크로이츠펠트-야곱병, 스크래피병, 쿠루병 모두 뇌가 광범위하게 파괴되어 스폰지처럼 구멍이 뚫리는 신경질환인 ‘전염성해면양뇌증(TSE)'에 속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1965년 가이두섹은 사망한 환자의 뇌조직을 침팬지에게 주사하여 쿠루병이 전염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침팬지의 뇌에서 단백질 입자를 추출하여 분해 효소 처리한 뒤 다른 침팬지에 이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침팬지들이 쿠루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쿠루병의 병원체는 미생물도 바이러스도 아닌 어떤 특정한 단백질 입자다. 이 단백질 입자가 쿠루병을 일으키는 과정은 확실하지 않지만 사람 또는 침팬지의 뇌 속에서 증식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처음 그는 특이하게도 남자에게만 쿠루병이 걸리고 여자와 아이들에게는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이두섹은 처음에 원주민들의 생활습관을 관찰한 결과 남자들만 죽은 사람의 뇌를 먹기 때문에 쿠루병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가 처음 장례식장에 참석하였을 때도 남자들만 시신의 뇌를 먹었다. 그러나 추후에 여성은 물론 어린아이들도 걸리는 데 상황에 따라 이들 역시 시신의 뇌를 먹는다는 것이 알려졌다.
가이두섹은 포어족의 식인 풍습이 쿠루병의 원인이 분명하다며 그들의 식인풍습을 금지토록 뉴기니아 정부에 요청했는데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쿠루병이 포어족의 3퍼센트가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인풍습이 금지된 이후로 태어난 아이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병이 된 것이다.
그는 이 연구로 버룩 블럼버그와 공동으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블럼버그는 1965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혈청에서 바이러스 비슷한 미립자를 발견했는데 추후에 B형 간염 바이러스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에 의해 B형 간염 예방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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