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발생>
199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그동안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공동으로 수상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탠리 벤 프루시너(Stanley Ben Prusiner)가 단독으로 수상했다는 점이다. 노벨 과학부분에서 몇몇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한 부분에서 2〜3명이 공동수상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은 현대과학의 대부분이 여러 학자들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42년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태어난 프루지너는 젊어서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난 숙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의 연구인생 전반기는 평범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의학을 복수전공했는데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대장균의 글루타민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인생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것은 1972년이었다.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신경과 연수 생활을 하던 중 치매를 앓는 여성 환자를 진찰하였다. 그녀는 점차 기억을 잃고 일상생활도 부자연스럽다가 2개월 후 사망했는데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이었다.
당시 이 병은 슬로바이러스의 감염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병의 진상은 전혀 달랐다. 감염증이라면 통상 몸을 지키는 면역기능이 발동하여 병원체를 공격하고 배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열을 내거나 코 또는 목에 염증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 환자는 그런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질병에 흥미를 느낀 프루시너는 1974년 캘리포니아대학 준교수가 되자 본격적으로 스크래피 연구를 시작했다. 다행하게도 그는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로부터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가 순탄한 것은 아니다. 이 질병의 감염기간이 길어 생쥐의 경우 병원체를 포함한 시료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데 1년 정도가 걸렸다. 결과가 나오는데 너무 시간이 걸린데다 연구비도 여러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에서도 계약 종료를 통보받았고 NIH에서도 연구 종료를 독촉했다.
궁지에 몰린 프루시너는 실험동물을 생쥐에서 햄스터로 바꿨는데 그것이 행운을 갖다주었다. 햄스터는 스크래피 발병까지 잠복기간이 2개월로 생쥐보다 훨씬 짧았다. 실험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더 순도 높은 병원체를 얻을 수 있었다.
여하튼 그는 이런 행운이 겹쳐 거의 10년 만에 단독으로 수상한 것이다. 사실 그의 수상 제목 자체만 보면 단독으로 수상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그것은 세계를 놀라게 한 광우병의 원인이라 볼 수 있는 프리온(Prion) 단백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프리온은 ‘단백질 감염성 입자(proteinaceous intectious particle)’를 줄인 말이다.
프리온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티크바 알퍼(Tikvah Alper)는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조직이 DNA가 모두 파괴된 뒤에도 여전히 감염 능력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혹은 균류는 병원균이 될 수 없으므로 오직 단백질만 가능성이 있다는 ‘Protein only theory'를 제시했다. 얼마 후 스크래피 단백질의 형성을 담당하는 유전자도 발견됐다.
그가 성공한 비결은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원이라는 느린바이러스에 대해 인체가 아무런 방어 조치가 가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후 이의 규명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작아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어떤 바이러스의 작용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해의 작업을 거쳐 추출한 조직 추출물에서 바이러스 DNA는 발견하지 못하고 그 대신 특이한 형태의 단백질 구조만 발견했다. 그는 이때 역발상했다. 그렇게 DNA나 RNA를 찾았는데도 발견되지 않는 것은 그 병원체에 원래 유전물질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병원체가 감염시료에서 유일하게 발견되는 단백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프리온(Prion)이라고 명명한 것이 바로 이 단백질이다.
놀라운 것은 인간을 포함한 많은 포유동물들도 프리온 단백질을 만들지만 반드시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단백질에는 ‘세포성 프리온 단백질’이란 이름을 붙였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에서 발견된 단백질은 이와 다른 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스크래피 프리온 단백질’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스크래피 프리온 단백질은 쥐에게 주사하면 실제로 스크래피와 유사한 질병이 발생했다. 프루시너는 1993년 프리온 단백질이 2개의 서로 다른 3차원 구조를 가질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중 한 가지 타입(PrPC)은 무해하지만 또 다른 타입(PrPSc)은 단백질을 변형시켜 스크래피나 이와 유사한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프리온의 특이성은 단백질인데도 불구하고 증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 몸은 대략 10만 가지의 서로 다른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수많은 단백질의 정확한 기능을 규명하는 것이 현재 생물학의 숙제다. 프리온도 단백질이다. 하지만 DNA가 없다. 즉 프리온은 보통의 단백질과는 달리 핵산(DNA 또는 RNA)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생체에 감염될 수 있고 자기 증식을 할 수 있는 재주를 갖고 있다. 역설적으로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파괴할 수도 없다. 우리가 프리온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것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종(種)의 경계를 뛰어 넘어 온다는 점이다. 프루시너가 증식이 가능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단백질이 증식할 수 있다고 논문을 발표하자 많은 학자들이 그가 헛소리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프루시너가 감염성 단백질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지만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이것이 가능한지를 설명하지 못해 더욱 불신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우뇌해면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즉 광우병으로 감염된 소의 뇌조직을 완전히 파괴시켜 스펀지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병이 앞에서 설명한 스크래피로 양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최초의 스크래피는 200년 전에 발견될 정도로 매우 오래 전에 보고된 병이다. 그런데 당시에 스크래피 병에 걸려 죽은 양의 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스크래피병이 전염되지 않아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1986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광우병은 스크래피 병과는 달랐다. 이병에 걸린 소들이 아무 곳이나 들이받기 때문에 ‘미친 소’란 뜻의 광우병이라고 불리는데 그 확산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영국에서 1988년 2,000마리의 소가 감염되더니 1992년에는 4만 마리가 넘었고 곧이어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6년 광우병이 인간으로 전염된다는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크로이츠펠트 야곱병 환자가 증가한다는 것으로 이 병에 걸린 거의 모든 환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소와 관련이 있었고 사망한 환자의 뇌가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와 매우 비슷했다. 광우병에 걸린 동물에서 프리온 단백질이 검출되자 프루시너는 광우병의 여파로 1997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프루시너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는 상당한 구설수가 따라 다녔다. 그가 프리온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을 만든 것은 사실인데 그가 논문을 발표한 1982년보다 1년 전에 파트리샤 메르트(Patricia Metz)가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스크래피(scrapie)에 걸린 양의 뇌에서 프루시너와 유사한 단백질 입자를 발견한 후 이를 ‘스크래피와 연관된 신경섬유(Scrapie Assoicated Fibrils)’라고 발표했다. 문제는 프루시너가 학계의 불문율을 무시하고 자신보다 먼저 발표한 논문을 고의적으로 무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과학잡지 <디스커버>는 1986년 「명성을 위해 이름을 이용하다」라는 제목 아래 장문의 기사를 게재하여 프루시너의 연구원답지 않은 행동을 일일이 거론했다.
이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가 노벨상을 단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선천적인 언론 플레이에 탁월한 능력 때문으로 생각한다. 그는 심지어 언론 전담 대변인까지 고용할 정도였는데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지는 그를 ‘미국 대통령 후보와 방문판매원을 섞어 놓은 인물’이라고 평했을 정도이다. 노벨상이 노련한 마케팅에 의해 수여된 예로 자주 거론되는 이유이다.
현재 학자들이 프리온의 발병 작용을 완전히 분석한 것은 아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아직 프리온의 형성이 부차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 광우병과 그와 유사한 질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알려진 프리온에 대한 지식이 정말로 올바른 것으로 확정될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무튼 프리온과 뇌 질병 사이의 연관성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앞으로 이 분야에서 노벨상이 계속 나오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벨상을 받은 후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연구진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영광의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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