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맨」의 슈퍼맨은 지구보다 정신적·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행성 크립톤에서 태어난 외계인이기 때문에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된다. 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구를 돌아 과거로 돌아가서 애인을 구할 수도 있으며 보호복을 입지 않고 우주를 활보할 수도 있다. 반사 능력도 빨라 몇 미터 앞에서 권총을 쏘았는데 총알을 잡기도 한다.
그러나 「슈퍼맨」에서의 압권은 아무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슈퍼맨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몇 번 몸을 돌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슈퍼맨의 로고가 찍힌 옷을 입는다.
슈퍼맨은 옷을 어떻게 만들까?
원리적으로 슈퍼맨이 옷을 만들 수 있는 ‘원소이용장치’를 갖고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그런 기자재가 보이지 않지만 슈퍼맨이 몸 어디엔가에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면 실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슈퍼맨이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이라 불리는 플라스틱류의 폴리에스터라는 화학섬유로 옷을 만들었다면 ‘질량보존의 법칙’, ‘에너지보존 법칙’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폴리에스터는 탄소, 산소, 수소만을 원료로 해서 만들어지는데 이 원소들은 공기중에서 얼마든지 뽑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슈퍼맨이 회전하면서 옷을 만들려면 이들 원소를 공급할 공기의 양이 충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처럼 슈퍼맨이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슈퍼맨이 입는 망토를 비롯한 최첨단 옷이 1kg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자. 산소와 수소는 공기중에 무한대로 있으므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탄소이다. 1kg의 옷을 만들려면 탄소가 700g 정도 필요한데 탄소를 포함한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에 0.03%밖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슈퍼맨이 순식간에 자신이 입는 옷을 만들려면 무려 4,400세제곱미터의 공기를 확보해야 한다. 이 양은 길이 50m, 폭 25m의 국제경기 수영장의 규모에다 3.5m 높이의 체적에 꽉 찬 양이다. 슈퍼맨이 0.5세제곱미터도 되지 않는 회전문 안에서 이 정도 양의 공기를 1초 안에 확보하여 자신이 입을 옷을 만들려면 1초에 무려 8,800세제곱미터의 공기를 빨아들여야 한다.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 수월봉을 지날 때 초속 60m였고 2000년 8월 31일 태풍 ‘프라피룬’이 흑산도를 지났을 때 최대 풍속이 초속 58.3m였으며,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가 제주 고산지역을 통과할 때는 풍속이 초속 56.7m였다.
기상청에 의하면 초속 17∼20m의 바람에 작은 나뭇가지가 꺾이고 초속 21∼24m면 굴뚝이 넘어지고 기와가 벗겨지며, 그 속도가 25∼28m에 이르면 나무가 뿌리째 뽑힐 수 있으며 60m 바람은 철탑을 휘어버리는 그야말로 초특급 강풍이다. 초속 60m의 태풍 ‘매미’에 의해 건물은 물론 나무, 전신주, 기차가 탈선되고 침수‧정전(150만 가구에 이르렀음)은 물론 교각(부산 구포대교)이 무너지는 것을 감안하면 이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로 슈퍼맨이 옷을 만들어 입으면 그때마다 회전문과 건물이 왕창 파괴되는 것은 물론,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의 사자인 슈퍼맨이 옷을 만들어 입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건물이 파괴된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슈퍼맨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옷을 만들어 입지 않는데 여하튼 이러한 영화 소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노벨상 역사상 가장 불운한 과학자 중에 한 명으로 꼽히는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뒤퐁사는 셀룰로오스, 실크, 고무 등의 천연 고분자 구조를 해명하고 그것들과 유사한 합성물질을 만들어 낼 목적으로 파격적인 조건에 캐러더스를 하버드 대학에서 영입하였다. 그는 뒤퐁사에 입사하자마자 실크와 비슷한 구조의 폴리아미드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었다. 이미 개발된 폴리에스테르가 섬유 제품으로 사용되기에는 용융점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에 폴리아미드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폴리아미드가 냉연신(冷延伸)하면 장력(張力)이 향상되어 우수한 직물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합성섬유의 대명사라고 볼 수 있는 나일론이 탄생한 것이다.
근대 화학을 설명하다보면 반드시라 할 정도로 듀퐁사가 등장한다. 흔히 듀퐁이라고 부르는 회사의 정식 이름은 <E. I. 듀퐁 드 느무르(E. I du Pont de Nemours and Company)>로 1802년 미국에서 설립되어 시가총액 기준 세계 3위의 화학회사이다. 듀퐁 드 느무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포정치 때 은행가이자 작가인 듀퐁 드 느무르 자작이 단두대를 피해 두 아들과 가족을 데리고 1799년 미국으로 이민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듀퐁의 아들 중 한 명인 엘뢰테르 이레네 듀퐁은 당시 프랑스를 주도하고 있던 라부아지에 밑에서 화약제조를 도왔는데 그가 바로 듀퐁사의 창시자이다.
엘레퇴르는 미국에서 제조되는 화약의 질이 형편없다는 것에 주목하여 프랑스에서 번 돈으로 프랑스로부터 화학기계를 수입하여 1802년 화학회사를 설립한다. 그가 생산하는 화약은 품질이 상당히 좋아 프랑스혁명 이후 영미전쟁(1812〜1815), 멕시코전쟁(1846〜1848), 남북전쟁(1860〜1865) 그리고 1880년대의 철도건설 붐 등으로 화약 수요가 급증하여 듀퐁은 1800년대에 이미 거대 기업이 되었다.
듀퐁의 순발력은 남달랐다. 1900년대 초 무연화학이 발명되자 그는 재빨리 흑색화약 생산을 중단하고 니트로셀룰로스 화약으로 전환했다. 마침 때맞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듀퐁의 군수품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경영진들은 제1차 세계대전도 근간 종료된다는 것을 감지하고 사업의 다각화 전략을 세운다. 그들의 투자가 얼마나 재빠른지는 1914년 막 시작된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가져 GE의 주식을 모집하여 나중에 피레르 듀묭은 GM의 회장직에 오르고 동생 이레네가 듀퐁의 회장이 된다.
이레네는 사업의 다각화 일환으로 화학약품에 부가가치를 더한 ‘정밀화학’에 투자하면서 폭발물 외에도 염료, 의약품, 직물용 섬유 등 다양한 화학분야 회사들을 인수했다. 1921년부터 레 자동차 노킹방지제, 프레온, 합성 암모니아 등을 만드는 체재를 갖추었다. 이를 총괄 운영하는 사람이 스타인(Charles M. A. Stein) 박사다. 그는 장기간의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과학적 발견을 통해 기업을 획기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1916년 듀퐁의 화학부 안에 유기화학부서를 만들고 1923년 전체 화학부 책임자가 되었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eulmoe.quesais
<비단을 인공적으로 만들자>
비단 하면 호화로움, 부드러움, 유연함, 광택 같은 이미지와 함께 비싼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하게 된다. 비단은 현재까지 태어난 자연품 중에서 최고의 직물로 꼽힌다. 비단은 피부에 닿는 촉감이 좋으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특성도 갖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도로에 ‘실크로드(silk road)'라는 말을 붙여준 것은 그만큼 비단이 매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의 역사는 4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2600년 경 중국의 시조로 일컫는 황제(黃帝)의 왕후 서릉씨(西陵氏)가 누에에서 섬세한 비단실을 뽑아냈다고 한다. 이일로 중국에서 서능을 양잠의 신으로 인식한다.
누에(bombyx mori)는 뽕나무의 잎만 먹고사는 회색은 작은 벌레다. 누에나방은 5일간에 걸쳐 약 500개의 알을 낳고 죽으며 작은 누에 알 1그램에서 1000마리 이상의 누에가 태어난다. 이들은 약 36킬로그램의 뽕잎을 먹고 약 200그램의 생사를 만들어낸다. 누에는 깨끗하고 환기가 잘 되는 채반에서 왕성하게 먹고 수차례 허물을 벗는다. 한 달 뒤, 방적 채반으로 옮겨진 누에들은 고치를 짓기 시작한다. 고치를 짓는 데는 수일이 걸리는데 누에는 턱에서 외가닥의 긴 실을 뽑아내는 데 여기에서 실을 들러붙게 하는 끈적끈적한 분비물이 묻어 있다. 자신의 머리를 8자 모양으로 끊임없이 움직여 고치를 빼빽하게 지어 나가면서 누에는 번데기가 된다.
비단을 얻는 방법은 잘 알려져 있다. 고치를 가열해 안에 있는 번데기를 죽이고 끓는 물에 담가 끈적끈적한 분비물을 녹여 낸 후 고치에서 깨끗한 생사를 풀어 내어 릴에 감는다. 고치 하나에서 나오는 실은 400미터에서 3,000미터로 그 길이가 다양하다.
여하튼 비단은 경이의 직물이므로 그리스로마에서 비단을 금과 같은 무게로 교환했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독자적으로 비단을 만들었으나 유럽이 비단의 비밀을 알기에는 요원한 일이었다. 중국은 비단 생산의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에, 노에알, 뽕나무 씨앗을 중국 밖으로 가져가다 적발된 사람들을 사형에 처했다. 기록에 의하면 552년 두 명의 네스토리우스파 교회 수도사들이 속 빈 지팡이에 누에 알과 뽕나무 씨앗을 숨겨 중국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네스토리우스파 수도사들은 최초의 산업스파이라 볼 수 있다.
여하튼 양잠이 유럽에서도 번창해 특히 14세기 이탈리아에서 크게 번성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루카, 피렌체 같은 도시들이 비단을 생산했는데 이 지역에서 생산된 비단으로 인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의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고 인식한다. 1466년 프랑스의 루이 11세는 리용의 비단 직조공들에게 세금을 공제해 주고 뽕나무를 심을 것을 포고했고 이후 500년 간 리용과 그 주변 지역은 유럽 양잠업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영국에서도 양잠업이 성행했는데 미국에서 비단을 생산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추후에 비단 방적같이 기계화가 가능한 공정들은 미국에 접목되어 20세기 초 미국은 전 세계 비단 제품의 최대 생산국 중 하나가 되었다.
비단이 특이하게 보이지만 양모나 머리카락 같은 동물성 섬유와 마찬가지로 단백질이며 셀룰로오스처럼 비단도 중합체이다. 그러나 면화의 셀룰로오스 중합체는 동일한 포도당 단위가 반복되지만 비단의 단백질 중합체는 동일한 아미노산 단위가 반복되지 않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비단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주름진 판 구조에 속하는 아미노산의 작은 곁기들은 신축성, 광택, 부드러운 촉감을 제공하고 주름진 판 구조에 속하지 않는 아미노산의 곁기들은 섬광 염색성을 제공한다. 비단의 특성인 광택은 규칙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비단 분자들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며 천연염료는 물론 인조 염료를 흡수하는 능력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도 비단의 이런 이중성 때문이다.
20세기가 들어서서 화학공정으로 어떤 천연물질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과학자들은 그동안 인간들을 울고 울린 비단을 인공적으로 만들자는 연구에 도전했다. 그러나 비단의 여러 특성 때문에 이들을 흉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럴수록 부가가치가 높으므로 학자들의 도전은 보다 세차게 타올랐다.
<장난이 발견한 나일론>
대 발견에는 항상 전설이 따라 다니듯이 나일론의 발견에도 전설이 있다. 1932년 ·한 연구원이 폴리에스테르의 실험 재료들이 어느 만큼이나 늘어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장난으로 작은 덩어리를 유리 막대기 끝에 붙여 넓은 방안을 돌아다녔더니 이것이 실과 같이 기다랗게 뽑아졌다고 한다.
이때 장난을 친 연구원의 이름이 공동연구자인 줄리언 힐이라고 발표된 것을 보면 이 전설은 대체로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상당히 많은 연구원들도 그 광경을 목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진 것은 연구원들이 장난삼아 폴리에스테르를 잡아 당겨서 생긴 실의 모양을 보고 그것의 과학적 중요성에 눈을 돌릴 줄 아는 통찰력이 캐러더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캐러더스는 폴리에스테르를 잡아 늘이면 분자들이 한 방향으로 늘어나서 강도가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폴리에스테르에 이런 성질이 있다면 그동안 개발만 한 상태에서 더 이상 실용화 연구를 중단했던 폴리아미드에도 같은 성질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폴리아미드는 긴 실을 내뿜었고 그것이 실크와 흡사하다는 것도 발견되었다.
이 점은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캐러더스가 이와 같이 생각했던 것은 그가 폴리아미드란 섬유를 이미 만들어 갖고 있었고 또 그 분야에 계속 종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획기적인 발명은 준비된 여건에서 대 발견이 일어나는 것이며 공상만으로 이런 대 발견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뜻한다.
나일론은 1939년 뉴욕 만국 박람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출품작 중의 하나였다. 뒤퐁사는 ‘석탄과 공기와 물만으로 만든 섬유’, ‘강철만큼 강하면서도 거미줄만큼 섬세한 섬유’라며 나일론을 대대적으로 광고하였고 모델이 유리관 속에서 나일론으로 만든 스타킹을 보여주었다. 1940년 5월 15일 뉴욕 시에서 나일론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 불과 몇 시간 동안에 400만 켤레의 스타킹이 팔렸다.
당시 나일론 스타킹의 값은 1.15~1.35달러로 실크 제품보다 2배나 비쌌지만 불티나게 팔려 그 해에 900만 달러, 이듬해에 2,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 여성이라면 적어도 한 켤레 이상의 나일론 스타킹을 산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일론은 그 질긴 성질 때문에 낙하산 재료 등의 군수품으로 많이 사용되어 민수용은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일론의 보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의복의 재료를 면화, 비단, 모피 등의 자연물이 아니더라도 대량 생산되는 인공 합성물로부터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나일론은 양말이나 속옷뿐만 아니라 시이트, 낚싯줄, 수술용 실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나일론의 또 다른 사용 분야는 칫솔이었다. 나일론은 질기고 단단하며 탄력성이 좋아 쉽게 변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습기를 머금지 않아 잘 말랐으며 세균의 번식도 막아 주므로 칫솔 업계에서 대 환영을 받았다. 뒤퐁사에서는 엑스톤이라는 칫솔을 ‘기적의 칫솔’이라는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광고를 했다.
‘엑스톤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는 나일론이라고 불리는데, 최근에 나온 단어이기 때문에 사전에도 없을 겁니다.’
뒤퐁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돼지털은 칫솔에서 빠져 이 사이에 끼지만 나일론 솔은 칫솔대에 단단히 박혀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나일론 칫솔은 구강 위생을 향상시키기 만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돼지들의 고통을 감소시키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나일론 칫솔이 시판되기 직전인 1937년에 미국에서만도 150만 파운드의 돼지털이 칫솔을 만드는 용도로 수입되었다.
더구나 뒤퐁사는 폴리에스테르를 평면으로 잡아당기면 강한 필름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1950년부터 마이크로 필름이나 오디오용 자기테이프에 사용하여 그 이용도를 높였다. 또한 울과 섞어서 데이크론이라는 이름의 신사용 양복감으로도 판매되었다.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의 대부분에는 폴리에스테르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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