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나일론

석유, 공기, 물로 만든 비단, 나일론(3)

Que sais 2020. 10. 6. 06:32

 

youtu.be/tPwftgmdqM8

<방탄복의 재질도 섬유>

 

나일론의 발명 이후 합성섬유의 개발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1975년에 시애틀의 한 경찰이 어느 상점을 점검하다가 강도가 1미터 거리에서 쏜 총에 피격되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도 않았고 피도 흘리지 않았다. 그가 부상당하지 않은 것은 로보캅과 같은 사이보그가 아니라 바로 제복 속에 입고 있었던 방탄조끼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최첨단 소재인 케블라(Kevlar)로 만든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특공대들도 하나같이 방탄복을 입고 나온다. 그렇다면, 섬유로 만든 방탄조끼가 어떻게 총알을 막을 수 있을까? 이 원리는 그물의 원리를 이해하면 알 수 있다. 이 단원은 <과학향기>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했다.

보통 실을 잡아당기면 어느 정도 힘에 의해 끊어져버리게 마련이지만 방탄섬유는 잡아당겨 끊으려면 보통 실보다 더욱 많은 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인장강도가 큰 섬유며, 또한 잡아당겼을 때, 어느 정도 늘어났다가 다시 원상복귀 되려는 성질, 즉 탄성이 큰 섬유다. 이렇게 만든 그물()에 총알이 명중하면 그물을 이룬 실은 총알에 의해 눌려지며 잡아당겨지게 되는데 이 때 실이 견디는 힘이 크다면 총알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정지되어 관통되지 못하는 것이다.

 

방탄복의 탄생은 1935아라미드(aramid)’라는 섬유의 개발과 더불어 시작됐다. ‘아라미드란 폴리아미드 합성섬유 중에서 아미드기가 2개의 벤젠환과 직접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아라미드는 세계최초의 인조섬유인 나일론보다 높은 강도의 섬유 개발을 목표로 하던 듀퐁사에서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가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다. ‘철조망이라고 불렀던 나일론의 분자 배열에 대한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후 얽힘이 적은 강직한 고분자 사슬을 만들어 낸 후에서야 비로소 가능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자 사슬이 서로 얽혀 실과 같이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한 사람이 스테파니 크오렉 박사이다. 그녀는 강직한 고분자 사슬을 녹이는 용제를 구하고 있었으므로 기술자들에게 점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용액을 주고 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기술자들이 제시한 것이 나일론 보다 훨씬 강하고, 늘어짐도 적고, 가위로도 잘 끊어지지 않는 강한 섬유로 이것이 바로 아라미드 섬유의 원조라 불리는 케블라섬유다. 케블라 섬유의 효용도는 매우 높아 현재 테니스라켓, 소총손잡이, 낚싯대 등 복합재료 보강 재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에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케블라의 동생쯤 되는 노멕스(Nomex)는 케블라보다 조금 더 유연하여 우주복, 소방복, 화부의 장갑 등에 사용되고 있다.

 

여하튼 케블라란 말은 아라미드 섬유의 듀퐁사 상품명이다. '케블라이후 세계 각국은 저마다 방탄복 연구에 매달려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현대의 방탄복은 크게 하드(hard body armor)와 소프트(soft body armor)로 구분된다.

소프트 바디 아머는 방탄 섬유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가볍고 부드러워 착용감도 나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저속이나 산탄, 파편 등을 막는데 적합하다. 그러므로 보다 강력한 화력에는 뚫리기 쉽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또한 원래의 소재가 섬유이기 때문에 칼 등 예리한 무기에는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하드 바디 아머는 소프트와 같이 방탄 섬유로 된 방탄판을 사용하지만 특수한 금속판이나 사슬 등을 추가하므로 더욱 튼튼하다. 칼이나 화살도 방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지만, 그만큼 두껍고 무거워진다는 단점도 있다.

 

<계속 개발되는 인조섬유>

케블라 섬유는 방탄모 및 기타 복합재료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보다 강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더 부드러운 노맥스는 우주복, 소방복 및 보호 장갑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방수 스키복이나 방수 재킷도 있다. 이 제품은 땀은 잘 빠져나가지만 빗물은 스며들지 않는다. 이 섬유에는 매우 작은 동공들이 수없이 많이 있어서 마치 여러 겹을 겹쳐 놓은 거미줄처럼 보인다. 이 동공들의 크기가 대략 0.0215마이크론 정도이다. 이것은 수증기 분자의 약 7천 배이고 물방울 크기의 2만 분의 1 정도이다. 따라서 물방울은 통과시키지 않지만 수증기 분자는 자유롭게 통과시키는 것이다.

인조 수에드, 일명 세무 가죽이라고 불리는 제품도 신비한 신소재 섬유제품이다. 이것은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 섬유를 보통의 섬유보다 훨씬 가늘게 뽑은 후 포 구조를 만들고, 가죽처럼 탄성을 갖도록 내부층에 단열재로 사용되는 폴리우레탄 수지를 침투시켜 제조한다. 천연 수에드 표면에는 가느다란 콜라겐 섬유가 밀집하여 정돈되어 있는데 합성 수에드 역시 이것을 모방한 것이다.

섬유 가닥 속에 구멍이 있어 보온력을 크게 증가시키면서 동시에 가볍게 만든 섬유가 있는가 하면 물에 빨아 입을 수 있는 물실크라고 불리는 폴리에스테르도 개발되었다. 정전기를 막아주도록 변형시킨 섬유가 있는가하면 잘 타지 않고 고무줄처럼 탄력이 큰 섬유도 생산된다.

 

한편 제너럴일렉트릭 사와 바이어 사에서도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한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를 개발하였다. 폴리카보네이트도 우연히 발견된 제품이다.

1951년 제너럴일렉트릭사의 연구소에서는 열이나 습기로 분해되지 않는 전선 절연용 재료를 폴리에스테르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한 동료가 가수분해에 잘 견디는 폴리에스테르를 찾으면 되는데라며 매우 아쉬워했다. 이 당시 연구원이었던 다니엘 폭스 박사는 과거에 실험했던 콰이어콜이라는 페놀류의 카보네이트(탄산에스테르) 에스테르가 가수분해에 잘 견뎠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급히 시약 저장창고로 뛰어가 콰이어콜 분자가 두 개 결합한 비스콰이어콜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고 이와 유사한 관련된 화합물인 비스페놀A로 시험했다.

 

그러나 실험은 그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탄산알킬과 비스페놀A를 가열하여 새로운 폴리에스테르를 합성하려고 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고 탄산디페닐도 시험해 보았다. 탄산디페닐과 비스페놀A를 섞고 저어주면서 가열하자 페놀이 증류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반응용기의 혼합물 점성도가 크게 증가하여 교반이 힘들어졌다. 점차 온도를 올리고 압력을 낮추어 페놀의 제거를 시도했지만 결국 교반기가 돌지 않을 정도로 용기 내 반응물의 점성도가 커졌다.

용기로부터 반응물을 꺼낼 수 없게 되자 폭스 박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기 위해 용기를 깨뜨렸다. 그는 교반기 끝에 커다란 덩어리가 붙어 있었고 반응용기의 유리조각이 그 덩어리 속에 일부 박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폴리카보네이트가 발견된 과정이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콘크리트 바닥에 던졌는데도 끄떡도 하지 않았고 나무에 못을 박는 망치 대신으로도 쓸 만했다. 이 재료의 장점은 투명성과 강도였는데 이후 다른 플라스틱은 폴리카보네이트와 거의 같은 정도로 강하다또는 폴리카보네이트와 같은 강도등의 광고를 내게 되었다. 더욱 회사를 감격케 한 것은 비스페놀A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화합물로 당시 막 시판이 시작된 에폭시수지의 제조 원료이기도 했다.

 

그런데 폴리카보네이트의 발견은 우연한 상황이 겹쳤기 때문은 아니다.

우선 폭스 박사는 탄산에스테르(카보네이트)의 안정성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가 처음으로 실험했던 지방족 카르본산 에스테르와 비스페놀의 반응이 원만하지 못하자 그냥 단념하지않고 방향족 카르본산 에스테르인 카르본산 디페닐으로 교체하여 실험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이는 파스퇴르의 말처럼 준비된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 온다는 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 준다. 적어도 전문분야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갖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은 물론이다.

 

폴리카보네이트의 용도는 무척 다양하다. 투명한 방탄 구조물을 만들 수 있으므로 각 국의 원수들이 사용하는 자동차의 방탄용 창문 재료나 비행기 창문 재료, 교도소의 철창이 없는 창문, 은행 출납부의 창구 등에 사용된다. 또 사용 온도 범위가 넓으므로 초음속 제트기의 캐너피,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관객 보호용 받침대, 스쿠버 다이빙용 마스크 등에도 사용된다. 한국 사람들이 데모가 있을 때마다 자주 보는 기동대원들이 사용하는 방패도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어졌으며 독일 올림픽 주 경기장의 지붕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강도와 투명성이라는 성질에다 증기 멸균도 가능하므로 우유병 용기는 물론 의료용 기구에도 사용되고 있고 요즈음은 항공기 객실의 선반, 자동차의 미등은 물론 여러 가지 플라스틱 재료와 혼합하여 충돌에 대비한 범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참고적으로 오늘날에는 페놀이 석유 화학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나일론은 석탄, 공기, 물로 만들어진 실이 아니라 석유, 공기, 물로부터 만들어진 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참고문헌 :

총알받이 섬유-방탄조끼, 과학향기 훤, 2003.10.10

사이언스 오딧세이, 찰스 플라워스, 가람기획, 1998

과학사신론, 김영식 외. 다산출판사, 1999

청소년을 위한 과학자 이야기, 송성수, 신원문화사, 2002

진정일의 교실 밖 화학 이야기, 진정일, 양문, 2006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이야기, 페니 르 쿠터 외, 사이언스북스, 2007

과학과 인문학의 탱고, 황진명 외, 사과나무,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