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이 있다>
서양의학은 일반적으로 특정 질병에 걸릴 경우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나 수술 등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양약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특정 질병에 맞는 특정 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질병에 대한 지식이 쌓여있어야 한다. 전 세계에 있는 많은 학자들이 신종 질병이 태어날 때마다 신약 개발에 총력전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상 예로부터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면서,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남부럽지 않게 쓸 수 있는 재산이 있으면 더 좋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가지만을 꼽으라면 아마도 거의 모두 건강을 선택할 것이다. 재산은 모두 잃어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한 번 망친 건강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는 동안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의학에 따르면 여하튼 기가 원활치 않아 생긴 것이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기를 충만하게 회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걸린 병을 곧바로 치료하는 약이야말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수없는 병을 곧바로 낳게 만드는 특효약이 마법사의 주문처럼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인간의 장점이 나타난다. 원하는 특효약을 개발하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고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어야 하지만 이를 자신의 직분이자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하튼 특정 질병에 대한 약의 효용이 검증되면서 인간은 보다 원대한 꿈을 꾼다. 한 마디로 어떤 질병이 발생했을 때 단 한 번의 복용으로 질병을 완치시키는 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단 하나의 약으로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이런 꿈을 포기할리 만무다.
근래 인간에게 질병을 안기는 요인은 고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인간이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300여 년 전의 조그마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현미경의 발명이다. 3백년 전만해도 인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질병을 일으킨다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다.
현미경이라는 기상천외한 물건이 개발된 후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생물에 대한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되기도 하고 미생물에 대한 퇴치방안 연구의 시작이기도 하다. 사실상 현대 의학은 미생물의 사냥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들을 토대로 ‘마법의 탄환’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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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보인다>
17세기만 해도 작은 곤충이 가장 작은 생명체로 알려져 있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생명체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네덜란드의 안톤 반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는 확대경이라고 볼 수 있는 현미경을 발명하고 웅덩이에 고인 물방울 속에서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생명체를 최초로 관찰하여 인간들이 모르는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의 작은 현미경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주었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레벤후크가 현미경을 발견할 당시의 유럽인들은 미신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거의 없었고 자신의 무지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미카엘 세르베투스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해부했다가 화형에 처해졌고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에 처해져 영원히 입을 다물겠다고 선서했을 정도였다.
레벤후크는 네덜란드의 텔포트의 매우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네덜란드에서 매우 존경을 받는 양조업을 했지만 레벤후크는 열여섯 살 때 암스테르담에 있는 포목상의 견습생이 되었고 스물한 살 때 결혼하고 자기 소유의 포목점을 열었다.
그로부터 20년 동안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두 명의 부인이 있었고 몇 명의 자녀가 있었으나 대부분 사망했다고 한다. 그동안 그는 텔포트 시청의 관리가 되었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안경제조업자로부터 렌즈 연마에 대한 기본 원리를 배웠다.
그는 렌즈 연마에 대한 기본 원리를 파악하고 난 뒤에도 당대에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선배들의 렌즈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자신이 최고의 렌즈 기술자가 되지 않으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이웃들은 그러한 레벤후크를 약간은 미친 사람으로 여겼을 정도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렌즈 연마기술을 익혀 드디어 두께가 30밀리미터가 되는 렌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렌즈를 만들고 난 후 이웃 사람들의 조롱에 대해 자신이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며 자신에 차서 말했다.
“그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제가 그들을 용서해야죠.”
그는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그때까지 어느 인간들도 보지 못하던 세계를 혼자서 보았다. 현미경을 조작하면서 그는 가느다란 곤충의 털이 거대하고 거친 통나무로 변신하는 것을 보았다. 조그마한 파리의 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뚜렷한 세부구조를 보고 불가능의 세계가 있다고 인식했다.
더욱이 레벤후크는 어떤 사람보다도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도 한두 번 관찰한 것으로는 확신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비교 검토하기 위해 더 많은 현미경을 만들어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그는 수많은 현미경을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그 숫자는 무려 400여 개가 된다. 현미경의 확대율은 40∼270배 정도로 그다지 나쁜 성능은 아니었다.
그가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지는 그의 말로도 알 수 있다.
“현미경으로 처음 관찰하는 사람들은 지금은 이것을, 다음에는 저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노련한 관찰자라도 바보짓을 하기 쉽지요. 저는 하나를 관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들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고 이성적인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합니다.”
자신감에 차 있는 레벤후크의 말이다. 그는 중세시대에 머물러 있던 보통 사람들보다는 연구에 관한 한 커다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대 사람의 평균 연령보다 무려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오랜 나이, 무려 91살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레벤후크는 꿋꿋하게 자신이 발명한 현미경을 통해 모든 사물들의 새로운 세상을 관찰하는 데만 무려 20년을 투입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동안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벤후크는 20여 년이 지나서야 라이너 드 그라프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했다. 그는 사람의 난소에서 발견한 것을 <영국왕립협회>에 보고함으로써 객원회원이 된 사람이다.
드 그라프는 레벤후크가 보여준 현미경과 그가 연구한 자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서둘러 영국왕립협회에 편지를 보내 레벤후크의 발견에 대해 발표하게 해 달라고 주선했다. 레벤후크는 왕립협회의 발표 요청을 받고 「레벤후크 씨가 만든 현미경으로 관찰한 것 : 곰팡이, 피부, 살, 벌의 침 따위」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제목으로 발표하겠다고 대답했다.
네덜란드의 시골 촌뜨기가 영국왕립협회에서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권위와 도도함으로 악명 높은 영국왕립협회회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협회는 레벤후크에게 지속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해 달라고 부탁했고 레벤후크는 그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무려 50여 년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수백 통의 편지로 제출했다.
<확인에 철저한 레벤후크>
레벤후크는 현미경을 통해서 세상 어디에서나 수많은 괴상한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빗물 속에도 괴상한 괴물들이 우글거린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동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크기가 작았다. 게다가 빗물 속에서 보이는 동물이 한 종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다리를 가진 것이 민첩하게 움직이기도 했고 멈추어 서기도 했고 회전하기도 했다.
그는 매우 집념이 강한 사람으로 우선 그 동물들이 얼마나 작은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작은 동물들의 크기를 잴 수 있는 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에 그런 자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제일 작은 동물은 큰 이의 눈보다 천 배가량 작다고 말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그의 관찰이 옳았다고 설명한다. 적어도 천 배 차이가 나는 것을 레벤후크가 정확히 알았다는 것은 레벤후크가 수많은 실험과 검증을 거쳐 확인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레벤후크는 빗물 속에 사는 이상스럽게 생긴 작은 동물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지 땅 속에서 나와 보이지 않게 토기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하느님이 갑자기 만든 것일까. 17세기 네덜란드인답게 그는 경건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빗물 통에서 살게 하려고 작은 동물들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현미경으로 얻은 지식을 통해 생명체는 생명체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추측은 그에게 금물이었다.
당연히 그 사실을 밝히기 위해 그는 실험을 계속했다. 레벤후크가 얼마나 놀라운 실험을 했는지는 다음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나는 포도주잔을 깨끗하게 씻어서 말린 다음 지붕 아래 홈통 밑에 대고 물을 받았다. 이 물을 현미경으로 보았더니 그곳에 작은 동물들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레벤후크는 금방 내린 빗물 속에도 작은 동물들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동물들이 홈통 속에서 살고 있다가 빗물에 씻겨 내려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쪽에 파란 유약이 칠해진 커다란 도자기 접시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 비가 내리는 밖으로 나가 접시를 큰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더 깨끗한 물을 받기 위해 첫 번째 빗물은 버린 후 신중하게 관찰했다.
놀랍게도 방금 내린 빗물 속에는 작은 동물이 하나도 없었다. 결론은 그 작은 동물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흘 째 되는 날 물 속에는 작은 동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본 믿기지 않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신의 상식이 틀렸다고 해서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성질이 급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작은 동물들을 기르는 멋진 방법을 발견한 후 영국왕립학회에 편지를 보냈다.
‘작은 동물 100만 마리를 모래알 하나에 넣을 수 있고 번식이 아주 잘 되는 후추 물 한 방울에는 270만 마리가 넘는 작은 동물들이 있습니다.’
레벤후크는 왕립협회 사람들이 작은 동물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레벤후크가 자신이 발명한 현미경을 어느 누구에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공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지만 자신의 발견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학자들에게는 자신이 발명한 작은 현미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아량을 베풀었다. 그러나 레벤후크는 사람들이 더 잘 보기 위해서 현미경을 만지기라도 하면 당장 나가라고 호통 쳤다.
그는 자신이 만든 현미경들을 고가로 판매해달라는 제안도 거절했다. 다른 사람들이 현미경을 만들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레벤후크의 실수였다. 당대의 과학자들은 현미경의 원리를 유도해 낸 후 현미경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훅의 원리’로 유명한 로버트 훅이다.
1677년 로버트 훅은 레벤후크의 거절로 그의 현미경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현미경을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레벤후크의 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로버트 훅의 현미경은 레벤후크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레벤후크는 왕립협회의 특별회원으로 추대되었다.
레벤후크의 현미경은 유럽의 지식인들을 강타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현미경을 보기 위해 델프트까지 여행했다. 러시아의 피터 대제가 그에게 경의를 표했고 수많은 왕후장상들이 그의 현미경을 직접 보기위해 델프트를 방문했다.
레벤후크의 탐구욕은 끝이 없었다. 그는 작은 물고기의 꼬리를 관찰하여 인류역사상 최초로 동맥에서 정맥으로 연결되는 모세혈관을 관찰했다.
레벤후크가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것은 1683년의 일이다. 그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작은 생명체일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을 발견했다. 박테리아였다. 하지만 270배까지만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레벤후크의 현미경으로는 이 생명체를 제대로 식별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레벤후크는 미생물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미생물들이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작은 괴물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생물을 먹어 치우거나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발견했다.
그는 단 한 명의 제자도 키우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레벤후크는 자신이 제자들을 키우지 않은 이유를 당당하게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에게 밝혔다.
“저는 한 사람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한 사람을 가르치면 다른 사람들도 가르쳐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는 예속된 상태가 될 겁니다. 전 자유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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