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확대현상을 발견하면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작은 것에서 더 작은 것으로 관심의 영역을 확대했다. 이 호기심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보다 한참 아래인 10억분의 1이라는 나노 세계에까지 이르렀다. 이 나노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원자현미경은 기존의 현미경과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물질을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노 세계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노 세계는 광학현미경을 이용하더라도 우리 눈으로는 직접 볼 수 없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400-700nm로 이 이하의 간격으로 존재하는 물체는 우리 눈으로 구분할 수가 없다. 즉 나노 단위로 내려가면 빛 자체가 점과 점 사이를 구분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광학현미경을 이용해 아무리 확대를 해도 한 덩어리로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를 구분해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것이 전자현미경과 원자현미경이다.
제1세대 광학현미경과 제2세대 전자현미경에 뒤를 이어 등장한 원자현미경은 제3세대 현미경으로 불린다. 진공에서만 관찰이 가능한 전자현미경과 달리 대기 중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시료의 모양을 수평방향과 수직방향 모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또한 시료의 물리적 성질과 전기적 성질까지 알아낼 수 있다. 특히 광학현미경의 배율이 최고 수천 배, 전자현미경의 배율이 최고 수십만 배인데 비해 원자현미경의 배율은 최고 수천만 배여서 원자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또 원자지름의 수십 분의 1(0.01nm)까지도 측정해낼 수 있다.
원자현미경의 중요성은 다른 어떤 도구가 따라잡기 힘든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만능기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이로운 나노 세계의 눈뿐 아니라 손과 발이 되어 나노과학을 실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나노 과학자들은 미래 어느 날 원자현미경으로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노로봇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한다.
<나노과학과의 연계>
현대과학의 경이로움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마이크론의 세계(1μm= 10-6m)까지 정복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현재 최첨단 펜티엄 칩 속에 있는 트랜지스터는 소자 하나의 크기가 불과 수분의 1μm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산업이 보다 발전하면 현재 우리가 쓰는 전자소자의 크기는 단지 몇 개의 원자크기로, 즉 나노미터(1nm=10-9m)로 줄어 들것으로 예측하며 마이크론 디바이스는 나노 디바이스로 변경될 것으로 예측한다.
학자들은 디바이스의 최소 소자 크기가 광학적 한계인 수백nm 이하가 되면 기존의 반도체공정의 광학적 방법은 더 이상 적용되기가 어렵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사탐침현미경인 SPM(Scanning Probe Microscope) 이라는 획기적인 무기가 개발된 것이다. 사실상 현재 거의 매일 언론에서 다루고 있다시피 하고 있는 나노결정, 나노튜브와 같은 나노물질을 이용한 실험적인 디바이스 제작도 SPM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학자들은 나노 디바이스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노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이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두운 방안에 갑자기 정전이 돼 깜깜해져 더 이상 사물을 보기 어려울 경우,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손으로 더듬어서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나노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나는데 그 일을 SPM과 APM이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이 경우 표면의 윤곽구조를 얻는 이미징과는 반대로, SPM 탐침과 시료의 상호작용하는 힘을 증가시킨다. 그러면 시료 표면을 조작하거나 변화시켜 나노구조 자체를 만드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탄소나노튜브의 개발이다.
IBM연구소 아보리스 박사는 AFM으로 탄소나노튜브를 반도체 표면에서 움직여 새로운 나노 디바이스를 만들어냈다. 네덜란드 델프트대 데커 교수와 코넬대 맥퀸 교수도 각각 STM과 AFM 탐침에 전압을 걸어서 나노튜브 다발을 끊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탄소나노튜브가 많은 나노 과학자들로부터 주목받은 이유는 독특한 전기적인 성질과 기계적인 성질에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원자배열 구조의 섬세한 변화에 따라 도체도 반도체도 되는 전기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또한 기계적으로 튜브벽의 탄소 원자간의 강한 공유결합에 의해 인장 강도가 매우 큰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마치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대처럼, 외부에서 힘을 주면 부러지는 대신 휘어지고, 많은 힘을 가해 꺾더라도 힘을 제거하면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오는 마술 같은 성질을 지녔다.
스탠퍼드대의 다이 박사는 탄소나노튜브를 AFM 탐침 끝에 붙이는데 성공했다. 기존의 AFM 탐침이 약 30nm 정도의 분해능을 가진 반면, 나노튜브를 사용한 AFM의 경우 그 분해능이 5nm 이하로 달성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래 사용할 경우에도 쉽게 부러지거나 닳아 없어지지 않는 장점도 있다.
나노튜브의 응용은 단지 AFM의 해상도 향상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흑연의 공유결합과 같은 화학적 결합구조를 화학적 처리에 의해 나노튜브 끝의 화학적 성질을 바꿀 수 있다. 만약 끝이 화학적으로 변형된 나노튜브를 AFM 탐침으로 사용하면, 표면의 윤곽구조와 더불어 표면의 국소적인 화학적 구조까지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김필립 박사는 하나의 탐침 대신에 2개의 나노 탐침을 이용한 새로운 SPM을 고안했고 이를 나노집게(nanotweezers)라 명명했다. 이 나노집게로 수백nm의 나노구조를 조작하는데 성공했다.
홍승훈 박사는 AFM을 이용한 새로운 리소그래피 기술을 고안하여 ‘나노펜’ 기술(dip-pen nanolithography)로 명명했다.
나노펜 기술은 AFM 탐침을 펜으로 삼아, 화학이나 생화학물질 용액 잉크를 찍어서, 고체표면에 글씨를 쓰거나 선을 그리는 것이다. 단지 종이 대신에 반도체 같은 고체표면에 인쇄를 할 뿐이다. 기존 프린터의 해상도가 1,440 DPI 정도인데, 나노펜을 이용한 프린터의 해상도는 200백 만 DPI에 이른다.
실제로 나노펜 프린터를 이용해 금 표면에 문장을 썼는데 이때 인용된 문장은 잘 알려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이 1959년에 한 연설의 한부분이다. 이 연설 내용은 파인만이 2000년대 나노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상황을 예견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SPM조차 발명되기도 전이었다.
보통 AFM 탐침은 STM 탐침보다 크기 때문에, 해상도는 현재 10nm 정도로, STM을 이용한 원자단위 리소그래피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모든 공정을 진공장비 없이 공기 중에서 할 수 있기에 비용이 싸고, 상대적으로 넓은 영역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용된 잉크물질들은 후에 반도체공정에 쓰일 수도 있으며 DNA 같은 생화학 물질을 위한 리소그래피로 쓰일 수 있다고 설명된다.
결론적으로 이들 과학의 발전은 현미경이라는 장비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레벤후크가 현미경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창안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미소세계를 본다면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바구미와 벼룩의 생태 주기를 밝혀냄으로써 바구미와 벼룩이 밀밭과 진흙에서 ‘저절로 발생한다’는 중세 이론의 토대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현미경이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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