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활성기체 아르곤>
전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에디슨과 스원이 전등으로 거의 동시에 특허를 출원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에디슨의 장점은 자금이 풍부했다. 그러므로 에디슨은 특허 전쟁이 길어져 자신에게 불리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곧바로 스원과 제휴했다. 에디슨은 <에다스윈(Ediswan)>회사라는 합작회사를 만들어 길고 지루한 특허분쟁을 피했다.
여하튼 에디슨은 특허 문제를 해결하여 근본 문제점이 사라지자 곧바로 전등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을 추진했다. 현재 에디슨이 창업했고 현재 세계적인 대회사로 발돋움한 <제너럴일렉트릭(GE)> 사는 1910년에 열에 잘 견디는 금속인 텅스텐을 필라멘트로 사용할 경우 필라멘트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날의 전등은 2,000도의 온도도 견딜 수 있다.
1913년에는 전등 안에 질소기체를 주입시킴으로써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필라멘트의 건조와 부서짐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자들은 질소보다 더 적합한 기체를 찾기 시작했다. 수많은 검증 결과 1920년 드디어 0족 기체인 아르곤이 가장 적합하다는 합격 점수를 받았다.
구자현 박사는 아르곤이 전등에 사용되는 결정적인 공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레일리(John William Strutt, Third Baron Rayleigh)에 의해 아르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레일리는 1880년대 초 원자량에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에는 윌리엄 프라우트가 1815년에 주장한 원소의 원자량은 수소 원자량의 정수배라고 믿었다. 하지만 당시 알려진 값은 정확히 수소의 정수배가 아니었다. 가령 산소는 수소 원자량의 15.96배였다.
레일리는 측정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1882년 기체의 밀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실험 장치를 고안했다. 그는 산소의 밀도를 측정한 다음 질소의 밀도를 측정했다. 질소는 대기에서 가장 많은 성분이므로 대기 중에서 다른 성분들을 제거하면 순수한 질소를 얻어 그 원자량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레일리가 얻은 질소의 밀도는 1만분의 1의 오차범위 내에서 기존 값과 일치했다.
레일리는 자신의 실험 검증을 위해 암모니아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질소를 얻어 밀도를 측정했다. 이 값이 동일해야 하는데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낸 이전의 실험에서 얻은 값에 비해 질소가 0.1퍼센트 즉 2.3mg만큼 무거웠다.
이때 런던대학교의 렘지(Sir William Ramsay)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레일리는 대기 중에서 얻은 질소 표본에 비활성불순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는 계속하여 정밀 분석을 했는데 결과는 한결 같았다. 화학적으로 분해해 얻은 질소가 대기 중의 질소보다 일정 비율만큼 가벼웠다.
그는 렘지와 계속 연락하면서 공동연구에 들어가 과거의 자료를 조사했다. 1893년에 그들은 거의 80년 전에 사망한 캐번디시의 논문에서 대기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공기와는 차이가 나는 어떤 공기가 125분의 1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구절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기체는 어떤 조건에서도 다른 물질과 화합하지 않았다. 염소나 나트륨은 물론 플루오르도 이 기체를 화합할 수 없었다.
레일리와 렘지는 이 기체가 활성이 없는 새로운 원소라는 것을 확신했으며 그리스어로 ‘비활성(非活性)’을 뜻하는 ‘argos’에서 이름을 따와 ‘아르곤(argon)'이라고 명명하고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때에도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결과를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몇 개월 후 렘지와 크룩스 등은 그 기체가 실제로 새로운 성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램지는 그 후 단독으로 헬륨을 모으는데 성공하여 그에 의해 태양에만 있다고 생각되던 원소 헬륨이 마침내 지구상에서도 발견된 것이다. 헬륨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의 이름을 땄기 때문이다.
또한 트래버스와 함께 ‘네온(neon)’, ‘크립톤(krypton)’, ‘크세논(xenon)’을 발견했다. 네온은 그리스어로 ‘새로운’을 뜻하는 ‘neos’를 따서 붙였으며 크립톤(krypton)과 제논(zenon)은 각각 그리스어로 ‘숨겨진 것’을 뜻하는 ‘kryptos’와 ‘낯선’을 뜻하는 ‘xenos’를 따서 명명하였다. 이들은 아르곤과 함께 주기율표에서 희귀 기체 0족으로 자리 잡는다. 현재 아르곤은 액화된 공기를 분별 증류해 생산하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는데 대기 중에 존재하는 아르곤을 분리한다는 점에서는 레일리의 방법과 동일하다.
램지는 전등에 자신이 발견한 아르곤 가스가 적합하다는 것을 알기 전인 1916년에 사망했고 레일리도 1919년에 사망했다. 그러나 레일리는 ‘아르곤의 발견’으로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1904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램지는 같은 해에 ‘희유가스(noble gas) 원소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백열전등의 경쟁자 형광등>
일반적으로 40W 이상의 백열전구에는 아르곤 가스 15퍼센트, 질소 가스를 85퍼센트 넣는다. 아르곤 가스가 봉입된 전구는 가스의 압력에 의해 텅스텐을 고온으로 가열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발광효율을 올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구에는 아르곤과 질소의 혼합가스를 600mmHg(1기압의 80퍼센트) 정도로 봉입하는데 점등 시에는 1기압으로 가스압이 상승한다. 가스를 봉입하면, 가스에 의한 대류나 전도 때문에 열 손실이 다소 있으나 가스압 때문에 필라멘트의 증발이 적어진다. 또한 진공일 때와 같은 증발 정도일 경우에는 필라멘트의 온도가 더욱 상승한다.
40W 일반 진공전구의 효율은 고작 7퍼센트이지만, 단일 코일 가스 전구는 10퍼센트, 2중 코일 가스 전구는 12퍼센트나 된다. 따라서 가스에 의한 발광 손실을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효율이 증가하고 수명이 길어지는 전구를 얻을 수 있다. 레일리와 렘지의 아르곤 발견이 현대 문명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열전구의 개발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투명한 유리 속에서 빛나는 필라멘트는 태양과 같이 응시하기 어려우며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화공학자 핍킨은 전구의 유리를 산으로 부식시키는 방법을 고안하여 전구의 빛이 부드럽고 쾌적하며 안정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백열전구에게는 곧이어 형광등이라는 경쟁 상대가 등장했다.
형광등은 1938년에 <제너럴일렉트릭> 사의 연구원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들은 손에 쥐어도 뜨겁지 않은 개똥벌레의 불빛을 연구하던 중 만약 적외선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 가시광선만으로 전등을 만들면 뜨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 연구 끝에 전기를 방전시킬 때 나오는 자외선이 산화아연이나 산화카드뮴과 같은 물질에 닿으면 짧았던 파장이 다소 길어지면서 가시광선으로 바뀌는 사실을 발견했다.
형광등 속에는 아주 적은 양의 수은 증기가 들어 있다. 이 수은 증기의 압력은 수은주로 0.1mm 이하이다. 유리관 양쪽에는 이중 코일의 텅스텐 필라멘트가 있어 전극의 구실을 하며 그 앞에 필라멘트를 보호하는 전극이 있다. 형광등을 켤 때는 보통 점등관을 사용하고 있다.
스위치를 넣으면 이 점등관에 불이 켜지고 이어서 필라멘트에 많은 전류가 흘러 충분히 가열된 뒤에 형광등의 두 전극 사이에 방전이 시작되면서 점등관은 저절로 꺼진다. 한편 수은 증기의 방전에 의하여 나온 자외선은 형광등 안쪽 유리벽에 칠해진 인에 충돌하면서 눈에 보이는 밝은 빛으로 바뀌는 것이다.
형광체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텅스텐산마그네슘(청백색 또는 하늘색), 텅스텐산칼슘(청색), 규산아연(녹색), 규산카드뮴(등색 또는 녹색), 붕산카드뮴(적색), 할로인산칼슘(백색) 등이 있으며 이들의 형광체를 여러 가지 혼합하여 임의의 색을 낼 수도 있다.
40와트의 형광등은 150와트의 백열전구에 맞먹는 밝기를 제공하며 열 손실이 훨씬 적다. 처음 형광등이 개발되었을 때는 형광등이 백열전구를 완전히 대체할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 그러나 둘 사이의 싸움은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두 전등이 주는 느낌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장소에 따라 다른 종류가 사용되기도 하고, 동시에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자주 쓰이는 자외선 살균등은 자외선이 세균을 죽이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 자외선을 잘 통과시키는 석영 유리 방전관을 사용한다. 반면에 적외선을 이용하는 전구는 적외선만 내도록 특수하게 개발한 것이다.
형광등의 모양도 다양해졌다.
막대기 모양(직관형)의 제품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도넛 모양의 환(環)형, 안정기 내장 전구형(일명 '장미전구'), 막대기형을 구부려 U자형으로 만든 콤팩트 형광램프까지 개발됐다. 국내에서는 1987년 독일 오스람사의 진출 이후 전구형 제품이 히트를 했고, 1990년대 후반엔 전구형.콤팩트형이 주력상품이 됐다.
<네온사인>
한편 현대 도시의 밤거리는 형광등이나 백열전구뿐만 아니라 네온사인 물결 속에 휩싸여 있다. 네온사인의 조명 아래 도시의 야경이 새로운 장관을 형성하며 밝은 밤거리야말로 바로 그 도시의 문화‧교육‧산업 등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라고까지 불린다.
네온사인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매우 희박한 기체 속에 전류가 흐르면 진공 방전이 일어난다. 수은주 압력으로 수 밀리미터 밖에 안 되는 공기가 들어 있는 직경이 12~15mm의 긴 유리관 양단에 전극을 설치하고 전극과 전극 사이에 높은 전압을 가하면 유리관 속의 공기를 통해 전기가 흘러 유리관이 아름답게 빛을 나는 것이다.
네온사인 또는 네온 전등은 방전관 속에 렘지가 발견한 네온 가스를 넣은 것으로 주홍색 빛이 나온다. 그러나 방전관 속에 네온 대신 다른 기체를 넣으면 기체마다 각기 독특한 빛을 낸다. 아르곤을 넣으면 자주색 빛이 생기며 수소나 헬륨을 넣으면 장미빛 고운 색깔이 나타난다. 수은 증기를 넣어 청록빛을, 질소를 넣어 노랑색을, 산소를 넣어 오렌지 빛, 이산화탄소를 넣어 흰빛을 만들 수도 있다.
네온사인의 원리는 형광등보다 먼저 개발된 것이다. 1859년에 독일의 가이슬러는 가이슬러 방전관을 만들어 네온사인의 기틀을 잡았다. 또한 영국의 크룩스는 유리관 속 기체의 압력을 낮추는 데 성공하여 여러 가지 색깔의 네온사인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네온 튜브를 발명하여 1910년에 파리의 그랑팔레 전시관을 밝히는데 성공한 사람은 프랑스의 화학자 클로드였다. 그는 딱딱하고 고정된 필라멘트를 쓰지 않는 네온등은 길이와 모양에 관계없이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네온의 가장 큰 용도는 밝은 주홍빛을 내는 네온 조명이다. 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보통 네온램프(neon glow lamp)라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네온사인으로 대표되는 네온 방전관(neon discharge tube)이다. 네온램프는 네온 기체가 조금 들어있는 유리 전구에 2개의 전극을 2~3mm 간격으로 두고 방전시켜 음극에서 밝은 붉은색의 빛을 내게 만든 장치이다. 네온램프는 소형으로 제작 가능하며, 가정용 전압으로 작동되고 소모 전력이 적어 전자 기기의 표시기, 야간 실내등으로 사용되며, 전압 조절기, 고전압 보호기로도 이용된다. 또한 네온램프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가장 강한 것이 585.249nm)은 광학 장치의 파장 보정에도 사용된다. 네온 방전관은 긴 (또는 굽어진) 유리관에 네온 기체를 조금 넣고 관의 양 끝에 전극을 두고 높은 전압으로 방전하여 빛을 내게 만든 장치로, 광고판 등에 이용되었다. 1912년 최초의 네온사인이 파리의 몽마르트 거리를 밝혔고 그 후 전 세계를 석권했다.
네온은 조명 이외에 피뢰기, 브라운관, 검전기 등을 만드는데도 사용되어 왔다. 네온 기체는 헬륨과 혼합되어 레이저에 사용된다. He-Ne 레이저에서 나오는 빛(파장 632.8nm)은 들뜬 네온에서 나오는 것으로 헬륨은 Ne을 들뜨게 하는 작용을 한다. 붉은색의 레이저 포인터, 의료용으로, 그리고 광학 디스크를 읽는데 사용된다. 액체 네온은 저온 냉각기의 냉매로도 사용된다. 네온은 가격이 비싸 다른 용도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과학은 발전한다.
인간은 보다 새롭고 보다 편리하며 보다 효율적인 것이 등장하면 곧바로 표변한다. 한마디로 아무리 유명한 것이라도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으로 꼽히던 백열전등,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형광등은 탄생 초창기부터 높은 전력소비와 수은 사용 등 공해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이를 계속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백열전구, 형광등도 드디어 과학의 발전에 길을 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준 백열 전구와 형광등이지만 이들이 조만간 지구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백열전구와 형광등을 퇴출시킬 수 있는 근거는 바로 2014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값싸고 수명이 긴 발광다이오드(LED)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레일리의 아르곤 발견 실험」, 구자현, 과학동아, 2005년 10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367&cid=58949&categoryId=58982
『세계를 바꾼 20가지 공학기술』, 이인식 외, 생각의 나무, 2004
『진정일의 교실 밖 화학 이야기』, 진정일, 양문, 2006
『노벨상이 만든 세상』, 이종호, 나무의꿈, 2007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정갑수, 양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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