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질은 유전된다>
20세기에 들어와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두 가지를 꼽으라면 거의 모두 컴퓨터와 유전자 연구를 꼽는다. 그 중에서도 유전자 연구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알려줄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다윈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2주 전 영국 미들랜즈 지방의 연못에 사는 물방개 다리에 찰싹 붙은 손톱만 한 조개에 관해 짧은 논문을 썼다. 이것이 다윈의 마지막 저술이었다. 다윈에게 물방개를 보낸 사람은 젊은 제화업자이자 아마추어 박물학자인 월터 드로브리지 크릭이었다.
드로브리지 크릭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기존 상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준 프란시스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 1916~2004)의 할아버지이다. 손자인 프란시스 크릭은 영국의 젊은 과학자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과 함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명하여 다윈의 진화론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의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으로 유전자 분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하루가 다를 정도로 새로운 유전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인간이 갖고 있는 게놈을 완전하게 분석한다는 것은 유전자 분야의 연구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유전자 연구가 하루 아침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학자들은 현대인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유전자에 대한 내역이 다윈시대에 조금이라도 알려졌다면 다윈의 진화론이 그렇게도 공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지구를 석권하면서 지배하고 있다 자부하는 식자 지구인들도 생명의 나무의 원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바로 당대의 과학기술의 수준으로 그 당시는 유전자 자체를 몰랐고 유전자가 어떤 연유로든 형질변경되어 새로운 종이 태어난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대의 지구 상에 함께 살고 있는 박테리아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원숭이와 인간이 같은 조상을 갖고 있다는 말은 당대 과학의 상식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과 같이 생명의 나무에 대한 과학지식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다행하게도 다윈과 당대에 살고 있었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한 성직자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그레고어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로 그의 발견으로 드디어 유전자 즉 DNA가 인간들에게 접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지혜의 발견자인 그레고어 멘델은 자신도 자신이 발견한 내용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성직자가 되자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의 연구가 상당기간 동안 사장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형질은 유전된다>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한계로 인해 황당한 내용이 과학수사 기법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핏방울의 응고 여부로 친자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중국 무술영화인 「구품지마관」에서도 친자를 확인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이 방법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 정묘호란 등 혼란된 사회의 영향으로 친자 등을 확인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자주 사용되었다.
‘친자나 형제가 어려서부터 나뉘어 떠나 있어서 기억해 내어 알고자 하지만 진짜와 거짓을 가리기 어렵거든, 각기 찔러서 피를 내어 한 그릇 안에 떨어뜨리면 진짜는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되고 진짜가 아니면 합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만 생피가 소금과 초를 만나면 엉겨지니 먼저 사용할 그릇을 당면當面(관원이 직접 보는 곳)한 채로 씻어 맑게 하거나 혹 특별히 새 그릇을 가져다가 시험하라. 또 피를 떨어뜨려 물에 넣을 때 만일 그릇이 크고 물이 많아 둘의 거리가 멀면 곧 능히 합쳐지지 못할 것이다. 혹은 물에 떨어뜨릴 때 약간의 앞뒤(시간차)가 있으면 곧 피의 온도가 다름이 있어서 또한 능히 합쳐지지 못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친자의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각각 피를 내어 한 그릇 안에 떨어뜨리는데 친자라면 하나로 응결되고 아니면 응결되지 않는다고 설명되어 있다. 혈청과 혈액의 응고에 대한 생리적 지식을 조금이라도 아는 현대인이라면 웃고 말겠지만 이와 같은 내용이 유명한 법의학 지침서에 삽입되어 있으므로 부모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호부호형(呼父呼兄)하며 사는 것은 물론 반대로 진짜 혈육이 비과학적인 검증에 의해 남다른 눈물을 흘렸을 것임이 틀림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친자인지 아닌지도 구별하기 어려운데 사망자의 친자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방법도 적혀있다. 이때 사용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놀랍기만 하다. 자식의 피를 부모의 해골 위에 떨어뜨리면 친생(親生)의 경우는 피가 뼈 속으로 스며들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부모의 해골 위에 피를 떨어뜨려 스며드는지 여부로 친자를 감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매장한 뼈에 지방 성분이 분해되지 않았거나 골막이 유지돼 있으면 혈액은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위의 설명은 기본적으로 틀리는 것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피로 근친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다는 자체는 틀린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전학적으로 볼 때 혈액 등에 부모를 포함한 개인의 신원정보를 유전 정보 DNA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다윈에 따르면 두 마리의 동물이 짝짓기를 할 경우 부모의 혈액이 서로 합쳐지고 이를 통해 부모의 형질들이 서로 섞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특이한 결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 키가 큰 남자와 작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중간키를 갖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아빠처럼 키가 큰 아이도 있고 엄마처럼 작은 아이도 있고 그 중간 키의 아이도 있다. 외모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부모 사이의 중간적인 형질을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당대의 많은 학자들이 다윈에게 이런 이론적인 약점을 지적했지만 다윈으로서는 반론을 펼 수 없었고 이 점이 진화론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계속 그를 괴롭혔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윈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사가 도출했다.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지 7년 후인 1866년, 다윈조차 인지하지 못한 곳에서 획기적인 논문이 발표된다. 그것은 수도사인 멘델이 1856년부터 1863년까지 8년에 걸쳐 식용 완두를 가지고 실시한 실험 결과를 토대로 발표한 45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식물 잡종에 관한 연구」이다. 멘델은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관상식물의 새로운 색을 얻기 위해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인공 수정 실험은 앞으로 논하게 될 실험으로 이어졌다. 같은 종, 즉 변종끼리 수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항상 똑같은 변종이 다시 나타나는 규칙성이 너무나 뚜렷하여 또 다른 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후대에서 변종의 진화를 추적하는 것이다.’
멘델은 특별한 형질을 지닌 식물들(키가 큰 식물과 키가 작은 식물, 노란 콩과 녹색 콩 등등)을 서로 교배시켰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즉 이들 형질들이 서로 상쇄되거나 섞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키가 큰 식물과 작은 식물을 교배시켜 나온 잡종은 중간 키가 아니라 항상 키가 컸다. 노란 콩과 녹색 콩을 교배시키면 결과는 노란색과 녹색의 중간이 아니라 노란색 콩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는 이렇게 교배시켜 나온 키가 큰 잡종들을 교배시키면 그 다음 대에서는 할아버지 대의 형질이 그대로 나타났다. 즉 대부분은 키가 컸지만 전체의 4분의 1 정도는 키가 작았다. 콩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식물 연구의 큰 장점은 학자들이 식물의 생식에 쉽게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완두와 콩의 경우 같은 꽃 속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들어 있다.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 머리에 묻으면 수분이 이루어져 열매가 맺어지고 여기에 씨가 생기며 나중에 새로운 식물로 성장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주로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거나 곤충들이 묻어 암술머리에 묻음으로써 수분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식물학자들이 수술의 꽃가루를 붓에 묻혀 암술머리에 옮겨 주어도 식물의 수분은 이루어진다.
멘델도 이와 같은 작업을 계속했다. 즉 원하는 암꽃과 수꽃을 짝지어 수분이 이루어지도록 ‘강요’하는 연구이다. 멘델은 농부의 자식이므로 어려서부터 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화훼업자들은 많은 꽃을 재배하면서 유달리 새로운 빛깔의 꽃을 발견한다. 그런 꽃을 발견한 화훼업자들은 이 꽃의 꽃가루를 동일한 종의 다른 꽃에 붓을 묻혀 수분시킨다. 그러면 여기에서 생긴 꽃에서 씨를 얻게 되고 이 씨가 새로운 빛깔의 식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이 새로운 색이 부모로부터 자신으로 유전되었기 때문이다.
멘델도 당대의 많은 학자들이 유전 문제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의 형질이 유전되는 방법을 규정하는 자연 법칙이 존재한다면 식물에서 특히 잘 관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멘델 연구의 중요성은 이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수학 법칙을 도출했다는데 있다. 식물도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부모를 갖고 있으며 두 부모는 각각의 형질을 다음 대에 물려준다. 따라서 제2대에서는 키가 작은 형질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것이 숨어 있다가 제3대 때에 나타난다. 이것은 제2대의 키가 큰 자손들이 키가 작은 자손을 낳으라는 지시를 후대에 명명된 유전자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시는 각각의 부모로부터 하나씩 받아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러한 쌍들 중 하나가 제3세대의 자손에게 전해진다. 이를 멘델은 분리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양 부모로부터 동등하게 물려받은 각각의 형질은 서로 섞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 분리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각각의 형질은 한 쌍의 지시에 의해 발현되는데 우성 형질이 발현되고 열성 형질은 밖으로 나타나지 않고 잠재해 있다. 그러므로 열성 형질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한 쌍의 지시를 이루는 형질들이 모두 열성일 때이다.
멘델의 독립의 법칙은 부모 중 어느 쪽이 어느 형질을 다음 대에 나타나게 하는가는 순전히 우연에 좌우 된다는 것이다. 즉 우성 형질이 열성 형질보다 다음 대에 더 우세하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정도로 정해진다. 그리고 물려받은 형질은 독립적이다. 키에 대한 형질은 색깔에 대한 형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위의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같은 부모의 식물이라 해도 다음 대에서는 부모와 똑같은 것이 3대 1로 나타난다는 분리의 법칙, 두 쌍 이상의 대립 형질(대립유전자)에 관계없이 우성과 열성이 나타나며, 각각 3대 1의 비율로 갈라진다는 독립의 법칙, 또한 우성인 형질만이 후대에 나타난다는 우성의 법칙이다. 이 세 가지 법칙을 '멘델의 유전 법칙'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색깔과 모양의 유전에서 색깔과 모양은 서로 무관하게 유전되는 것이 ‘독립의 법칙’이고 색깔의 유전에서는 두 색깔의 융합에 의해 제3의 색깔이 후대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두 색깔 중 우성인 형질의 색깔만이 후대에 나타난다는 것이 ‘분리의 법칙’과 ‘우성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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