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의 파문>
당대의 DNA를 연구하는 학자들 간에는 DNA의 구조가 일종의 나선 형태라는 생각이 우세해지고 있었다. 노벨상을 이미 수상한 폴링이 가장 앞서고 있었는데 그는 모형을 만들고 있었지만 3중나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크릭과 왓슨도 DNA가 3중나선이라는 생각하에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왓슨과 크릭은 1951년 런던의 한 회의에서 프랭클린이 엑스선 사진을 발표하며 DNA 가닥의 기본적인 크기와 형태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들었다. 이때 크릭과 왓슨은 폴링처럼 3중 나선을 기초로 하여 만든 모형을 프랭클린에게 보여주었다. 프랭클린은 곧바로 DNA가 나선구조일리 없다며 모형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왓슨과 크릭도 자신의 모형에 결점이 많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으므로 프랭클린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지만 프랭클린은 보기 좋게 거절했다. 프랭클린이 독자적인 연구로 DNA구조를 자신이 풀 수 있었다고 확신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사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프랭클린도 DNA구조가 나선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윌킨스가 아무런 생각 없이 왓슨과 크릭에게 프랭클린의 사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왓슨과 크릭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프랭클린과는 달리 DNA가 실 두 가닥이 꽈배기처럼 꼬인 모양이라는 점을 확신했다. 프랭클린이 간과한 것을 두 사람은 즉각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들은 이를 토대로 곧바로 이중나선에 대한 얼개를 작성한 후 1953년 4월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했고 이 논문으로 1962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왓슨과 크릭이 2중나선 DNA구조를 발표한 <네이처>지에는 유명한 논문 3편이 동시에 게재되었다. 첫째는 왓슨과 크릭의 논문이고 둘째는 윌킨스 등의 논문이며 셋째는 프랭클린과 대학원생 고슬링의 논문이다. 모두 유전자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인데 왓슨과 크릭은 그들의 논문에 프랭클린을 인용하지도 않았고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쓰지도 않았다.
여하튼 프랭클린은 처음 왓슨과 크릭의 논문을 반겼다. 자신의 결과와 일치하기 때문인데 그들의 이중나선모형이 자신의 실험결과에 기초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프랭클린의 주임교수인 윌킨스가 그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왓슨과 크릭에게 DNA 분자의 X선 회절 사진을 무단으로 공개했다는 것 때문에 학계에 커다란 물의가 일어났다. 단순한 사진 공개가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일반인들은 질문할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노벨상을 받느냐 못받느냐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윌킨스가 왓슨과 크릭에게 무단으로 사진을 제공한 사건은 싱겁게 끝났다. 윌킨스 자신이 프랭클린에게 그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두 사람에게 공개한 것이 실수라고 자인한데다가 그녀는 1958년에 사망하였으므로 나머지 세 사람이 1962년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하등에 문제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사망한 사람에게는 수여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프랭클린은 DNA의 다크 레이디(dark lady)로 불린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큰 의미가 없지만 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수상할 때까지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그녀에게 노벨상이란 과실이 돌아갔겠느냐는 질문이 상당수 제기된 것은 사실이다. 왓슨과 크릭의 연구는 원천적으로 프랭클린의 업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왓슨, 크릭과 함께 그녀의 주임교수인 윌킨스가 노벨상을 받은 것으로도 더욱 논제가 비약되었는데 학자들은 그녀가 살았더라도 수상하지 못했을 것에 손을 든다. 프랭클린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프랭클린이 자신이 찍은 절대적인 사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랭클린도 왓슨과 크릭이 2중나선 DNA구조를 발표한 <네이처>지에 논문을 제출했지만 그녀는 중요한 사진이 확보되었음에도 DNA사진에 대해 발표하지 않았다. 프랭클린이 DNA의 구조를 해명할 수 있는 문턱에 도달했는데도 포괄적이고 엄밀한 실험을 고집한 나머지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설명된다. 이를 역으로 말한다면 당시 프랭클린이 나선이 DNA 구조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자신이 찍은 사진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인식한다. 간단하게 말해 프랭클린이 자신이 찍은 사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이처>지에 이들에 대한 내용을 삽입하지 않았는데 학자들은 당시의 논문에 이들 내용을 단 한 마디만 적었어도 그녀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임을 뜻한다.
두 번째는 1953년 3월에 킹스 칼리지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버크벡 칼리지(Birkbeck College)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이다. 이때는 왓슨과 크릭의 논문이 제출되기 전으로 프랭클린은 자신의 사진으로 크릭과 왓슨이 부지런히 이중나선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는데 킹스칼리지에서 그녀를 해임하자 DNA에 미련을 버리고 버크벡 칼리지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 TMV)로 연구 주제를 바꾸었다. 그녀는 생명과 관련된 물질 구조에 관심을 가진 것이지, 꼭 DNA가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연구도 학계에서 매우 중요시하게 평가한다.
프랭클린은 이후 5년 동안 17편이나 되는 논문을 출간했고, 세계 최초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중앙 구조가 빈 튜브 모양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당대의 유명한 결정학자로서 프랭클린을 버크벡 칼리지에 초청했던 버널(John D. Bernal)은 그녀가 찍은 X선 사진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극찬했으며 그녀가 연구팀을 꾸려 나가는 능력도 높이 평가했다.
당시 그녀는 DNA 구조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우리지 않고 바이러스에 전념했는데 그녀의 논제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연구한 에런 클루그(Aaron Klug) 박사가 1982년 바로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로 노벨화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론 크루그 박사는 리투아니아 태생으로 1953년에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버크벡 대학의 프랭클린의 팀에 합류했다. 그는 회절방법의 원리와 전자현미경의 독창적인 조합을 기초로 하여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분자집합체의 구조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여 생화학에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그의 노벨상 수상 제목은 「결정학적 전자현미경과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핵산 – 단백질 복합체의 구조결정」이다. 그와 프랭클린은 함께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의 구조결정을 X선 회절로 연구하였는데 그 혼자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당시 사수가 프랭클린이고 조수가 에런 클루그이므로 두 명이 함께 노벨상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랭클린이 DNA 연구에서 떠나 보다 업그레이드 된 바이러스 연구 과학자로 거듭나고 있을 때인 1956년 그녀는 자신이 난소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자들은 그녀 연구의 기본이 X선이므로 X선에 많이 노출되어 암에 걸린 것으로 추정한다.
연구 과정의 여파로 과학의 희생자가 된 것으로 그녀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홀로 병마와 싸웠다. 두 번의 수술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고 죽기 직전까지 연구에서 손을 놓지 않던 프랭클린은 가족들과 크릭 부부를 포함한 몇몇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투병 생활을 한 지 2년 만이다.
프랭클린을 37살이란 젊은 나이에 사망케 만든 암이 X선 때문에 걸렸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병원에서 X선 촬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X선은 극히 짧은 파장의 전자기 복사선으로 물체를 뚫고 지나가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골절이나 부상자에게 박힌 파편이나 유리 조각, 또는 어린아이가 우연히 삼킨 물건 등을 찾아내는 데 사용된다. 또한 X선은 인체를 투과할 경우 장기 또는 조직의 밀도에 따라 흡수 또는 흩어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성질을 이용하여 질병의 증상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X선을 많이 받으면 유해하다는 것은 방사능 때문이다.
한 번 X선 촬영을 할 때 받는 방사선량은 약 0.1mSv(밀리시버트)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번 했을 때 몸에 쪼이는 방사선량은 6.9mSv다. 일반적으로 방사선 1Sv(시버트) 이상을 온몸에 쬐게 되면 구토가 일어나고, 7Sv를 쬐게 되면 죽는다고 알려진다. 마리퀴리가 200시버트의 방사선에 피폭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방사선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원전 종사자는 연간 20mSv 이상 방사선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프랭클린이 연구를 위해 X선을 다반사로 찍었으므로 마리 퀴리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량의 방사능에 피폭되었을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물론 현재는 X선 피폭의 중요성이 알려져 모든 X선 촬영장에서 연구원을 비롯한 종사자들이 주의하고 있음은 기본이다.
프랭클린의 여러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알려지자 그녀는 사후에 그야말로 각광을 받는다. 1987년 영국의 BBC의 「호라이즌」프로그램의 ‘라이프 스토리’에서 공감되는 인물로 부각되었다.
1992년 영국 전통유산회는 그녀가 살았던 사우스켄싱턴의 도노번 코트의 맨션에 청색 플랙을 달았다. 관리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랭클린은 한 번도 공적에 알맞은 인정을 받은 적이 없다. 지난 125년간 우리가 건물에 달아놓은 600개의 플랙의 90%가 남성에게 수여되었으므로 우리는 중요한 여성들을 기념하고 싶다.’
1995년에는 뉴넘대학이 대학원 기숙사를 그녀의 이름으로 헌정했고 정원에 로잘린의 흉상을 설치했다. 1998년 국립초상화랑은 그녀의 사진을 윌킨스 옆, 왓슨과 크릭 밑에 걸었다.
2000년 킹스칼리지 런던은 프랭클린윌킨스 빌딩을 헌정했다. 크릭은 비디오로 나왔고 왓슨은 직접 참석하여 그녀의 공헌이 그들의 발견에 중요했다고 말했다.
여하튼 프랭클린이 일찍 사망하여 노벨상이라는 대어가 그녀를 빠져나간 것은 사실인데 에런 클루그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매우 감동적인 말을 했다. 우선 그는 프랭클린이 자신을 바이러스 연구에 입문시켰으며 크고 어려운 과학 문제를 공략하는데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프랭클린 박사의 삶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짧게 끊나지 않았더라면 이 노벨상 수상대에 더 일찍 설 수 있었을 겁니다.’
클루그의 연설은 프랭클린의 참 모습을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는데 특히 그에 대한 수상추천사를 보면 프랭클린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노벨상 추천사>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생명은 규칙적이고 죽음은 무질서합니다. 기본적인 자연의 법칙은 우주에서 자발적인 화학변화가 혼돈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진화를 겪는 수십억 년 동안 이 법칙을 반박하는 것 같습니다.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의 도움으로 우주에서 발견된 가장 복잡한 시스템, 즉 살아 있는 유기체가 생성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물체는 큰 유기체의 기관에서부터 세포의 가장 작은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잘 정돈된 화학적인 조직체로서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꽃이나 새의 절묘한 형태를 즐길 때 우리가 경험하는 아름다움은 분자구조에서의 미세한 아름다움의 반영입니다.
생명의 화학적인 정렬은 어떤 신비스러운 생명력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비밀은 오히려 원자와 분자들의 매우 구조적인 조직이 가진 화학적 특성에서 발견됩니다. 현대 구조화학은 과학의 신비한 문을 여는 도구를 제공합니다.
물질이 결정형태로 얻어질 수 있다면 화학물질의 구조, 즉 한 분자에서 모든 원자의 정확한 공간 위치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결정 안에 있는 원자들의 주기적인 배열로부터 엑스선이 산란될 때 특정 패턴이 형성되는데 이것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고 복잡하지만 수학적 분석의 도움으로 원래 구조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엑스선 회절법으로 불리는 이 방법의 원리는 금세기 초부터 알려졌는데 그 발견에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이 수여되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건축벽돌인 거대분자의 구조를 결정짓는 기술이 개발되는 데는 거의 반세기가 소비되었습니다. 1962년에 생명의 핵심물질인 단백질과 핵산의 분자구조를 연구했던 과학자들에게 노벨 의학상과 노벨 화학상이 수여되었습니다.
핵산, 즉 DNA는 세포 내에 있는 유전적 특징을 전달하는 집배원입니다. 결국 DNA는 세포의 화학적인 기계장치를 지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세포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단백질은 어떤 화학반응을 진행하는 능력으로 세포의 화학적인 형태를 차례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생명을 핵산과 단백질 상호작용의 결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거대 단백질들은 모이려는 경향이 있고 그 생물학적 기능은 주로 복잡한 분자 집합체와 연관됩니다. 예를 들면 세포핵의 염색체에서 유전 물질이 염색질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것은 DNA와 수천 개의 단백질분자들의 거대 집합체입니다. 살아 있거나 죽은 물체의 경계를 나타내는 바이러스에서는 핵산과 단백질들로 이루어진 좀 더 단순한 집합체가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그 자체의 세포가 없는 유전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바이러스의 구조를 통하여 더 진보한 유기체 내에 있는 유전적 물질의 복잡한 조직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큰 분자집합체의 경우에는 엑스선 회절로 구조결정을 할 수 있는 그러한 형태를 얻기 어렵습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는 에런 클루그 교수는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분자집합체의 구조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그의 기술은 회절방법의 원리와 전자현미경의 독창적인 조합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전자현미경은 세포의 구조적인 부분들을 설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 사진에서 대비가 약해서 분해능에 한계를 갖습니다. 클루그 교수가 대비 면에서는 약하지만 엄청난 양의 구조적인 정보가 사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였는데, 사진의 수학적 처리로 이 구조적인 정보들을 유용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구조화학의 다른 방법들과 조합된 이 기술을 가지고 클루그 교수는 무엇보다도 먼저 바이러스와 세포핵의 염색질을 조사했습니다. 그의 바이러스 연구는 세포 내의 복잡한 분자집합체가 그들의 일부분으로부터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따라 중요한 생화학 원리를 밝혀냈습니다. 염색질 연구는 DNA 안의 유전정보를 읽는 구조적인 제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유전물질이 세포의 성장과 분열의 제어를 하지 못하는 암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클루그 박사님.
지금까지 저는 우주, 즉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발견되는 대부분 잘 알려진 화학시스템에서 복잡한 성분의 화학적 구조를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를 제공한 교수님의 결정학적 전자현미경의 독창적인 개발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교수님은 결정학적 전자현미경을 바이러스와 세포핵 내 DNA와 단백질 사이의 복잡한 분자 집합체인 염색질의 조사에 활용하였으며, 교수님의 구조결정 결과는 중요한 생화학 원리를 확실하게 하였습니다. 왕립과학원은 이와 같은 기초적인 공헌에 대해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과학원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며, 이제 전하로부터 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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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왓슨 & 프린시스 크릭」, 표정훈, 네이버캐스트, 2009.04.25.
「고삐 풀린 방사능, 공포의 진실은 무엇인가」, 김형자, 시사저널, 2011.04.06.(1120호)
https://ko.wikipedia.org/wiki/%EC%83%A4%EA%B0%80%ED%94%84%EC%9D%98_%EB%B2%95%EC%B9%99
「발광선생과 그의 해파리」, Secret Lab of a Mad Scientist, 2016년 8월
『사이언스 오딧세이』, 찰스 플라워스, 가람기획, 1998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 예병일, 한울, 1999
『유레카』, 레슬리 앨런 호비츠, 생각의 나무, 2003
『생물학과 생물학자 이야기』, 강건일, 참⋅과학, 2004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브렌다 매독스, 양문, 2004
『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 예병일, 사이언스북스, 2004
『노벨상이 만든 세상』, 이종호, 나무의꿈, 2007
『열정의 과학자들』, 존 판던 외, 아이세움, 2010
『100 디스커버리』, 피터 매시니스, 생각의날개, 2011
『위대한 여성 과학자들』, 송성수, (주)살림출판사, 2011
『한권으로 보는 인물 과학사』, 송성수, 북스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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