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콜타르

황제의 보라색, 악성 폐기물 콜타르(1)

Que sais 2020. 10. 22. 23:35

youtu.be/a-2nd2e6MKg

전통미와 친환경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천연염색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직장에서는 천연염색 유니폼이, 가정에서는 황토옷이 유행이다. 옷이나 건물은 그 디자인과 더불어 색깔 때문에 더욱 빛나고 신호등이나 표지판의 색깔은 유용한 정보를 전해주는 동시에 위험도 막아준다. 심지어 우리가 먹는 음식물도 그 색깔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땟깔이 고와야 맛도 있다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색깔은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예술품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그러므로 화가들은 남이 내지 못하는 색을 나름대로 개발하여 비장의 무기로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색을 남보다 탁월하게 내는 비법이야말로 성공하는 요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독특한 색이 그만큼 남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독특함에 환가성이 있음도 물론이다.

동물성 염료는 동물 피나 즙, 조개 분비물, 붉나무 기생벌레집인 오배자, 코치닐과 같은 식물의 기생충에서 얻는다. 광물염료는 색소가 함유된 흙이나 돌가루로, 초창기에는 주로 황요먹이 사용됐다.

구석기 후기에 들어가서 인간들이 몸치장에 신경을 썼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 짐승 이빨과 조개껍질로 만든 장식품이 나왔으며 개, 고래, 물고기, 거북이들을 본 딴 장식품들도 발견된다. 프랑스의 쇼베 동굴에서는 기원전 35천년 경에 이미 빨강, 노랑, 갈색, 흑색 등으로 그려진 벽화가 아직까지도 선명한 색깔을 자랑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 장식품들은 더욱 발전하는데 재료는 흙, 옥돌, , 조개껍질 등이고 용도상으로 보면 머리장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이며 형태도 여러 종류이다.

이와 같은 장식에 대한 고대인들의 관심은 당연히 식물이나 동물 피 등을 인간에 직접 활용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염색기술이 등장한다.

우선 염색 재료를 담을 수 있는 질그릇이 생산되었고 염색법도 바르기에서 담그기로 진행했다. 바르기는 식물의 즙, 여러 종류의 흙, 동물의 피 등을 혼합하여 원하는 곳에 그림 그리듯이 바르는 것이지만 얼마 되지 않아 색이 변하면서 퇴색된다.

그러므로 염색 재료에 천 등을 푹 담가둠으로써 색소 물질이 스며들어 오랫동안 염색 효과가 나타나도록 담그기를 개발했다. 담그기가 개발된 것은 대부분의 염료가 섬유에 바로 고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섬유는 염색하기 전 미리 염료가 섬유에 고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인 매염제로 처리해야하기 때문이다.

염색의 본질은 수용액 안에서 섬유와 물감 사이에 진행되는 화학적, 물리-화학적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촉진시키고 원하는 색을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열을 가하기 위해 금속용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청동기 시대에 제작되는 청동용기로도 염색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천연염료는 색상수에 제한이 있지만 대량생산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았다. 따라서 왕이나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누구나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합성염료의 개발 덕분이다.

 

<황제의 색 보라색>

과거의 유물들에서 볼 수 있는 색깔들은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천연 재료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차츰 대량으로 합성된 물질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인디아 잉크 또는 중국 잉크라고 부르는 먹은 접착제에 뼈나 타르를 태운 검댕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수천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훌륭한 잉크로 사용된다. 탄산칼슘, 황산칼슘, 산화납, 고령토는 흰색 안료로, 산화철은 갈색 또는 황갈색의 안료로, 그리고 카드뮴이나 바나둠의 화합물도 여러 가지 색깔의 안료로 사용된다. 이산화티탄은 오래 전부터 쓰이던 산화납과는 달리 인체에 독성이 없어서 흰색 그림 물감은 물론 화장품의 원료로도 많이 사용됐다.

옷감이나 종이 또는 가죽을 물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염료는 섬유와 염료의 분자 사이의 강한 화학결합을 이용하는데, 염료는 주로 유기물질로 만든다.

염료 제조 방법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로마 시대에 티리안 퍼플(티리안 지방 특산 소라고동으로 염색했다는 뜻에서 유래) 또는 로얄 퍼플 등으로 알려졌던 자주색 천연염료다.

자색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페니키아의 신 멜가드(melgarth)는 지중해 해안을 개와 걷다가 개가 갑자기 조개를 물자 입에서 붉은 색소가 스며 나왔다. 그 색이 너무 아름다워 신은 사랑하는 님프를 위해 튜닉에 염색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티리언 퍼플이며 입에서 나는 핏빛 자색 또는 터어키의 피라고 전해진다.

고대 서양사회에서 자색염색이 얼마나 특별한 색인지는 성경의 <출애급기>에서 모세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일 예물은 다음과 같다. 금과 은과 놋과 자줏빛 털실과 붉은빛 털실과 진홍빛 털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분홍물들인 숫양 가죽과 돌고래 가죽과 아카시아나무와 등잔 기름과 향기로운 기름에 넣을 발삼향과 분향할 때 쓸 향품과 제사장의 에복과 가슴받이에 박을 홍옥수를 비롯한 여러 보석들이다

 

너는 열 폭 천으로 내가 살 성막을 만들어라. 그 천은 가늘게 꼰 베실과 자줏빛 털실과 붉은빛 털실과 진홍빛 털실을 섞어서 그룹 무늬를 수놓아 짠 것이어야 한다.’

 

이들이 만드는데 쓸 재료는 금실과 자줏빛 털실과 붉은빛 털실과 진홍빛 털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짠 천이다.’

 

이외에도 성경에서는 자주빛 재료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역대기하>에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 준비를 위해 자색 비단을 짤 기사를 고용하여 성전의 휘장을 제작했다고 적혀있고 <에제키엘>에는 무역하는 도시 띠로의 화려한 배가 엘리시아 섬에서 들여온 자주와 진홍색 비단으로 차일을 만들었다고 적혀있는 등 자색은 차별화 된 상품이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황제를 포함해서 중동지역의 왕들은 황제 퍼플로 만든 로브(robe)로 치장했다. 시저의 예복(toga)이나 클레오파트라가 타는 배는 패자로 염색했으며 네로 황제는 본인 이외에는 패자염 의복 착용을 금지했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염료 공장 밖에서 로얄 퍼플을 만드는 사람은 사형에 처했다. 특히 동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아들로 태어난다는 뜻의 ‘born to the purple'도 여기에서 기원한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 패자염이 성행했다. 순자(荀子)』 〈왕제편에는 다음과 같이 패자염에 관한 기록이 있다.

 

동해에는 자거(紫紶)가 있는데 어염(魚鹽)이다. 그런데 나라 안에서 이것을 구하여 입거나 먹었다.’

 

주석에는 자()가 바로 자패(紫貝, 자색 조개)라고 적었다. 또한 전국책에는 제나라의 자패는 그 가격이 10배나 비싸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패자염이 사용되었다. 제의 환공은 값비싼 패자염이 사대부 사이에 유행하는 것을 막으려고 패자염직물의 악취를 꼬집었다는 기록도 있다.

유명한 마왕퇴 유적에서도 자색 견직물 의복과 북경 대보대에서 발견된 묘에서 출토된 자색 견직물 자수품도 발견되었다. 중국의 왕쉬는 중국 홍색 패류를 갖고 직접 염색 실험을 한 결과 자색을 재현하여 문헌 기록을 입증했다.

패자를 분비하는 골나과에 속하는 조개류는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아시아에는 여러 종류의 패자 조개류가 있으며 일본 북해도 이남에서 중국, 동남아시아까지 종류 별로 분포한다. 이들은 각각 수심 1050미터 범위에 서식한다.

패자는 새하선(鰓下線, Hypobranchial gland)이라고 부르는 호흡기관에서 생산된다. 이는 점액세포, 직모세포와 신경감각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밝은 색은 중앙의 세포군에서 어두운 색은 말단의 세포군에서 점액이 분비된다. 패자의 발색 과정은 유백색의 색소 전구체가 수액과 함께 체외로 배출하여 산소의 작용으로 녹색을 띠고 다시 자외선을 받아 청색과 자색의 단계로 변화한다. 발생 과정의 색은 불안정하지만 최종적으로 자색이 되면 극히 안정된다.

1909년 프리드 랜더가 황제패자의 화학적 구조는 식물성 인디고 염료와 동일하다고 밝혔다. 패자의 색소 전구체는 수용성이므로 직접 염색이 가능하지만 자색을 발하는 색소는 불수용성이므로 알칼리 환원제를 사용하는 인디고 계열의 건염염료(Vat dye)염색법을 사용한다.

프리드 랜더는 패자염이 얼마나 희귀한가를 재현했는데 패자염료 1.4그램을 추출하는데 12,000여 개의 패자 조개 즉 85킬로그램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옷 한 벌에 사용되는 3제곱미터의 모직물을 염색하려면 120그램의 패자염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조개가 약 7,286킬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런 희소성이 바로 고대로부터 패자 염직물이 황금과 같은 가치를 갖고 상류층의 전유물로 사용된 것이다.

 

<실험실에서 유기물 생성>

천연염료는 색상수에 제한이 있는데다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았다. 따라서 왕이나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더구나 염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염료 이외에도 백반과 같은 매염제(媒染劑)가 필요했기 때문에 염색 기술은 국가 기밀로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자유화 운동과 평등화 사상이 높아지자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자하는 열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입는 옷을 값싸게 염색할 수 있느냐하는 점이다. 천연염료로서는 이와 같은 열망에 부응할 수 없으므로 학자들은 당시의 과학지식을 이용하여 합성염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800년대 초부터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공기, 해양, 토양 등과 같은 무생물과 살아 있는 생명체나 죽은 사체로부터 발견되는 연소성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베르셀리우스(Jons Jakob Berzelius)1807년에 이 연소성 물질이 직간접적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로 만들어지는 물질이기 때문에 유기물이라고 불렀고 생명이 없는 광물원에서 얻어지는 것을 무기물이라고 불렀다. 유기물은 하나의 식물 또는 동물에서 다른 식물이나 동물로 유전이 가능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생명력 이론, 즉 생기론은 무기물은 실험실에서 합성할 수 있지만 유기물은 실험실에서 합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1828년에 베르셀리우스의 제자였던 독일의 화학자 뵐러(Friedrich Wöhler)는 실험실에서 시안산암모늄을 가열하여 동물의 체내에서만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진 백색 결정을 얻었다. 그것은 개나 사람의 오줌으로부터 얻어지는 요소였다. 뵐러 자신도 무기물질에서 유기물질을 인공적으로 제조할 수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라고 말했다. 뵐러의 놀라운 발표에 시안산을 응고한 피에서 채취했기 때문에 유기화합물이라고 주장했지만 1845년에 독일의 콜베도 식초의 신맛을 내는 아세트산이라는 유기 화합물을 그 성분 원소로부터 만드는데 성공했다. 결국 유기물을 생체로부터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부정되었고 오늘날 유기화합물은 탄소를 포함하고 있는 화합물로 정의된다. 따라서 유기화학은 탄소화합물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이 정의가 완벽한 정의는 아니다. 화학자들이 유기화합물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탄소화합물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대리석(탄산칼슘)과 베이킹소다(탄산나트륨)가 유기화합물로 분류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의 예외를 제외하고 탄소를 포함하는 모든 물질을 유기물’, 나머지를 무기물이라고 부른다.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인정되자 많은 학자들이 다른 물질들도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베르데롯은 일산화탄소와 같은 간단한 무기 화합물로부터 많은 유기화합물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그는 에틴렌을 수화하여 에틸알코올을 만들어 냈는데 진짜 에틸알코올과 똑같아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에틸알코올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술의 원료이다. 주정이라고도 불리는 에틸알코올을 과일이나 곡물에서가 아니라 석탄과 공기와 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화학자들로 하여금 기적의 합성이라는 평판을 들었다(석탄은 탄소를, 공기는 산소를, 물은 수소를 공급한다). 에틸알코올의 합성은 유기 합성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