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킨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염료를 개발해 공업적으로 생산했는데, 그동안 꼭두서니과의 식물 뿌리에서만 채취하던 빨간색 염료 알리자린이다. 사실 이 부분에도 선구자가 있었다. 독일의 칼 그레베와 칼 리베르만은 1868년에 콜타르의 한 성분인 안트라센으로 알리자린을 합성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의 합성법은 비실용적이었다. 다행히 퍼킨은 호프만 교수 밑에서 안트라센을 취급한 적이 있었다. 퍼킨은 곧바로 알리자린 실용화에 착수하여 놀랍게도 단 1년 만에 알리자린을 생산해냈고 1871년에 이미 연 생산 200톤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를 키웠다.
콜타르와 합성염료, 이 두 가지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물질도 없을 것이다. 끈적끈적하고 시꺼먼 콜타르는 옷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냄새도 지독해서 악성 폐기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이 시꺼먼 애물단지가 화려한 합성염료의 원료는 물론 나프탈렌, 벤젠, 아닐린 등 여러 화학 공업의 원료로서 귀중한 자원이 된 것이다. 시커먼 콜타르에서 아름다운 인공 물질을 만들어낸 것은 퍼킨의 탁월한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대의 최고 부자의 대열에 합류한 퍼킨은 사업을 일찍 시작한 만큼이나 은퇴도 빨랐다. 그는 특허로 엄청난 재산을 쌓고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여생을 연구에만 바쳤다. 은퇴 후 1년 만에 퍼킨은 갓 베어낸 풀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로 방향 물질인 쿠마린(coumarin)을 합성해 합성 향료 산업의 시발점을 알렸다.
염료 사업에서 손을 떼고 연구에만 투신한 이후에도 그에게는 부와 명예가 계속 이어졌다. 영국학사회 회원으로 작위를 받았고 이어서 유명한 다비 상, 호프만 상, 라부아지에 상을 받았다. 현재 꾸준히 사용되고 있는 약 3,500가지의 합성염료는 그의 업적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영국화학공업회의 미국 지회에서는 미국인 화학자에게 최고 영예인 퍼킨 상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퍼킨의 성공 스토리는 대단히 흥미롭지만 사실 일반 사람들에게 모두 퍼킨의 성공과 같은 기회가 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퍼킨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키니네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산물인 더러운 적갈색의 끈적끈적한 물질을 얻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하고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다. 특히 18살도 되지 않는 젊은이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퍼킨의 나이 고작 18살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실패작인 더러운 물질의 효용성을 간파했다는 점이다.
퍼킨이 살던 시대가 지금보다 다소 조숙했다고는 하더라도 퍼킨의 경우는 특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키니네라는 말리리아 약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얻은 예상치 못한 부산물을 염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놀라운 재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얻은 물질을 당대의 염료회사로 보내 실용성을 검증케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결론은 그의 예상대로였지만 그때의 나이 18살도 되지 않았을 때임을 생각하면 다시금 놀라울 따름이다.
이후 그가 발견한 물질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온 집안 식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지만 폭발 사고를 겪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당초의 계획을 밀고나갔다. 이런 와중에 ‘빅토리아 여왕의 관심’ 같은 행운도 작용했지만, 결국 퍼킨의 염료가 세계를 석권한 데에는 부단한 연구와 함께 사업적인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재벌 2세라도 20대에 퍼킨과 같은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퍼킨은 참신한 아이디어라면 어린 나이에도 이를 실현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젊은이이게 희망과 용기를 준 그의 일생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이다.
퍼킨의 성공에 자극 받은 지도교수 호프만도 시대의 변화에 동참했다. 그 역시 염료 합성에 합세하여 붉은 염료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데, 그 색깔은 1859년 마젠타(Magenta)라는 이탈리아의 마을에서 오스트리아를 물리친 프랑스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마젠타(자홍색)’로 명명되었다.
<천연 염료 합성>
한편 화학자들은 퍼킨의 성공에 자극 받아 실험실에서 천연 염료를 합성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새로운 염료가 만들어지고 그때까지 수 천 년에 걸쳐 쓰여져 왔던 천연염료 대신 인공염료가 쓰이기 시작했다. 인공 염료는 천연 염료보다 손쉽게 만들어지는 데다 값이 싸며 색깔도 다양하였기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퍼킨이 모브를 발명하자 독일 남서부에 있는 만하임의 석탄가스회사 소유주였던 프리드리히 엥겔호른(Friedrich Engelhorn)은 석탄가스 추출 공정의 부산물에 불과하던 새로운 황금이자 사업의 기회라는 사실을 재빨리 파악했다. 엥겔호른은 1861년부터 콜타르를 통해 적색 염료 푹신(fuchsine)과 아닐린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콜타르에서 염료 원료를 추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여러 화학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되자 이 과정들을 통합할 수 있는 회사를 설립했다. 화학의 전 과정을 관장하는 회사 시스템을 설립하겠다는 구상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아이디어인데 이 아이디어로 탄생한 것이 현재 세계적인 기업인 ‘바디셰아닐린&소다파브릭(BASF)'이다.
<인공합성 염료의 세계 지배>
1905년에 독일 화학자인 바이어(Johann Friedrich Wilhelm Adolf von Baeyer)가 ‘유기색소, 히드로 방향족 화합물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청색을 내는 합성염료인 인디고의 구조 규명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공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볼 때 바이어의 연구가 과연 노벨상을 받을 가치가 있느냐라는 의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대와 같이 분석적 방법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조직적으로 염료를 만들어 냈다. 당시에는 분자의 질량을 분석할 방법도 없었고 분자의 구조를 알아내기 위한 분광학도 없었다. 화합물의 구조 자체가 화학자들에 의문이었을 때, 학자들이 물질의 구조를 알아내려는 의욕을 제공하였다는 데 그의 공헌이 있다.
파란색을 내는 인디고가 특별히 중요성을 보인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빨산색이나 노란색은 천연으로 많이 존재하는데 파란색 염료 식물은 많지 않았다. 인디고는 콩과 식물인 인디고페라 틴크토리아(Indigofera tinctoria)에서 주로 얻는데 이 식물은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며 키가 2미터까지 자란다.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일부 식물에서도 얻을 수 있는데 영국에서는 대청(woad), 프랑스에서튼 파스텔(pastel)로 불린다. 인디고의 원천이 되는 식물들의 녹색 잎만 보면 파란색의 염료가 나올 것 같지 않지만 이 잎을 산화시킨 뒤 알칼리 용액에 담가 발효시키면 파란색의 염료가 만들어진다.
여하튼 인디고의 합성은 매우 중요한 일로 사퍼가 인디고의 공업용 합성 방법을 알아냈다. 사퍼는 나프탈렌을 발연황산과 함께 가열하던 도중, 실수로 온도계를 깨트려 그 속의 수은을 반응용기 속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평소와 다른 반응이 일어났다. 황산이 수은을 황산수은으로 변화시키고 이 황산수은이 나프탈렌을 무수프탈산으로 산화하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무수프탈산을 인디고로 변화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로 호이만이 그 작업을 수행했다.
인디고의 합성은 인도나 기타 나라에 산업적인 치명타를 가했다. 19세기 말까지 인디고는 ‘쪽’이라는 식물에서 채취하였는데 1897년 인도에서 쪽의 재배면적은 약 8,000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렀다. 합성염료 인디고가 개발된 이후 천연인디고가 염료시장에서 더 이상 시장성을 잃어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패자염의 비밀은 박테리아>
최근 영국에서 패자염의 비밀이 밝혀졌다.
존 에드몬드 박사는 2002년 소라고둥이 아니더라도 새조개로 자주색 염색이 가능한 것을 증면한 것은 물론 자주색 염색 메커니즘도 밝혔다. 새조개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그는 나뭇재와 함께 새조개를 50도에서 10일 간 보관한 후 양모를 넣었더니 처음엔 초록색을 띠다가 햇빛에 말리자 곧 자주색으로 변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밝힌 자주색 염색의 핵심은 다름 아닌 박테리아였다. 전통염색에 박테리아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1998년에 처음 밝혀졌는데 에드몬드가 메커니즘을 밝힌 것이다.
원래 소라고둥에 들어있는 자주색 입자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다. 그런데 박테리아가 이 입자에 전자를 첨가해 환원시킴으로써 물에 녹게 만든다는 것이다. 염색 과정에서 들어가는 나뭇재는 용액이 산성이 되는 것을 막아 염료의 환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존 에드몬드는 염료를 환원시켜주는 것이 클로스트리듐 박테리아라는 것도 밝혔다. 식중독, 장염 등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은 높은 온도에서 당분을 먹고 자라며 산성인 환경을 싫어하는데 이것이 세상을 놀라게 한 패자 염색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발달하여 염색에서도 신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그것은 정통염색과는 다른 디지털 염색이다. 소위 컴퓨터로 염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래식 염색공정은 화학염료를 배합해 필요한 색을 만들고 원단에 입힌 다음 열처리와 건조 등 많은 단계를 거친다. 그러므로 주문받은 디자인을 제품으로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염색기법은 이 공정을 1〜2일 이내로 단축시키고 있다.
디지털 염색기법은 컬러프린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재래식 염색공정은 판화 제작과 유사하다. 더욱이 재래식 염색공정의 경우 찍어내는 사람의 노하우에 따라 같은 디자인이라도 색감이 다른 제품이 만들어진다. 이에 비해 디지털 염색기법은 디자이너가 고안한 디자인 파일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둘 수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디자인을 같은 색감 그대로 재현 가능하다.
디지털 염색기법의 장점은 다량의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폐수가 생기는 재래식 염색공정과 달리 환경오염 걱정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디자인 파일을 만들 때 화면을 분할해 여러 디자인을 한번에 ‘인쇄’하면 원단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디지털 염색기법은 가로세로 100〜200야드(100야드=91.44m) 정도 분량의 원단으로 소량 생산하는데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수천 야드 이상 대량생산할 경우 재래식 염색공정이 보다 저렴하고 시간이 적게 든다고 하지만 이 분야는 앞으로 급속히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염료는 인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수천 년 동안 천연 재료에서 얻어지던 염료에서 인류 최초의 산업 몇 가지가 형성되었다. 색상에 대한 수요 증가와 더불어 길드와 공장, 도시, 무역도 성장했다. 특히 합성 염료가 출현하면서 세계는 한순간에 일변했다. 천연 염료를 구하던 전통적인 방법은 사라지고 퍼킨이 모브를 합성한 지 채 1세기도 지나기 전에 거대한 화학복합 기업들이 염료 시장과 유기화학 분야를 지배했다. 이들이 중요성은 여기서 얻은 자본과 화학적 지식으로 오늘날의 항생제, 진통제, 기타 의약품 등에 대량 투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브를 개발한 퍼킨은 화학을 공부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 최초의 인물이었다. 또한 모브의 합성은 유기 화합물에 대한 최초의 진정한 다단계 합성이었다. 물론 현재를 감안하면 모브는 엄청난 합성 염료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모브야말로 유기화학을 세계적인 주요 산업으로 바꿔놓은 장본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은 없다.
한마디로 영국의 한 10대 소년이 만들어 낸 염료가 세계사의 한 장을 장식했고 후손들에게 남다른 의욕을 불러 일으켜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실에서 그의 전설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류사에서 퍼킨처럼 10대 소년이 만들어 준 세계가 있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참고문헌 :
「민주주의 앞당긴 염료의 역사」, 이덕환, 과학동아, 1999년 8월
「박테리아가 만든 황제의 상징」, 이영완, 과학동아, 2003년 10월
「패션70s VS 패션00s」, 윤소영, 과학동아, 2005년 8월
「프리츠 하버」, 전성원, 인물과사상, 2011년 6월호
「고대 로마에서는 자색 염색은 황제나 귀족만 사용했다」, 김성희, 『대한문화재신문』 제6호 2004년 2월 15일
『틀을 깬 과학자들』, 오진곤, 전파과학사, 2002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이야기』, 페니 르 쿠터 외, 사이언스북스, 2007
'화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 > 콜타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제의 보라색, 악성 폐기물 콜타르(2) (0) | 2020.10.22 |
---|---|
황제의 보라색, 악성 폐기물 콜타르(1) (0) | 2020.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