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링컨>
링컨은 미국의 여러 영웅들 가운데 미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데 그가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노예해방을 궁극적으로 달성하고 곧바로 극적인 죽음을 맞은 남다른 인생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링컨이 처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대통령은 앤드루 잭슨이다.
링컨은 잭슨주의자들이 '보통사람(common man)을 위한 정치'를 내세운 데는 공감했으나 경제사업에서 연방정부가 손을 떼야 한다는 견해에는 반대했다. 그는 후일 자신이 반대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의 합법적인 목적은 국민이 필요로 하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전혀 해낼 수 없거나 잘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당대의 저명한 정치가인 헨리 클레이와 다니엘 웹스터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연방정부가 국가은행 설립, 보호관세 제정, 운송시설 개발을 비롯한 국내 개량사업 추진 등을 통해 기업을 장려하고 국가자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리노이 주와 서부 전체가 경제개발에 연방정부의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므로 링컨은 클레이와 웹스터가 속한 휘그당에 입당했다.
1832년 그는 일리노이 주 의원 선거에 나섰는데 13명 중 8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2년 뒤 1834년부터 1840년에 걸쳐 일리노이 주에서 휘그당 의원으로 4번 당선되었다.
주의회 의원으로 있는 동안 철도·고속도로·운하 등 대규모 건설계획에 매진했으나 1837년 공황과 그로 인한 경기침체 때문에 대부분의 계획이 무산되었다.
우선 당시에 그는 노예제에 반대했다고 알려지지만 노예제 폐지론자는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837년 올턴의 노예제반대 신문편집인인 엘리자 러브조이가 군중들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해 일리노이 의원들이 주 폐지론자들을 비난하고 노예제를 지지하는 결의를 상정했을 때 링컨은 기권을 했다. 대신 그는 동료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선언서를 발표했다.
‘노예제가 부정과 악정에 기초한 것이지만 노예제 폐지를 법으로 공포한다면 노예제가 가지고 있는 악폐가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날 것이다.’
그는 낙선에 남다른 이력이 있는데 1844년에는 연방하원 의원 공천에서 탈락했고 1846년에야 간신히 하원의원에 당선되는데 그의 나이 37세로 엄청 늦은 나이다. 하원이 된 후 2년 동안 주로 민주당 대통령 제임스 K. 포크를 비난하고 멕시코 전쟁의 영웅인 휘그당의 재커리 테일러의 대통령 선거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테일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음에도 그에게 아무런 관직도 없었다.
연방의원에서 물러난 뒤 5년 동안 그는 정치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는데 새로 전국적인 소용돌이 즉 노예문제로 사건화되자 다시 정치가로 나선다.
1854년 링컨의 경쟁자인 민주당의 스티븐 A. 더글러스가 루이지애나 매입지 전체에 노예제를 허용하고,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준주(準州)에 '주민주권' 원칙에 따라 노예제 도입 여부를 그 지역 주민에게 맡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으로 불린 이 법안은 일리노이 주를 비롯한 옛 노스웨스트 지역에서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에 공화당이 등장하자 링컨도 공화당에 입당했다. 그런데 논쟁의 초점은 노예제인데 링컨과 더글러스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견해가 달랐다.
링컨은 의회가 준주에 노예제가 도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더글러스는 노예경제가 준주에 적합하지 않는다고 노예제가 준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회가 법안을 제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그는 전국적인 명사로 떠올랐지만 1855년 연방상원의원에서 낙선하고, 1856년 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1/3 정도의 지지(110/350)만 받으며 월리엄 데이튼에게 낙선한다.
<링컨과 더글러스의 논쟁>
그가 번번히 선거에 낙방하는 것과는 달리 더글러스는 승승장구하는데 1858년엔 상원의원 선거에 또 다시 맞붙었다. 결론을 말하면 이 선거에서도 링컨은 낙선했지만, 노예 문제를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켜 노예제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서 우뚝서게 된다. 이때 링컨과 더글라스가 벌인 토론은 아직까지도 미국 역사에 남은 명토론으로 평가된다. 링컨의 노예제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를 위해 <나무위키>의 글을 기반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제1차 토론에서의 더글라스는 링컨이 상원의원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인 '분열의 집(House Divided)'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주장했다.
‘제가 지금부터 그 연설문 중 일부를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분열되어 자기 자신을 향해 적대하는 집은 바로 설 수 없으리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이 정부가 절반은 노예제를 찬성하고 절반은 반대하는 상태로 영원히 버텨낼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집이 무너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집의 분열이 그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결국 이쪽이든 저쪽이든 간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노예제도가 추가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고 노예제도가 궁극적으로는 폐지되는 과정 속에 놓여있다는 신념이 대중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반면에 노예제도 옹호론자들은 기존의 주에서부터 신생 주에 이르기까지, 남쪽에서부터 북쪽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도가 합법화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밀어붙이려 할 것입니다.
노예제도를 반대한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흑인 공화당원들은 아주 좋아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링컨은 멕시코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또한 노예 도주법을 반대하고 워싱턴에서 노예 해방을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 링컨은 백인과 흑인에 대한 모든 사회제도 상의 평등을 주장하며 심지어는 흑인과 백인이 결혼할 수도 있게 하려 합니다. 링컨의 주장은 사회적인 불안과 충돌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여기서 제가 밝혀둘 것은 제가 통과시킨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의 원래 취지는 무엇보다도 미합중국이 자치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의 문제를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스스로가 결정하게 하자는 주권재민(Popular sovereignty)의 원칙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미국에 새로 편입되는 주의 지역주민들이 노예제도에 관해 허용할 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것으로 저는 주권재민의 올바른 적용이야말로 노예제도로 인한 갈등을 끝내고 북부와 남부의 주들이 평화로운 공존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더글라스의 주장에 링컨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했다.
‘더글러스 후보는 저를 모함하는 많은 의문과 질문들을 던졌지만 그는 저를 모함하는 자신의 주장들에 대해 아무런 근거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의 질문에 대해 분명히 대답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그동안 취해왔던 정치적 입장들 중 일부는 제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는 제가 속해 있는 공화당의 입장도 섞여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먼저 저는 도주 노예법의 폐지를 주장한 것이 아니고 수정을 요구했음을 밝혀 둡니다. 더글러스의 주장은 이렇듯 사실 부분에서 여러 가지로 잘못된 점이 많습니다. 저는 '흑인은 헌법상 연방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고 노예의 소유는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의 일부로써 보호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드레드 스콧 판결문을 지지했던 더글러스에게 묻습니다. 이 판결문의 법리대로라면 지역 주민 대다수가 노예제도의 폐지를 원한다고 해도 과연 가능키나 한 것일까요?
더글러스가 통과시킨 「캔자스-네브래스카 법」법은 그동안 미합중국에서 노예제도가 인정될 수 없는 지역이라고 국가적 합의가 이루어졌던 지역에 다시 노예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여는 행위 아닙니까? 더글러스야말로 노예제도를 미국 전역으로 확산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노예제도가 과연 주정부 자치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보십니까? 과연 주류법 같은 자치 영역의 문제들과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일까요?‘
제2차 토론은 링컨이 포문을 열었다.
‘본론에 앞서 먼저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저와 더글러스가 결코 다투지 않고 기꺼이 합의하는 원칙들이 다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모든 주가 노예제도를 포함하여 자치 문제에 관해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그의 주장인데, 저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는 제가 이 문제에 관해 그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거듭 주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제 견해를 계속 왜곡하고 있지만 이에 관한 제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왜 우리 정부가 절반은 노예제도를 찬성하고 절반은 반대를 하는 상태로 영원히 버텨낼 수는 없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저의 그와 같은 의견에 대한 이유를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그의 또 다른 질문은 '왜 건국의 아버지들이 세운 토대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가?'였는데 바로 이 점이 그와 제가 정확히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더글러스와 그의 동료들이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다져 놓은 원래의 건국이념을 훼손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더글러스가 우리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대단히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노예 매매를 근절시켜서 노예제도의 근원을 차단했으며, 새로 생기는 주에서만큼은 노예제도를 제한시키는 제도를 채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건국의 아버지들의 의도는 너무나 명백해서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 그것이 노예제도의 근절을 염두에 둔 포석임을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더글러스는 저더러 왜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든 그대로 놔둘 수 없느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제가 그에게 왜 그분들이 만든 대로 놔두지 않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더글러스와 그의 동료들은 이 건국 당시의 정책을 파기시켜버린 후에 미국 전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영구적인 제도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 어디서건 제가 요구하거나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건 오직 우리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원래 닦아놓은 법률적 토대로 이를 다시 되돌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노예제도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 지역들에서만 합법화하고 새로운 주들에게로 확산시키지 않도록 제한함으로써 건국의 아버지들이 추구했던 정책으로 다시 되돌리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노예제도가 완전히 사라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캔사스-네브래스카 주에서 노예제도를 허용하는 것이 주권재민에 관한 문제인 양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자유인과 노예가 공존할 수 없다는 미국 건국이념에 위배된다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의 초점을 흐리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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