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속인 거짓말/에이브러햄 링컨

노예제 찬성자가 아닌 노예해방자 링컨(3)

Que sais 2020. 12. 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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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주장더글러스는 발끈하여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링컨은 미국을 세운 국부들이 노예제도 폐지를 원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맞는 말입니까? 우리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명인 토마스 제퍼슨은 이에 관해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과연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이 링컨의 주장대로 생각했을까요?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우리 백인 남성들이었습니까? 아니면 흑인들이었습니까? 여러분들은 우리가 흑인들과 동등히 대우받아야 한다는 링컨의 주장에 찬성하십니까?’

 

더글라스미국 정부백인이 주축이 된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백인에 의해, 백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백인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다가올 모든 시대에도 백인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더글라스링컨의 연설이야말로 내전을 부추기는 연설이라고 비난했다. 링컨드레드 스콧 판결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주권재민이야말로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하나인 토머스 제퍼슨이 꿈꾸었던 지역 분권형 정부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특별히 강조한 것은 독립선언서들의 참여자들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선언했을 때, 흑인이나 인디언들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더글라스가 가장 크게 공격한 것은 흑인이 백인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사회적, 정치적, 법적인 평등까지 부르짖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인과 흑인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면 링컨에게 표를 던지십시오. 저는 노예해방뿐만 아니라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통합까지 지지하는 링컨 같은 급진적인 공화당원이 결코 아닙니다.’

 

링컨의 연설

 

더욱이 더글라스가 맹렬하게 공격한 것은 링컨의 이중성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링컨 북쪽으로만 가면 극단적인 노예해방론자처럼 굴면서도, 남쪽으로 가면 또 자신이 충실한 휘그당원인 것처럼 주장합니다. 이렇게 링컨은 지역에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이리저리 바꾸는 사람입니다. 링컨은 가는 곳마다 주장이 달라지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입니다. 또한 그는 예전에 자신이 경영하던 상점에서 법을 어기고 술을 판 적도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불법행위이고, 이렇게 법을 어긴 사람이 상원의원에 당선된다면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습니까? 링컨은 절대로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밝혀두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만든 법안이 반드시 노예 해방 반대 입장 쪽으로만 이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노예 해방을 원하는 주의 주민들은 지역 경찰법노예소유주가 도망간 노예를 경찰권으로 되찾아올 수 있는 조항을 제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노예제도를 선택하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글라스가 철저하게 링컨을 반박하면서 모든 곳에서 노예제도 시행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연설에 링컨은 그야말로 기지로 대응한다.

 

더글러스는 저더러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 만일 제가 얼굴이 하나 더 있었더라면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하필 잘생긴 얼굴을 놔두고 이렇게 못생긴 얼굴로 여기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리고 더글러스가 제가 술을 팔았다는 얘기는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가게를 운영하던 때에 제 가게에서 가장 술을 많이 산 고객이 바로 더글러스였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저는 이미 술을 파는 계산대를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더글러스는 아직까지도 그 가게의 충실한 고객으로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링컨과 더글러스

그런데 링컨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말을 한다.

자신이 언제 백인과 흑인 간완전한 사회적, 정치적 평등을 주장한 적이 있느냐이다. 그는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평등을 가져오는 것찬성하지 않으며, 찬성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흑인종투표인이나 배심원으로 만드는 것, 정권을 쥐게 하는 것, 백인들과 결혼하게 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고 찬성한 적도 없다고 말하면서 흑인과 백인종 사이엔 물리적인 차이점이 있으며 그 차이점이 영원히 두 인종사회적, 정치적 동등관계살아가는 것을 방지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평등하게 살 수 없는 한,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안 우월한 지위와 열등한 지위가 남아있어야 하며, 다른 그 누구와 마찬가지로 백인종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백인종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지만 개인적으로 백인종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한다고 해서 흑인종모든 권리를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흑인 여인이 노예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해서 제가 그 흑인 여성분과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그의 말을 듣고 많은 청중들이 웃었는데 이는 그의 연설에 즈음하여 더글러스링컨의 개인적인 취향흑인 매니아라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특히 링컨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흑인 소녀를 아내로 삼고 싶어 한다흑색선전으로 링컨공격했다. 이에 링컨이 노예제는 반대하되, 흑인들에게 투표권 등을 주어 백인들과 완전히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라고 답변한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립선언서가 만들어진 이후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어디서도 흑인독립선언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독립선언서흑인이 포함된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3년 전 어느 무렵부터 독립선언서'모든 사람'이란 말에 흑인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자신을 인종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거론하는데 그것은 맞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노예해방론자들 못지않게 노예제도를 혐오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노예제도 자체적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제도가 미국민주국가로서의 모범을 전 세계에 보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노예제도가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지향과 반대되는 이기심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싫다고 분명히 말했다. 더불어 노예제도의 확산이 나쁘다는 도덕적 판단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 심성 깊숙히 자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치의 원칙은 옳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노예제도주권재민의 원칙에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노예제도자치의 원칙이 적용되는 문제는 흑인인간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며 흑인이 사람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자치에 내맡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흑인이 인간이라면 그들 스스로를 규율할 수 있는 권리를 막는 것 그 자체가 자치의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링컨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더글라스에게 낙선한다.

그런데 근래 학자들은 더글라스가 매우 적극적인 노예제 찬성론자로 잘못 알려졌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노예제도각 주의 자율에 맡기자는 것으로 오히려 이 때문에 민주당 강경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링컨의 정치 일생을 보면 그는 인생에서 두 번의 사업 실패, 10번의 선거 중에 7번 낙선했다. 그런데 당대의 정치 역학에 의해 상원의원 선거에서 더글라스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혈투를 벌인 링컨이 부상하여 1860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1860518일 시카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3차에 걸친 투표 끝에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1961년 링컨의 당선 취임식

사실 정치인으로서 링컨 더글러스에게 매번 쓰라린 실패만 맛보았다. 그러나 대선에서는 링컨이 승리했다. 이는 민주당 내에 노예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더굴러스비교적 온건 노선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은 단결한 데 반해 당시 여당인 민주당더글라스의 북부 민주당C. 브레킨리지남부 민주당으로 쪼개졌다. 이는 더글러스의 노예제에 대한 온건성을 들어 민주당 내 남부 계열 인사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여당인 브레킨리지 부통령을 비롯한 남부 계열의 민주당 과격파들은 더글라스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민주당 전당대회에 불복해 입헌민주당을 창당하였다. 대통령 선거 시작도 하기 전부터 민주당 자체가 남북으로 분열된 것이다.

민주당이 둘로 나뉘어 공화당의 링컨과 대적한 결과는 자명했다. 스티븐 더글러스가 득표율에서 29.5%2를 차지하긴 했지만 선거인단에서 12을 얻는 참패를 당하고 링컨에게 패배했다. 링컨은 남부에서 거의 득표하지 못했고 일반투표에서도 40가 못 되는 표를 얻었지만 결론적으로 선거인단 투표에서 압승을 거두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