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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24) : 호모 에렉투스(4)

Que sais 2021. 2. 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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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마니시 등장>

2001, 카프카스(코카서스) 산맥의 남쪽인 그루지야의 드마니시라는 중세 마을 유적지에서 17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화석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화석은 고인류학자들을 정말로 놀라게했다.

일반적으로 호모에렉투스100만 년 전 경에 아프리카를 출발했다고 추정하는데 그것보다 무려 7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 두개골은 현생인류로 볼 수 있는 호미니드보다는 유인원에 가까웠다. 즉 이들은 두개골의 눈두덩뼈가 얇고 코가 작았으며, 뇌의 크기는 현생인류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을 볼 때 침팬지를 닮은 호모하빌리스에 가까웠다.

18024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 하빌리스팔이 길고 다리가 짧아 도보로 이동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나무 위에서 생활하기에 더 적합했다. 그런데도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에서 발견되었으니 학자들이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호모 하빌리스가 사용했던 도구가 발견된 지점들은 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거주지를 이동하려 했던 흔적도 없고 이동을 염두에 두고 거주지를 짓지도 않았다.

더욱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원시 도구들의 정체.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도구들은 자르거나 긁는 용도의 단순한 것들뿐이다. 두개골과 함께 발견된 다른 화석과 도구들도 기존 학설을 뒤집을 만큼 많은 의문을 제기하자 땅 속에 다시 묻어버려야겠다는 학자의 말도 있을 정도로 고인류학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가 손도끼처럼 정교한 석기들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떠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손도끼로 짐승을 잡고 고기를 손질해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섭취했고 이 과정에서 두뇌와 키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들 화석의 발견으로 인류 진화사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설명되던 가설이 모두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치명적인. 잠정적인 결론은 어쩌면 아프리카를 떠난 최초의 호미니드호모 에렉투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초기 호모속()에 속하는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 사이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학자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이들 드마니시 혈통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한 뒤 아프리카로 돌아갔다는 가설도 성립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수차례에 걸쳐 대륙간 왕래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학자들은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새로운 지역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약 150만 년 전이 되자 이전과는 또 다른 종속이 되었다고 추정하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호모 에렉투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견으로 그동안 설명된 계통도에 혼선이 오기는 하지만 호모 에르가스테르호모 에렉투스의 선조로 인식하든 안하든 이들 모두 인간의 선조호모 에렉투스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시간대학의 밀포드 월포프 박사는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기존 학설들을 모두 무시하고 호모 하빌리스 이후의 것은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두 종으로 통합할 것을 주장했다.

여하튼 2005드마니시에서 성인 남성 2, 노인 1, 여성 1, 어린이 1명 등 총 5구의 완벽한 형태를 갖춘 유골이 또 다시 발견되었다. 이들은 180만 년 전에 살았는데 이들의 두개골 특징을 분석한 결과 여러 종의 초기 인류 특징을 한꺼번에 갖고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서로 다른 종으로 알려진 인류가 실제로는 하나의 종에 속하며 크기만 다른 개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등 다양한 종의 특징이 한꺼번에 관찰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여러 종류의 인류 조상은 호모 에렉투스가 정상적으로 '변형'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도 있다. 드마니시를 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의 생존 연대는 물론 호모에렉투스아프리카 탈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고인류의 진상을 밝히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이들의 등장을 주목하기 바란다.

 

<호모에렉투스 11만 년 전까지 존재>

고고학 분야에서 놀라운 발표는 계속 이어졌다.

남아프리카 후지쯔 펀드 부근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모든 동물들이 매우 거대했는데 물소의 뿔은 길이가 현재의 2.5배인 3미터에 달하고 얼룩말의 무게도 지금보다 80킬로그램이 더 나갔다. 놀라운 것은 이들과 함께 살았던 호모에렉투스의 체구도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키는 2미터, 체중도 90킬로그램 정도의 거인족이다. 처음에 이들 거대한 화석을 본 학자들은 조작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수많은 화석이 발굴되자 사실인 것으로 판정했다.

그런데 인간이 이처럼 거인화되면 상당한 문제점이 초래된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적어도 2배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체구기온이 높은 지역에서는 매우 불리하다. 에너지 소비를 두 배로 함에도 피부 면적이 1.5밖에 되지 않아 열을 발산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발견은 학자들을 그야말로 곤혹스럽게 만들었는데 근래 학자들이 제시한 가설은 이들이 창을 던져 동물을 사냥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볼 때 약 50만 년 전초기 원시형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된 것으로 추정한다.

여하튼 유전자 분석 등 최첨단 기술이 고인류 연구에 도입되자 인류의 기원을 찾는 것이 너무 복잡하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인류의 기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마지막 장이 채워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고인류에 대한 관심과 유전자 분야의 연구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자 놀라운 결과는 계속 이어진다. 호모에렉투스11만 년 전까지 살았다는 폭탄적인 발언이 나온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 이보다 선행된 연구 발표도 있다.

고인류들이 살았던 전기구석기시(Lower Paleolithic)의 대표적인 석기문화가 아슐리안 문화(Acheulean culture).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넓은 지역, 그리고 한반도의 전곡리에도 분포했던 아슐리안 문화주먹도끼와 찍개 문화로도 불린다.

프랑스의 생 아슐(St. Acheul) 지방에서 다량의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고인류학자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식생활을 위해 열매나 곡식 등을 부수거나 깰 때 사용한 도구를 말하는데 이들은 호모에렉투스의 작품이다.

생 아슐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는 좌우대칭의 돌을 깨뜨려 한쪽은 둥글게 반대쪽은 뾰족하게 만든 뗀석기로 이를 아슐리안 툴킷(Acheulean toolkit)이라 부른다. 이후 고인류학자들은 생 아슐에서 발견된 석기를 기준으로 석기 양면을 가공해 만든 석기들을 아슐리안 문화권으로 분류한다.

이 연장들이 발견된 하한선은 25만 년 전이다. 무려 약 135만 년 동안 돌을 두들겨 끝을 뾰족하게 만든 아슐리안 툴킷을 사용한 셈이다. 이 말은 역으로 이들 도구만으로도 고인류가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이다.

25만 년 전까지 이어진 아슐리안 문화는 이후 중석기 시대(Middle Stone Age)로 넘어간다. 끝이 뾰족한 도구인 창이나 송곳, 흙이나 돌을 긁어낼 수 있는 스크레이퍼(scraper)와 같은 도구들이 만들어진 시기다. 이때 사용된 도구들은 이전 도구들보다 내구성이 강했으며, 또한 정교해 이후 문화 발전 속도를 가속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980년대 노먼 웰른(Norman Whalen) 박사사우디아라비아 다위드미(Dawadmi) 지역에 있는 사파카(Saffaqah) 마을에서 약 8,000여 개의 아슐리안 연장들을 발견했지만 그동안 연대 측정이 미진하였는데 2014일리노어 세리(Eleanor Scerri) 박사가 이들의 연대가 19만 년 전 것임을 밝혔다.

세리 박사19만 년 전 이들 지역은 강과 호수로 뒤덮여 있었던 초원지역으로 초기 인류인 호미닌(hominins)이 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자들은 이들 석기들이 아슐리안 연장들과 매우 유사한 점을 고려할 때 호모에렉투스의 석기19만 년 전에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호모에렉투스25만 년 전이 아니라 19만 년 전에도 살아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고인류를 다루면서 연대 설정은 매우 껄끄러운 일이다.

고인류들을 본 적 없이 주변자료들을 토대로 년대를 정하므로 오차가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동안 호모에렉투스는 대체로 190만 년 전에 태어나 성공리에 지구 각지에서 약 30만에서 40만 년 전까지 거주하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고 알려졌었는데 이 연한이 19만 년 전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이 연한도 줄여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호모에렉투스에게는 매우 특이한 지역인데 이곳에서 발견된 호모에렉투스아프리카를 출발하자마자 거의 동시대에 도착했을 정도로 년조가 높은 것은 물론 근대에 해당하는 시기까지 이들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자바섬 중부 솔로(Solo) 인근에 있는 응간동(Ngandong) 지역이다. 이 지역은 1891년 네덜란드의 뒤브아 박사자바 원인(Homo erectus erectus)을 발견한 곳이므로 명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19만 년보다도 훨씬 늦게까지 응간동에서 호모에렉투스가 살았다는 것이다.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의 러셀 시오천(Russell Ciochon) 교수호모에렉투스가 마지막으로 응간동에 살았던 연대를 108000년 전에서 117000년 전 사이라고 발표했다.

시오천 박사는 이곳에서 발견된 호모에렉투스의 정확한 생존 연대를 밝혀내기 위해 먼저 12개의 호모에렉투스 두개골 상부와 다리 경골이 발견된 동일한 지층(bonebed)에서 나온 동물 화석의 연대를 측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응간동 아래위층 단구의 주변 토지 형태에 대한 연대를 측정했다. 한마디로 호모에렉투스가 언제 멸종됐는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마지막으로 살았던 때의 연대를 확인했다는 뜻이다.

연구를 주도한 시오천 박사연대 배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호주 맥쿼리대의 키라 웨스터웨이 박사응간동연대 측정과 관련해 관련 지역이 넓었기 때문에 년대 측정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자바섬호모에렉투스가 도착한 것은 적어도 160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당시 응간동 지역에 호모에렉투스가 정착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초원으로 이들이 출발한 아프리카와 거의 같은 환경이었다. 식물과 동물도 풍부했다. 호모에렉투스는 계속 다른 섬들로 옮겨가는 모험을 계속했으나 일부 종들은 자바섬고향처럼 정착하거나 머물다 가는 경유지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약 150만 년이 지난 13만 년 전 응간동의 환경이 변하자 호모에렉투스의 운명도 바뀌었다. 개방된 초원에서 열대우림으로 바뀌자 변화된 식물상과 동물상이 호모에렉투스가 활용하던 것이 아니므로 적응할 수가 없었다는 설명인데 호모에렉투스11만 년 전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현생인류와 상당기간 함께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