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53) : 쿠프의 대피라미드(3)

Que sais 2021. 3. 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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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의 마감

피라미드는 장례용 복합건물이다. 그러므로 피라미드가 완성되면 피라미드 주변의 성곽을 두르고 부속 건물을 건설했다. 부속 건물은 일반적으로 나일강에 위치한 계곡의 신전과 피라미드 앞에 있는 장례신전으로 구성되는데 두 신전을 기다란 경사로로 연결했다.

파라오가 사망하면 70일간의 공들인 작업으로 미라로 만들어져 생전에 머물던 나일강 동쪽의 왕궁에서 출발하여 항구에 기다리고 있는 태양의 배에 태워진다. 많은 의식을 치른 후 파라오를 태운 배는 자신이 건설한 피라미드 앞의 계곡의 신전에 도착한다. 다시 성대한 의식이 치러지고 파라오의 미라와 부장품은 피라미드로 옮겨진다.

파라오의 미라와 부장품들을 피라미드 내부의 정해진 현실과 부속 공간에 안치시킨 후에 도굴꾼에 대비한 올가미 장치들을 작동시킨다. 쿠프의 대피라미드의 경우 도굴꾼에 대비한 보안 조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석관의 육중한 돌뚜겅이 제자리에 맞추어 지면 돌 빗장이 석관의 움푹 파인 홈통으로 떨어지면서 단단히 잠긴다.

작업 인부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지주를 무너트리면 3개의 거대한 돌이 떨어져 내려 쿠프의 현실 전면에 있는 대기실의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다시 대 회랑의 지주들을 제거하여 3개의 커다란 화강암 덮개가 승강 통로로 떨어져 입구가 봉쇄되었다.

입구를 봉쇄한 돌로 된 문은 너무나도 교묘하게 설계되어 일단 닫히면, 전혀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그다드의 칼리프 알 라시드와 알 마문이 대피라미드를 약탈하고자 할 때에도 대피라미드의 입구를 찾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돌더미 속을 마구잡이로 뚫고 들어가야만 했다. 현재 관광객들이 쿠프의 대피라미드 내로 들어갈 때 사용하는 입구는 바로 그들이 뚫어 놓은 것이다.

 

피라미드건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 태어난 피라미드는 그야말로 지구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지구인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피라미드의 거대함뿐만은 아니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들이 인간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것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필론이 세계7대불가사의에 피라미드를 삽입한 이유인데 현대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피라미드의 참 가치를 설명한다.

 

인간은 시간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시간은 피라미드를 두려워한다.’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피라미드의 엄청난 규모를 산정할 때 정말로 4500년 전의 이집트인들이 건설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200612<프랑스국립과학중앙연구소>질 위그 박사는 기자에 있는 대피라미드의 재료에 대해 놀라운 발표를 했다.

다소 놀라운 이야기이지만 피라미드를 시멘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가설은 1930년대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엄중한 과학적 증명 작업을 거치지 못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위그 박사는 피라미드에서 나온 석재를 X-선 투시방법 등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자연 상태에서 생산되는 돌보다 그 응집력이나 분자구조가 훨씬 빠른 시간 내에 완성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들 분석을 토대로 그동안 콘크리트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기원전 500년 정도의 로마인으로 간주했으나 이보다 2000년 전 즉 4500년 전의 이집트인으로 바꾸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벨기에 나무르대학의 뒤모르티에 교수고대 시멘트의 주재료는 생석회가 약 97%이며 나머지는 이 석회가 서로 응집력이 생기도록 첨가된 화학물질 같다고 설명했다. 피라미드를 만든 돌을 분석해 보면 나트륨, 마그네슘, 실리시움 등의 함량이 자연석에 비해 상당히 높은 점으로 보아 이런 물질들이 접착제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설명이다.

미국 드렉셀대학 재료공학과의 미셸 바소움 교수도 대피라미드에서 표본을 채취해 광물의 구성 비율을 분석한 결과 어떤 종류의 천연 석회석과도 일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바소움 교수의 결론은 놀랍다. 유난히 미량원소 함량이 높고 석회와 모래에 점토까지 섞인 이 암석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벽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콘크리트 벽돌은 가볍고 다루기 쉽기 때문에 자연석을 가공해서 올리기 힘든 윗부분과 장식부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이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콘크리트 제조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에 산재한 피라미드에 이런 시멘트 돌이 무려 500만개 정도 사용되었다고 발표했다. 피라미드 건조 당시 자연석을 잘라 힘들게 운반한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돌을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설명이다.

미국 MIT린 홉스 교수의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다. 대피라미드의 90% 이상의 건자재는 잘 부서지고 물에 담그면 침전물과 쉽게 분리되는 이집트 석회암인데 여기에 규토, 고령석 혹은 석회 등으로 만든 접합성 물질을 사용하여 훌륭한 석회암 석재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격도 만만치 않다. 만약 시멘트를 이용하여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면 무엇 때문에 엄청난 경사로를 만드느냐이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돌이라는 화강암도 사용했다. 실제로 거대한 돌은 화강암이 기본이다. 이들을 옮기는데는 경사로 외에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피라미드가 고대 이집트인들이 천연 석회암을 잘라내 건설 현장까지 운반, 경사면으로 끌어올려 짜 맞춘 것이라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 주장이다. 사실 그동안 부단하게 제기된 것은 대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 거대한 돌을 채석장에서 깎아 옮기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하는 점이다. ‘콘크리트 가설1930년부터 제기되었는데 여하튼 콘크리트로 대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유력한 설명 방식임은 틀림없다. 또한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피라미드의 건설 과정에 대한 의문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것은 사실이다.

워낙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 시멘트돌이 등장했으므로 기자 지역 피라미드 발굴단장인 자히 하와스 박사는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연구에 사용된 표본이 후대에 콘크리트로 복원된 부분일 수 있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

피라미드 건설에 대해 많은 유언비어가 있다. ‘폭군 파라오가 수많은 노예들을 채찍으로 혹독하게 부렸다거나 커다란 돌들이 잘 미끄러지게 하려고 사람들의 피를 발랐다느니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노예를 채찍으로 휘갈겨서 피라미드를 건설한 일이 없다.

이집트에는 노예제도가 없었으며 노예라는 말은 가사에 종사하는 하인이라는 뜻으로 통했다. 신왕국 시대의 파피루스를 보면 당시 노예 재산을 소유했을 뿐 아니라 결혼도 했고 법정소송에서 원고나 피고로 출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노예라고 해서 온갖 자유를 박탈당한 채 주인에게 종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더구나 고대 이집트에서는 제12왕조가 끝날 때까지 노예라는 말이 전적으로 여자들을 의미했으며 일반적으로 남자 주인의 첩을 뜻했다. 실제로 한 무덤의 벽화에는 사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여자 하인들과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운 듯이 적고 있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과 실제의 고대 노예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집트에 노예제도가 없었다는 것은 어떤 상형문자에도 피라미드 건설에 노예를 동원하거나 노동력을 위해 노예를 이용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위 노예장부(spreadsheet)가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노예를 이용했다면 노예의 숫자, 출신지, 나이, 성명, 보유 기술 등의 기록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 이전 남부지역의 흑인노예들에 대한 이러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쿠프 피라미드 노동자 숙소(중앙 희샌 태양의 배 박물관)

물론 이집트에서도 전쟁포로와 범죄자들이 다른 문화의 노예처럼 힘든 노동이나 고된 작업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물을 노예들의 손으로 건설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는 피라미드의 정교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몇 세대에 걸친 경험을 물려받은 숙련공임에 틀림없다. 선대 파라오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던 노동자들과 건축 전문가들은 이집트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아마도 다음 대 파라오의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현대인의 관념을 고대 이집트 문화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추론의 전형적인 예다. ‘피라미드하면 노예의 이미지부터 떠올리고 보는 것은 극단적인 억압과 착취 아래서만 그 같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고 보는 서양식 역사의식의 산물일 뿐이다.

학자들은 만약 노예들이 혹독한 조건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해야 했다면 100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해서 말한다. 더불어 4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정교하게 건설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