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경주역사지구 답사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55) 석굴암(5)

Que sais 2021. 12. 10. 13:08

https://youtu.be/NTmgJK3JzX4

 대범천(大梵天)과 제석천(帝釋天)

본존불을 둘러싼 4에는 본존불 바로 뒤의 십일면관음보살을 중심으로 각각 좌우에 7구씩 입상이 새겨져 있다. 그 중 입구에 있는 첫 상은 본존불을 향하여 오른편의 것이 하늘의 왕대범천과 제석천이다. 이 두 천은 법화경을 비롯한 모든 대승경전에서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신화적 존재인 불제자들이지만 이들은 우리나라 불교조각에서 그리 흔한 존상은 아니다.

대범천욕계(欲界)를 벗어난 색계(色界) 제일의 단계에 위치하면서 사바세계를 다스리는 천왕이며, 제석천은 사왕천 다음의 높이에 위치하는 33천의 천왕이다. 대범천의 조상은 그와 한 쌍을 이루는 제석천과 똑같은 양식의 두광, 연주(連珠)로 엮어진 도란형(倒卵形, 달걀을 거꾸로 놓은 모양)의 두광으로 장식되어 있고, 흰 불자(拂子, 먼지떨이처럼 생긴 불구)오른손에 쥐어 어깨 위에 들고 있다. 머리에는 두 상 모두 비슷한 보관을 썼고, 각각 석벽의 굴곡에 따라 보살과 십대제자들 쪽을 향하여 얼굴과 몸을 돌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대범천(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제석천은 왼손에 군지(軍持) 즉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들고 있다. 중생의 번뇌를 털고 씻어내는 도구로써 불자와 물병을 들고 있는 것이다. 얼굴의 표정에는 거친 욕심을 버린 정적만이 남겨져 있다. 배 앞에서 부채꼴로 퍼져 내린 치마 주름은 두 허벅다리를 양감 있게 둘러싸고 있고 두 팔에 걸친 옷소매와 길게 늘어 선 천 자락은 양쪽에 균형을 이루며 흘러내리는데 높이는 2.11미터. 대범천은 한층 더 높은 색계의 하늘에서 아직도 욕심을 온전히 끊지 못한 천상계의 존재들을 위하여 불자와 금강저(金剛杵, 악마를 항복시키는 지혜의 무기)를 들고 그들을 굽어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금강저불가괴(不可壞, 깨지지 않음)의 지혜를 상징한다. 반측면관으로 처리된 신체에서는 원근감과 사실감이 느껴지며, 부드러운 천의의 표현이 섬세한 회화작품을 보는 듯 하다.

재석천(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굴 안 주벽의 조상 중 입구에서 두 번째의 상으로 대범·제석의 2십대제자의 중간에 위치한 보살상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문수·보현의 두 보살상으로 추정한다. 두 천왕이 넓고 평평한 하나의 큰 잎사귀(荷葉) 위에 섰던 것과는 달리 매우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새겨진 연화대 위에 선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문수보살지혜와 이론에서 뛰어났으며 반야경을 결집했다고 알려진다. 보현보살불타의 이()와 정(), ()의 덕을 맡아 보는 보살이다.

문수보살(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두 천왕과 마찬가지로 두 보살상도 그 몸과 얼굴 전체를 중앙의 본존불을 향하여 돌리고 있다. 이는 석굴암의 모든 조상일심의 표현인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나의 통일되고 조화로운 질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보살상은 원형의 소박한 두광을 지닌다. 머리에는 삼면의 보관을 썼고 귀와 가슴 등에 구슬로 된 장식이 달려 있다. 천의(天衣)는 결코 욕심으로 점철되고 있는 현세의 불행한 과보 속에 얽매어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 좌측의 문수보살오른손지혜를 상징하는 경권(經卷)을 쥐고 있고 우측의 보현보살은 이 세상에서의 교화라는 ()을 계속 충실히 행함을 상징하는 둥근 보발을 들고 있는데 높이는 2.2미터.

보현보상(사진(右)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십대제자(十大弟子)

석굴암 십대제자의 부조상세계불교미술사상에 있어서도 극히 드문 대형조상들인데다 특징 있는 표현과 예술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학자들은 중국과 인도에서 보이는 십대제자상은 많았지만, 석굴암처럼 박진감을 갖춘 조상은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십대제자는 석굴암 안에서 유일하게 실존하는 인물들이다. 석굴암의 일반적인 구성 원칙에 비추어보아 본존을 둘러싼 5개의 상들이 좌우로 차례차례 교차적으로 배열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때 좌측 제1사리불(舍利佛), 우측 제1목건련이 된다. 우측의 상들은 전면에서부터 1 사리불, 2 가섭, 3 부루나, 4 아나율, 5 라후라로 보며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으로 보아서는 1 목건련, 2 수보리, 3 가전연, 4 우바리, 5 아난타의 순서다.

좌우 첫 번째 두 제자상들이 단연 다른 모든 상에 비하여 가장 연로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 또 그 손에 특수한 지물(持物)을 가지고 있다. 우측에서 세 번째의 부루나존자상은 오른손에 정수(淨水)을 들고 왼손을 위로 올리고, 두 발은 살짝 벌린 채 널리 설법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십대제자 목건련(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좌측으로 세 번째에 있는 마하가전연은 왼손을 옷 속에 넣은 채 오른손을 올려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으로 둥근 원의 모양을 하고 셋째손가락을 쭉 펴들어 설법의 상을 표시하고 있는데, 두 발은 활짝 밖으로 벌렸고, 얼굴은 자신이 넘치고 매우 굳은 의지를 가진 모습이다.

십대제자 마하가전연(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우측으로부터 네 번째 아나율은 수행을 하다가 눈이 멀고 천안(天眼)을 얻은 자로서 조각에서도 눈에 이상이 있음을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 듯이 표현한 것은 바로 천안의 능력이 주어진 것을 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십대제자 아나율(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좌측으로 네번째의 우바리계율 제일의 제자로서 율사다운 면모로 표현되었으며, 그가 왼손에 가지고 있는 것은 걸식 때 쓰는 바루(鉢盂) 그릇이다.

십대제자 우바리(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또한 석굴암 조상 안에서 라후라십일면관음보살의 바로 우측에서 오른손을 활달하게 펴고, 옷자락을 잡은 채 두 발을 활짝 벌리고 정면에서 중후한 얼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일 작은 제자상높이 2.08미터, 가장 큰 제자상이 높이 2.2미터.

십대제자 라후라(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감실(龕室)의 조각상

굴 안의 윗단에는 좌우에 다섯 개씩 10개의 반구형 감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모습의 조상들이 봉안되어 있다. 이는 천연의 암굴이 아닌 석굴암중국이나 인도에 있는 천연의 석굴사원보다도 더 잘 조화된 균제미를 가진 천연의 것처럼 보이게 하는 용도로 인식한다.

학자들이 석굴암감실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각 불상에 나타난 원만함, 십일면관음상에 나타난 인격의 절정, 대범천과 제석천 등의 천상적 향기, 문수보살의 지혜보현보살의 자비, 십대제자들의 경건한 침묵, 금강역사사천왕의 용맹성, 팔부신중에 나타난 형이하학적 능력의 승화, 그리고 악귀와 사귀의 비극적 운명, 이러한 모든 양상 위에 감실 안의 보살들이 보여주는 환희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좌우 각 다섯 개의 감실은 본존불의 앞뒤를 피하여 나머지 벽에만 조성되어 있다.

존불의 전면 상벽은 아무 손질도 가하지 않은 평면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 뒤 십일면관음보살의 머리 위 널찍한 평면공간에는 연화문으로 장식된 커다란 원형 두광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이 굴의 중심본존불과 십일면관음보살이며, 윗단 감실 안의 보살들은 그 찬미자, 천상적인 사자의 임무를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천장천공(天空)을 상징한다. 이 감실들이 천공과 지상의 중간에 위치한다는 사실에서 대승불교의 보살현상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본존불

아랫단에 본존불을 둘러싼 조각상이 모두 입상이었던 것과는 달리, 윗단에는 좌상인 보살상이 대부분을 이룬다. 본존불을 향하여 좌우 양측의 제1감실은 현재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공간으로 되어 있는데 일제강점기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측으로부터 2은 다른 상과 마찬가지로 연화대 위에 앉아 있다. 약간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으며, 앉은 자세가부좌가 아니다. 극히 편안하게 앉은 모습이 자연스럽다. 얼굴과 머리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잘 알아보기 힘드나 보관을 썼고, 머리에는 영락(瓔珞)으로 장식을 하였으며, 장식물이 길게 좌대 위에까지 늘어지고 있다. 오른팔은 굽혀서 위로 올리고 손에 무엇을 들었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왼손은 극히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얹어 놓았는데 천의의 주름이 생동적이다. 높이는 93.

감실 제2상(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우측으로부터 3왼쪽다리를 세워 그 무릎 위에 팔을 놓고 손가락을 편 손등으로 턱을 받친사유(思惟)하는 상이다. 오른손으로는 좌대를 짚었고, 머리에는 역시 영락이 장식되어 있고 보관을 썼으며 구슬을 낀 목걸이가 있다. 아름다운 용모와 늘어진 머리카락 등을 볼 때 여인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반가사유상과의 유사성을 들어 미륵보살로 보기도 한다. 높이는 86.

감실 제3상(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우측으로부터 4두광의 파손 정도가 제일 심한데 다른 상과는 달리 정면을 향하고 앉아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폈고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고 가운데 세 손가락을 가볍게 굽힌 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 위까지 올려놓았는데 우측 4상 중 가부좌를 틀고 있는 유일한 상이다. 그 밖에 머리에 두관을 쓰고 영락으로 장식하는 등 다른 조상과 별로 다름이 없다. 높이는 95.

감실 제4상(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우측으로부터 5은 몸을 오른쪽으로 돌린 모습이며, 가부좌를 틀지 않았다. 두관·영락·천의 등이 모두 다른 상과 같지만 손가락의 인상만은 특이하다. 두 손 모두 새끼손가락과 넷째손가락만이 굽혀 있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다 펴고 있으며, 오른손무릎과 평행되게 구부렸고 살짝 손목을 쳐들었다. 왼쪽 팔은 배꼽 위에 있는데 왼손의 손바닥 안을 펴서 보이고 있다. 높이는 90.

감실 제5상(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좌측으로부터2은 우측 5과 매우 흡사하며 몸의 자세가 좀 더 앞으로 굽혀 있어 좌측 5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나타낸다. 또한, 가운데 두 손가락을 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굽혔던 것과는 달리, 가운데 두 손가락이 굽혀지고 나머지 세 손가락이 펴져 있다. 이 상은 현존하는 상들 중에서 좌측 제3과 더불어 가장 선명한 선을 보여주는데 높이는 94.

감실 제2상(좌측)(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좌측으로부터 3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놓였고 가운데손가락을 가볍게 굽히고 있다. 왼손은 가슴 위에 올려 보주를 들고 있고 천의와 두관·영락 등은 다른 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정상(頂上)화불(化佛,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는 부처로 응신(應身)이라고도 함)을 지닌 점으로 보아 관음보살로 추정한다. 높이는 94.

감실 제3상(좌측)(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좌측으로부터4원정무발(圓頂無髮) 즉 머리를 깎아 둥근 머리를 그냥 남긴 채 가부좌를 틀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 근처까지 자연스럽게 올렸고, 왼손은 배꼽 위에 늘어뜨린 채 보주를 받들고 있으며, 오른손 손가락으로는 엄지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으로 원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 상은 정면을 직시하는데, 그 표정이 극히 엄숙하여 지장보살(地藏菩薩)로 비정하며 높이는 89.

감실 제4상(좌측)(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좌측으로부터 5은 다른 조각상과는 전혀 색다른 상이다. 얼굴노안으로 보이며, 머리에는 두건, 장의(長衣)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보아 미완성으로 추정된다. 좌대는 연화좌대가 아니라 15의 네모난 좌대인 방좌(方座) 위에 앉은 자세이며, 허리를 굽히고 오른쪽다리를 세워 좌를 향하여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두광이나 배광도 없는 속인의 형태임을 볼 때 유마거사(維摩居士)로 추정하며 높이는 95. 이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지 않더라도 부처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감실 제5상(좌측)(사진제공-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석굴암에 많은 불상들이 있는데 학자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석굴암의 조각상의 양식이 불일치한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본존불 1양식으로 규정하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석가의 10대 제자상 2양식, 사천왕, 인왕상, 팔부중상 3양식으로 규정할 때 1양식과 3양식조형적 미감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본존불최정점이라면 팔부중상은 그에 비해서 세밀함이 덜하고 양감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당대 장인의 실력이 모두 같지 않아 생긴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이 문제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이말은 석굴암, 불국사와 같은 대역사에 현저하게 차이나는 작품을 설치했다는 것은 장인 측면에서도 용인키 어려운 일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실력이 낮은 장인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고수의 장인이 이들을 교정하여 동일한 감각으로 만드는 것이 기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질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은 제작 시기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 774사망하고 나라에서 이어 불국사완공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액면 그대로 본다면 774년 이후 언제 완공했는지 명확치 않다. 한마디로 작품의 질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은 제작 기간이 상당한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이다. 석굴암의 완공 문제는 앞으로 계속 연구로 알려질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