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방사성 원소>
퀴리 가문은 초창기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과학자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퀴리를 시작으로 연달아 4대에 걸쳐 과학자를 배출했다. 그녀의 딸 이렌느 졸리오 퀴리(Irene Joliot Curie)는 1935년 노벨화학상을 받았고, 이렌느의 딸 엘렌도 물리학자가 되었다. 또 엘렌의 두 아들도 물리학자로 이름을 알리면서 4대째 과학자를 배출하는 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중에서 가장 알 알려진 사람은 이렌느다. 마리 퀴리의 사위인 프레드릭 졸리오 퀴리(Frederic Joliot Curie)도 마리 퀴리의 연구를 계속하여 1935년에 이렌느와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물론 마리 퀴리는 그들의 노벨상 수상을 알지 못했다. 바로 전 해에 마리 퀴리가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1965년에는 마리 퀴리의 둘째 사위인 라뷔스가 활동하고 있던 <국제연합어린이기금(UNICEF)>'이 노벨평화상을 탔으므로 퀴리 가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노벨상은 네 개나 된다.
이렌느와 프레드릭은 비방사성 원소가 실험실에서 방사성 원소로 변환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인공 방사성을 발견했다. 그들의 연구로 과학과 의학 그리고 산업에 큰 가치가 있는 새로운 수백 종의 방사능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단원은 송성수 박사의 글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했다.
이렌느 퀴리는 1897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퀴리 부부가 연구하는 동안에는 주로 할아버지인 으젠 퀴리가 이렌느를 돌봐 주었다. 이렌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마리 퀴리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협동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여섯 명의 대학 교수 가정에서 열 명의 어린이가 그 학교에 입학했는데 교수들이 일주일씩 담임교사를 맡았다.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마리 퀴리는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X선 치료 부대를 조직하는데 앞장섰고 이렌느 퀴리도 치료 부대에 합류했다. 이곳에서 이렌느는 X선 촬영기를 설치하고 조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전쟁이 끝난 1918년부터 이렌느는 마리 퀴리가 운영하고 있던 라듐연구소에서 마리의 조수로 근무했다. 그녀는 1914년부터 1920년까지 소르본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공부했는데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후 이렌느는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논문의 주제는 1898년 마리가 발견한 폴로늄이 붕괴되면서 방출하는 알파 입자를 분석하는 것이다.
1926년 이렌느는 같은 연구소의 졸리오 프레데릭 즉 마리큐리의 조수와 결혼했고 함께 방사능 물질과 관련된 연구를 했다. 이들의 딸인 엘렌 역시 부모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당시 프랑스는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으나, 이렌느의 남편 프레데릭 졸리오(Frédéric Joliot)는 아내의 성을 자신의 성에 덧붙였다. 그 당시 퀴리라는 성이 너무나 유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졸리오와 퀴리가 이를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1932년 채드윅과 미국의 앤더슨이 각각 중성자를 발견하여 1935년과 1936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사실은 졸리오 퀴리 부부가 이들보다 앞서 실험을 통해 중성자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성자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그 원리를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이 부분으로는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여하튼 그들은 1934년부터 중요한 실험에 착수했다. 처음에 실험하기 전에 그들은 얇은 알루미늄 막에 폴로늄에서 나온 알파선을 쪼이면 양성자들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양성자는 나오지 않고 중성자와 양전자들이 튀어나왔다. 얼마 후에 프레데릭이 알루미늄 옆에 있던 폴로늄을 치우자 알루미늄에서 중성자는 방출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양전자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폴로늄에서 방출된 알파 입자와는 별도로 알루미늄 핵 내부에서 특별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새로운 방사능의 존재를 의미했다.
원래 알루미늄은 방사성 원료가 아니다. 그런데 알루미늄 핵이 폴로늄에서 방출된 알파 입자와 충돌하면 인의 동위원소와 중성자가 생성된다. 인의 핵은 매우 불안정하므로 곧 방사성붕괴를 일으켜 양전자를 방출하면서 안정된 원소인 규소로 변한다. 즉 방사성 원소가 아닌 알루미늄이 인공적으로 방사성이 된 것이다. 이 결과는 안정된 원소라도 고속의 알파 입자, 양성자, 전자, 감마선 등을 쪼여 주면 방사성 원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졸리오 퀴리 부부는 이 연구로 1935년에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들은 노벨상 수상식장에서 다음과 같은 예언을 했다.
“원자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원자핵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분열시킴으로써 폭발적 성격을 갖는 핵변환 즉 연쇄반응을 야기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이들이 이야기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당대에 노벨상에도 무언의 서열이 있었는데 물리학상이 화학상보다 우선했다. 졸리오 퀴리 부부가 아쉬워한 것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벨상 추천사를 보면 그들의 업적을 낱낱이 알 수 있다.
<노벨상 추천사>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1911년 12월 10일,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폴란드의 화학자이며 피에르 퀴리 교수의 부인인 마리 스클로도프스카는 라듐과 폴로늄 원소를 발견하고, 이 놀라운 원소의 성질과 화합물에 관한 연구로써 화학의 진보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전인 1903년에 그녀는 피에르 퀴리 교수와 함께 앙리 베크렐 교수에 의해 발견된 방사현상에 관한 공동 연구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한편 그 상의 절반은 자발적 방사능을 발견한 뛰어난 공로를 인정하여 베크렐 교수에게 동시에 수여되었습니다.
1903년, 방사능의 발견이 물리학에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음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연구와 피에르 퀴리가 살아 있을 때 주로 행한 연구로부터 이룬 화학적 발견의 예외적 중요성이 점점 명백해졌고, 따라서 퀴리 부인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중간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들의 업적에 관하여 퀴리 교수는 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상은 1911년에 뒤늦게 수여되었고, 그래서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는 그때까지 노벨상을 두 번 이상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라듐과 폴로늄 발견의 중요한 핵심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방사능 물질의 발견에 대해 두 개의 다른 노벨 화학상이 1908년 러더퍼드 경에게, 그리고 1922년 프레더릭 소디에게(1921년 노벨 화학상은 1922년 12월 10일에 수여되었다) 수여되었습니다. 이제 항암 의약 분야에서 라듐이 강력한 치료제가 되었다는 것, 방사능 물질의 전이를 통해서 지구의 최소 연령을 계산할 수 있게 되고, 원자의 내부 에너지에 관한 개념과 방사능 물질을 추적자로 사용할 수 있는 구상을 하게 된 것 등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적자에 관한 문제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더욱 재미있는 것은 라듐이 우라늄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생성되고, 나중에 자발적이고 연속적인 붕괴로 새로운 원소로 되는데 최종 생성물로 납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모든 전이는 다른 종류의 방사능을 수반하며 그래서 모든 방사성원소는 각각 정도는 다르지만 불안정합니다. 방사성원소의 안정성은 절반으로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정의하며, 이 시간은 방사능의 세기가 어떻게 감소하는가를 관찰하여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반감기라고 알려져 있는 이 시간은 (우라늄의 경우에) 수십억 년부터 몇 분의 1초까지 다양하며, 따라서 이 기간을 결정하는 것은 여러 방사성원소를 정의하는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처음에 세 가지 시리즈가 알려졌고 그중 두 가지는 우라늄에서 기원하였는데, 우라늄은 광물인 역청 우라늄광에서 산화물로 발견되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토륨에서 기원하였는데, 토륨은 희토류 금속에 속하고 그 산화물은 이제는 거의 쓸모없게 된 가스 등불의 덮개로 사용됩니다. 붕괴 초기 단계에서 알려진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방사성원소의 총 수는 이제 막 40개를 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연금술사는 하나의 원소를 다른 것으로 변이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엄격히 말해서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형태의 변이로, 기초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순전히 돈을 버는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앞서 기술한 방식으로 새로운 원소를 만드는 것이 연금술사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찍이 알려진 방사성원소는 붕괴 과정 중 어떠한 방식으로도 간섭 받지 않고 저절로 생겨나고 붕괴되며, 특정 원소는 어떤 인위적인 방법으로도 다른 원소로 변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노벨상 수상자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 박사님의 발견으로 과학에 뭔가 새로운 것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것은 노벨상의 형태로 받은 간접적인 보상이지, 다른 금속을 금으로 전이시키는 직접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특정한 경우에 어떤 외부의 간섭으로 하나의 원소가 다른 원소로 변환될 수 있다는 극히 흥미로운 발견과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러한 발견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방사성원소의 자발적 붕괴는 폭발에 비유할 수 있는데, 방사현상은 전하를 가진 고속의 입자를 발사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입자들의 한 형태를 이른바 알파입자라고 하는데 양전하를 가진 헬륨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견해에 의하면, 양전하를 가진 핵이 단위 음전하들, 즉 전자들의 무리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전자는 핵 주위의 행성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튕겨져 나온 알파입자가 핵과 충돌하면, 이제 이 핵은 양전하를 갖는 일정 수의 수소핵, 즉 양성자와 같은 수의 중성자 두 가지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것은 전자와 함께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돌로 여겨지며, 충돌에 의해 핵이 산산이 부서지고 다른 원소의 원자가 생성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핵은 극히 작아서 그 단면적이 전자로 덮여 있는 원자의 약 10만 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이것은 충격이 일어나는 동안 유효 충돌의 수가 미미해서 1천만 번 중 단 한 번만 성공하는, 즉 1천만 개의 알파입자 중 하나가 핵과 충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졸리오퀴리 부부는 폴로늄에서 나온 알파입자로 알루미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폴로늄은 황과 어느 정도 비슷한데 라듐보다 불안정한 방사성원소입니다. 그러므로 폴로늄은 같은 양의 라듐보다 더 많고 더 빠른 속도로 알파입자를, 즉 원자 충격에 더 효과적인 방사능을 냅니다. 폴로늄은 또한 적당한 양을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사성원소에 속하므로 이 목적을 위해서는 좋은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노벨상 수상자는 알루미늄에 충격을 가해서 몇 분 뒤에 이 금속이 관찰할 수 있을 만큼의 방사능을 방출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포지트론이라 불리는 양전기 단위 들이었는데, 포지트론은 패서디나의 칼 앤더슨에 의해 1932년 가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방사성원소의 생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충격이 멈춘 후에도 알루미늄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은 바로 멈추지 않고, 생성된 방사성원소가 보통의 방식으로 대부분 분해될 때까지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계속됩니다. 이것 또한 새로운 방사성원소의 생성을 의미합니다.
좀 더 폭넓은 연구를 통해 새로 생성된 원소는 새로운 방사 상태의 인으로서 ‘방사성-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보통 인의 동위원소로서 그 핵은 보통 인만큼의 양전하를 가지고 있으나 그 무게는 다릅니다.
그 불안정성 때문에 방사성원소를 주성분으로 적당량 얻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들을 조사하고 화학적인 테스트로 그 존재를 증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앞에서 지적하였습니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이고 그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앞서 서술한 대로 방출된 방사능에 의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특별한 경우에는 화학적 방법으로 산에서 조사된 알루미늄의 분해에 이어서 모든 방사능이 생성된 가스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이 가스는 인의 동위원소가 생성될 경우에 기체상의 수소화인이 생성될 것이므로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조사된 알루미늄의 화학적 처리를 통해 이 가설은 확인되었습니다.
비슷한 방법으로 새로운 방사성 질소가 보론 산의 구성원소인 보론으로부터 얻어지고, 방사성 실리콘과 알루미늄이 금속 마그네슘의 두 동위원소로부터 얻어졌습니다.
사실 알파선을 충돌시켜 한 원소를 다른 원소로 전이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러더퍼드 경과 몇몇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몇 개 원소의 원자들을 충돌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이 방법으로 생성된 원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퀴리―졸리오 부부의 발견을, 비록 합성이라는 단어가 하나로 묶거나 결합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전에 이 단어가 단지 단순한 물질이나 원소를 출발점으로 하여 복잡한 화합물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을지라도, 새로운 방사성원소의 합성이라고 특징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관심을 가진 이 연구 분야는 집중적인 연구 대상입니다. 그래서 졸리오―퀴리 부부의 발견은 1934년 1월 15일에 프랑스 과학원에 통보되었고 곧이어 다른 과학자들을 이 연구에 착수하도록 고무했습니다. 여기서 초기단계인 1934년 4월에 졸리오―퀴리 부부가 원자를 붕괴하기에 적절한 발사체는 양성자, 중양성자(양성자와 대등하나 중수소에서 발생됨. 이 발견에 대해 작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함), 그리고 중성자임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겠습니다. 프라이스베르크와 함께 그들은 스스로 중성자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졸리오―퀴리 부부가 제안하기 조금 전에 아주 성공적으로 중성자를 사용했고 극히 흥미로운 결과에 도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페르미입니다.
그러나 저명한 과학자가 졸리오―퀴리 부부를 금년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추천하는 편지에서 바르게 지적했듯이 중요한 것은 의미있는 첫 걸음입니다.
이들의 발견이 과학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제가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단지 영국의 과학자 보일이, 250년 전에 화학원소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위해 기원전 500년에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투스가 가르쳤던 개별적 원자에 관한 아이디어를 적용하는데 있어서, 물리학만큼이나 화학도 보일에게 근본적인 법칙들을 신세지고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예외 조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보일은 아마도 언젠가는 미묘하고도 효능 있는 도구를 발견하게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미묘하고 강력한 방법이며 그 도움으로 원소들이 분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미래를 보는 이 통찰력이 이제 금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및 다른 과학자들의 발견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방법으로 우리는 무한히 작은 세계의 끝에 도달했을까요?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좀체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듯이 무한히 큰 것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우리를 아찔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작은 것의 바닥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도 우리를 아찔하게 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사용 예를 대충 살펴보는 것은 지금이라도 가능합니다. 이 인위적인 방사성원소의 일부는 특정 파장을 가진 일종의 엑스선인 감마선을 방출하며 이것은 여러 목적에 유용합니다. 또 일반적으로 방사성원소는 적은 양만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방사능 덕택에 공기 및 다른 기체를 전기 전도체로 만드는 능력을 관찰해서 그 특성과 양을 결정하는 것은 아주 감도가 높아서 모든 화학적 방법을 능가합니다. 방사성원소를 추적자로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성질에 기초한 것이며, 드 헤베시와 파니스가 최초로 기술한 방법입니다. 졸리오―퀴리 부부는 동물이나 식물의 체내에 주입된 후에 유기체 내에서 특정 물질의 움직임이나 분포를 관찰할 수 있게 하는 방사성원소, 예를 들면 방사성 탄소를 생리학자들에게 곧 제공할 수 있다는 전망을 피력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로렌스가 중양성자를 나트륨에 쏘아서 얻어낸 방사성 나트륨은 충분히 긴 주기를 가지고 있어서 의학용으로 라듐염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또한 새로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화학적 관점에서 라듐과의 차이 때문이며 새로운 방사성원소가 붕괴되고 나서 방사성 잔재물이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립과학원은 제가 요약한 발견에 대해 노벨 화학상을 수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원은 또한 아주 최근에 만들어진 노벨 박사의 유지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발견에 대해 수상할 수 있게 되어 흐뭇했는데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원은 금년의 노벨 화학상을 파리의 이렌 졸리오 퀴리 부인과 프레데리 졸리오 박사에게 그들이 함께 수행한 새로운 방사성원소의 합성에 대해 균등하게 수여하기로 했습니다.
두 분께 금년의 노벨 화학상을 균등하게 수여하면서 왕립과학원은 두 분의 단합된 노력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방사성원소의 합성을 화려하게 포상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두 분의 발견 덕택에 한 원소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원소로 인위적으로 전이하는 것이 최초로 가능해졌습니다. 마침내 연금술사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금을 만들려는 그들의 목적이 비록 하나의 경로에 의해서지만 이루어졌고, 그 경로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덜 직접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 분의 연구 결과는 순수과학에 크게 중요합니다. 또한 생리학자, 의사, 그리고 모든 고통받는 인류가 두 분의 발견으로부터 더 없이 귀한 치료약을 얻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졸리오퀴리 부인.
24년 전에 어머니이신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 부인은 최초로 라듐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기 위해 시상식 축제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부인 또한 어린 소녀일 때 그 시상식 축제에 참석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자 부인의 부친이신 피에르 퀴리 박사는 돌아가셨지만, 일찍이 1903년에 방사현상에 관한 연구로 마땅히 받아야 할 상인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을 퀴리 부인과 함께 받으셨습니다. 부인은 남편과의 공동 연구로 그 찬란한 전통을 가치 있게 지키셨습니다. 졸리오퀴리 부인, 졸리오 박사님. 두 분의 연구는 곧 과학세계의 관심을 끌었고 그 중요성은 충분히 세계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졸리오퀴리 부인, 졸리오 박사님. 이제 나오셔서 국왕전하께서 직접 수여하실 상을 받으십시오.
<죽을 준비가 되었다>
1936년 그녀가 노벨상을 받자마자 프랑스 정부는 이렌느에게 과학담당 장관을 제의했다. 그녀는 프랑스의 여권(女權)을 신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하고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렌느가 프랑스 정부의 장관이었지만 투표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여성이라는 제약이 계속 그녀를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여자가 참정권을 획득한 것은 1945년이다.
한편 그녀와 졸리오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기에 살았으므로 매우 특이한 삶을 살았다. 졸리오는 노벨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자마자 레지스탕스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파시즘 반대단체인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고 콜레쥬드프랑스에 있는 그의 실험실은 폭탄 제조소와 무기고로 사용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프랑스 영웅이 되어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무공 십자 훈장을 받았다. 1944년에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소장으로 프랑스 과학을 재건하는데 앞장섰고 원자력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이렌느도 원자력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1947년부터는 라듐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그녀는 방사능 연구는 물론 원자폭탄 금지, 피난민 보호, 여권 신장 등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특히 여성의 자질이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
“나는 남성과 여성의 자연과학적인 능력이 똑같다고 믿습니다. 단 여성이 여성적인 의무로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입니다.”
또한 과학자들이 좀 더 자유로운 조건에서 연구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그녀처럼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토로할 수 있었던 여성은 당대로서는 파격적이라 볼 수 있지만 노벨상 수상이라는 명성이 그녀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56년 그녀는 자신이 관장하는 라듐연구소부속병원에 입원했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죽기가 두렵지 않아요.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았거든.”
이렌느와 프레데릭의 장례식은 모두 프랑스 정부에 의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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